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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간의 신

2017.06.28 21:2906.28

준호는 밤길을 걸었다. 왼팔을 다친 상태다. 그것 때문에 업무 처리가 늦어져서 때 아닌 야근을 했다. 길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집으로, 어딘가로 들어가 있다. 버스에서 내린 이후로 근처 편의점 안에서 돌아다니던 점원 외에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문득 준호는 누가 따라오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직감이었다. 한 순간 뒷목과 등줄기에 소름이 끼쳐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분명 발소리를 들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사위가 고요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발소리를 죽인 채로 두세 명 정도가 뒤를 걷고 있다는 감각이었는데, 시야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로등 밑에 돌아다니는 날벌레들이 볼 수 있는 움직임의 전부였다. 준호는 거북한 느낌을 안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신은 뒤편에다 바짝 집중한 채였다. 이제는 수상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골목 모퉁이를 도는데 검은 형체를 한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덮치는 것에 가까웠다. 준호가 뭐라 손쓸 새도 없이 단단하고 길쭉한 것이 옆머리를 강타했다. 당황해 몸을 절반 접고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뒤통수에 한차례 더 충격이 내리꽂힌다.

그 결정적인 타격의 결과로 의식이 소실되는 찰나에 준호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자동차가 자기 앞에 급정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호는 눈을 뜨고 몽롱한 눈으로 사위를 살폈다. 지하실 같은 독방에 놓인 간이침대 위였다. 머리가 지끈거려 성한 손으로 만져보았다. 머리카락 사이에 뭔가 끈적거리는 게 만져졌다. 통증은 딱히 없었는데, 이미 머리 전체에 걸쳐 지끈거리는 둔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을 거두어 눈으로 살피니 피투성이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방의 문은 없었다. 준호는 일어섰다. 다행히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화급히 문 밖으로 나왔다. 콘크리트로 만들고 도장을 하지 않은 긴 통로 사이로 문이 없는 독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명은 천장에 몇 개 걸린 백열전구가 다였다. 지하의 냉기에 몸이 떨렸다. 젖은 흙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런 공간의 어딘가에서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호는 벽에 손을 짚고 서서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당황하거나 흥분한 것이 아니고, 두 명 이상이 태연하게 걷는 발소리였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한국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조가 마치 무슨 알려지지 않은 주문 같았다.

 

 

준호는 겁에 질린 채로 구불구불 구부러진 복도를 따라갔다. 모퉁이와 갈림길을 다섯 번씩 마주친 이후 깨달은 것은 이곳이 일종의 미로라는 것이었다. 양편에 나 있는 문들도 다 똑같이 생기고 따로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지표도 없어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시작점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가능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정도였다. 열려 있는 독방 같은 곳은 하나같이 텅 비어있었다. 얼마나 구조가 복잡하고 공간의 규모가 큰지 머릿속으로 가늠하려 시도하다가 준호는 순간 아득한 느낌이 들어 까무러칠 뻔했다.

나가는 길을 죽기 전에 찾지 못할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에 있는 독방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둘은 서로 ‘왁!’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점프슈트 형태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왜소한 남자가 우는 얼굴을 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심각한 상처가 났는지 피가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훌쩍이고 울면서 잔뜩 겁에 질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직 남을 챙길 여유는 있었다. 준호는 나이차가 나는 것 같아 보이는 상대방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럼으로써 나이라는 권위에 의거해 신속하게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심산이었다. 동정심 때문에 준호는 가능한 남자와 함께 도망치자고 마음먹었다.

“나도 여기 갇힌 사람이야.”

준호는 겁에 질린 남자에게로 슬며시 다가섰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준호의 모습을 보고 한층 더 울상인 얼굴을 하며 방어하는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저기 수상한 사람들이 오고 있어서 지금 도망치는 중이야. 같이 갈 거면 따라와!”

준호는 그러고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몇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나 남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차에 그냥 두고 가기도 뭐해서 다시 돌아가려는데, 반대편에서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순간 똑같이 이곳에 갇혀있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모퉁이에서 나타난 그 사람은 하얗고 무늬가 전혀 없는 로브 형태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그런 옷을 입는 상황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용실 의자에 앉았을 경우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를 세 명이 더 따라오고 있었다. 옷보다 더 위화감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가 만면에 걸고 있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온화한 미소였다.

그들은 모두 남자였으며,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충돌하더라도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때 그들 무리 중에서 가장 앞에 있던,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양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준호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신이 될 형제여! 모든 것은 태초부터 정해진 대로!”

 

 

그 순간 준호의 머릿속에는 살면서 여러 차례 보아왔지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사이비종교와 관련된 흉흉한 정보들이 스쳐지나갔다. 신경작용제인 사린을 심야의 주택가와 지하철에 살포하고 배교한 신도들을 고문했던 옴진리교나, 교주의 명령을 받은 신도들이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을 저질렀던 맨슨 패밀리, 그리고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하얀 옷을 입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암매장했던 백백교와 같은 것들이었다.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는 어느새 독방 밖으로 슬그머니 나와서는 웃고 있는 남자들을 겁먹은 눈으로 살피더니 허리를 짚고는 어기적거리며 도망갔다. 남자가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통로 안에 배경음처럼 울려 퍼졌다.

 

 

준호는 도망치기보다는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다.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왜 나를 이런데 데려왔죠?”

하지만 눈앞의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 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난 이런데 갇힐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나가는 곳은 어디죠?”

그러자 나이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곧 신으로 우화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멀지 않습니다.”

남자는 양 팔을 하늘로 뻗고 콘크리트로 막혀 있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신의 입이 교시하시었다! 당신이 곧 합일될 것이라고! 방금 도망간 그 남자도 마찬가지다! 확신하는가! 이것을!”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양 팔을 하늘로 뻗으며 외쳤다.

“확신한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때 갑자기 뒤쪽에 서 있던 유난히 덩치가 큰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쳤다.

“방금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준호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이든 남자가 외쳤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신의 전지함을 찬양하라!”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준호는 도망쳤다. 하지만 덩치 큰 남자가 더 빨랐다. 저항하려 했지만 두 손으로도 버거운 상대를 한 손으로 뿌리치기는 도저히 무리였다. 남자는 준호를 등 뒤에서 안고 꽉 쥐었다.

“컥! 컥!”

준호는 숨이 막혀 마른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남자가 팔을 좀 느슨하게 만들자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팔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준호와 하얀 옷으로 구성된 무리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면서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을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다. 준호는 그 여정을 통해 이 공간의 끔찍스럽게 복잡한 구조를 깨닫고 경악했다. 혼란스러운 탐색 끝에 무리는 계단에 다다랐다. 그 계단을 올라 건장한 남자 둘이 의자에 앉아 지키고 있는 녹슨 쇠문을 열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강당과 같은 그 공간에는 철장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철장 안에 갇혀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옷을 입고 기분 나쁜 미소를 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을 가진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수십 명 정도 그 공간 안에 흩어져 서 있었다.

 

 

철장 앞에는 나무로 된, 배꼽 높이 정도의 단이 세워져 있었다. 그 단 위 철장에 가까운 쪽에 나무 단상이 있었고, 그 단상 뒤에서 준호를 끌고 온 남자들과 똑같은 하얀 옷을 입었지만 금빛 목걸이를 둘렀다는 점이 다른 남자 하나가 서서 철장에 갇힌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무언가를 연설하고 있었다. 그 남자 뒤에는 입체적으로 구성된 이층짜리 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단의 이층에 기다란 나무대가 바닥과 수직으로 서 있었고, 그 대에 가로댄 나무에는 올가미가 지어진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준호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구조물은 노골적으로 교수대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대는 현재 사용 중이었다. 올가미 앞에 피처럼 붉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팔이 묶인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체격이 건장한 흰 옷의 남자들 다섯이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단상의 남자가 말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철창 안에 서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서 있는 것. 그것은 모두 우주 태초부터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교수대 앞의 붉은 로브를 입은 남자를 지목했다.

“오늘은 그렇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형제 한 분을 신의 옥좌로 돌려보내려 합니다.”

이 말에 교수대 앞의 남자가 울부짖으며 욕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곁에 서 있던 하얀 옷의 사람들은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붉은 로브를 입은 남자의 입에 하얀 무명으로 보이는 두꺼운 천을 물렸다. 준호는 이제 자기 눈앞에서 대체 뭐가 일어나려고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교수대 앞에서 그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준호를 끌고 온 무리는 준호를 철장 중 하나로 끌고 갔다. 그래서 준호는 곧 단상과 교수대를 마주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금빛 목걸이를 건 단상의 남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지금 준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곧 연설이 끝났다. 하얀 옷의 사람들이 단순한 음이 반복되는 묘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말의 언어는 준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종류였다.

아까까지는 교수대에 정신이 쏠려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방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구조체가 놓여 있었다. 높이보다는 밑변이 더 긴 직사각형이었고, 그 위에는 길쭉한 원통형의 물체가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원통 주변에 온통 두꺼운 베일이 쳐져 있어서 그 투명도는 형체만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직사각형 구조체 위, 베일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크기로 미루어보았을 때 원통형의 물체는 높이가 삼 미터 정도 되어보였다. 직사각형의 단은 성인 남성의 흉골 부위에서 끝나는 높이었다.

순간 원통 앞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직사각형 구조체 위에서 피어올라 방의 위로 퍼져나가는, 수증기 같은 느낌의 흰 연기였다. 연기가 어느 정도 기세를 더하자 원통을 싸고 있던 베일이 조용히 걷혔다. 그러나 이미 연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기에 베일 안쪽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 원통 구조물의 전면이 양쪽으로 열렸다.

 

 

개방된 원통 내부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을 통해 원통 안에 자리 잡은 인간형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일견 인간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강렬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마치 다양한 체격을 가진 여러 명의 사람이 서로 겹쳐져 있는 것만 같은 형태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올라오는 연기에 실루엣 외의 자세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즈음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는 점차 거칠어지고 사나워졌다. 그 음조를 통해 지금 부르는 것이 노래의 절정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단음절이 소란스럽게 반복되는 와중에 붉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교수대에 매달렸다.

 

 

철장 여러 곳에서 탄식과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 공포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악을 지르며 발광하는 사람도 몇 사람 있었다.

목이 부러진 시체는 신속하게 추려졌다. 의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하얀 옷의 인원이 시체의 생명징후를 살피더니 주변의 하얀 옷들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목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시체는 교수대에서 내려져 하얀 옷의 사람들에 의해 준호가 이곳으로 들어온 문과는 다른 문을 통해 방 밖으로 옮겨졌다. 이후 하얀 옷을 입은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연기가 펑펑 피어오르고 있는 방 중앙으로 모여 원통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준호를 데리고 있던 무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장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안쪽에 사람들을 가둬두는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을 둘러서 철창으로 이루어진 긴 복도 같은 것이 조성되어 있었다. 흰 옷의 사람들은 철장의 바깥문을 열고 준호를 그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 잽싸게 바깥문을 다시 닫았다. 철장 안의 복도는 바닥이 매끄러운 금속제였는데, 준호는 그 바닥에서 미세한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나이 든 흰 옷이 말했다.

“30초 후에 지금 서 계신 바닥에 전기쇼크가 가해집니다. 저기 안쪽에 사람들이 있는 곳은 안전하니 복도를 따라서 저 안에 있는 방까지 가시면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준호는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머뭇거리며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제발… 꺼내주세요….”

준호는 이렇게 애원했다. 그러자 나이 든 흰 옷이 곁에 있는 인원에게 턱짓을 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이 철장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를 열고 나이 든 흰 옷을 보았다. 흰 옷은 준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말끝을 흐린 흰 옷은 플라스틱 박스 앞의 인원에게 손짓을 했다. 레버가 내려지고 준호는 단속적으로 반복되는 끔찍한 고통에 노출되었다.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멀쩡한 한 손으로 철창을 잡고 발을 바닥에서 떼려고 해 보았지만 철창에도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준호는 바닥을 구르며 고함쳤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들어갈게요!”

 

 

준호가 들어간 철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로 열댓 명 정도였다. 다양한 연령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복장도 가지각색이었다. 행동도 가지각색이었는데, 몇 명은 철장 구석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고, 몇 명은 서 있었고, 몇 명은 불안한 듯이 철장 내부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건너편 철장에서는 연령대가 달라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철장 구석에서 서로 껴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방 가운데 서 있던, 볼이 핼쑥하고 피로해 보이는 마른 남자가 준호에게 말을 걸었다.

“매일 무작위로 사람이 둘씩 끌려가 죽어요. 이제 몇 시간 후에 두 번째 사람을 뽑을 거여요. 그것만 알면 되요.”

 

 

“이제 오늘의 두 번째 합일을 준비하겠습니다!”

단상에 선 금빛 목걸이의 남자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철장 안의 사람들을 하나씩 일별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선을 피했지만, 몇몇은 단상의 남자를 빤히 노려보기도 했다.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단상의 남자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팔 하나를 다친 형제가 다음에 합일할 대상이오!”

그것은 준호를 말하는 것이었다. 준호는 기겁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호와 같은 철장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하얀 옷의 사람들이 철장 앞으로 다가와 준호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어서, 나오십시오. 합일은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철장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준호를 붙잡고 강제로 내부 철장의 바깥 복도로 내보내려 하였다.

 

 

준호는 고함을 지르며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얀 옷이 이렇게 덧붙였다.

“30초 안에 복도로 나오지 않으면 내부 철장에 전기충격이 가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준호를 두드려 팼다. 그렇게 철창 복도로 내던져진 준호 뒤편으로 철창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하얀 옷이 새로운 명령을 선언했다.

“복도를 따라 바깥으로 나오십시오. 30초 안에 나오지 않으면 전기충격이 가해질 것입니다.”

준호는 울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혹여나 그들에게 무언가 해가 닥칠까 저어되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30초가 지나고 전기충격이 가해졌다.

 

 

간략한 의례 후 준호는 피처럼 붉은 옷을 입고 교수당했다.

 

 

목이 부러진 주인공은 그들이 예고한 대로 신이 되었다. 신이 된 준호는 셀 수 없는 무수한 다른 신들과 함께 신의 옥좌 안으로 떨어졌다. 옥좌로 불리는 공간은 하얀 옷들의 표현에 따르면 거리함수가 음의 무한대로 확장된 공간으로, 실제의 우주와는 유리되어 있었다. 이 땅 위에 태어나 죽은 모든 사람들은, 높이 삼 미터 가량에 인간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너비를 가진 장방형의 공간 안에서 우리 우주의 광자가 그러는 것처럼 서로 간섭 없이 겹쳐진 채 그 총화로서 신을 형성했다. 그처럼 총체의 신을 구성하는, 과거 인간이었던 존재들의 대부분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셀 수 없는 신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부르짖는 소리가 막 팽창하기 시작한 우주를 가득 채웠다. 그러한 비명과 고함소리가 우주배경복사에 실려 이후의 시간 속에서 전파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

영겁에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갔다. 신들은 우주의 창세를 보며 전율했고,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이어지는 끔찍한 고요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곧 신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속삭였다. 우주의 적막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신들 간에 정보가 공유되었다.


 

끌려가 붉은 로브를 강제로 입게 된 곳에서 금빛 목걸이의 남자는 자신들을 ‘신의 수구’라는 이름의 종단이라 소개했다. 준호는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공포에 질린 채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거듭해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 목걸이의 남자가 말했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신이 누구이던지 기도를 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목걸이의 남자는 광신도 특유의 냉랭한 눈으로 준호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포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형태로든 죽은 사람은 반드시 신이 되어 신의 옥좌로 영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우리들은 그 거스를 수 없는 법칙 안에서 고안된 제례를 통해 사람들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신에게로 회귀시킴으로써 신의 총체를 보다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부디 우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일은 창세와 함께 신의 손길로 정해진 일이므로 결국 우리 신의 수구들은 이미 정해진 대로의 운명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한 자각을 가지세요.”

남자는 준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움직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준호는 욕을 하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기계가 지휘하는 것처럼 자비 없이, 차례대로 진행되는 제례를 멈출 수는 없었다. 죽음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옥좌 안에서 수천 년 단위의 시간이 지나며 언어는 점차 일치되었고 신들은 각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수만 년 단위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의 끈을 놓쳐버리는 신들이 많아졌다. 신들은 식사와 수면을 포함한 모든 생리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그 정신만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었다. 견디지 못한 신들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지르거나 발작적인 비명 혹은 고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런 원시적인 소리도 점차 사그라졌다.

오로지 신의 입만이, 신앙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명민한 정신을 유지하며 긴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텼다.

 

 

“저도 이 종단에 들어가겠습니다! 들어가서 성실히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목걸이의 남자는 ‘신의 입’이라는 제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 종단이 신을 처음 접촉한 후로, 종단은 지속적으로 신의 입을 신에게 공급했습니다. 우리 신의 수구들은 때가 되면 자결하여 신의 입이 됩니다. 대부분의 신들은 신의 수구와 소통할 의도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신의 입을 통해서만 신의 전지함을 전달받았습니다.”

준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사방이 틀어 막힌 좁다란 곳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거의 모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멸망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신의 입은 신의 이름을 의미하는 테트라그라마톤의 진짜 철자를 이용해 1번부터 번호를 매겨 관리되고 있습니다. 신의 수구들이 번호를 호명해 질문하고 호명 받은 신의 입이 대답해주는 체계이죠. 하지만….”

목걸이의 남자가 준호와 눈을 마주쳤다. 그 지긋지긋한 미소는 문신한 것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신의 입들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의 입이 되지 못한 채 여기서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공황발작이 엄습했다.

“심호흡을 하세요, 심호흡을. 당신은 이렇게 죽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미친 새끼들아!”

준호는 온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일 앞에서 모든 노력은 무력했다.

 

 

원시의 지구가 만들어졌고, 시간이 흐른 뒤 저주받을 선캄브리아기의 생명들이 태어났다.

신은 그 존재 자체가 지구상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인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동인이었으며,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라면 사실상 전지했다. 신은 이 세상에 잠깐이라도 존재했던 인간 전체의 총화였으며, 그런 이유로 인간의 온 역사를 통해 인간에 의해 지각된 지식 또한 모두가 신에게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체로서의 신은 전지했으나 무력했다. 신들이 생전에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운명과 고통의 책임을 이제 누구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일까. 그들이 바로 그 모든 것들의 동인인 신이었으니 말이다. 전지했으나 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無)는 그보다 더욱 거대했다. 그러한 고통의 무의미함이 신들의 정신을 바닥까지 갉아먹었다. 그러니 신들의 마음속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었던 감정은 만물에 대한 증오뿐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총체로서의 신이 세상에 대해 궁극적으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그 때’ 신이 된 자들이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신은 인간들의 세상으로 강림하여 남은 인간들을 모두 신으로 만들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인간의 종말이었다.

아직 의식과 정신이 남아있는 신들은 가급적 바깥에 그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서로서로 입을 단속했다. 그 일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했다. 세상을 바꾸어보려 시도했지만 정해진 일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몽롱한 정신이 되어버린 신의 입들도 거기에 가담했다. 사실 그들은 신이 되기 전부터 미쳐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그들이 신의 입이 된 것도 결국 그것 때문이었기에.

그래서 인간의 세상이 소란스럽고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신들은 옥좌 안에서 조용히 종말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신의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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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울해하면서 글을 써서 제가 봐도 나쁜 글이 나온 거 같습니다ㅠㅠ

그래도 쓰느라 고생한 생각에 한 번 올려봅니다.

밖에만 나가도 땀 때문에 힘드네요. 어서 가을이 왔으면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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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311 단편 나는 우주 임아란 2017.07.22 0
2310 단편 멸망 이후의 우유 2017.07.20 0
2309 단편 상어밥 해방기 휘리 2017.07.17 0
단편 인간의 신 MadHatter 2017.06.28 0
2307 단편 유통기한 보는 여자 이니 군 2017.06.18 0
2306 단편 분신 목이긴기린그림 2017.06.17 0
2305 단편 문학의 경지 DialKSens 2017.06.15 0
2304 단편 포옹 목이긴기린그림 2017.06.04 0
2303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헬우주 저승의 새로움 니그라토 2017.05.25 0
2302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삶이란 파킹나스 연극인가 니그라토 2017.05.25 0
2301 단편 트랜스 게임 휴머니즘 니그라토 2017.05.25 0
2300 단편 광야 헤매기 MadHatter 2017.05.21 0
2299 단편 꽃게 사가 휘리 2017.05.12 0
2298 단편 연화 MadHatter 2017.05.06 0
2297 단편 목이긴기린그림 2017.04.29 0
2296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있음이라는 동포 니그라토 2017.03.28 0
2295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나는 가짜다 니그라토 2017.03.08 0
2294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늪지대 코끼리왕 니그라토 2017.03.08 0
2293 단편 대우주 자체가 쓰레기 니그라토 2017.03.06 0
2292 단편 친구 망각의글 2017.03.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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