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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간의 조건

2019.06.18 11:4806.18

2041년 초는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해였습니다.

그해 봄. 갓 태어난 청렴이의 울음소리에 전국이 떠들썩했었죠. 청렴이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존재였습니다. 스포츠선수의 몸에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가진 이상적인 아이였죠. 전문가들은 청렴이를 전 세계 최초로 재조합된 인류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유전공학 연구소가 임상실험을 위해 우리나라로 들어왔죠. 그 덕에 완전히 죽어버린 경제는 반짝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찰나의 풍요와 함께 우리는 대내외적인 압박에 직면하고 말았죠.

특히, UN에서는 한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적인 제제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유인즉, 국제법상 재조합된 배아를 14일 이상 키울 수 없다는 법조항이 문제였죠.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UN을 설득할 수밖엔 없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2%로 바닥 깊은 줄 모르고 추락하던 추세였습니다. 거기다 이미 오래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터라, 꾸준히 인구가 줄어들고 있었죠.

때문에 정부는 UN에서 탈퇴하겠다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야말로 한 아이를 위해 정부가 발 벗고 결단을 내린 셈이었죠. 하지만 청렴이는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두 달이란 짧은 시간을 살다 죽고 말았죠. 사인은 신체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이를 돌보던 간호사가 베개로 아기의 얼굴을 짓누른 탓이었죠. 3시간 만에 다른 간호사에게 발견된 아이는 뇌가 부어오르고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발견되었습니다. 제일 처음 청렴이를 발견한 간호사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죠. 아이가 축 늘어져 있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벌써…….”

청렴이를 살해한 김 모 간호사는 3일 뒤, 자택에서 붙잡혔습니다. 김 모 간호사는 검찰이 설치한 포토라인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 그것이 진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기계 속에서 만들어 지는 공산품이 아니라, 태어나고 자라나는 생명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검찰청사로 들어갔습니다. 국민들의 질타와 항의 속에서 1년 뒤, 그녀는 1심에서 징역 1,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게 됩니다.

그 뒤로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일상에서 재조합 인간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죠. 7년 전까지만 해도 재조합 인간은 병원에서나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보통 인간처럼 아기로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쳐야 했죠. 하지만 지금은 발달된 3D프린팅 기술과 접목되어 재조합 인간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태어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여러 우성인자를 가진 유전자를 바탕으로 생성한 배아의 줄기세포를 우선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골격과 근육, 장기들을 그려낸 다음 서로 조립을 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이 인공 자궁 내에서 벌어진다고 하니 정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는 달리 사람들은 여전히 재조합 인간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재조합 인간들을 향한 각종 편견과 차별들이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죠. 특히 611일에 열린 재조합 반대 시위에서는 10만 명이 모일 정도로 성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인 재조합 찬성 단체들도 맞불 집회를 열었죠.

(멀리 솟아오른 도심의 마천루를 비추던 카메라는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카메라가 향한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S대 대학병원이었다. 그 앞에 조성된 자그만 벤치가 몇 개 놓인 쉼터에서 한 남자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무언가를 소리쳤다.)

그렇게 청렴이가 죽은 지 벌써 10주기를 맞이했습니다. 한 아이의 죽음으로 촉발된 재조합 인간과 기존 인간의 갈등은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요? 오늘은 정치 사회 유투버인 저, 인권니권이 재조합 인간과 기존 인간간의 갈등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래쪽에 구독버튼 눌러주시고요. 좋아요 버튼도 한 번씩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좋아요 버튼이 오늘의 희망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서울시 동작구의 어느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는 선향선씨가 살고 있습니다.

선향선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아이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로 그녀는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작년까지만 해도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계산원 직에서도 해고되어 남은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에 놓였죠.

근처 카페에서 만난 선향선 씨는 어린 아들을 가슴에 앉고서 말했죠.

전 재조합 인간들에게 밀려나서 잘린 거예요.”

그녀는 당당히 말했습니다.

일반인이 비정규직으로 들어가면 시간 당 수당을 쳐서 지급해 줘야 하죠. 하지만 재조합된 놈들이 취업을 하면, 오히려 정부에서 회사에다 지원금을 줍니다. 재정착 지원금이라고 하는데, 이게 꽤 쏠쏠하다더군요.”

그러니까 정부가 재조합 인간을 풀어놓은 덕에 기존 인류는 뽑질 않은 거네요.”

.”

그러면 다른 일자리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있나요?”

많죠. 하지만 그들은 어딜 가나 있어요. 식료품점, 공사장, 음식점 어디에나 있죠. 하지만 애 둘 달린 엄마를 받아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많이 남아돌고 해서 다른 일을 좀 시작했죠.”

무슨 일을 시작하셨나요?”

제가 묻자 향선씨는 핸드폰을 꺼내 보였습니다. 그녀가 내민 화면에는 십 수 명의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죠. 그녀는 자신이 지난 111일에 있었던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연 단체 중 하나인 행동하는 어머니 연맹소속이라 밝혔습니다.

저는 지금 제 일자리와 아이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어요.”

아이들이요?”

. 아이들이요. 솔직히 저는 저보다도 제 아이들이 더 걱정이에요. 당장 아이들이 거의 20년 동안 학교에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저들은 이미 커리어를 쌓고 있죠. 어디 그뿐인가요? 저들은 태어나기 무섭게 기본적인 상식들을 체득하고 사회로 나온다고요.”

상식이요? 어떤 종류를 말씀하시는 거죠?”

모든 종류죠. 에티켓, 걷는 법, 말하는 법……. 심지어 몇몇 재조합 인간들은 아예 자기가 배속될 직장에 관한 상식까지도 모두 머릿속에 주입된 채로 만들어진다고 해요.”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주입하는 지 아시나요?”

정부에서는 기밀 사안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하더군요.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이 말씀하시기를 뇌에 함유된 단백질과 전극신호를 조작하면서 기억을 주무른다더군요. 어쨌든, 이런 식의 기억 조작은 우려스러운 점이 많아요. 특히 윤리적인 문제를 언급안할 수가 없죠.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재조합 인간들에게 쓰이는 기술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쓰인다면 어떨까요? 저희 단체에서 조사해본 결과로는 현재 2세 이하 자녀를 가진 부모나 출산예정인 부모 가운데 60%가 넘는 부모가, 할 수 있다면 자녀를 직접 교육하는 대신에 기억 단백질을 주입하는 방법을 선택할 거라 했죠.

우린 이걸 좌시할 수 없어요. 우리 아이들의 인생과 관련된 일이니까요. 만약 우리가 아이들을 재조합된 인간들처럼 길러낸다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는 건가요?”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부모들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가요?”

제가 묻자 향선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뇨.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이건 경쟁의 문제니까요. 달리기 시합에서 다른 사람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달려야 해요. 만일 우리가 달리기를 포기한다면, 우린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야하겠죠. 거기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불리해지고 있어요. 놈들은 나날이 세를 불리고 있고, 사회단체까지 놈들 편을 들어주고 있죠. 심지어 어떤 가게는 재조합 인간을 뽑지 않았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저는 이 모든 상황이 우려스러워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사람들의 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저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장기적으로 재조합 인간들의 생산을 중지해야만해요.”

하지만 재조합 인간은 생식능력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 향선씨의 제안은 장기적으로 한 갈레의 인류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멸종시키는 행위 아닌가요?”

향선 씨는 잠시 입을 꾹 닫았다가, 품에 안은 아이를 흔들면서 말했죠.

무정하다고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이미 우리 같은 진짜 인류는 멸종 직전에 와 있어요. 무슨 말인 줄이나 아십니까? 제가 단순히 고용에 대한 문제만 언급하는 걸로 보이시나요? 고용이 악화되면 아이를 낳는 부부도 줄어들 겁니다. 아이를 낳지 않을 때마다 우리의 자리는 재조합 인간들로 대체되겠죠.

차라리 거기서 멈추면 말을 않겠어요. 저 놈들은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합니다. 이제는 단순 노동직을 넘어 이제는 공무원이나 변호사가 되는 걸 흔히 볼 수 있죠. 조사를 해보니 어떤 재조합 인간은 태어난 지 10년 만에 로스쿨에 들어가더군요. (하지만 이것은 부정확한 정보입니다. 현재 로스쿨에 등록된 재조합 인간 중 최연소 재조합 인간은 6살이죠.)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자연스럽게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10살이 되자마자 로스쿨에 들어가는 비율이 얼마나 됩니까? 단언컨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이건 너무도 심각한 격차죠. 그럼에도 대학과 정부는 재조합 전형을 새로 만들어서 가산점까지 부여하고 있어요. 반면에 우리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을 받질 못하고 있고요.”

하지만 정부에서도 저소득층을 위해 사회배려대상자를 선정하고 지원해주는 걸로 압니다.”

. 맞아요. 소득 분위에서 하위 10% 아래인 사람들이 받고 있죠. 제 아이도 받고 있고요. 하지만 정부에서 주는 쥐꼬리만 한 양육비 지원은 아무 도움도 안 돼요.”

그렇다면 재조합 인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들은 가족도 없고 그냥 기계에서 태어나서 맞춤 교육을 받고 일터로 보내지는 셈이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을 거란 생각은 드는 데요.”

그러자 향선 씨는 절 쏘아보면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당신 아이를 길러본 적 있나요? 가정은 꾸렸어요?”

아뇨.”

만약 당신이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해봐요. 뼈 빠지게 번 돈으로 20년을 넘게 키웠는데, 그 아이가 가산점 몇 점 때문에 그 놈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해보라고요! 당신은 순순히 그런 불평등을 감내할 수 있나요? 그건 절대로 받아들일 순 없어요. 적어도 난 못해요. 절대 못하죠.”

 

올해 3월에 태어난 마진-1878은 시멘트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채석장에서 석회석을 다이너마이트로 깨부술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죠. 그는 그곳에서 1차 조쇄 과정을 맡고 있습니다. 돌가루를 아주 잘게 가는 과정이죠.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은 대부분 2~3년생 재조합 인간들이었습니다.

저 파이프 보이십니까? 저거 온도만 1400도예요.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마진 씨는 우리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안전모와 마스크를 착용하는 걸 본 뒤에 곧장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했죠. 거대하고 낡은 덤프트럭이 다이너마이트로 깨부순 석회석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일단 세 차례에 걸쳐서 석회석을 부술 겁니다. 아주 잘게 바스러뜨릴 거예요. 그런 뒤에 다른 원료랑 섞어서 고온에서 막 돌리는 거죠.”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이는데요.”

맞아요. 돌가루가 장난 아니죠. 매일 밤마다 가래를 한바가지 뱉어내요. 아마 마스크가 분진을 완전히 걸러주지는 못하는 모양인데. 해결책이 없네요.”

왜 그렇죠?”

우리가 되묻자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 흙더미 위에 가래 한 덩이를 뱉었습니다.

경제 위기가 닥친 뒤로는 안전시설 점검이 미흡해졌다고들 말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전에 일하신 분들이 오셔서 말씀해 주셨죠. 몇몇 공정은 자동화였지만 전부 수동으로 바꿨다고 하더군요. 마스크도 값싼 걸로 바꾸고 또, 기계도 처분하고 저렴한 걸로 바꿨다던데.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계랑 시설 부지를 팔아서 그나마 회사를 살렸다나 뭐라나.”

그렇군요. 혹시 밖에 나가본 적 있나요?”

어디요? 이 공장 밖에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진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가루와 땀이 들러붙은 얼굴을 쓸어내렸죠.

아직 나가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나간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건 없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나가도 또 일이나 하겠죠. 죄송해요. 방송 인터뷰라는데, 제가 말주변이 좀 없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저 몇 가지 질문에만 답을 해주시면 돼요. 그럼 다음 질문을 하도록 하죠. , 어떤 단체에서는 재조합 인간이 너무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특혜이요? 무슨 특혜요?”

마진 씨가 되묻자, 저는 이런 저런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재조합 인간을 채용할 때마다 받는 지원금과 대입 가산점을 비롯한 노후 제도를 보여주었죠. 하지만 마진 씨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습니다.

우린 특혜를 누린 게 없어요.”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죠. “적어도 이곳에 있는 우리 중에 정말로 그런 특혜를 누린 사람은 없어요. 다른 작업장은 모르겠어요. 아까 물어보셨듯이 저도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전 고작 6개월을 살았지만, 제가 모은 돈은 고작 40만원이 전부죠. 그것도 악착같이 모아서 그래요. 대부분은 한 병에 12만원, 13만원짜리 소주 마시는데 돈을 탕진하죠.”

소주가 12만원, 13만원이라고요? 시중에선 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요.”

. 알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까 사업장이라는 장소에 따른 프리미엄이라더군요. 우린 남는 게 없어요. 우린…….”

그는 잠시 목이 잠겨서인지 말을 삼켰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있죠. 제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네요. 해도 될까요?”

저는 괜찮다고 말했죠. 그러자 몇 번 목청을 가다듬은 마진씨는 안전모를 벗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불공평해요. 다른 사람들을 보세요. 저 사람들은 가족이 있고, 누군가가 반겨주는 이들이 있죠.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태어나서 이곳에서 일하라 하니까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심지어 한 번 일자리가 정해지면 5년간은 아예 직종도 옮길 수 없죠.

우리 중 대다수는 그냥 이곳에서 죽어요. 내가 알던 동료들도 죄다 이직까지 1년여를 남기고 이곳에서 죽었어요.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냥 보통 인간들의 경우에는 평생 일해도 멀쩡하던데……. 의사들 말로는 우리가 무균실에서 자라서 그렇다더군요. 면역이, 완벽히 돌아가지 않아서…….”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가를 손으로 훔치면서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죽었어요. 우리는 그냥 심한 감기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폐렴이었죠. 항생제를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리고 결국엔 엊그제…….”

마진 씨는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물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울음을 삭이는 마진 씨에게 손수건을 건넸죠.

유감입니다.”

제가 말하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마진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산은 발파가 한창 진행 되는 민둥산이었죠. 다이너마이트가 지축을 흔들자,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죠.

유감일 건 없어요. 제가 우는 건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무서운 거죠. 당신은 이 인터뷰를 마치고 이곳을 떠날 거예요. 그리고 잊어버리겠죠. 하지만 전 계속 남을 거예요. 남아서 일만 하다 말없이 사라지겠죠. 저는 그냥 그게 슬픈 겁니다. 그게 슬픈 거예요.”

 

경기도 포천시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종수씨는 순수한 인간을 위한 대한민국이라는 단체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 임에도 종수씨는 아직도 총명한 눈으로 우리를 맞이했죠. 그는 스스로를 인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어섰노라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 가솔린(; 재조합 인류를 비꼬는 말)들을 암만 뽑아봐야 세금 낭비라는 거요.”

그는 방금 내린 커피를 홀짝였죠. 그리곤 우리에게 커피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절했죠. 차마 그가 마시는 커피를 비롯한 농작물들이 재조합 인간들의 손을 거친다는 점을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았죠. 그는 의자에 앉아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사회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해왔소. 임금을 올리고, 내수를 살려야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커다란 파이를 서로 나눠먹을 수 있을 거라 여겼지. 하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하다못해 진즉에 고공행진하는 집값을 잡았다면, 어쩌면 출산율도 올랐을지 모르지. 하지만 거품이 터지고…….”

종수씨는 참담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상상이나 해봤소? 경제가 무너지다 못해 땅덩어리 째 외국에 팔려가서는 일본령 부산 롯폰기미국령 울산 사우스 실리콘 벨리같은 소리가 나올 거라 상상이나 해봤냐 이거요.”

우리 모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엔 없었습니다. 솔직히 지난 수년간의 일들은 한국인이 감당키 힘들었죠. 심지어 수십 년째 부동산에 대해 경고를 하던 전문가들도 한순간에 부동산에 거품이 꺼질 줄은 몰랐죠. 그리고 부동산을 끼고 대출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팔수 없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파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외환위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경제위기의 전초에 불과 했죠.

버블이 터진 초기에는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하향 끝에 디폴트에 빠질 거라 예상하는 이는 없었으니까요.

저도 그때 거리에 있었습니다. 국가가 부체를 변제하지 못한 나머지 울산이 미국령으로 병합되던 때였죠. 자세한 이야기는 20218월 방송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링크 #2021경제대란.)

이제 우리는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실정이오. 선생. 제조업도 끝장났소. 이제 제조업 시장은 완전히 3D프린터에 넘어갔지.”

하지만 3D프린터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잖아요.”

그렇소다. 그럼 한번 생각해 봅시다. 3D프린터는 한참 전에 등장했음에도 아직까지 잘 쓰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물건을 찍어내는 속도가 2021년 이후로 매년 150% 더 빨라지는 데도 왜 지금껏 쓰질 않았을까?”

저는 고개를 저었죠.

간단하외다. 3D프린터를 사용하려면 세 가지를 잘해야 하오. 우선 3차원 모델링을 정확히 그릴 줄 알아야 하지. 거기다 3D프린터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하오. 문제가 생기면 즉각 프린터 자체를 정지하고 고쳐야 할 때도 있거든. 안 그랬다간 12시간 동안 뽑았던 결과물이 손상될 테니까 말이오. 그리고 프린터로 찍어낼 물체를 구성할 소재도 문제요. 즉석해서 뿌릴 수 있어야 하고, 굳을 때까지 일정한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런 소재가 흔하지 않지.

거기다 재료비를 아끼려면 내부를 가득 채우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비워둬야 하오. , 최적화를 잘해야 하지. 너무 많이 비우면 결과물 내구도가 약해지고, 너무 많이 채우면 무게와 돈이 많이 나갈 거요.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3D프린터의 입지는 줄어들었소.

그 중에서도 특히 3차원 모델링이 문제였소. 모델링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은 항상 비싸고 다루기 어려워서 일반인은 그걸 능숙하게 다룰 수도 없었지. 누가 고작 프린터 따위 쓰려고 사전처럼 두꺼운 설명서에 적힌 각종 명령어를 외우겠소?

하지만 3D 모니터가 모든 걸 바꿔놓았지. 이제는 마우스로 누르는 게 아니라 손으로 돌려가며 모델을 그릴 수 있더군.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까 손가락으로 몇 번 누르다보면 정교한 3D모델링이 완성됩디다. 거기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모델링 작업을 보조를 해주기 때문에 이제는 알아서 물체를 최적화 해준다오.

어디 그뿐이오? 기계의 정밀도는 더 올라가서 이젠 저가 3D 프린터도 출력속도가 상당히 짧아졌다더군. 보니까 예전에는 15시간이나 걸릴 조형물을 2시간 이내에 찍어냅디다.”

, 자세히 아시네요.”

한때는 이 쪽 업계에 있었소.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곳에서 커피나 내리고 있다니. 어쨌든, 이제는 세 살 배기도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으면 그걸 바탕으로 어떤 부품이든 찍어낼 수 있게 됐소. 이런 와중에도 정부는 제조업을 살린답시고 가솔린들을 찍어내고 가내수공업이나 다름없이 산업을 굴리고 있소. 거기다 올해 말부터는 정부는 건설업과 조선업계에도 가솔린들을 풀려고 간을 보고 있지.”

뭔가 문제가 있나요? 그래도 산업을 살리려고 나름 노력을…….”

그런 걸 바로 헛물켠다고 하는 거요. 내 백보 양보해서 건설업계는 긍정적으로 볼 건덕지는 있다 생각하오. 하지만 조선업은……. 말 그대로 시체에게 심폐소생술 하는 거나 다름없소. 간신히 기술적인 우위를 통해서 중국 놈들에게 몰린 수주를 좀 뺏어왔었는데, 몇 년 뒤에 버블이 터지면서 나라가 개판이 되는 바람에 조선업계는 산소 호흡기마저 떼버리고 말았소. 수주 받은 계약들뿐만 아니라 인재들과 기술까지 중국에게 넘어갔지. 업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국이 어마무시한 금액을 쥐어줬다고 하더군.”

얼마였나요?”

기술자, 특히, 숙련자들에게는 연봉이 거의 116.”

종수씨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 친구도 그 돈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갔소. SNS를 보니 수영장 낀 집에서 유유자적하더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젠 우리 조선업계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거요. 숙련공도 빼앗기고, 기술도 빼앗겨서 남은 게 없는데도 정부는 정신 못 차리고 조선업에다 가솔린들을 집어넣고 있소. 새로운 금맥을 찾기보다는 말라붙은 금광에 목을 매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 거요. 이곳을 둘러보쇼. 뭐가 보입니까?”

우리는 창밖을 내다보았죠. 한낮에도 셔터가 내려간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녹슨 간판은 간신히 콘크리트 외벽에 시뻘건 녹을 묻힌 채 매달려 있었죠. 거기다 셔터 위에는 스프레이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낙서들이 지저분하게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보다시피 이쪽 지역 경기는 죽었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지. 예전이었으면 이곳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을 거요. 광릉수목원 쪽이나 산정 호수를 가려고 하는 이들로 넘쳐났겠지. 하지만 지금 뭐가 남았소? 그냥 버려진 콘크리트랑 불량배들만 남았지.”

종수씨는 씁쓸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종수씨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곤 취재진에게 조용히 하란 손짓을 하곤 정문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곧장 영업종료 팻말을 걸고 밖을 내다보았죠.

그가 우리에게 손짓을 한 건 그로부터 1분여 뒤였습니다. 그는 블라인드 사이를 가리켰죠. 우리는 카메라를 블라인드 사이로 들이밀었습니다. 그러자 중성적인 외모를 한 청년들 다수가 보였죠. 그들이 인간인지 재조합 인간인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종수씨는 그들이 재조합 인간이라 확신했습니다.

저 놈들을 보십쇼. 이 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가솔린 놈들이요.”

어떻게 저들이 재조합 인간이라 확신하시죠?”

경찰들이 확인해줬소. 전에 세 번째로 나타났을 때 내가 신고를 했거든. 그때는 단순히 불량배인줄 만 알았소. 하지만 보쇼.”

모히칸 머리를 한 사람이 오토바이에서 내렸죠. 그러자 뒤이어 넉 대의 오토바이가 길가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곤 오토바이 옆에 매달아둔 커다란 망치를 꺼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망치자루를 양손에 들고 가게 셔터를 내리치기 시작했죠. 셔터가 움푹 꺼지자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보셨소? 저게 현실이오. 저들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오. 정부에서 저들을 선량한 존재라고 포장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저들은 정부 관리가 필요한 말썽꾼들이오.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폭력적이지.”

그는 망치를 힘껏 던져 기어코 셔터를 때려 부순 불량배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저놈들을 인간으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이때만큼은 정말 사람처럼 행동하는군. 나조차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겠소. 어떻게 나쁜 면만 쏙 닮는지…….”

 

미리네-9987 의원님은 1년 전에 재조합 인간 최초로 의원직에 당선된 분이십니다.

그는 무려 야당의 텃밭이었던 광진 갑 지역에 나와 수많은 재조합 인간들과 보통 인간의 지지 속에 당선이 되었죠. 그의 승리는 미국의 타임즈 1면에 실릴 만큼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저희는 미리네 의원님의 사무실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에 의원님이 직접 전화까지 주셨습니다. 그 분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셨죠. 저희는 국회에 자리한 의원 사무실에서 미리네 의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차별 속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차별이 우리를 가로막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같은 인간인 우리를 이렇게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반인륜적인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혹시 국회 차원의 해결책이 있으신가요?”

현재는 노동법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할 계획입니다. 재조합 인류의 복지를 위해 노동 시간은 줄이고, , 노동환경의 개선 조항을 담을 생각입니다. 아직 여야가 합의 중에 있으니, 다음 국회 입법 심의 때는 진전이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의원님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가요? 몇몇 분들은 3D프린터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재조합 인류를 제조업 분야에 투입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효율이 떨어지는 정책이란 주장이죠. 의원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미리내 의원님은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회의적인 기색이 감돌았죠.

물론, 일각에선 산업현장에 재조합 인간들을 투입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정부에서 재조합 인간을 투입하겠다고 결정한 사업장들 보세요. 전부가 3D업종이라 불리는 만년 인력난에 시달리던 곳입니다.

제가 처음 태어나 5년 동안 일한 하수도 정비 사업장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3일 만에 짐을 싸서 나가던 곳이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곳에 재조합 인간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물론 외국에서는 이런 일을 드론이나 청소 로봇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으로 대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 한국에 남으려 할까요?”

왜 안 남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지점을 세울 때마다 고려하는 점들이 있죠. 이를 테면, 자신의 물건을 구매한 잠재적인 구매자가 있는가, 그리고 구매를 지속적으로 할 의사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을 볼 때 한국은 예전처럼 매력적인 곳이 아닙니다.

이미 청년들이 전부 국적을 버리고 떠나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건 둘째치더라도 출산율이 0%대를 벗어나지 못한지도 10년이 넘어갑니다. 이건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인간의 수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을 뜻하죠. 그런데 만약 국가에서 인공자궁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면, 10년 뒤에는 이 나라에서 누가 돈을 쓸까요? 기자님도 아실 겁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지도 35년을 바라보는 이야기임에도 아직도 인공지능은 6살 아이 지능에 머물러 있죠.

그리고 각사업장마다 로봇과 드론을 배치 한 뒤에 어떻게 될까요? 기업들은 확실히 이득을 볼 겁니다. 24시간 계속 돌아가는 생산라인을 통해 부를 축적하겠죠. 하지만 그 이득이 정말로 사회 전반에 골고루 나눠질까요?

기업들은 결코 부를 나누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떠나 세율이 더 낮은 나라로 본사를 이전했죠. 당장 몇몇 대기업들은 후계자 승계절차를 마친 뒤에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어요. 재조합 인류의 현장 투입은 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기업들은 재조합 인간들에게 임금을 줌으로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공헌하는 셈이죠. 덤으로 재조합 인류들이 스스로 번 돈을 사회 곳곳에 소비함으로서 경제는 점점 살아나고 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취재진이 요청에 의원님은 사무실 책상에 놓인 태블릿PC에 담긴 자료를 보여주셨죠. 그러자 GDP에 관한 그래프와 주식시장의 변동 폭, 무디스에서 나온 보고서들이 떠올랐습니다.

보시다시피 일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경기는 점차 살아나고 있고, 수출 적자폭도 점차 줄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근 2년 내로 흑자 전환이 기대되고 있죠. 외국인 투자자들도 서서히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 까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각 분야의 사람들은 체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취재에 응하신 다른 분들 모두가 경제와 환경 분야에서 어려움을 토로하셨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기 지표와 실질적인 경제 간의 괴리감이 크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나요?”

제가 만나본 수많은 재조합 인류들은 오히려 삶이 개선되고 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이번 입법을 준비할 때 도움을 주신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집 한두 채는 사둘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죠. 아마도, 여러분이 취재하신 분들은, 그러니까, 현 사회 정치적 상황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시는 기존 인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이 됩니다.

기존 인류는 너무 몸을 사리는 있습니다. 일거리는 찾아보면 어디에나 있었죠. 그런데도 높은 학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는 일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공무원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 세대의 잘못이기도 했죠.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과 물가를 잡지 못한 것, 그리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어려움은 도처에 널려 있죠.

그럼에도 그들은 점차 일자리를 구하기보단 범죄자가 되고 있어요. 이제는 그들의 범죄 지식이 재조합 인류에게까지 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쯤 되면 일각에서 말하듯이 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잠재적인 범죄자라고요?”

. 자연적으로 태어난 기존 인류들은 과격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죠. 그들은 날뛰는 야생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 같은 재조합 인류는 정제된 유전자를 바탕으로 성장한 온전히 사회적인 동물이라 할 수 있죠.”

너무 과격한 주장 아닌가요? 거기다 그런 주장은 1년 전 국회 연단에서 재조합 인류와 기존 인류간의 평화를 기원하시던 의원님의 모습과는 많이 상충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저는 여전히 우리가 모두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기존 인류의 역사는 오직 살인과 범죄의 기록들뿐입니다. 거기다 매년 절도, 살인, 방화, 성범죄와 같은 모든 강력 범죄가 남녀를 불문하고 기존인류에게서 발생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야생동물들을 길들여서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애완동물로 만들든지. 아니면, 그들을 박멸해야만 하는 것이죠.”

어째서 그렇죠?”

아무리 개나 고양이가 예뻐 보인다고 해도 개와 고양이는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린 좀 더 이성적인 인류에게 사회를 물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조합 인류만큼 도덕적이고 선량한 존재들도 없죠.”

재조합 인류가 기존 인류보다 선량하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그럼요. 정부에서 인증된 기억과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들보다 더 선한 존재가 있을까요? , 물론 당신들 같은 기존 인류들은 이런 점을 불편하게 생각할 테죠.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범죄 피해자 대다수는 선량한 재조합 인류들이죠.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건 무지에 비롯되거나, 기존 인류들에게서 배운 것이죠.”

저는 카메라맨 쪽을 슬쩍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여간 당황스러운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저와 카메라맨 둘 다 기존인류였기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죠. 하지만 이런 주장 자체는 익숙했습니다. 극단적인 재조합 인류가 주도한 과격 시위에서 이런 구호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기 전에 그들과도 접촉을 시도해 봤습니다만 그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죠.

하지만 현재 기존인류들 중에도 선행을 베푸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또한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존인류들에 비해 재조합 인류들의 범죄율도 거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자 의원님의 안색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의 여유롭던 미소대신 살벌하게 부라린 눈매로 저희를 쏘아보았죠. 그는 저희들에게 정확한 자료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UN산하 기구에서 조사한 전 세계 기존인류와 재조합 인류 범죄율 동향 보고서를 보여드렸습니다.

보고서를 훑어본 미리네-9987 의원님은 고개를 저으셨죠.

이런 엉터리 보고서를 가져와서 뭐하자는 겁니까? 이 국제기구가 우리나라 사법부보다 더 신뢰도가 높다는 건가요?”

, 보통 UN이라면…….”

맞소. UN이라면 아주 공신력이 넘쳐흐르는 집단이지. 하지만 아무리 ‘UN’이라 할지라도 전 세계를 다 조사할 수는 없어. 어떤 국가는 협력적으로 나올 것이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서 전 세계 통계라고 하는 자료를 신뢰할 수 없는 거요. 이런 비판적인 사고도 함양하지 않은 언론인을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 지 의문이군.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요. 나가보시오. 자격도 없는 것들을 만나줬더니 원.”

미리네-9987의원님은 그렇게 저희 취재진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거리에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는 인원들로 가득 차있었죠. 날로 높아져 가는 기존인간과 재조합 인간 사이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이제는 양쪽 진영에서 살인사건으로 번질 정도였죠. 저는 시위 현장 근처를 지나던 한 시민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의 부모가 누구였든, 우리는 인간이고 한나라를 구성하는 성숙한 시민이란 점을 말이죠. 우리 중 누구도 부모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냥, 그 점을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줬으면 해요. 그저, 누가 되었건 간에 서로 더불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멍청한 사상싸움을 벌이기 전에 일단 그것부터 생각한다면 아마 서로에게 화염병을 던질 생각은 못하겠죠.”

인상적인 말을 남겨주신 노신사는 거리를 가로질러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수많은 단체들을 오가면서 재조합 인류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우린 이 인터뷰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두 인류간의 수많은 유사점을 목격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골은 깊기만 합니다.

저는 지금 약 2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지나는 빌라 위에 서있습니다. 난간 아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인파들이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사랑 없이 태어난 이들은 말도 말라! 재조합된 인류는 의미 없다!)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깃발들이 보이네요.

취재진이 인터뷰를 했던 행동하는 어머니 연맹의 깃발도 보이고요. ‘순수한 인간을 위한 대한민국의 깃발도 보이는 군요. 수많은 단체들의 깃발이 청계천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또한, 경찰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현장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반면에 재조합 인류 측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전 정보에 따르면 재조합 인간 반대 시위에 맞서서 맞불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만 현재까지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요? 왜 우리는 그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해야하는 걸까요? 단지 차이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부정하고 기피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사회가 한 번 더 성숙한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잠깐 무슨 소리죠?

(연달아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사회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사회자는 혼란스러운 듯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옥상 난간에 매달려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손짓 했다.

카메라는 사회자의 손짓을 따라 난간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난간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작은 폭발이 군중 속에서 일어난다. 시뻘건 불길에 몇몇 사람들 몸에는 불이 붙었다. 카메라는 불붙은 들쥐처럼 뛰어다니다 거리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그러자 국방색을 칠한 8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들이 시위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세상에!”

(사회자는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곤 인터넷을 잠시 뒤적인 그는 굳은 얼굴을 카메라 앞에 폰을 내보였다. 카메라에는 희미하게 계엄령이란 단어가 비쳤다. 사회가가 동영상을 틀자, 대통령의 담화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새 시대를 열 시간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 듯. 파업을 일삼는 기존 인류보다 재조합 인류의 선의와 도덕성을 본받아 더 나은 세상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재조합 인류를 향한 기존 인류의 폭력을 청산하기 위해 광화문에 몰려든 폭도를 정리 하고 있습니다. 반정부 세력이 광화문에 집결한 현재. 정부와 반정부 세력 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상자는 없으며, 경찰 드론이 곳곳에서 비살상 무기를 이용해 소요 사태를 진압하고…….’

(대통령의 담화가 무색하게 거리에선 비명과 절규가 이어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카메라맨은 난간으로 다가가 거리를 찍었다. 그러자 작달 마한 드론들이 일사분란하게 모여 사람들을 향해 속사포화를 쏘기 시작한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쓰러지는 사람들과 도망치는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카메라 속에 담겼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런……. 이건 정말 미쳤어!”

(사회자가 머리를 잡아 뜯으며 울먹이자, 카메라맨은 광화문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그곳에선 거대한 폭발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 정부가 우리를 버렸어. 정부가…….”

(사회자는 식은땀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카메라맨은 얼굴이 퉁퉁 부은 사회자의 모습을 찍었다. 그들이 서있는 건물 뒤로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회자는 카메라맨을 잡아끈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우리도 위험하다고!”

(사회자가 말하기 무섭게 드론들이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옥상으로 다가왔다. 카메라맨과 사회자는 혹시 몰라 난간 뒤에 몸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드론이 더 빨랐다. 난간 앞에 몸을 숙인 두 사람을 발견한 세 대의 드론은 잽싸게 난간 위를 날아올라 공중제비를 돌면서 두 사람의 앞을 가로 막았다. 카메라 렌즈와 드론의 카메라가 서로 눈을 마주 치는 순간.

총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깨진 렌즈 앞으로 흐르는 붉은 피가 옥상 타일을 적신다. 총을 쏜 드론들은 무심하게 비명을 쫓아 움직인다. 네 개의 프로펠러에서 나는 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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