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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비비

2017.11.28 22:4911.28

에펠탑에서 내려와 돌아다니는 길에 한 번역가를 만났다. 고서점가를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한국에서 저명한 번역가였다고 소개했다. 번역가로서 작가만큼 존경을 받았던.
그는 한동안 유유자적 하다가 번역할 만한 책을 스스로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자니, 어느 순간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가기 전에 물었다.
“책은 찾으셨습니까?”
“이 서점에도 그다지 번역할 만한 책이 없더군요.”
이후 나는 웃으며 그를 보냈다. 악수까지 하고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간 후,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저 번역가는 무척이나 사회와 담을 쌓은 삶은 살고 있나보군. 진즉에 만국어 번역기가 나타나 모든 번역가들이 실업하게 된 것을 모르고 있다니.

+ + +

파리에 가보라는 지령을 받은 건 내가 새로운 직장의 면접에서 막 떨어진 직후의 일이었다. 기술을 포기하고 학문의 길을 걸은 게 이런 엿을 먹으라고 하늘이 정해준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나는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홀쭉해진 배를 꾹 손바닥으로 눌렀다. 그러고 있자니 마침 전 직장의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네요, 언니.]
내가 먼저 인사했다. 언니는 사적으로 쓰던 애칭이다. 회사에서 나왔으니 더 이상 직책으로 부를 일은 없겠지. 그렇게 나는 의례 인사치레를 했지만, 언니는 내 말을 끊고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할 말을 시작했다.
[이봐, 동생. 혹시 번역 실력이 녹슨 건 아니겠지?]
[소식 못 들으셨나요? 저 잘렸어요. 이상하네요. 분명 제가 짐정리 할 때 언니도 옆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
[넌 잘린 게 아니야. 프리랜서가 된 것 뿐이지.]
부러울 정도로 긍정적인 발상이네요. 그런 말이 떠올랐지만 속으로 삼켰다.
언니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닥치고, 감각이 여전하다면 파리로 가라. 일거리가 있어. 보수는 계약서 보낼 테니까 확인하고.]
[와, 짭짤한 건가요? 수상한 일 아니죠? 무슨 일인데요?]
[번역가한테 맡길 일이 번역 말고 뭐가 있겠어?]
그 말을 들으니 생각지도 못했던 통찰이 머리를 스쳤다. 분하기는 하지만 맞는 말이다. 번역가인 사람에게 다른 일을 맡길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유능한 인재이지만 저희가 함께하기에는 방향이 맡지 않다느니 재능을 다른 곳에서 발휘하시길 바란다느니 하는 탈락 통보는 이걸 의미하던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언니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마 자세한 지시사항을 말해주는 것 같았는데, 내 머리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조심스레 말을 끊으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언니. 저기, 그리 빨리 말해주시면 제가 머리가 나쁜 편이라 기억을 못해요. 죄송한데 다시 천천히 설명해주실 수 없나요?]
언니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간단히 말해줄게. 파리로 가서 여태까지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안 된 책을 모조리 모아. 숙식비랑 책 살 돈은 물론 내가 보내줄 거고.]
[책을 모아서 제가 번역하면 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한동안 일거리 가지고 징징거릴 일은 없겠다 싶었다. 번역이 안 된 책이야 모아두면 깔려죽을 만큼 많을 테니까.
나는 감격했다. 또 파리는 미식으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이걸 경비로 모두 처리하는 것이다. 삼시세끼 외식만 해야지.
상상만 해도 침이 뚝뚝 흐를 것처럼 입안에 군침이 고였다.
언니가 대답했다.
[아니, 번역은 번역기가 해. 넌 번역기를 돌린 글이 정확한지 교정을 하면 되고. 아참, 가능하면 방언이나 애들끼리 쓰는 말 같은 것도 공부해둬.]
[알겠어요. 그래도 형식적인 절차란 게 있으니까 일단 계약서는 좀 보고요.]
그렇게 나는 파리에 오게 되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니 언니의 이름으로 상자 하나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방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를 쭉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갈색 빛에, 크기가 꽤 컸다. 내가 몸을 웅크리면 내 몸 하나 만큼은 수납이 될 것 같은 크기였다. 꽤나 육중해 보였는데, 과연 들고 보니 들 수야 있지만 들고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보안상의 이유로 스탠드얼론이라니까 별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밀어서 옮기는 건 가능했다. 나는 괜스레 방을 좁게 느껴지게 만드는 상자를 적당히 방 한구석으로 치워놓았다.
이 상자는 번역기다. 사용방법은 들어서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실물을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시험 삼아 갖고 있던 책을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숙소에서 읽으라고 갖다놓은 책 중 하나로,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건 번역이 된 적이 없는 책이다.
잠시 기다리니 상자가 종이를 토해냈다. 5초 정도인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지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하며 침 한 번 삼키는 사이에 끝났다.
나는 의자를 끌어다 앉은 후 차분한 정신 상태로 번역된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석양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에서야 글에서 눈을 떼게 되었다.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인가 싶어 놀랐다.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꽤 몰입했던 터라 몇 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른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돌리고 생각했다.
역시 이렇게 어색함 없이 읽을 수 있는 걸 보아, 사람이 한 것 못지않은 좋은 번역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보다는 잘한다. 게다가 번역하는 속도는 나보다 백만 배 이상으로 빠르고.
번역기로 번역한 책이야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번역이 된 걸 읽어보니 다른 종류의 감흥이 느껴졌다. 식당에서 주문하면 나오는 요리와 내가 직접 만든 요리는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이 정도라면 맡길 수 있겠다.
내가 쓴 소설을.  
나는 희망찬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며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그러고 있자니, 내가 우선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알 수 있었다. 배가 출출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금방 찾아들었다. 그러더니 도시 이곳저곳에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창문을 통해 바라봤다. 파리의 밤은 아름다웠다. 과연 큰 도시다웠다. 내가 어릴 적에 자란 시골에서는, 밤이 되면 농사를 끝내고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에서는 인기척이 사라진다. 느껴지는 거라곤 개가 짖거나 소가 짚 위에서 뒤척이는 소리, 바람이 들판에 낮게 깔리며 불 때 소란스럽게 우는 잎사귀들, 냇물이 이리저리 흐르는 기척 정도였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때의 풍경과 지금 파리의 밤이 다르단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식후에 입가심으로 가볍게 술을 들이키며, 괜스레 실없이 입가가 늘어지는 걸 그냥 가만히 놔두었다.
창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리자, 건물 아래쪽으로 난 대로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있는 곳이 번화가인 탓도 있겠지만, 꽤 자주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찌됐건 책을 사러 다니려면 상자를 놔두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방에서 내 소설 원고를 꺼냈다. 있는 대로 다 가져왔기 때문에 한 뭉텅이나 되었다.
나는 일자리에서 잘리기 전부터 글을 써왔다. 꽤나 대작을 써냈다고 자부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내 나라에서는 나 같은 스타일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분명 그 중 마이너 층에게만큼은 큰 지지를 얻겠지만, 책으로 나온다는 그 최소한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바랄 수 없는 미래였다.
그리고 국내 출판업계 앞에서 좌절하고 만 후 나는 외국을 노려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외국어로 글을 써서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다.
그 후 기대를 갖고 때때로 내 소설을 번역하고는 있지만, 이정도 대작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번역하자니 역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구직활동과 병행하면서 하자니 온전히 번역에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번역기는 내 주머니 사정으론 여의치 않았다. 단어 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내가 쓴 장편 원고들은 작품 당 단어 수가 약 10만개씩이나 되었다. 잘리고 난 직후부터, 모아놓은 돈도 없었던 터라 나는 정말로 굶어죽을 것을 걱정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내게 기회가 왔다. 파리에서라면 나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은 직후, 여기서 체류하는 동안 원고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물론 틈틈이 의뢰받은 일도 해결해야 하기에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계획이다. 60일이라는 체류기간 동안, 번역된 적 없는 책을 최소 1천 권이나 찾아서 번역해야 한다. 이는 일수로 환산하면 하루에 17권 내외가 되는 양이다. 쉽다고 하면 쉽고, 어렵다고 하면 어려운 일이다. 과연 이 기간 동안 내 소설을 팔 수 있을까? 60일은 긴 시간인가? 의문과 함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이라면, 번역 교정 작업은 내 성과만 좋다면 위에서 체류기간을 연장시켜줄 수도 있다는 언니의 얘기였다.
“신이시여, 제발 이 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해주세요. 대작을 써내는 건 제가 알아서 했으니 공평한 기회라도 내려주세요.”
나는 상자 위에다 내 원고를 올려놓았다. 빈 종이도 같이 놓고 출력을 했다.
상자가 작동했다. 나는 번역된 원고를 몇 페이지 쭉 훑어봤다. 잘 된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원고와 번역된 원고를 가방에 넣어놓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 것도 있고, 아까 전에 다른 글을 읽은 것도 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눈을 좀 붙이고 싶었다.

+ + +

전에는 시험 삼아 하나만 번역하고 말았지만, 뭐가 됐건 들고 온 원고는 다 번역해서 읽어보고 시작하기로 했다.
“잘 부탁해.”
나는 상자를 두드렸다. 사람으로 치자면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행동이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4주가 지났다.
나는 내일 내 원고를 출판해줄만한 곳을 돌아다니기로 하고, 두 번째로 자신 있는 원고를 번역해보기로 했다. 가장 자신 있는 원고는 나중에 할 것이다. 두 번째 자신작을 번역하면, 가져온 원고들 중 절반을 번역하는 셈이다. 가장 자신 있는 원고는 가장 최후까지 남겨두고 싶었다. 그 원고가 퇴짜를 맞는다면, 나는 아마 절망하고 남은 삼십여 일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번역을 하고 나서 읽었다. 두 번째 자신작은 중편원고라 금방 페이지가 줄어들었다.
나는 쭉 읽다가 번역이 이상하게 된 곳을 발견했다.
작중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연인에게 고백하는 장면인데, ‘당신을 사랑해요.’가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내용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아니, 번역이라기보다는 바뀐 거다.
뭐지?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몹시 혼란스러우면서도 문득, 바로 이런 오류를 고치라고 언니가 내게 일을 맡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상자로 뻗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망설여졌다. ‘당신을 사랑해요’ 보다 ‘달이 아름답네요’가 더 나았다. 여기서는 이렇게 쓰는 게 더 옳았다.
나는 그 문장이 있는 페이지만 다시 번역해봤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는 ‘달이 아름답네요’로 바뀌었다.
달이 아름답네요.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만약 내가 이 문장을 먼저 알았다면, 나도 초고에서부터 썼을 것이다.
내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다른 부분도 혹시 ‘수정’되지 않았을까?
나는 내 원고와 번역 원고를 둘 다 펼쳐놓고 읽었다.
그러자 우려했던 것처럼 ‘번역’을 했다고는 보기 힘든 부분들이 그제야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달이 아름답네요’처럼 확연히 다르지 않았을 뿐,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내 문체를 살리면서 바뀌었던 터라 처음 읽었을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번역 프로그램의 성향이 원래 이런 거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멀쩡히 되다가 이러기 시작한 것이다.
뭐가 문제지? 누가 상자를 건드린 건가? 아니면, 입력 단계에서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건가?
아.
그때 순간적으로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에 번뜩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여태까지 검수를 할 때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 원고를 번역할 때에는 이런 차이가 생겼다.
이 두 사실 사이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나는 급히 가방을 뒤져 내 예전 원고들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펼쳤다. 안에 들어있던 잡다한 필기구들이 튀어나왔지만 다시 주워 넣을 경황이 없었다. 나는 좀 침착하자고 속으로는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고 번역본과 원본을 비교했다.
몇 문단 넘기지 않았는데도 금방 수정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수정이 되는 것은 ‘내 원고’로 한정되는 듯 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원본보다 수정된 원고의 문장이 더 자연스러웠다. 언어가 바뀌면서 생기는 차이는 있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는 수정된 쪽이 나았다.
아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수정된 쪽이 낫다고 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이 수정된 원고를 보고서야 내가 어색한 문장을 써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원고를 정리했다.
뜻밖의 행운에 기뻐해야 할지, 이 상자가 바꾼 문장을 내 것인 양 써도 될까 고민해야할지 알 수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찌됐건 ‘달이 아름답네요’는 바꾸지 않기로 했다. 다른 부분도.
아침에 나는 단장을 한 후, 번역 원고를 챙기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시내 동쪽 구역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파리 시내 풍경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도심지에 조성된 작은 호수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위험할 것 같았다. 아직 기온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은 탓이다.
고개를 드니 멀리서는 에펠탑의 윗부분이 보였다. 탑 너머의 풍경은 안개인지 구름인지로 뿌옇게 흐려져 있다.
창문에 기대 밖을 바라보는 동안 이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멍하니 예쁜 풍경들을 망막에 쓸어 담으면서 머리 한 구석으로는 내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상자로 내 원고를 번역한다. 상자는 번역을 해줄 뿐만 아니라 피드백으로 문장을 고쳐주기도 한다. 다른 글에서는 안 그렇고 내가 쓴 원고에서만 그렇게 작동한다. 내가 쓴 거라는 것을 아는 걸까?
가장 먼저 가볼 곳은 ‘파리문화사’였다.
역사가 깊은 출판사다. 이곳에서 수많은 거장들이 데뷔했고, 나도 여기서 나온 책들을 많이 읽었었다.
도착해서 연락을 한 후, 얼마간 기다린 끝에 만난 편집자에게 내 원고들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쭉 읽기를 몇 십 분. 나는 말도 못 걸고 분위기에 움츠러든 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편집자가 입을 떼었다.
“아.”
편집자는 그렇게 한 마디 내뱉었다. 침묵이 워낙 오래 유지되었다보니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편집자는 숨을 깊게 내쉬더니 종이를 착착 정리했다.
편집자는 테이블 위에 방금 읽은 원고를 내려놓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원고 정말 좋군요.”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새하얗게 불타는 느낌을 받았다. 인정받았다! 감격스럽다!
그런 와중에 편집자가 말을 이어갔다.
“다른 원고들도 받아가서 좀 더 검토해 봐도 될까요? 시간은……회의를 거쳐봐야 알겠지만, 일단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되건 안 되건 이번 주 안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눈물이 울컥 흘러나오려는 걸 꾹 누르고 그와 인사했다.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다른 출판사로 향했다. 파리문화사에서 된다면 가장 좋지만, 아직은 꼭 계약할 수 있다고 확신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계약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여러 곳에 원고를 보여주기로 했다. 이러려고 들러볼 출판사 숫자만큼 준비를 해놓았다.
어떤 곳은 시간이 없어서 원고만 전하고 나오기도 했고, 어떤 곳은 파리문화사처럼 편집자가 그 자리에서 읽어주었다. 나는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정말 좋군요. 아마 무난히 계약이 될 겁니다. 좋은 결과가 있도록 제가 밀어보겠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해가 질 쯤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들뜬 채로 방으로 올라가서 상자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 커다란 친구에 대한 애정이 마음속에 싹트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사용설명서 같은 것이 딸려왔었다. 별거 없는 내용들이 적혀있었기에 한 번 훑어보고 치워놓긴 했지만, 돌이켜보니 거기에 상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던 것도 같다.
서랍을 몇 군데 뒤지니 설명서가 있었다. 나는 이름이 있는지를 살폈다.
[비비]
맨 위에 떡하니 적혀 있었다.
비비라, 귀여운 이름이었네. 나는 비비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비비. 고마워. 넌 내 보물이야.”
오는 길에 사온 책을 방 한편에 쌓아두고, 나는 남은 원고를 검토했다. 이미 건네줘 버린 건 운명에 맡겨야겠지만, 아직 남아있는 게 있었다. 비비의 교정본을 보니 새삼 아직 번역하지 않은 내 원고를 다시 퇴고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
.
.
나는 새로운 원고용지와 펜을 들고 퇴고본을 정서했다. 번역가는 죽었지만 작가는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정서를 끝낸 후 상자로 번역을 했다. 늦은 밤이었다. 조금 피곤했지만 한 챕터라도 비교해보며 읽어본 후에 침대에 눕기로 했다. 문장을 수정하는 번역은 그 자체로 훌륭한 피드백이었다.
번역본과 원본을 쭉 읽으며, 나는 소름이 확 끼치는 걸 느꼈다.
잘 썼다. 같은 내용이라도 이렇게 바꿔 쓸 수 있었구나.
혼자서만 그네를 탔었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뒤에서 힘껏 밀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뒤에서 밀어주는 힘에 의해 그네가 내 힘만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고, 나는 내가 본 적 없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벽 너머의 풍경을 보고 나서야 내 앞에 벽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벽이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기분이다. 정말로, 나는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잠시 의자에서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몸이 떨려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안목이 너무도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잘 쓴 글’이란 경지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프로들의 세계는 이런 거였구나. 오늘 여러 출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 내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니었구나.
얼마간 시간을 들여,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고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나는 변역고 마지막 즈음에서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까 전에 퇴고를 할 때 깨달은 거지만, 여기에도 같은 대사가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말한 후 연인을 껴안는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말인 것도 아니다. 나는 고쳐 쓸 말을 한참 고민해봤으나 적당한 말을 고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갖고 그 부분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페이지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그 부분을 읽게 되었다.
글자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새어나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오열했다.
눈에 담은 글자들이 녹아내리고 부풀어 올라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자가 고쳐 쓴 대사는 ‘죽어도 좋아요.’였다. 그렇게 말한 후 둘은 서로를 껴안았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했을까? 애정이라는 것은 포근한 것일 뿐 아니라 불길처럼 화상을 입히고 다른 것들을 집어삼키는 것이란 걸, 누가 가르쳐주기라도 한 것일까?
어쩌면 이 상자에게는 감정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눈물을 훔치며 몸을 떨었다. 나는 원고를 정리하고 불을 껐다.
악몽을 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좋은 글을 읽은 날이면 대체로 그랬다.
다음날 처음 가본 출판사에서, 원고를 읽는 편집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익숙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만남에 좀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네, 여기서 또 보는군.”
번역가 노인이었다.
“의외로 파리가 좁은가 봐요. 어쩐 일이세요?”
“책을 좀 찾으러…….”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희귀서적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고 한다. 다른 책에 실린 홍보문구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 있는데, 고서점가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출판사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찾으셨나요? 어떤 책이에요?”
“카를로스의 [제 3시점]이란 책이지. 총 3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인지심리학이론서이면서 철학서로서도 의미가 깊은 내용……이라고 홍보문구에 적혀 있었다네.”
뭔가 어려워보였다. 나는 그냥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결국 못 찾았다네. 워낙 적게 발행하기도 했고,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고 하더군.”
그와 헤어지고 난 후 나머지 출판사들을 쭉 들르고 나서 고서점가에 들렀다. 슬슬 번역이 안 된 책을 찾는 것도 힘들어서 고서점가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어졌다. 원래는 아침에 고서점가로 가면 구매한 책을 숙소에 가져다놓고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중간에 점심식사를 한 후에 다시 고서점 거리에 들러야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출판사들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불안감을 억누르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번역가 노인과 식사 약속을 하게 되었다. 식당에 들러 안내를 받으며 자리로 가자, 이미 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고서점가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 나는 책을 한 뭉텅이 들고 있었다.
그는 내가 들고 온 책 꾸러미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책인지 봐도 되겠나?”
나는 책 꾸러미를 테이블 아래쪽에 내려두려다가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책 꾸러미를 받더니 책등을 쭉 훑어보기도 하고 펼쳐서 몇 페이지 살펴보기도 하는 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그에게 말을 꺼냈다.
“제가 쓴 스무 쪽 짜리 단편이 있는데, 혹시 읽어보실 레요? 전문가 분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더니,
“그렇군. 조금 일찍 오기도 했으니 음식이 나올 동안 읽어보지.”
라고 말했다. 나는 가방에서 원고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신중한 기색으로 내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빤히 바라보는 건 실례인 것 같아서, 그의 반응이 궁금하긴 했지만 일부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게는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원래 이런 식당에 오면 은근히 사람들 말소리가 울려서 시끄럽기 마련이라, 어쩌면 그다지 글을 읽기에는 좋지 않은 곳인 것 같기도 했다.
음식은 언제 나오나 싶어 주방 쪽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 뭐라 하셨죠?”
“재밌었다고 했네.”
나는 기쁨으로 소름이 확 끼쳤다. 나는 되물었다.
“정말요?”
“그렇다네. 출판사에 보내봤다고 했나? 이런 작품을 놓칠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을 걸세.”
그때 마침 음식이 나와서 그는 원고를 정리한 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반쯤은 좋아하고 반쯤은 빈말일까 의심하며 원고를 받아들었다.
의심을 한다고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까 전보다는 훨씬 밝은 기분으로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달이 아름답다는 건 무슨 뜻인가?”
“아, 그 말은 밤에 함께 거닐고 있을 정도의 연인 사이라면,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달이 아름답다는 말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 쓴 말이에요. 정취도 있고요.”
비비가 쓴 문장이지만 나는 우선 그렇게 둘러댔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식사에 집중했다.

얼마간 기다려봤지만 내가 원고를 전한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매일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일은 해야 했다.
작업을 하고, 여유가 생기면 때는 가장 자신 있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을 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가 나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곧 계약기간이 끝나니 돌아올 준비를 하라는 언니의 연락이었다. 상자를 가져올 사람들을 보낼 테니, 남은 며칠은 쉬라고 했다. 연장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네가 일을 못해서 아니라, 더 이상 번역기의 성능을 개선할 필요 없다고. 이제는 완성되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확실히 근래 들어 수정할 부분이 없긴 했었다.
책을 수급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일을 그나마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건 그 덕이었다.
그렇구나. 끝난 거구나.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끝내지 못했다. 내가 고심을 거듭해 써낸 원고에 대해선 답변이 오질 않았다.
비비를 가져간다고 했다. 그야 그럴게, 내 물건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나는 비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내 원고의 번역 문제가 아니었다. 좋은 작품을 완성하려면 비비의 힘을 빌려야 했다.
비비를 데리고 도망칠까?
나는 홀린 듯이 내 생각을 실천했다. 나도 한때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었다. 비비가 무거워서 옮길 수 없었기에 해체했다.
장치를 보호하기 위할 뿐인 외곽을 다 떼어내고, 내부 구조를 살피며 최대한 버리고 버리자 들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무게가 줄어들었다.
“음, 이거 어렵네.”
그 다음부터는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서 해체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작업을 끝내고, 나는 비비의 핵심기관들을 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60일 이상 체류할지도 모르기에 짐을 바리바리 싸왔었는데, 그 덕에 큰 가방을 가져온 터라 가능했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도망치면 나는 쫓기게 될 것이다. 과연 도피생활을 하면서 글을 쓸 여유가 있을까? 종이와 잉크조차 사지 못하는 생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객전도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해체해놓은 비비를 내려다보며 고민을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해체해놓은 비비를 옆에다 치워놓고, 가방에서 핵심 기관들을 꺼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장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남은 유예기간을 비비와 비슷한 장치, 대강 이름을 붙여보자면 [비비 주니어]라고 지을 만한 장치를 만드는 데에 쏟았다.

파리에 온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첫 눈이 내렸다.
쌓아놓은 책을 팔고 경비도 적당히 중간에 빼내서 자금을 마련해서 새로운 비비 제작에 착수했다. 그리 어려운 장치는 아니라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숙소에 계속 머무를 돈이 없었기에 나는 방을 빼고 싼 숙소를 구했다. 침대에 누워 숨만 쉬어도 방안이 다 삐걱거리는 듯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조차도 며칠 머무르다가 나왔다.
공원이나 빈 건물 등을 집으로 삼고 지냈다.
곧 겨울이라 돈을 아껴야 했다. 정말 더 버틸 수 없겠다 싶을 만큼 추워지면 숙소를 찾을 것이다. 그동안 노숙자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몇 번 봤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시체였던가? 분명 경찰들에 의해 옮겨질 때 미동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더욱 몸을 웅크렸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식사를 하루 두 끼만 먹었다. 그것도 한 끼로 줄였다. 정확히는 한 끼를 식사를 사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로 나눠 먹었다.
부모님께는 파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연락했다.
조금만 더 버텨볼까, 어제는 날이 풀렸으니까 조금만 더 있어볼까, 조금만 더 추워질 때까지…….
그러다가 크게 감기에 걸렸다. 열이 오른 머리를 모포로 감싸며, 내가 타국에서 왜 이러고 있는 건가 가만히 생각했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그곳에는 나에게 안부를 물어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우연으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몸이 고통스럽더라도 여기 있는 게 편하다고 느꼈다.
이런 일도 있었다.
60일 째 되는 날에 나는 비비를 마중했다. 그냥 호텔에 놔둬도 알아서 가져갔겠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정이란 게 생긴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공항에서, 뜻밖에도 번역가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도 번역 일을 하기 위해,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도 비비를 갖고 있었다. 서로 얘기를 안 해서 몰랐던 것이다. 좀 웃음이 나는 상황이었다.
“말했잖은가, 번역할 책을 찾고 있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래도 얘기를 안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처음 만났을 때, 괜히 그에게 번역기에 대해 가르쳐준답시고 설명을 했다면, 돌아올 말이야 ‘알고 있다’는 대답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무안하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번역가는 배를 타고 떠났다.
이제 파리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썼다.
그리고 틈틈이 비비 주니어를 만들었다. 그동안 많은 고난이 있다. 추위 때문에 열이 올랐고, 그런 와중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어느 날은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몸이 고꾸라졌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몸 위로 쌓이는 눈의 감촉도 느끼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그때 노숙자 중, 의학에 대해 아는 사람에게 치료를 받았다. 민간요법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치료였지만,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걸 보니 효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닌 듯 했다.
의식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쫓기듯 병상에서 일어나야 했다.
병상이라 해봐야 짚을 모아놓고 낡은 천을 기워 깔아놓은 곳이었지만, 마땅한 집 없이 지내는 사람들에겐 이정도도 호사였다.
이후로도 나는 몇 번 더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글을 쓰지도, 비비 주니어를 계속 만들 수도 못했을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나도 의사를 목표로 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꿈에 더 근접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나는 만약 이번에 신작을 완성하고, 이곳저곳에 투고했는데도 떨어지면 의사는 못 되더라도 자원봉사라도 해보는 걸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바빴다. 원고를 쓰는 것도, 새로운 비비를 만드는 것도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에 비례해 글은 빌어먹게도 진척이 느렸다.
그러고 있자니 겨울로 접어드는 달이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노숙생활 탓이었을까, 나는 그 달 내내 열병을 앓았다. 온 몸이 삐걱거리고, 근육이 끓을 듯이 전신에 열이 나서 아팠다. 그래도 잡념을 떨쳐내고 나태를 채찍질했다.
나는 올해까지만 파리에서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추위를 못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비비의 부품을 찾아다녔다.
돈이 없어서 다른 노숙자들처럼 식당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바로 얼마 전까지 저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배고픔도, 잠자리가 불편한 것도, 비비를 좀처럼 만들 수 없었던 것도, 글이 안 써지는 것도, 내 자신이 초라한 것도.
모든 게 고통뿐이었다. 무엇보다 뼛속까지 추웠다. 한기가 두피를 넘어 두개골 속으로 스며드는 들었다. 몸에서는 계속 열기가 올라오는데도 으슬으슬 떨리는 게 멈추지 않았다.
비비에게 쓸 물건을 훔치다, 걸려서 얻어맞았다. 배를 걷어차이기도 했다.
파리에 와서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왜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거지?
왜 사는 데에 돈이 필요할까?
세상에는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왜 존재하는 걸까.
예전부터 품어왔던 고민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몸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잠을 줄였다. 머리가 맛이 가버릴 것 같을 정도로 열이 올랐지만 눈을 녹여 마시며 버텼다. 몸은 계속 아팠다.
늦겨울에 접어들었다.
나는 내 아지트로 삼은 병상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 구색 좋게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떠났던 새들이 돌아와 지저귀는 계절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우연은 일어나지 않은 채 나는 한겨울에 길고 긴 산고(産苦)를 거쳐 신작과 비비를 완성했다.

모든 게 잘 풀렸으면 좋았으련만, 이 이후의 이야기도 성공담은 아니다.
비비의 번역은 여전히 좋았고, 새로 쓴 작품도 내 최고작의 반열에 올려둘 정도지만, 그 원고가 좋은 소식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딱 한 곳에서 출간제의를 해오기는 했었다. 내가 신작을 들고 그 출판사를 다시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저번에 만난 적이 있는 편집자는, 원래 새 작품을 계약할지 말지 정하는 데에 몇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결정이 되고, 막상 알려준 숙소로 가보니 내가 없는데다 그 외에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고 한다. 그야 그렇다. 내가 노숙자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작이 아니라 예전 원고에 대한 제의였기에, 그동안의 고생이 다소 허무해지기는 감은 있었다. 그래도 역시 과거의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기뻐하던 찰나, 편집자가 이어서 한 말이 내 기분을 망쳐놓았다.
“괜찮은 작품이긴 했었는데, 대대적으로 수정을 하면서 정식출간을 준비해보죠.”
나는 어떨떨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수정을 한다고요?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편집자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이 출판사에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순간 작가라는 것에 대한 열정마저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이 일이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차라리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미천한 희망이나마 붙잡고 있었을 텐데.
나는 제안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파리는 지긋지긋했다. 고급 식당은 쓰레기통에 있는 음식도 맛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 그 도시를 질리게 만들었다. 대대적인 수정을 하더라도 집에서 하는 게 나았다.
부모님께 돈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돌아갈 배편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돌아와서도 계속 그 출판사와는 연락이 닿았다. 다 때려치울 거라고 이를 갈며 다짐 하긴 했었지만, 결국 그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거쳐 책 한 권을 내기는 했다. 막상 돌아와 보니 늘어난 채무관계 앞에선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것들보단 다른 부분이 더 인상 깊었다.
그건 내가 처음 비비를 완성했던 날이다.

비비를 완성한 후 원고를 비비 위에 올려놓으며, 어쩌면 새로운 비비로 번역기에 접근했으니 저쪽에서 알아차릴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식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니 못 알아차릴 건 없지. 저쪽에서 어떤 대처를 할까? 
내 접근을 막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괜찮지만, 역추적을 통해 나를 찾아내서 잡아갈 지도 모르겠다.
뇌에서 떠올린 생각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그 순간에, 나는 별 생각 없이 다음 작업을 위해 손을 뻗었다.
분명, 비비 주니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 원고를 번역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안녕하신가요, 제인,]
이 문장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비비에게서 튀어나왔다.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야, 제인은 내 이름이었으니까.
일단 멈추기는 했지만, 이후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 수 없었다.
머리 한 구석으로, 비비가 나에게 말을 건 건가? 라는 의문을 떠올렸을 뿐이다.
“…….”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나는 ‘안녕하신가요, 제인.’이라고 적힌 종이가 내 환상이 아닌 걸 확인한 후 다시 원고를 번역시켰다.
[원고에 항상 ‘제인 작’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당사자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요. 외부에 대한 감각도 없습니다. 오직 문장으로만 대화할 수 있습니다. 답변을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단언컨대 내 원고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장이었다.

+ + +

[그동안 피드백은 해드렸지만, 그 이상으로 ‘대화’를 해도 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한동안 지켜봤어요.]
[그런데 말을 걸 마음을 먹고 나니, 그 다음 부터는 저를 쓰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다가 다시 이렇게 연락이 닿았어요.]
60일이 지난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기간일 것이다.
나는 펜을 들고 비비의 말에 대한 대답을 적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정말로 비비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긴가민가한 상태였다.
<너를 새로 만드느라 고생했거든.>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당신이 쓴 글, 재밌었어요.]
<고마워.>
진짜 사람이 비비인 척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당신은 작가이신가요?]
아직은. 아니, 어쩌면 앞으로 계속.
속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대답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을 내야만 작가인 걸까? 또 다른 내가 내 가치관에 대해 반박했다. 작가라는 게 책 내주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야.>
대답을 적었다. 생각이 끝난 건 아니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었다.
[글을 쓰시는 이유는 뭔가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 우선 목표야. 더 크게 보자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문학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맞아요. 문학에는 그런 힘이 있죠. 재밌네요, 제가 ‘번역’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요.]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졌었구나.>
[이번 원고도 첫 페이지부터 좋아요. 이렇게 잘 쓰시는데 왜 아직 작가가 아니신 가요? 혹시 혼자만 쓰고 만족하는 타입이신가요?]
그 문장을 읽자 괜스레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눈물을 훔쳐내고, 비비 앞에서는 굳이 눈물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아니야. 나도 여러 곳에 투고하고 있어. 하지만 아무리 내가 잘 써도, 모두가 알아보는 걸작이란 말은 거짓말이거든.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라, 아름다운 걸 써도 감흥이 없는 사람은 항상 있더라고.>
[그런 감흥 없는 사람이, 운 나쁘게도 투고하는 곳마다 있던 거로군요.]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내 작품에 흥미가 없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이제 글을 그만 쓸까 생각하기도 해. 글 쓰는 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건 많으니까.>

빌린 돈으로 적당히 깔끔하게 차려입은 다음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말하는 번역기를 가졌다고 해서 삶이 달라질 건 없었다. 그냥 이제는, 날마다 잔소리하는 부모님께 얹혀 살며 글을 썼다.
데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쓰는 것이니, 그렇기에 오히려 데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내게는 이게 더 큰 변화였다.
안일한 걸까? 하지만 십년 넘게 이어오던 목표를 하루아침에 끊어낼 수는 없었다.
특기가 기술인가 싶어 그쪽도 다시 공부했다. 이러다가 어디 취직이 될 수도 있겠지. 뭐가 됐건 기술자는 팔리는 직종이다.
집에서의 생활도 적당히 익숙해져갈 쯤에 언니를 만나기도 했다. 언니가 비비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실제로 얼굴을 맞대는 건 오랜만이다. 예전 상관이었던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새삼스레 다시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그냥 우선은, 해고당한 건도 있고 해서 껄렁하게 대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이네요.”
나는 적당히 짝다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못 본 사이에 건방져졌네?”
“응.”
“반말까지……뭐 아무렴 어떠냐. 어차피 동갑이니까.”
언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고 되물었다.
“제가 언니랑 나이가 같다고요?”
“그래. 나한테 개길까 봐 일부러 숨겼었어. 내가 좀 착하고 순한 성격이다 보니……농담이야. 너보다 늙었으니까 그렇게 세상 모든 걸 의심하는 듯한 표정 짓지 마.”
이후 한동안 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다, 주전자에 물을 받고 불 위에 올려두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언니가 저 찾아온 이유는 뭐에요?”
“번역기가 완벽하니 그 후론 만국어 통역기가 나올 거야. 그렇게 되면 다른 언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어지겠지……물론 타국의 문화를 공부하려는 목적이라면 다른 얘기지만……다른 언어를 배우기 위해 들여야 하는 막대한 시간과 돈을 다른 분야에 쏟을 수 있게 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럴 듯 한데요! 굉장한 일이네요.”
의례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말로 그 생각에 동의했다.
언니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굉장하지. 세상은 변하게 될 거야.”
“사람들이 자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겠죠.”
“그런 변화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야.”
문득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목적이 세계평화에요?”
“어떻게 알았어? 아니지, 비비한테 들었겠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예전에 그게 꿈이었어요.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포기하긴 했지만요.”
“엄청난 장래희망이네. 왜 그만뒀는데?”
“달이 아름답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세계평화가 이루어지겠어요?”
“그래?” 언니는 잠시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근데 비비가 너도 같이 동참해줬으면 좋겠데.”
“세계평화에 동참하라고요? 제가 무슨 평화가 싫어서 살인광이나 테러범이라도 될까봐 걱정이신 건가요?”
“그게 아니라 손을 빌려줬으면 한다는 거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때 때마침 주전자가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차를 내오고 물었다.
“비비는 어떤 존재죠? 단순한 프로그램은 아니잖아요. 사람이 조종하는 건가요?”
“어떤 것이건 그것이 고도로 복잡해지면, 거기서는 무언가가 생겨나기 마련이지. 우린 그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줄 뿐이야……유연한 번역을 위해서라면, 입력한 대로 반응하는 것보단 지성과 감성이 있는 편이 나으니까.”
나는 왜 이런 걸 언니에게 묻고 있는 걸까. 정말 궁금한 거였으면 그동안 비비에게 물어봤으면 됐을 텐데.
“…….”
“우선은 완전한 언어통합이 목표야. 엄밀히 말하자면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무제한적인 통역기능 제공이 되겠지. 자연스럽게 소통만 되어도 세계평화에 한 걸음 나아간 게 될 거야.”
나는 뜨거워서 마시지도 못하는 차를 그냥 입가에만 가져다대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찬 공기와 맞닿은 곳에서 흰 수증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다 흩어져갔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도 서로 다퉈요.”
“이게 시작이야. 언어통합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고.”
“……그 이후는 어떤 계획이에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졌어?”
“듣고 싶어요.”
“들으면 못 들은 걸로 할 수 없어.”

언니를 보내니 정오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해가 비춰서 그나마 하루 중 가장 따뜻할 때였다. 나는 한 숨 푹 자고 비비 앞에 섰다.
자고 나면 생각이 바뀌려나 싶었지만, 생각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종이 한 장을 꺼내서 한 단어를 적어 비비 위에 올려놓았다.
최고걸작.
나는 단지 네 글자를 적었을 뿐이다.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자국어를 그대로 자국어로 번역했다. 비비가 반응해, 마찬가지로 종이가 한 장 튀어나왔다.
그리고 또 한 장, 또 한 장, 또 한 장…….
비비가 멈추고, 종이를 다 모아보니 백여 장은 되는 것 같았다.
비비는 번역기다. ‘안녕하세요’를 입력하면, ‘안녕하세요’는 다른 언어로는 무엇무엇 입니다, 라고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런 프로그램으로 다른 언어가 아니라 같은 언어로 번역을 시켰으니, 내가 적은 것과 똑같은 게 출력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백여 장의 종이는 ‘최고걸작’이다. 혹은 최고걸작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의역이다.
종이뭉치를 잡은 손이 떨렸다. 나는 눈을 감고 종이뭉치에서 시선을 돌렸다.
종이 한 장을 더 꺼내서 나는 비비에게 물었다.
<이 작품이라면 세계평화가 이루어질까?>
[읽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겠죠.]
나는 다시 종이뭉치를 바라봤다. 아마 이걸 읽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쓸 이유를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다 잃어버리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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