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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에게에게

2017.02.06 22:2602.06

에게에게

 

  나는 본격적으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보게 된 거다. 아빠는 스무 살 전에 절망을 배웠지. 엄마는 시를 읽지 않지만 김치 담그고 적금 붓고 만 원으로 장 보는 법을 안다. 내가 나약해진 뒤로 부모님은 이불을 덮어주었고 눈 감고 자는 게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누구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다 잠든 밤도 많다. 사는 게 지겨워지면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일반으로 했다. 식도로 미끄러지는 호스에 익숙한 사람은 안다. 내 몸으로 밀고 들어온 이질감은 호스가 빠지면 사라진다는 것을. 그러니 인생도 조금 더 버틸만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까지. 어떻게든 시간이 갔다. 모든 것이 한 시간 뒤에는 괜찮아졌다. 나는 병원에서 돌아와 상처 입지 않은 속으로 고사리를 씹어 넘겼다. 아빠는 뒤뚱거리며 냉장고 문을 연다. 어떤 반찬이든 보관만 잘하면 오래 먹을 수 있다면서. 나는 고사리만 씹었다. 우리는 내년에도 고사리를 데칠 거다. 볶아서 먹을 거다. 밥에 싸 먹을 거다. 맛있게 먹고 돌아설 거다. 돌아서서 치울 거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을 거다. 남기지 않을 거다.

  고사리를 버리는 날에 나는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중얼거린다. 반복이 의무인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에게가 자살했다. 에게의 여동생이 전화로 말했다. 전동차에 투신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여동생과 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은행에 들러 지난해 그만둔 회사에서 받은 백만 원을 뺐다. 위험해지면 쓰려고 남겨둔 거다.

 

다시,

 

  장례식장에서 에게의 여동생은 멀건 육개장과 병원 입구에 세워진 고장 난 자판기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녀가 울지 않으려고 말하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녀가 먹다 남긴 육개장 그릇을 치웠다. 개수대에 국물을 쏟고 흐물흐물한 고사리를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긁었다. 거름망에 가득 찬 고사리를 보면서 잔반을 정리하는 게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생각했다. 조문객은 없었고 옆방에서 간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죽으면 어떤 사람들은 울 수 있지만 에게가 죽은 게 누구 때문일까 생각할수록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맞은편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세워 앉은 에게의 여동생이 물었다.

  “오빠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뒷일을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고 분향소 옆에 놓인 상자에서 새 향초를 꺼냈다. 그녀는 향초를 받아 불붙이면서 에게의 몸을 화장할 것인지 매장할 것인지 상의하고 싶어 했다. 에게의 몸. 에게와 몸이 분리되었다니.

  “명절에 뭔가 줬으면 해요.”

  “뭘요?”

  “뭐든. 주고 싶어요, 오빠한테.”

  옆방에서 어린 상주가 나와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바다에 뜬 비닐봉지처럼 허망한 낯으로 어린 상주를 관망했다. 계단 너머로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쫓다가 넌지시 물었다.

  “가족은요.”

  “없어요.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우린 친척 집에서 살았어요. 대학 졸업해서도요.”

  “집값 때문에요.”

  “.”

  “그럼 친척은…….”

  긴 머리칼을 넘겨 한 갈래로 묶은 그녀의 정수리에 머리카락 한 올이 쭈뼛 서 있었다.

  “바쁘니까요.”

  장지는 에게가 죽은 파주로 정했다. 에게의 몸이 파주에 묻히자 내 속에서 파주는 죽은 도시로 변했다. 장례식장에서 떠나기 전에 에게가 마지막으로 일한 편의점 사장이 찾아와 흰 봉투를 건넸다. 밀린 임금이라고 했다. 편의점 사장은 밤새워 일하다 왔는지 얼굴이 해쓱했다. 그가 방명록에 쓴 미안합니다를 읽고 에게의 여동생은 말이 없었다.

 

다시,

 

  집에 와서 자물쇠부터 걸었다. 복도에 바람이 불 때마다 문을 뚫고 누가 들어올 것 같았다. 딱딱한 구두를 현관에 댄 채 다리를 직각으로 세워 누웠다. 센서 등은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팔로 크게 저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저것은 고장 난 걸까. 갑자기 고장 난 걸까. 언제부터 고장 났을까. 고장이 났는데 왜 말하지 않았나. 말할 수 없었을까. 말하기 힘들었을까. 나는 왜 모든 걸 미리 알지 못했던 걸까.

 

  나는

 

  회사에 다닌다. 사람과 만난다. 동호회에 간다. 글 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포스트잇에 써서 벽에 붙인다. 인디영화관에 간다. 가서 오 년 전 수입되지 못한 영화를 본다.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이제 개봉한 영화를 본다. 회사에 다닌다. 사람과 만난다. 누구에게든 아무한테든 연락한다. 살아야 하니까.

 

  ‘우리가 건널 수 없다면, 우리가 보고 당신은 말하고 나는 듣고 의미를 파악하고 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악수하고 헤어질 때 서로의 오해를 어떻게 풀까. 당신의 미소, 치아, 우리가 봄에 나눴던 악의 없는 대화.’

 

  사는 게 단순하고 어려웠다. 광화문 소기업에서 서류 정리하는 비정규직을 뽑았다. 아르바이트의 일종이었다. 시급은 6500원이었다. 최저시급보다 높았다. 아는 선배가 소개한 자리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출근하겠다고 했다. 에게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나는 광화문 사무실로 가서 알파벳순으로 묶인 서류를 정리했다. 상사가 시키면 일회용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넸다. 가끔 공짜 점심도 얻어먹었다. 사무실에서는 컨트롤 C가 중요했다. 잘리지 않으려면 컨트롤 C의 중요성을 빠르게 인지해야 했다. 대학 졸업한 백수는 널렸고 시급 6500원보다 낮은 일이 구인사이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500원 더 받을 뿐인데 5분씩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빼고는 쉴 틈이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폴더 명을 변경하다가 저녁 일곱 시가 되면 광역버스에 올라 집으로 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에게가 죽은 다음부터 그랬다. 반대편 차선에서 강물처럼 밀려드는 자동차가 보일 때마다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에게와 헤어진 날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 마지막 에게는 남대문 수입상가 일 층에 있다. 그는 손톱에 낀 주머니 속 털 뭉치를 바닥에 버리는 중이다. 에게의 얼굴이 반으로 쪼개진 부싯돌 같다. 나는 복도로부터 등진 어깨를 뒤에서 가볍게 친다. 벽과 수입가구가 만든 틈에 낀 채 건물 기둥처럼 박혀 있던 에게가 내 손이 닿자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아.”

  내가 반걸음 걸으면 에게는 한 걸음씩 걸었다.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지 못한 것을 안으로 감추려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에게의 등 뒤에서 에게가 가리지 못한 모습을 목격하는 게 좋았다.

  “있잖아, 평생 기억하면서 산다면 인간은 공포를 사랑하는 걸까.”

  “무슨 뜻이야?”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바닷가로 놀러 간 적 있어. 그땐 여동생도 없었을 때야. 비가 내려 모래사장이 단단했지. 사람은 없고 바람이 세게 분 거 같아. 젖은 모래에 보라색 소라가 많이 묻혀있어. 그걸 주워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 한참 돌아다니는데 소라에서 물이 흘렀나 봐. 이 차선 도로에서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곳에 젖은 축대가 보여. 축대 위에 흰색 소렌토가 세워진 것도. 엄마는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찾다가 나를 보고 표정이 굳지. 그러더니 내 멱살을 잡아당겨서는 머리통을 몇 대 갈긴다. 난 울었을 거야. 엄마는 화났겠지만. 당일치기 여행이라 바지도 한 벌밖에 없는데 다 버렸으니. 그런데 가끔 엄마가 화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바닷물로 엉망이 된 바지를 보고 박장대소하는 거야. 그래 재밌게 놀았냐면서 혼내지 않고 넘어가는 거지. 그때 나는 맞았을 거야. 그런 시기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죽은 엄마가 다정하게 느껴져. 날 때리지 않은 것처럼. 그게 무서워. 어린 내가 사라지는 것 같거든. 지금 내가 괜찮으니까.”

  에게는 병든 쥐처럼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에게가 입은 코트의 닳아빠진 어깨선으로 시선이 갔다. 우리는 발이 얼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간다. 단독주택에 딸린 작은 주차장을 개조한 곳이다. 사포로 정성스럽게 갈아 만든 나무 반지가 전시용 선반에 놓여있다. 노랗고 알록달록한 것들. 비닐 팩에 포장된 사탕처럼 줄지어 앉아 우리를 바라보는 물건들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주머니에 손 넣은 채 아무것도 만지지는 않고 예물반지를 보러 온 가난한 신혼부부처럼 빙 돈다. 젊은 주인은 계산대 뒤에서 노트북으로 서핑하느라 바쁘다. 벌써 우리 같은 손님이 한 트럭씩 들어왔다 나가 별 기대도 없는 눈치다. 그 덕에 우리는 따뜻한 가게를 조금 더 돌고 발이 풀리면 고를 게 없어 나가는 것처럼 휙 나와 다시 걷는다. 에게와 걸으면 몸이 식는 느낌도 좋았다.

  “프랑스 작가가 쓴 글이 있어. 너도 읽어봤을 거야. 집착이라는 책인데. 책에서는 기억의 속성을 명확히 보여줘. 익숙한 풍경은 너와 가까운 곳에서 되풀이되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튀어 올라 낯설어질 거야. 너는 네 안에서 변색된 기억을 잡지 못한 채 다정한 사물이 낯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살겠지.”

  에게는 새로 칠한 횡단보도를 본다. 타이어에 긁힌 자국 없이 선명한 것이다. 에게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닳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찾겠다는 듯이. 초록색 시내버스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로 달려온다. 나는 버스가 진입하기 전에, 에게의 소매를 뒤에서 빠르게 잡아챈다. 에게가 웃는다.

  “죽을 뻔.”

  나도 웃고.

  “살았네.”

  에게는 횡단보도에서 뒤로 걷는다.

  “갑자기 못 만나면 어떨까.”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

  “나는?”

  “너라면 싫어.”

  “?”

  “사는 게 재미없을 거 같아.”

  에게의 조악한 송곳니. 가볍게 웃을 때마다 팽팽한 입술 너머로 반짝이는 것. 태어날 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게 언제 밖으로 나왔을까. 젖니를 밀어내고 조금씩 자라 너로 존재하는 것들이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면 슬펐다. 에게는 신호등에 기댄 채 오른손으로 뒷목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나는 혼자 살아야 하나 봐.”

  “독신주의자?”

  “그건 아닌데 한국에서는 혼자 사는 것도 힘드니까.”

  “힘들어도 보면 안 될까?”

  “일 년에 한 번?”

  “명절마다.”

  “그럼 네가 친척처럼 느껴질 텐데.”

  에게는 무게중심을 뒤로 옮겨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구두코를 살짝 들고 멈춘다. 그의 어깨가 테이블 끝에 삐딱하게 걸쳐진 촛대처럼 보인다.

  “육 개월이나 일 년 넘게 못 만나면 잊을 거야. 원래 없던 사람처럼. 변형될지도 모르지.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같이.”

나는 올록볼록하게 솟은 노란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을 운동화 코로 툭 친다.

  “누가 그래?”

  “누가 안 그랬어. 그게 자연스러운 거 같아서.”

  “재수 없다.”

  “그렇지?”

  “난 너랑 헤어져도 기억할 거야. 네가 입은 옷, 신발, 머리카락의 유무, 오늘 한 말과 목소리까지.”

  “웃기시네.”

  “안 웃기는데.”

  “회상은 조용히 정보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소설과 비슷해. 결국 인간을 묘사하는 건 소리가 아니라 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에서 어떤 사람이 소리치는데 실제로 들리는 건 없잖아. 하지만 너는 분명 들릴 테고, 어쩌면 죽은 사람이 숨넘어가는 소리마저 포착할지도 몰라.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혼자 앉아서 망자의 한숨을 듣는 거지. 하지만 진짜 듣는 게 아니잖아. 누가 옆에서 소리치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는 소리가 아닌 형태로 기억되곤 해. 소리는 변형되기 쉽고.”

  “그럼 네 숨소리까지 기억해줄게.”

  에게가 웃는다.

  “그래. 하지만 네가 떠올리는 건 내가 아니야.”

 

  ‘회상은 반복이 토대다. 반복은 기억을 부르지만 이미지가 명확해질수록 대상은 낯설어진다. 멀어진다. 얼핏 기억과 나의 거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에 속할 수 없기에 그들은 끝없이 공회전하며 내 속에서 이질적으로 변한다. 공포는 거리감에서 오고 기억은 낯선 존재다.’

 

  언젠가 둘 중 하나는 죽고 시간이 흐르면 그리워질 거다. 에게의 탈색된 코트와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와 횡단보도를 응시하던 눈이 보고 싶었지만 삶엔 상실보다 끔찍한 왜곡이 있었다. 에게는 밤 열두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했다. 야간근무하면 손님이 적어 책 읽기 좋다고 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그날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자신의 SNS로 필사해 올렸는데 양이 제법 많았다. 광화문으로 출근할 때마다 그의 SNS로 접속해 새벽에 올라온 문장을 읽는 일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좋은 문장을 읽고 어떤 작가의 책인지 검색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으로 가서 에게가 필사한 책을 빌렸다. 에게는 고전을 좋아했고 프랑스 소설과 철학서에 빠져있었다. 21세기 프랑스 지식인들이 신세대 개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소묘는 가난의 냄새로부터 멀었다. 나는 프랑스 소설은 몰랐지만 에게와 친해지고 싶었다. SNS에 게시된 문장에서 나와 겹치지 않은 그의 시간을 느끼고도 싶었다. 에게가 사랑한 것까지 사랑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에게가 살아있다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에게가 읽고, 쓰고, 새로운 그림에 감탄하다가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이 세상에서 삭제됐다고 생각하면 공간이 나를 파괴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다. 점심값와 교통비, 통신비를 제하면 월세만큼의 돈이 통장에 남았다. 수도권에 집이 있어 다행이었다. 부모님도 살아계셨다. 우편함에 내 명의로 된 고지서가 꽂히지도 않았고 아침저녁은 집에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게 특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시간당 6500원씩 벌면서 특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켜둔 전기장판에 들어가면 내가 아직 어리게만 느껴졌다. 에게는 편의점 골방에서 살았다. 거긴 원래 음료수 같은 재고를 쌓아두는 창고였다. 사장의 양해를 구해 한쪽 벽을 치우고 세를 들었다. 보증금 30010만 원씩 냈다. 에게는 보증금 빼면 남는 게 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듯 말하곤 했다. 방에 달린 형광등을 볼 때마다 편의점 계산대 뒤에서 희멀건 빛에 의지해 책 읽는 반쪽짜리 얼굴이 떠올랐다. 밤새 뒤척이다가 문자 하나를 보냈다.

 

  ‘일 년 지나면 만나는 거야?’


  에게는 내가 보낸 문자를 읽었을까.

 

다시,

 

  모래 같은 계절이 온다. 건조하고 평소보다 느린 공기가 사방을 가로막은 계절이다. 사막에서 길 잃은 듯 하루를 보내고 방향을 몰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편안해지는 날이 온다. 무서운 것도, 소름 끼치거나 충격적인 일도 없이 시간이 간다.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타지 않고 중간에 서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잘 올라가고, 잘 맞고, 잘 돌아가고, 문이 열리고 하루가 저문다. 하루가 저물면 공포를 생각했다. 기억은 문틈으로 칼날이 파고드는 것처럼 공간을 침식한다. 그렇게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있다.

  어떻게 한명의 인간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하나의 이름이고 삶이고 시간이었던 에게의 얼굴은 계절이 바뀔수록 내 속에서 낯설어지기만 한다.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인부들이 파쇄기로 아스팔트를 분해하는 걸 보고 에게가 그리웠다. 그날 횡단보도에 새겨진 깨끗한 직사각형에서 에게는 무엇을 봤을까. 그가 말하지 못한 고백은 어떤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을까. 돈이었을까? 시간이었나?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줄곧 어떤 단어를 미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이 아니고 이제야 든다. 부자, 미래, 성공 같은 단어 말이다. 우리가 말로 이룬 문장들 말이다. 미래는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친구들의 몫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장래를 공들여 준비한 사람한테 던져진 선물처럼 보였다. 그 기준에서 제외된 서로의 얼굴을 목격할 바에는 만나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비정규직이었고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돈 없으면 외로워진다는 것을 일찍 눈치챘으며 이따금 조우해 그동안 익힌 문장으로 삶을 되받아쳐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에게와 헤어지고 그의 상실은 물성처럼 정확해졌다. 나는 틈날 때마다 에게의 SNS로 찾아갔다. 그의 SNS에 게시된 문장을 읽으면 수도요금을 아끼려고 한 번만 탈수해서 뻣뻣해진 에게의 낡은 소매가 손에 잡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책을 소비할 줄 알았다. 해석도 잘했다. 도서관에서 한 번도 대출된 적 없는 철학자의 자서전을 끝까지 읽을 만큼의 참을성도 지니고 있었다. 싸인 펜으로 그린 소용돌이 문양처럼 난해한 이론으로 무장한 문장을 푸는 게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이었다. 복잡한 철학서를 어렵사리 해치우고 도서관에 반납하면 가까이 앉은 에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철에서, 도서관에서, 백화점 지하 1층 식품코너에 앉아 비빔냉면을 시켜 먹으면서도 들렸다. 조금 쉰 듯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독백에 익숙한 말들. 에게의 생각, 에게가 사랑한 시와 문장들.

 

  “나는 책이 아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좋은 문장이 많잖아. 철학이나 소설 읽으면 허무해. 삶에 맥락도 없는 거 같고. 실제로 의미가 뭔데. 지금 중요한 일들 아무것도 아니거든. 나는 의미 없는 게 진짜 삶이라고 생각해. 무의미한 게 삶의 근본이라고. 그러니 잘 살고 싶으면 내공이 깊어져야 해. 마음 한구석에 누가 미리 써놓은 문장을 새기는 거지. 인생 별거 없다는 문장. 그걸 백신처럼 맞은 다음에 아플 때마다 한 알씩 꺼내 먹는 거야. 열심히 걷다가도 구두가 벗겨지는 것처럼 느닷없는 게 삶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근데 약은 약일 뿐이야. 너는 정말 괜찮지 않아.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그땐 진짜 삶을 살아야 해. 문장이 되지 않으면 계속 아플 거야.”

  “네가 생각했니?”

  “그럴 거라고. 죽은 작가들이 말했어.”

  “인용을 많이 하는구나.”

  “혼자 사는 게 두려워서 그래.”

  에게는 자주 웃었다. 에게가 자주 웃어서 불안했다. 웃는 사람일수록 아프고 어둠을 보려거든 약을 건네야 한다. 나는 에게와 손잡는 대신 그의 낡은 소매를 잡고 걸었다. 에게는 빚이 많았다. 대학 입학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불어나는 빚이 두려워 삼학년이 되기 전에 때려치웠다. 때려치웠는데도 빚은 남았다. 한 달에 백만 원씩 버는 아르바이트로는 월세 내고 생활비 쓰고 밥 먹고 원금 갚기도 빠듯했다.


  철로에서 발견된 에게의 소지품을 추정해본다. 내가 마지막으로 인도받지 못한 것들을 상상해본다. 많지 않았겠지만 많지 않은 것 중에서 책은 에게가 마지막까지 놓기 힘든 물건이었을 거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어도 말이다. 에게는 만날 때마다 좋은 문장을 읽어줬다. 읽는 게 끝나면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같은 문장을 두 번씩 반복했는데 겹쳐 말해야 그 말이 이루어질 것처럼 그랬다. 나는 에게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에게가 사랑하는 문장이 계속 생겼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다시,

 

  머리카락을 생각한다. 생각하는 게 어려우면 다시, 또다시 생각했다. 봄에 에게는 살아 있었다. 살아서 웃고 살아서 말하고 살아서 걸었다. 하지만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서 나는 앞으로 평생 주머니를 긁어 바닥에 버리는 에게와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느꼈다. 지금은 겨울이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나를 기다린다. 우리는 밥상에 앉아 사무실에 새로 부임한 상사의 고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 주제로 이루어진 저녁은 당연하고, 당연해서 두렵지 않다. 에게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내가 밥을 넘기지 못하자 아빠는 호두 반찬을 씹으면서 우연을 버티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아빠,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물을 따라 내민다. 아빠는 열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래서 왼쪽 종아리가 오른쪽의 절반만 하다. 할머니는 아픈 아빠를 데리고 절도 가고 성당도 갔지만 병원에 갈 생각은 못 했다. 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나도 가끔 화가 나면 병신 같다고 씹어뱉는데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열 살부터 오십 살까지. 아빠는 어떻게 그 개 같은 시간을 버텼을까. 말이 많은데. 말이 참 많은 세상인데 말이다.

 

  새벽에 생리가 터졌다. 몸이 떨렸다. 씻고 팬티를 갈아입으면서 산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산다. 살아있다. 그러자 에게가 떠올랐다. 에게는 파주에서 죽었다. 철로에 투신했다. 유서는 없었다. 눈 밑에 작은 점이 있었다. 그가 죽고 그를 만나러 간 적은 없지만 파주와 연결된 철길 위에 설 때마다 한 발짝 물러나곤 했다. 죽음은 리본처럼 머물며 얼굴을 쓰다듬는다. 어떤 영화에서 읽은 거다. 눈 감았다가 뜨는 힘을 기르고 싶다. 구두를 신고 벗는 우아함을 기르고 싶다. 창문이 닫히면 담담해지고 싶다. 무엇이든 기르고 싶다. 나는 될 수 있었다. 나는 클 수 있었다. 나는 피를 흘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곳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었다. 내겐 생활만 남았다. 생활을 했다. 광화문 계약직이 끝나고 새로 잡은 일은 다시, 계약직이었다. 홍대 사무실이었다. 일산에서 홍대로 가려면 대곡역을 거쳐야 했다. 직행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광역버스는 한번 탈 때마다 2500원씩 들었다. 왕복 5천 원, 한 달 10만 원. 지하철 정기권을 끊으면 절반 값으로 60번씩 탔다. 정확히 한 달 55천원이 들었고 55천원이면 핸드폰 요금을 내고도 만 원 가량이 남았다. 버스는 오래 타면 멀미가 나는데 지하철은 편안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실시간 뉴스로 사고가 뜨기 때문에 늦었다고 벼락 맞을 일도 없었다. 그러니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에게가 죽은 역을 피해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견뎌야 한다고, 살아있으니까. 지하철 단말기에 카드를 찍을 때마다 낯선 섬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날마다 이동하는 게 이상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먹고 싸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었고 어떻게든 일 미터씩 전진해야 했다. 뒤로 돌아간 가방을 제대로 돌려 매기 힘든 급행열차에서는 이유 없이 나를 누르던 촉박함이라는 단어가 안전한 공기로 변했다. 바람에 홀려 실수로 들어온 꽃씨처럼 사람들의 열기가 전동차 안에 떠다녔다. 그 온기 속에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릴 역이 어딘지 알려주는 방송이 나오면 나는 내 앞에 버티고 선 어깨를 망설이지 않고 밀었다.

 

  에게는 틀렸다. 에게는 잘못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게의 모습은 단순해졌다. . 라고 말하면 아. 라고 계속 말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장례식이 끝나고 에게의 여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무엇이든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관을 들고 파주의 해안절벽으로 갔다. 우리는 합을 맞춰 소나무로 짠 관을 바다에 던졌다. 땅에 묻는 것보다 수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곳에 네게 줄 공간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너도 공간을 바라선 안 되었다. 우리는 바쁘게 살기로 했다. 바쁘게 살면 왜 바쁘게 사는지 잊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에게는 어디든 있었다. 우리가 버렸는데도 그랬다. 나는 홍대 사무실로 출근하다가 가끔 아. 라고 말했다. . 라고 말하면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단어가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 다시, 나는 아. 다시, 대곡역으로 갔다. 다시, 대곡역으로 가서 서 있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파주로 연결된 역은 철로가 밖에 있다. 바람 불면 피할 곳이 없다. 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밀착해있었다. 겨울새처럼 귓가에 어깨를 바짝 붙인 채 흔들리는 역 간판을 노려보면서. 한 남자가 역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묵히 바람을 맞는 게 보였다.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광대 밑 움푹 꺼진 부위로 제때 관리하지 않은 각질이 고여 있었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잘 먹지 못해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은 사람처럼 말이다. 바람이 불었다. 쇠처럼 불었다.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저 남자는 왜 피하지 않을까. 저렇게 강한 바람을 어째서 맞고만 있을까. 그의 결연한 표정을 보니 입술이 차가워졌다. 받아내는 것. 어쩌면 그게 지금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받아낸다, 상상한다, 깨닫는다, 사고의 폭을 넓힌다,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금 이 감정은 여기 아니면 확장될 수 없다. 정신을 수련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나는 미루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기억해 담고자 한다. 가능한 모든 걸 알고 싶다. 그날, 에게 뒤에 서있었을 사람과 에게의 굵은 손가락과 우리가 함께 걸을 때마다 안으로 움츠러들던 어깨에 감춰진 비밀이 선로로 묻혀버리기 직전 그가 떠올린 문장들을. 에게가 하지 못한 말은 아. 처럼 단순했을까. 뜻도, 물음도, 해탈도 아닌 한 숨 같기만 한 아.


  전동차에 오를 때마다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역사와 전차 사이로 죽음이 보였다. 나는 구멍에 빠지지 않으려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다시,

 

​   에게와 평일에 만나 논 적 있다. 아침에 봤는데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지하철로 갔다. 지하철 요금은 왕복 3000원이 못 됐다. 환승역으로 내려가자 에스컬레이터 앞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선행 열차의 사고로 전역에 도착한 급행이 들어오지 못하니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방송이 역사에 울렸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여유롭게 핸드폰을 봤다. 포털 사이트에 뜬 지하철 사고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갖지 못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진짜 회사원이 된 것처럼 대열에 합류해 차가운 코트 깃 속으로 초조한 기색을 감췄다. 30분 뒤 열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두 줄씩 탔다. 전역에서 탑승한 승객들로 객차의 절반가량이 차 있었다. 나는 무리에 섞여 간신히 올랐지만 에게는 아슬아슬하게 타지 못했다. 에게는 놀이공원에 입장하기 전부터 표를 가지고 놀다 실수로 뜯은 아이처럼 보였다.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징조였을까. 그리고 이 기억은 전부 맞을까. 어쩌면 올라탄 사람이 내가 아니라 에게고, 울적한 표정은 나의 것이라서 그날의 광경이 이토록 선명한 것 아닐까.


  퇴근길 전동차에서 겨울 아침 서늘한 역사 공기를 떠올렸다. 그곳에는 아직 헤어지지 못한 에게의 어깨가 남아있다. 저수지 얼음이 깨지고, 마른 퇴비 냄새가 나고, 전동차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로 죽은 풀씨가 달라붙는다. 거기선 어떤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내겐 기억할 힘이 없다.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너는 모르지. 걷는 게 무섭다는 것도 모를 거다. 도시에서는 눈감는 게 사치스럽고 사치스러운 내 마음도 영영 모르겠지. 네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번에도 노벨문학상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해체하고 보컬은 다시 밴드를 만들어 독립한 것을, 독립해서도 잘 부르고 그가 만든 노래를 너와 함께 부르고 싶다는 것도. 아니 같이 듣기만 해도 좋을 것 같고 네가 사라진 뒤부터 조금씩 줄어든 세상에서 많은 일이 벌어진 것까지 너는 모르겠지.

 

  전동차에서 내리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바삐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따르지 않았다. 창문이 어둠을 배경 삼아 나를 비췄다. 가까이 붙자 파랗게 반짝이는 보신탕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환승역 주변은 개발이 덜 된 시골이라 가로등이 드물었다. 역에서 나온 여자가 혼자 시골길을 걸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창문에 코를 박고 붙었다. 여자는 걷는 동안 보이지 않다가 가로등과 가까워지면 배낭부터 불쑥 튀어나왔다. 왜 배낭이 먼저 보일까. 에게를 떠올릴 때 빛바랜 코트부터 떠오르는 것처럼. 기억 속에서 에게는 늘 마지막에 온다. 황량한 시골길로 씩씩하게 걷는 여자. 여자가 앞으로 갈 때마다 운동화 밑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톱으로 긁었다. 오늘 저 여자가 죽으면 내가 증인이 되겠지. 그러니 모든 걸 지켜봐야겠다.

 

  나는 스물여섯이다. 너는 너의 죽음을 산다. 우리는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밤을 추억하며 살 거고, 누군가 만날 거고, 어쩌면 이 어둠을 너 대신 공유할 수도 있겠지만 너를 잊진 못할 거다. 에게가 속삭인다.

  “광대들은 라디오가 꺼지면 혼자 걸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슬픔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자주 웃는 사람은 경계하는 게 좋아. 슬픔을 따로 묻거든.”

  “네가 생각했니?”

  “반은.”

  내 곁에 맴도는 에게의 독백이 밤처럼 길다. 에게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다. 우물을 열고 소리 지른 다음 바닥에 반사된 소리가 메아리로 튀어 오르기 전에 뚜껑을 덮은 것처럼. 그렇게 영원히 내 안에 잠겨 떠돌 것 같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갔다. 1번 출구로 나가려다 잊은 게 떠올라 대곡역 지하 편의점에 들렀다. ATM기는 스텝용 창고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안주머니에서 백만 원이 든 봉투를 꺼냈다. 에게의 계좌번호를 누르고 돈을 꺼내 투입구에 넣었다. 없는 계좌라고 떴다. 에게의 여동생 계좌번호를 눌렀다. 이번엔 잘 갔다. 명세표를 받아 지갑에 넣고 초코바를 집어 계산대로 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방금 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뒤엉켜있었다. 비몽사몽한 눈으로 연거푸 하품하느라 바빴다. 수입 담배가 진열된 선반 옆에 쪽방촌처럼 어둡고 습한 공간이 있었다. 조금 비켜서니 스티로폼 판으로 가린 입구가 보였다. 벽과 천장을 삽으로 깎아 토굴처럼 다진 복도로 통하는 입구였다. 3~4m 깊이로 판 통로 끝에 철문이 달려 있었다. 문이 열려 방이 훤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불과 뚜껑 열린 밥통이 고시원만 한 방에 포개져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방에 고정된 시선을 끌려는 듯 말했다.

  “이거 원 플러스 원이에요.”

  그가 뒷목을 쓸어내렸다. 단순한 동작에서 어떤 모습이 떠오르기 전에 남자는 계산대 밑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세 마디만 한 것이었다.

  “받으세요.”

  그걸 받고,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래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시외버스가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가는 게 보였다. 어디든 통과할 것처럼


  우린 죽지 않았구나. 나는 스물여섯이니 더 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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