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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들어준다.





*본편 이후*

라마는 골수를 파먹는 괴물이었다. 데바 신족의 한 신격과 라마는 이름만이 같을 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천한 마수였다.

크툴루 괴신족 그레이트 올드 원의 말단인 라마는 무수한 종족들의 골수를 파먹은 뒤 그 기억과 능력을 흡수해 자신의 의식의 지배 아래 두었다. 라마는 그렇게 골수가 파 먹힌 시체에, 겉보기엔 파 먹히기 전과 같은 자신의 몸 일부를 불어 넣고, 그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우주 전함을 타고 다니는 라마는 그의 좀비 군단이 강화되는 걸 독촉하며 바라보았다. 이는 의지의 다양성을 해쳐 번영을 늦출 수도 있는 행위였으나 이미 단조로움에 젖은 라마의 정신은 그레이트 올드 원답게 사이함을 추구했다.

라마의 꿈은 태고의 혼돈이 괴우주에 자행되는 걸 보는 것이었다. 라마는 윤간과 학살을 즐기는 좀비 군단의 군주였고 여러 행성들을 파괴하면서 힘을 과시했다. 질서를 파괴하여 물질들이 서로 뒤엉켜 섞이는 걸 라마는 자행했다.

라마는 까마득한 미래엔 창조왕 아자토스의 힘에 이르러 보겠다는 막막한 소망을 마음 한구석에 그려 보이기도 했다.

라마는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아직 범접할 수 없는 한 블랙홀이 진공 소용돌이 파괴 장치에 둘러싸여 증발하는 걸 두려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블랙홀을 진공 기계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라마는 알 수 없었다.

라마는 블랙홀을 두르고 있던 진공 기계에 접선했다. 정보망이 이어져 있다면 그 의지를 컴퓨터일지라도 라마가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라마와 닿은 것은 보석인간 당상휘의 강대한 정신이었다. 보석인간 당상휘는 멋지고 당찬 외모에 듬직한 체격을 가진 전형적인 인신족 사내였고 지고한 극초인간 장군이었다. 그때 당상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공인의 길을 거침없이 걷고 있는 먹보인간 찐돌이와 함께 저울을 두고 재산을 가늠해 보는 놀이를 즐기는 중이었다.

인신족의 법령이 득달 같이 닥쳤다. 인신족의 과학은 인신족에게 있어 법이 주먹 보다 가까운 시대를 열어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인신족의 법령이 라마를 구속해 꼼짝 못 하게 했고 라마는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느꼈다.

당상휘는 인신족이 괴우주 일반 시공의 저승을 관장하게 되었을 때, 명부의 수많은 염라대왕들과 접견했다. 여러 세력들로부터 파견된, 명부의 숱한 염라대왕들 중 한 명이 황천상제 하늘인간 운능천이었으므로 그를 통한 접선이었다.

당상휘는, 한 넋이 저승으로 돌아갈 때, 그의 이승 생활을 통한 모든 경험은 완전 몰입 가상현실을 통해 다른 넋들이 자의식이 전혀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이를 전생의 일부로도 삼도록 했으며, 환생을 한 번 할 때마다 전생과 이어지는 넋은 따로 있고 그동안 누리던 몸의 기억을 가진 정신이 따로 생성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런 식으로 당상휘는 경험을 누리기 위해 넋들이 특정한 돈을 거래할 수 있는 환생 시장을 만들어냈으며, 아자토스가 만드는 넋들 보다 더 많은 정신들이 창궐하도록 했다.

그런 식으로 여러 세력들의 넋들로부터 벌어들인 돈으로 하늘인간 운능천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인신족을 강대하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당상휘는 라마를 얼의 바다 너머로 쏘아보았다. 모든 의지들을 자신에게로 통합시켜 단조롭게 만드는 나쁜 일 즉 악을 행하는 라마는, 의지들이 다양해지고 융성해야만 시장이 커지는 구조를 만든 당상휘에게 있어 적이었다. 따라서 라마의 선을 넘은 행위를 용납할 경우 언젠가는 당상휘가 다스리고 있는 시장질서 전체에 도전하게 될 터였고 이길 수 있을 때 이겨 버려야 하는 것은 자명한 원칙이었다. 당상휘의 검이 얼을 타고 흘러 라마를 베었고, 라마는 파괴되어 지금까지 삼켜 온 무수한 넋들을 뱉고 흩어졌다.

라마의 추악한 넋은 죽어 명부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명부는 단순성만을 추구해온 라마에게 온 정신을 매혹시키는 마약에 영원히 취해 있도록 만드는 벌을 내렸다. 이는 극락이자 지옥인 형벌이었다. 때때로 명부는 평생의 숙원을 그런 식으로 들어주었다.


[201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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