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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혹투성이 창고지기




*본편 이전*

여러 괴우주 일반 시공들은 해당 우주의 시공간이 팽창했고 그에 따라 진공 에너지가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늘어나는 과정 속에 있었다. 괴우주에서 문명 3단계는 은하계 규모에서 진공 에너지를 활용하기도 하는 문명 등급 경지를 뜻했다.

데몬 술탄 아자토스가 음울한 음색 속에 창조 작용을 무심히 하는 것 말고도 이 같이 괴우주의 규모를 무한으로 향하게 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 의식의 일부만으로, 무한한 개념들을 포괄하는 하위 단계 우주들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은 아후라신족만이 가졌지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우주들을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은 무수했다. 괴우주의 저승은 그런 하위 단계 우주들의 사후세계들까지 책임지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 했다. 괴우주 저승은 다만 괴우주 정석 단계의 사후세계들만을 다루었다.

혹투성이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철학에 따르면 모든 존재들이 존재했다. 모든 존재하는 세계들의 사후세계까지 뒷바라지하는 신이 배후에 있을 거라고 혹투성이는 믿고 싶었다. 소멸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모든 소멸하고 마는 것들이 안타까운 이상 그런 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투성이는 비대한 온 몸이 혹으로 뒤덮여 흘러내리는 듯한 외모를 가진 아후라신족 기형아였다. 혹투성이는 열등감을 스스로에게 불러일으키는 별명이었지만 그 호칭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해 인신족들 사이에서 혹투성이라 불리기를 자처했다.

인신족이 나타나기도 전의 옛날, 아후라신족이 더 이상 기형아를 낳지 않는 방법을 발견하고 기형아가 아닌 자신들에게 일제히 적용시킨 다음 한 행위가 기형아들을 한쪽 구석에 격리한 것이었다. 아후라신족은 기형아들을 학살하려고 했지만, 기형아로 분류된 자들 중 가장 강력한 우인간(牛因間)이 기형아들의 힘을 모아 항거하고 브리트라 아후라를 비롯한 몇몇 아후라신족이 항의해 삭제는 무산되었다. 우인간은 귀 위에 단지 우윳빛의 멋진 뿔이 달린 것이 기형의 전부였고 고위 가문에 속했다. 우인간은 배신감에 거대한 몸을 떨었고 이 일은 결국 분열의 단초가 훗날 되었다.

아후라신족은 최고신족(最古辰族)과의 계약 때문에 정보들의 사후 관리를 하기로 했고 그 일을 우인간을 비롯한 기형아들에게 떠넘겼다. 저승은 몇몇 원하는 이들의 소원의 힘으로만 지탱되는 그야말로 봉사직이었다. 죽음에 패배해 쓰레기로 전락한 무리들을 망각 속에서 꺼내서 나름의 방식으로 재생시켜 관리했다. 혹투성이는 다른 아후라신족 기형아들과 함께 기이하르카에서 살면서 저승을 관리했다. 최고신족은 자신들이 한 설계를 괴우주에 투사해서 괴우주의 법칙들을 개선시켜 가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자신들의 방법론에 맞춰 저승을 만드는 게 지속 가능한 괴우주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우인간은 저승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힘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스스로 인신족의 원로가 되어 자신의 모습을 본 따 관리직으로 인신족을 만들었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인신족은 지극히 강력하고 선량한 존재로 자라났고, 혹투성이는 아후라신족 기형아로서 변한 것은 없어도 인신국 시민권자로 평소엔 스스로를 인신족이라 칭하고 다니게 되었다. 아후라신족도 저승 관리에 참여했지만 인신족과 지분을 나눠 가졌다.

우인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게 아후라제국은 대별왕 호칭을 줬어요. 저승을 다스리는 왕이란 뜻이지요. 난 우리 인신족이 대별왕인 내가 포함된 이들 다운 힘을 갖기를 원합니다. 때문에 인신족은 끝없이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괴우주 공권력의 일부로서 인신족은 군림해야 하고 이를 통해 저승까지 확장된 세속 국가의 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신족이 주도하는 괴우주 저승의 권능은 제한되어 있어, 개개체가 사실상 전지전능한 문명 6단계의 존재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했지만, 그래도 저승이 다룰 수 있는 상대는 많고 많았다. 저승에 온 이들에게 혹투성이는 꼼꼼하고 참되며 너그러운 보모였다. 아후라신족에 의해 영혼 깊숙이 새겨져 좀처럼 바꿀 수 없이 흉직한 파라탐 외모를 가졌어도 혹투성이는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

더 할 나위 없이 아릉다운 물인간 은하영이 혹투성이를 찾아왔다. 다른 인신족들이 그렇듯이 은하영은 살갑고 평안하게 혹투성이를 대했다.

“혹투성이 이모, 이제 우리 인신족은 몸과 마음이 크게 강화되어 아후라신족을 매우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젠 이모의 외모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제가 도와 드릴 테니 시도해 보시겠어요?”

“난 오랫동안 이 모습으로 살았어요. 거절이 반갑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익숙해진 날 바꾸고 싶지 않네요. 괴우주의 저승에서 잡동사니나 다름없는 정보들을 다루는데 있어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게 있어 외모로 인한 열등감은 죽음에게 패배한 약자들을 연민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건 최소한의 덕목이지요.”

두 여자 인신족 시민권자, 은하영과 혹투성이가 서로를 보고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었다.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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