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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바이칼 Baby - 6

2017.08.24 12:4508.24

세르게이

 

3.1 운동의 영향으로 이르쿠츠크 고려인 사회에서도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어 갔다.

최 고려는 그 열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비록 중퇴이긴 했지만 치타사범학교를 다닌 그는 잡지「그리스 정교」발행에 참여했고

지역조선인학교 교과서 편찬위원이며 이따금씩 맑스·레닌 번역도 해온 인텔리였다.

이르쿠츠크의 조선인들은 갑론을박 끝에 무장단체설립 쪽으로 뜻을 모았다.

「자유대대」라는 거창한 이름도 지었지만 막상 규모는 3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머릿수 따위는 중요한 게 아냐.

러시아 혁명도 한 줌밖에 안 되는 볼셰비키가 해낸 거잖아!”

볼셰비키의 뜻은 다수파지만 혁명 당시의 그들은 작은 무리에 불과했었다.

그 바람에 혁명 초기의 러시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터무니없을 만큼 낙관적 사고방식에 감염되어 있었다.

 

붉은 군대의 외곽단체로 등록된 자유대대가 착실히 성장해가면서

대대 코미사르(인민정치위원)를 맡은 최 고려도 바빠졌다.

처음 몇 달간은 아기수발을 혼자 도맡다시피 했었지만

이젠 밤늦게 들어와 잠든 덕범이를 들여다보고 벌쭉 웃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아기는 최 고려의 아내와 5살짜리 달래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달래는 아기를 극진히 보살폈다.

짓궂은 녀석들이 짐짓 때리는 시늉이라도 내면 대번에 입을 비죽이며 울먹인다.

이윽고 걸음마를 시작하자 달래는 동생을 끌고 마을 나들이를 나서곤 했다.

어린 누나가 동생을 데리고 나타나면 동네사람들은 하던 일을 접어놓고

함께 어울리곤 했다.

바이칼 baby,

사람들이 세르게이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우리 덕범이 왔구나.” 하는 것은 카레이스키(고려인)들 뿐이다.

지켜보는 주위의 애틋한 시선들 속에서 세르게이는

조선말과 러시아말을 마구잡이로 섞어 배우며 무럭무럭 자라갔다.

 

덕범이가 세 살이던 1921년 6월,

자유대대는 극동 시베리아의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 시)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에 휘말렸다.

붉은 군대의 조선인 부대와 만주 조선독립군 사이에 벌어진 갈등 끝에

전투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 사건 배후에도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청산리 전투를 벌인 독립군이 일본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로 숨어들자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블라디보스톡에 와있던 일본군은 레닌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했다.

“조선출신「비적들」을 보호하면 이는 곧 일본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내우외환을 맞은 레닌정부에게는 온 사방이 적이었다.

그래서 힘들고 고단했던 혁명 초기의 레닌정부에

그 위협은 쉽게 먹혀들었다. 일본을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트로츠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독립군을 러시아에서 추방하거나

붉은 군대로 흡수해 조선독립군 깃발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흡수 쪽으로 진행된 결과가 바로 자유시 사건이었다.

 

빨치산 출신인 붉은 군대사령관 갈란다라 시윌린과 연합한 자유대대

그리고 홍범도 등 일부 독립군부대는 이틀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상대방의 무장해제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발생한 독립군 사상자는 총 병력의 1/3에 가까운 960명에 달했다.

갈란다라 시윌린은 장교 72명을 포함한 포로들을

붉은 군대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3천명 규모에 이르던 만주의 조선독립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해 8월 말, 붉은 군대에 편입한 독립군 병력 1천745명을 인솔한

갈란다라 시윌린과 자유대대는 이르쿠츠크로 개선했다.

이 병력은 이르쿠츠크 주둔군인 5군단 산하의 조선여단이 되었고

지휘관으로 여단장 갈란다라 시윌린, 군정위원장 박승만, 정치부장 채동순이 임명되었다.

자유시 사건과 적백내전은 서로 무관했지만 내전에 깊이 간섭했던

국제연합군의 일원인 일본군이 개입한 것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는 적백내전의 일부로 볼 수도 있었다.

여하튼 자유시 사건 이후 적백내전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유시 사건은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숱한 전우를 잃고 붉은 군대로 편입된 조선여단에게

미안한 감정을 지닌 자유대대 사람들과 최 고려는 어떻게든 화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총구를 겨누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풀리기는 어려운 법.

그래서 같은 영내에서 지내는 자유대대와 조선여단 장병들은

오가다 마주치면 마지못해 목례나 하는 거북한 사이였다.

 

이르쿠츠크 토박이인 자유대대 사람들은 객지생활을 하는

조선여단 장교들을 이따금씩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던 그들이었지만 거듭되는 초대를

거절만 하기도 뭣해 몇 번 응하기도 했다.

 

갈란다라의 생일을 핑계로 조선여단의 몇몇 장교를 초대한 최 고려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 겸 아이들을 불러 인사시켰다.

누가 봐도 조선인이 분명한 여자애가 푸른 눈의 남동생과 나란히 나타나자

장교들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옴스크 피난민들의 비극적 사연을 들려주자 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음... 험한 꼴을 겪는 게 우리만은 아니로군.”

조선여단의 이호영 대위가 나직이 탄식했다.

“그게 과연 콜챠크만의 죄일까?”

갈란다라가 뚜벅 던졌다.

평소 과묵하던 여단장의 말인지라 장교들은 주목했다.

 

“우린 지금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가는 첫 걸음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단 말이지.”

한때 과격하기로 이름 높던 파르티잔의 철학 강론이었다.

“파르티잔 시절에 난 두 부류를 봤어. 꿈을 추구하는 자와 현실에 밝은 자들,

처음에는 나 역시 꿈을 좇는 투사형이었지.

그런데 살아남는 건 결국 현실주의자들이더군.”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킨 갈란다라는 이어갔다.

“내 보기에는 레닌 동지나 트로츠키 동지 역시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 같아.

그 카리스마에 혹한 인민들은 집단최면에 빠져 끌려가는 중이지.

눈에 콩깍지 씌인 사람들처럼 말이지.

그게 바로 이상주의자들의 힘이야. 게다가 인간적 매력까지 갖춘 정열적 투사들이니까.

여하튼 꼴사납던 제정러시아 인간들일랑은 일단 쓸어버렸으니

인민들의 원한도 이제는 그럭저럭 풀렸을 거야.

자, 이젠 배고픈 걸 해결해야 할 때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쩐지 어려운 이야기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라 장교들은 눈을 반짝였다.

 

“천하를 얻는 것은 말위에서지만 말 위에서 다스리지는 못한다고 해.

국정운영은 투사들 몫이 아니란 말이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최 고려는 갈란다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역시 나름의 인텔리였지만 이처럼 예리하게 현실을 분석해낼 안목은 없었다.

역시 투쟁으로 쌓은 연륜이란 무시 못할 힘이었다.

“투쟁시대 다음에는 아마도 건설시대가 오겠지.

새로운 농촌, 새로운 도시, 새로운 군대, 그리고 새로운 산업을 건설하는 시대,

여기서 새롭다는 건 내용 - 농사나 군사기술 따위 - 이 아니라 그 운영방식 얘기지.

그런데 인간들의 생활방식이라는 건 오랜 세월 - 수백 년 또는 천년 이상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질서고 문화야.

어떤 이론에 따라 일조일석에 짠 하면서 나타난 게 아니란 말이지.

그걸 하루아침에 갈아엎고 새로 만든다?

아마 쉽지 않을 거야. 시행착오도 많겠고.

시행착오는 아마도 상층부의 지도층에서부터 일어날 거야.

혁명도 그렇게 시작됐으니까.

지도층의 이합집산이 시작되면 정책 역시 조변석개로 요동치겠지.

그럼 제일 고달파지는 게 누구겠어? 인민이야. 바로 우리란 말이지.“

 

조선 사람이 러시아인과 보드카로 대작하기는 무리다.

그래서 보드카만 마시는 것은 갈란다라 뿐이고 최 고려와 장교들은 물을 섞어 마시고 있었다.

“2년 전 자유시 사건만 해도 그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조선 독립군내 파벌간의 주도권 다툼쯤으로

비쳤을지 모르지만 난 알고 있어. 소비에트와 일본의 타협결과였다는 사실을.

작년까지만 해도 소비에트 정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고달픈 신세였어.

그런 판국에 일본까지 적으로 돌리면 사태가 심각해진다고 본 트로츠키의 결단이었지.

조선독립군을 감싸지 말라는 일본의 압력을 피할 수단은 딱 두 가지뿐이었어.

하나는 러시아에서 추방하는 방법,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어?

결국 일본세력권인 만주밖에 없는데 그건 죽으라는 거나 진배없는 애기야.

약소민족 편임을 세계에 선언한 우리 소비에트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지.

차선책은 붉은 군대로 편입하는 것.

그렇게 되면 러시아 영토 내에는 더 이상 조선독립군이 없다고 주장할 명분이 생기니까.

 

하지만 일단 편입되면 일본이 아닌 백군과 싸워야하니까 독립군은 거부했고...

결국 전투까지 벌어지고 말았지. 하지만 말이네,

조선인들이 병력을 이나마 유지하게 된 건 당시의 결단 덕분이라고 생각하네.“

 

처음으로 진상을 알게 된 조선여단 장교들의 표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가 그토록 국제정세에 어두웠던가?’

하지만 그들 생각에도 여단장의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당시 청산리 전투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일본군은

연해주 신한촌과 간도 용정 일대에서 독립군 가족이나 부역자라며

조선인 부녀자 학살과 방화를 자행했었다.

그 마당에 다시 만주로 갔다면 꼼짝없이 몰살당했으리라.

 

‘ ..... 그럼 우린 자유시에서 도대체 왜 싸운 거지?’

혼란에 빠진 장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갈란다라가 이어갔다.

“여단장이 아닌, 파르티잔 선배로서 말하겠네. 부디 큰 그림을 생각하시게.

무장투쟁으로 조선인들의 의기를 떨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해서 거대한 일본제국을 무찌르고 독립을 쟁취하기는 무리라고 보네.

이 집 아이들을 한 번 보시게.

볼셰비키 당원과 백군장교가 얼마나 먼 사이인가?

그런데도 그 아들과 코미사르 최의 딸이 남매로 자라고 있지 않은가?

자네들 사이가 과연 볼셰비키와 백군장교만큼이나

먼 사이란 말인가?

부디 사이좋게 지내시게. 난 정말 안타깝네.“

수굿이 고개를 숙인 최 고려와 조선여단 장교들이

갈란다라의 말을 숙연하게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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