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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목적




*본편 중간*

그가 천당에 처음 이르렀을 때엔,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떠들썩하게 이루어지던 파티들에 녹아들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내성적이었다. 어떤 평화로운 파티에서도 그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와는 다른 평행 우주에서 온, 그 자신이지만 살아온 개인사가 달라서 성격이 매우 활달한 또 다른 자신을 만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낯설었다.

때로 그는 천당에서 주어지는 장치를 이용해서 자신의 모든 기억을 한 순간에 모두 느끼는 일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 경험은 낯설어 적응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속한 넋이 걸어온 삶들의 궤적을 따라 바로 전 삶은 물론 여러 전생들을 되새김해 보고 3자의 눈으로 보기도 했지만 이 또한 한때의 감흥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다른 곳들에서 존재하고들 있었다.

전생들을 돌아 본 덕분에 넋이 천당에 오는 경우는 악의 카르마가 무화되고 선의 카르마가 어느 정도 압도해야 한다는 점을 가까스로 알았을 뿐이었다. 카르마가 마무리 되지 않으면 명부에서 환생을 시키고, 악의 카르마가 압도하면 지옥에 보내는 식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촌스러운 방식을 천당의 권력자들이 고집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모를 비롯한 친척들과도 떨어져 어두운 침묵 속에 쌓인 단칸방에서 무료한 삶을 지냈다. 단칸방은 그가 아무 짓도 안 해도 깨끗했고, 식품이 나왔으며 따뜻했고, 평소엔 문을 열 수 없었지만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면, 단칸방은 대로 한복판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의 일부가 되어 있거나 온천과 이어져 있거나 했고 대로나 온천인데도 텅 비어 있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천당에서 찾은 행복이었다. 환생을 결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런 삶이 좋았다. 갑자기 그에게 핸드폰 문자가 왔다.

그가 천당에서 지금 취하고 있는 생활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 기간은 인터넷 시대의 극초반 뿐이었다. 그는 그 시절에 살았던 것이 가장 가까운 인생이었기에 그러고 살았다. 그랬기에 그는 핸드폰을 천당 연락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문자는 다음과 같았다.

“현재 천당이 속한 모신제국이 전쟁 중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천당의 생활과 계약 조건이 만약 저희가 진다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변화된다고 해서 놀라지 마시라고 미리 공지로 말씀드립니다. 현재 저희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그는 놀라서 인터넷을 켜서 공지사항을 둘러보았다. 카르다쇼프 척도상 문명 6 중에서도, 매우 강대한 괴우주 파라탐 초문명들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편에 속하는 모신제국이 역할 분담 상 천당을 맡고 있다는 건 알고 있던 일이었다. 공지는 모신제국의 천당왕 엘로힘 명의로 나왔다. 그에 따르면 모신제국은 여러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아후라제국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더 높은 정신 단계에 그가 있다면 더 세밀하게 알 수 있었겠지만, 그의 마음으로는 아래 정도 파악이 끝이었다.

아후라제국은 괴우주의 알려진 최상 힘의 단계에서 냉혹한 약육강식의 법도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마음에 안 들어 하던 인신국에서 공격을 가한 모양이었다. 아후라제국 또한 오직 정보를 잡아먹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블랙홀 식 태도 즉 악덕만을 가진 것만은 아니어서, 천당의 계약은 승패에 관계없이 존중하겠다고 인신국 편에 선 모신제국에 약속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천당에서는, 인간의 넋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는 건 초문명들의 재미를 위한 것이니 자신들을 넋들이 천당에 사는 한 소원 들어주는 만능 노예로 생각하고 대해도 좋다고 했다. 괴우주 일반 시공 즉 괴우주의 개별 우주들에게 있어, 과거 현재 미래란 거시 존재의 착각일 뿐이고,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모두 존재했다. 빛을 정보 수단으로 오롯이 삼게 된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고 했다. 빛에 있어선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순간에 경험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빛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는 것은 광학 이론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시작되는 일이었지만, 온 우주의 빛을 모조리 다룰 수 있는 물량과 권력을 확보하는 건 문명 4 즉 초문명으로 인정받는 단계에서부터라고 했다.

카르다쇼프 척도에서 문명 4란 지성이 하나의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의 확보를 뜻했다. 문명 4가 되면 과거로도 미래로도 도피할 수 없는 순간만이 펼쳐지게 되고,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게 되지만 이후의 역사는 모두 물량으로서 쌓여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서 한순간에 펼쳐진다고 했고 이는 이후의 문명 단계들에서는 공통점이 된다고 했기에 삶의 선택은 더욱 무거운 것이 된다고 했다.

블랙홀의 길과 인간의 길은 다르다고 천당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했다. 블랙홀 혹은 진공의 길은 정보를 먹을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길이다. 문명 4에 이르면 이 같은 파괴욕은 블랙홀이나 짐승이나 양아치 등이 존재하는 시공에 의식을 집중하고만 있으면 완전히 몰입해서 충족할 수 있다고 했다. 설령 실제로 파괴하고 싶다고 해도 그 같은 경우는 무수한 우주들을 한꺼번에 주시할 수 있고 언제든 초시공조차 느낄 수 있는 문명 6에게 있어서는 경험의 부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존재를 부활시킬 수 있는 힘을 얻는 시점인 오메가 포인트에 문명의 힘이 도달했을 때 사후세계를 보장해준 인간들에게 인권 개념을 도입해 이들을 목적으로 대우하면 그걸 핑계 삼아 거대하고 섬세한 소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했다. 이 시장에서 다양성, 예측 불허에서 나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려면 인권을 보장해주면 보장해줄수록 좋았다. 상대의 의지를 억울하게 침해하는 것인 악행은 결국 권리에 대한 침해였고 그러면 개별자들의 언행은 단조로워진다. 천당에선 그에게 문명 6 초존재가 한 번 되어보라고도 했는데 언 듯 살펴보니 너무나 어려워서 그는 도전하지 않고 있었다. 또 다른 그들 가운데서는 어쩌면 도전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인신국의 인신족은 이 같은 인권을 더욱 펼쳐 주고자 감정 의식 존중법이란 것을 괴우주 파라탐 초문명 6단계 전체에 확대하려고 하고 있었고 이를 권력 자체를 추구하는 아후라제국이 반대해왔던 것이 결국 양측의 빈번한 대립을 불러 오랜 동맹 관계였음에도 이런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다고 천당의 공지사항은 알리고 있었다. 괴우주는 무한히 증폭되는 구조이기에 이것이 가능했는데, 알려진 것에 따르면 괴우주가 대우주의 최종 단계인지 아닌지 여부를 현 시점에서는 알 수가 없다고 했고 절대로 이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나 이겨라!”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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