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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포옹

2017.06.04 22:1006.04

 K는 이제 40대에 접어든 남자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십년 가까이 같이 산 아내와 몇 년 전 이혼한 채 혼자 살고 있다. 그것 때문인지 그의 분위기는 텁텁한 냄새가 나고 어두웠다.
 몇 주 전에 그가 처음 내게 접근했을 때만 해도 짜증이 났지만, 그 이후 사람이 꽤 괜찮아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다가 오늘은 이렇게 같이 술도 마시게 되었다.
 정확히는 K만 마셨고, 나는 술을 싫어해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닮았다’는 말을 꺼내며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Y는 K의 팔에 안겨 있었다. K가 샤워를 마치자마자 Y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를 K의 양팔이 Y를 강하게 감고 있었다. 구릿빛을 띤 그의 팔이 부드러운 육체를 파먹어 간다. 그 감각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Y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더욱 신체를 밀착시켜서, 마치 자신의 얼굴을 Y의 흉부에 파묻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숨결이 난폭하고, 격렬한 호흡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 연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Y는 살그머니 팔을 내려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Y의 조용한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저기, K씨.”
 그렇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K는 머리를 들었다.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그가 말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사랑하기 때문이야.”
 Y는 웃음을 입에 걸었다. 몇 번이나 들어온 말이었지만, 몇 번 들어도 기쁜 말이었다.
 Y는 편안하게 표정을 가라앉히며, K의 등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진다. 그녀의 손가락이 K의 척추를 위에서 아래로 더듬어 간다. 둥글둥글하면서도 딱딱한 굴곡의 감촉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저도 사랑하고 있어요, K씨.”
 몇 번이나 끌어안아온 그 신체로부터, 그의 체온을 느꼈다. 따뜻하다. 어깨나 등이 긴장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굳어 있는 것은 양팔에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Y는 다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그의 고동은 그녀 쪽에도 전해져 온다. 심장이 격렬하게 맥동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흥분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빠르게 움직인 탓일까.
 Y는 눈을 감으며 포옹의 편안함에 몸을 맡겼다.
 아직 저녁이지만, 주위는 심야와 같은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공간에서, K의 호흡소리만이 그녀의 고막을 진동시키고 있다.
 두 사람은 통나무 오두막집 안에 있었다. 여행 차 산속에 있는 별장에 머물고 있던 것이다.
 다른 별장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조용하게 보낼 수 있다. 그 사실이 그녀에게는 기뻤고, 오두막집 천장에 달린 화려한 전등도 흔들림 없이 그 기분에 맞춰주고 있었다.
 눈을 뜨고, K의 머리에서 팔을 풀었다. 그리고 그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른손에 물방울이 닿았다. 샤워 후의 잔재일 것이다. 그는 욕실에서 나온 직후,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왔기에 지금은 반나체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녀는 입을 연다.
 “K씨, 이제 됐어요. 놔주세요.”
 “안 돼. 그럴 순 없어.”
 “그래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아요?”
 “아니야, 어떻게든 널 살릴 거야.”
 “불가능해요. 계속 있다 보면 화장실에도 가고 싶어지고, 밥도 먹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피곤해지면 잠도 자야 하고요. 그런데 쭉 이렇게 하고 있다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궁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그는 그녀의 등 뒤에서 강하게 깍지를 쥐었다.
 “저기 K씨, 정말로 저를 사랑해요?”
 “진짜야.”
 “사랑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놔주세요.”
 “사랑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놔줄 수 없어.”
 방금 전에 했던 대화의 반복이었다.
 Y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K씨, 제가 이런 일을 한 이유를 알고 있어요?”
 “아니, 알 리가 없잖아. 모르겠다고.”
 “저는, K씨가 저만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저만 생각했으면 했어요. 저를 쭉 잊지 않게. 당신이 나중에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저의 이 모습을 떠올리도록. 그러니까, 당신이 욕실에 들어갔을 때 준비해서, 욕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
 말에 막힌 K에게 Y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오늘 여기에 온 거, 부인에게는 출장이라고 말했지요?”
 K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Y는 그런 K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 들키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들킬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불륜이라도 좋았다. 정말로 사랑해 준다면,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머지않아 부인과 헤어진다고 약속해 준다면야.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조차 숨겼다.
 “K씨. 저를 사랑하지 않나요? 그냥 남들이 다들 말하는 불장난일 뿐인가요?”
 K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어요. 부인이 있다고 알고 나서도 쭉.”
 여전히 K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것이, 이런 일을 한 이유에요.”
 Y는 양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정확히는 자신의 목을 감고 있는 것을 만졌다.
 그 목에는 로프가 감겨져 있었고, 로프는 천장에 달린 거대한 전등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신체는 지금, K에 의해 낙하를 멈춘 채 공중에 멈춰선 상태였다.
 그가 이 손을 놓으면, Y의 육체는 밑으로 떨어지며 아까처럼 로프가 목을 조일 것이다. 그녀의 죽음으로 K는 오래도록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눈에 그 모습이 새겨진 채 평생 죄악감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이렇게 K에게 붙잡히게 되었지만 목적한 바는 이룰 수 있었다. K가 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걷어찬 발판은 수 미터 거리에 쓰러져 있다.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해도 다른 별장까지 들릴 리 없다.
 “이제 됐겠죠? 저를 놔주세요.”
 K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한층 더 팔에 힘을 주어 Y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손가락이 등을 파고들어 Y는 아픔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 놔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뭐, 좋다. 라고 생각했다. 계속 쭉 안고 있는 일은 불가능하다. 머지않아 체력의 한계가 올 것이다.
 Y는 눈을 감고 다시 그의 머리에 팔을 두른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마지막 포옹을 즐기기로 했다.

 * * *
 
 K가 말을 끝냈다. 어쩌면 나의 동정심을 이끌어내려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는 어쩐지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떤 분위기, 감정, 어투, 몸짓. 그런 것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누구나 ‘이 이야기는 진짜 있었던 일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또, 왠지 그의 이야기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Y라는 여자의 행동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중,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K가 욕실에서 나올 때에 맞춰 행동하는 건 아무래도 성공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모두 들을 때쯤에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도리어 머리가 멍하고 입맛이 씁쓸해졌다.
 때맞춰 눈앞에서 죽으려 한다는 것. 달리 생각해보면 바로 그 점이, 진심으론 죽는 것에 관심 없으면서 그런 점을 과시한다고 하는, 교활함이라고 할까, 여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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