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족과 666
*본편 무관*
“너희는 자신들을 노예 종족이라 부르지?”
극초인간(極超因間)의 일원으로서 과학인간, 지혜인간, 속도인간이라 일컬어지는 벨리카미가 비비한족의 한 사내인 로샨에게 말했다.
로샨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나타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 인신족(忍辰族)인 벨리카미가 빛으로 된 말을 이었다.
“우리 인신족은 스스로를 만마(萬魔)의 종주(宗主)라고 하지.”
벨리카미가 양쪽 귀 옆에 난 우유빛 뿔 사이에서 차크라를 발했다. 우유빛 뿔 사이의 차크라는 이마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고 마치 빛나는 눈처럼 보였다. 벨리카미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인신족은 문명 6을 칭하고 있어. 문명 6은 카르다세프 척도로서 개개인이 전지전능한 문명을 뜻해. 이는 사실 용어 혼란이지. 그 어떤 문명도 진리를 창조할 수는 없거든. 언제나 어떤 법칙을 조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것도 어디까지나 발견에 불과하다는 것이 또 다시 증명되곤 했어.”
“저희 비비한족은 그저 주인님들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자들일 뿐입니다. 저희는 문명 7의 존재를 믿습니다.”
더듬이가 달리고 풍뎅이와 닮은 날개가 달렸지만, 다른 괴우주의 문명 6 종족들처럼 생김새는 준수한 비비한족의 일원인 로샨이 말했다.
벨리카미가 대답했다.
“그야 너희 비비한족이 크툴루(Cthulhu) 괴신족(怪神族)에 의해 저주를 받아 악의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 뿐이지. 우리 인신족은 오랫동안 666을 하나의 상징으로서 써왔지. 6은 인간의 수이고,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상에서 모든 걸 누리고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뜻해. 666은 그 극한이라 할 수 있지. 우리 인신족이 인간의 반열에 속하고, 너희 비비한족은 인간의 반열에 못 드는 건 비비한족이 오직 노예의 삶에서만 쾌락을 누릴 줄 알기 때문이지.”
사위가 조용해졌다. 이곳은 지옥의 한 철. 지옥이 몰려 왔다. 지옥의 죄수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벨리카미의 곁으로 다가섰다. 사탄이란 무능, 무지, 무애를 신봉하는 자. 없음이라는, 공허라는, 허무라는, 어둠이라는, 창조주가 창조하지 않았던 순수한 악을 신봉하는 자였다. 없음을 창조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뭇 마왕들의 정점으로서, 천마(天魔)로서 인신족은 사탄을 제압하고 있었다. 인신족은 지옥의 간수이고, 빛의 진영이어야 지옥의 간수가 될 수 있었다. 사탄이 벨리카미의 뜻을 읽고 다시 지옥으로 돌아갔다. 다시금 인신족의 회당 뮤뉴하렌이 사위를 장악했다.
비비한족이란 주인의 뜻을 관철하는 걸 즐거워하는 자들이었다. 비비한족의 의식은 인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벨리카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괴우주 일반 시공의 문명들을 관찰해왔지. 우리 신족(辰族)들 또한 거기서 나왔으니까. 예외 없이 괴우주 일반 시공 문명들은 문명 0단계 대의 어느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돼. 우리 인신족이 관측한 바로는 예수께선 평범한 인간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 하지만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복음을 전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그때 우리 신족들은 감히 이룰 수 없는 천국을 느끼지. 문명 6까지 오려면 끝없는 전쟁을 치러야 해. 예수의 말씀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이를 전적으로 이룰 수는 없는 걸 알게 돼. 몸서리치는 평화를 향한 그리움을 느끼게 돼. 예수께서 약속하신 지상에서의 평화조차 절대 쉽게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예수께선 싸우지 말라고 말한 적은 없기에 더욱 그래. 우리의 길 또한 예수의 길과 어느 정도는 겹쳐져 있음을 알게 되는 거야. 물론 현실 속 예수의 뜻은 언제나 바빌론 제국의 뜻에 의해 왜곡되곤 했어. 거기서 로샨은 문명 7을 느끼는 거야?”
“그렇지요. 문명이 6단계 까지 밖에 없는 건 문명 7은 범접할 수 없는 창조주의 영역. 있는 지 없는 지 영원히 파악할 수 없고, 그렇기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몇몇 자들은 때때로 무시하고 부정하지만 일말의 의구심은 가질 수밖에 없는 창조주의 영역이지요.”
“인간들은 언제나 똑 같은 말들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봐. 그렇기에 우리 인신족은 인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절대자께 영광을, 이 세상에 평화를.”
[201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