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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황금 왕좌

2020.02.26 00:0502.26

계기판에서 붉은빛이 삼일 내내 점등하고 있었지만 화물선에 타고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면 화물선은 자동 운행 중이었고, 조종실에 앉아서 상태를 확인해야 할 선원들은 화물칸 앞쪽에서 카드놀이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누구라도 계기판에서 붉은빛이 점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면 아마도 부리나케 비상전원장치를 작동시키고 가까운 행성이나 우주 정거장에 도움요청 신호를 보냈을 것이었다. 하지만 카드놀이에 푹 빠져서 있는 탑승자들은 자신들에게 곧 닥쳐올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화물선은 M12 은하 중앙에 있는 부유한 행성에서 출발해 우주 정거장에 들렀다가 은하 구석에 있는 작은 지구형 행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 근처에 있는 심우주잠수장치를 이용해 1.25파섹 거리를 잽싸게 이동한 후 목적지에서 천오백 킬로미터 거리에서 현재우주로 나오면 되는 간단한 항로였다.

삼각뿔 모양으로 생긴 작은 조종실과 거기에 붙어 있는 생활시설 모듈 , 그리고 그 뒤쪽으로 봉처럼 길게 이어진 듀얼이온엔진을 제외하고서, 멀리서 보면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보이는 우주선의 대부분은 연료와 화물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화물칸은 모두 파인애플로 가득 차 있었다. 화물칸 근처만 가더라도 파인애플의 달콤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젊은 남녀 셋은 이 냄새가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좁디좁은 우주선 안에서 편하게 세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화물칸 앞 밖에 없었으니.

"파인애플 말고 좀 다른 걸 운반하면 안 되나?"

귀 밑까지 오는 숏컷을 한 20대로 보이는 백인 여자가 카드 한 장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그 여자는 화물칸 앞에 설치된 온도조절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상의는 벗어버린 채 속옷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여자 옆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쓰고 있는 젊은 동양계 남자가 들고 있던 카드 중 하나를 바닥에 던지며 대꾸했다.

"파인애플이 우리가 가는 행성에서는 금보다 더 비싼 물건이라구. 다른 걸 옮겨봤자 돈도 안되니 턱도 없는 얘기야, 에이브릴."

그러자 에이브릴이라고 불린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파인애플 냄새가 이렇게 지독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난 너네 둘이 우주선을 태워준다길래 재미있을 것 같아서 탔는데..."

그러자 에이브릴 맞은편에 있던 근육질의 백인 남자가 에이브릴을 쳐다보면서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있던 카드 중 한 장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언제 은하 반대편에 있는 행성을 구경이나 해보겠어? 나랑 에디가 여기 일하지 않았으면 이런 재미난 경험은 못해봤겠지."

그러자 에디는 코 밑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켜올리고서 백인 남자를 보고 따졌다.

"입이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구. 에이브릴을 태우자고 한 건 해머 너였잖아. 이거 본사에서 알면 난리 날걸?"

에디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해머를 한참 쳐다봤지만 해머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에디와 에이브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손에 남은 마지막 카드를 바닥에 놓인 카드 더미에 내려놓으며 외쳤다.

"내가 이겼지! 하하!"

해머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에디와 에이브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둘은 커다란 손 위에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올려놓았다. 해머는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일주일 내내 연패로군! 이거 재미없어서 너희랑 같이 하겠어? 그리고 에디 넌 걱정하지 마. 본사에서는 파인애플 대금이 정확한지랑 출발할 때 우주선 중량에 변화가 있었는지 이거 두 개 밖에 신경 쓰지 않는다구."

에디는 해머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사는 운송 계약된 파인애플이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전달되고 그 대금이 정확하게 지불되었는지 여부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배달 업무를 하는 선원들의 안전을 더 신경 썼다면 낡아빠진 화물선을 더 자주 점검해야 했겠지만, 파인애플을 더 쑤셔 넣기 위해 조종실에 남는 공간이 있는지나 확인하는 회사였으니 해머가 자기가 마음에 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마음대로 회사 화물선에 승선시켜서 수십 파섹의 거리를 비행한다고 해도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에이브릴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해머와 에디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에이브릴과 시선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에이브릴은 상의를 다시 걸치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해머와 에디를 보며 물었다.

"언제 그 파인애플이 귀하다는 행성에 도착하는 거야? 카드놀이만 하고 놀기에는 너무 답답한걸."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어. 한번 확인해볼게."

해머와 에디는 거의 동시에 비슷한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셋의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더니 주위가 캄캄해졌다. 그리고 선체가 위아래로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셋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만 멍청하게 벌린 채 주변에 손에 잡히는 어떤 물건이든 꼭 잡고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악몽 같은 수분이 흐르고 몸을 뒤흔드는 진동이 잦아들자,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던 세명은 몸 주위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셋은 잽싸게 몸을 날려 조종실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미친 듯이 울려대는 알람과 불빛, 그리고 조종석 창 바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른 행성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젠..."

에이브릴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지거리가 끝나기도 전에 에디와 해머는 번개처럼 자리에 뛰어들어 비상 엔진과 화물선 전체를 뒤덮는 보호막을 가동했다. 하지만 계기판 곳곳에서 번쩍이는 붉은색 빛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세 사람에게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화물선이 행성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엔진 출력은 불안정해졌고 화물칸 온도는 점점 상승하고 있었으며 물리적 충격을 감쇄하는 보호막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곧 고갈될 판이었다.

"자세제어 컴퓨터가 맛이 갔어!"

에디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화물선은 대기권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가을바람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힘없이 공중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사정없이 지상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에디는 계기판에 붙어 있는 키보드로 어떻게든 자세제어 컴퓨터를 고쳐보려고 애를 썼고 해머는 이를 앙다물고서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에이브릴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진동이 잠시 사그라들자 슬쩍 고개를 들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조종실 창 밖으로 무수한 침엽수가 흐릿한 푸른색 물결을 그리며 지나가고 난 후 완만한 언덕이 불쑥 튀어나오자 에이브릴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부딪힌다!"

에이브릴의 비명과 동시에 해머는 두툼한 팔뚝의 근육을 잔뜩 수축시키며 조종간을 당겼고, 동시에 에디는 컴퓨터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화물선은 갑자기 나타난 언덕을 스치듯 넘어갔고 그다음에는 힘이 빠진 듯 휘청거리다가 잡목이 가득한 벌판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화물선 주변을 가득 메운 먼지가 조금씩 사그라들자 조종석 창 밖으로 밝은 햇빛, 푸른 하늘, 그리고 마른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벌판의 모습이 보였다. 해머는 긴 한숨을 내 쉬고 있는 에디와 에이브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재미난 경험 한다고 했지...?"

**

조종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에디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서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목적지랑 완전히 떨어진 외딴곳이야. 적어도 5파섹은 떨어져 있다고. 엔진도 수리해야 되고 연료도 보충해야 하는데 통신망은 연결도 안 되고... 우린 망했어."

에디 옆에 서 있던 에이브릴도 그의 말을 듣고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옆에서 계기판에 부착된 작은 모니터를 보고 있던 해머는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모니터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길 봐.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큰 생명 반응이 있어. 마을이나 도시 같은데, 여기서 도움을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놈들을 만날 줄 알고?"

에디는 해머에게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에이브릴은 에디의 어깨를 두드리며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여기서 걱정하고 있는 것보단 낫잖아. 해머 말처럼 한번 나가서 도움을 구해보자."

에이브릴의 말에 에디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라커에 두었던 권총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출입구로 향했지만 그 표정은 여전히 쓴 약을 먹기 싫어서 갖은 핑계를 대는 어린아이 같았다. 해머와 에이브릴도 권총을 챙기고서 에디를 뒤따랐다.

화물선 밖으로 나서자 들판에서 불어오는 향긋한 풀냄새가 잔뜩 긴장한 세 외지인의 기분을 누그러뜨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풀벌레 소리뿐, 위협적인 환경이나 생명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허리춤에 바짝 붙여서 총을 들고 있던 세 사람의 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래로 쳐져갔고 조심스러웠던 발걸음에도 조금씩 리듬감이 붙기 시작했다.

벌판을 지나 작은 시내를 건너서 돌무더기 언덕을 넘어서자 거대한 강철 벽이 나타났다. 이어 붙인 곳 없이 매끈한 수십 미터 높이의 검은 벽 위로 높다란 첨탑 끄트머리가 보였다. 에디와 에이브릴은 햇볕을 흡수하는 것 같은 거무튀튀한 벽이 주는 위압감에 가까이 다가가길 꺼려했지만 가까이 가보자는 해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벽 가까이 다가가자 거기는 키가 큰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고 그 문 옆에는 번개처럼 빛이 번쩍이는 날붙이를 끄트머리에 매단 창을 들고 온 몸을 철 갑옷으로 무장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창을 하늘을 향해 세워서 들고만 있을 뿐, 총을 들고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고도 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큰 소리로 외쳐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세 사람이 다가오자 갑옷을 입은 사람은 문을 열고선 손가락으로 문쪽을 가리키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이지?"

겁먹은 표정으로 물어보는 에이브릴의 질문에 에디는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은 자세를 취하며 허리춤에서 통역기를 꺼냈다. 갑옷을 입은 사람이 다시 세 사람에게 말하자 통역기는 M12 은하계에서 통용되는 모든 언어와 비교한 후 자동으로 통역한 결과를 스피커를 통해 내어놓았다.

- 얼른 들어가.

통역기가 적절히 작동하는 것을 보고서 에디는 통역기를 통해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화물선을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있나요?"

하지만 갑옷을 입은 사람은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 오늘이 너희 같이 갖은 핑계를 대며 성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날이지.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군. 얼른 들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에디가 통역기를 통해 뭔가를 물어보려고 할 때, 세 사람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가려지는 두꺼운 로브를 걸친 한 사람이 천천히 세 사람을 지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은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문으로 들어갔고, 갑옷을 입은 사람은 자신의 말처럼 만사가 귀찮고 힘든 모양인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이 광경을 본 세 사람은 서로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낯선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대한 관찰한 결과를 흉내 내는 것뿐. 세 사람은 쭈볏대며 문 쪽으로 다가갔지만, 갑옷 입은 사람은 팔이 아프다는 듯 창만 다른 손으로 바꿔 쥐었을 뿐, 세 사람이 문을 지나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을 통과한 세 사람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거리와 삐죽 빼죽한 탑처럼 생긴 모양의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온몸에 털이 뒤덮인 거한, 처음 보는 동물을 끌고 가는 난쟁이,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뚱뚱보, 인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헤치고 지나가는 바퀴 달린 로봇, 이들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순찰을 돌고 있는 갑옷 입은 병사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높고 낮은 탑 같은 건물에서도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있었는데, 이 탑들은 상점인 모양인 듯 그 안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음식부터 오래된 우주선 부품까지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세 사람은 말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도시의 경관을 관찰하고 있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에이브릴의 말에 해머는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정해진 항로만 컴퓨터가 가이드하는 대로 다녔을 뿐이라 은하의 변방에 있는 이름 모를 행성의 정보까지 일개 화물선 선원이 알리 만무했다.

"이거 잘하면 화물선 고치는데 쓸 수도 있겠는데?"

에디는 어떤 탑 앞에 진열된 잡동사니에서 한 전자부품을 집어 들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탑 안에서 얼굴이 개구리처럼 생긴 떡대가 나타나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에디가 든 통역기는 재빨리 휘파람 소리를 에디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변환했다.

- 축제날이니 5개만 받겠소. 평소 보다의 반값이오.

"무슨 5개요? 여기도 은하 공용 지폐도 받아요?"

에디의 말에 개구리 얼굴을 한 떡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 같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받긴 한다. 그럼 숫자 800을 줘야 해.

상대의 답변을 듣고 에디는 곧 얼굴이 환해졌지만 금방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자세제어 코어모듈이 기껏해야 800 민트라면 근처에 중고 우주선 수리 샵을 열어도 될만한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디가 수중에 지닌 돈 만으로도 화물선을 고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에디가 정신없이 잡동사니 속에서 쓸만한 부품을 고르고 있을 때, 해머는 개구리 상인에게 질문을 했다.

"무슨 축제가 열리는데요?"

- 이 행성 사람이 아닌가 보군, 당신들은. 오늘은 25년 만에 인정놀이가 시작되는 날이지. 평소 같았으면 외부인은 여기 들어오지 못해. 축제 때문에 특별히 아무나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거지.

"인정놀이가 뭔데요?"

- 그건 여기서 쓰는 말이다. 통역이 잘 안되나 보구만. 저기 첨탑 보여?

개구리 상인은 몸을 밖으로 빼서 탑 건물들 너머로 보이는 높은 첨탑을 가리켰다. 검은 벽 너머에서도 보이던 높은 첨탑은 커다란 탑으로 이어졌고, 그 탑은 부푼 빵 같은 거대한 원형 돔형 건물 위에 높여 있었다. 해머가 고개를 끄덕이자 개구리 상인은 말을 이었다.

- 오늘은 저기서 우리 도시를 다스리는 왕의 후계자를 뽑는 경기가 열리지. 누구든 도전할 수 있어. 경쟁자를 모두 이기면 황금 왕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황금 왕좌에 앉아서 강철 벽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다스리는 왕! 해머는 M12 은하 중심부와 외곽지역을 수십 번 다니며 별 희한한 이야기는 다 들어봤는데 황금 왕좌라느니 왕이라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구시대적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통역기를 통해 개구리 상인의 이야기를 들은 에이브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왕이나 그 후계자를 뽑기 위한 경기 따위의 이야기를 듣고서 에이브릴은 섬뜩한 무언가를 느껴서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던 반면, 해머는 그 이야기에 구미가 당기는 모양인지 에디가 들고 있던 통역기를 빼앗아서 개구리 상인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구?"

- 오, 해보게? 당신 같은 좋은 체격이면 더 유리하다. 힘을 겨루는 경쟁이니까. 왕이 되면 날 기억해줘. 도시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을 달라고.

"힘이라면 자신 있지. 하하."

통역기가 해머의 농담 같은 자기 자랑을 뭐라고 통역했는지는 몰라도 개구리 상인의 휘파람 피치가 훨씬 높아졌다. 그는 정말 해머라면 승산이 있다는 듯 그를 탑 안으로 데려가서는 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에이브릴은 그 꼴을 보고서 에디에게 해머 좀 말리라고 얘기했지만 에디는 거의 잡동사니 속에 파묻혀서 화물선에 필요한 부품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어서 에이브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에이브릴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거리를 메운 가지각색의 인파 속에서 힘 깨나 쓸 것 같은 거한들과 본 적도 없는 거대한 외계 생명체들이 에이브릴의 눈에 들어왔다. 에이브릴은 해머를 말릴 생각에 개구리 상인의 탑 안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해머는 개구리 상인이 건네준 가죽 보호대를 팔에 둘러보고 있었다. 갑자기 뛰어 들어온 에이브릴의 표정을 보고서 해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어 보였다.

**

"말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수 있었으면 진작에 말렸지! 그냥 막 가버리던데 넌 뭐했냐?"

"보면 몰라? 고칠 부품 찾고 있었잖아! 여기서 영영 살 거야?"

각종 부품으로 가득한 가방을 세 개나 짊어지고 있는 에디와 에이브릴은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를 나란히 걸으면서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 둘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뭐라고 핀잔이나 경고를 주지 않았다. 이 인파가 천천히 향하는 곳은 에디와 에이브릴의 말다툼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흥분으로 가득 찬 지껄임, 함성, 욕지거리 등의 뒤섞여 만들어내는 소음이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에디와 에이브릴도 해머를 찾기 위해 통역기 없이 손짓 발짓을 해가며 겨우 겨우 '인정놀이'에 참가하는 장소를 알아냈고, 그리로 향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군중의 행렬은 도시 중앙에 있는 높은 첨탑이 세워진 원형 돔 건물까지 이어졌다. 고개를 길게 빼고서 두리번거리는 에디와 에이브릴은 생각보다 쉽게 해머를 찾았다. 해머가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인 데다가 돔 건물에서 나오는 해머 쪽에서 둘을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해!"

에이브릴이 고함을 질러댔지만 해머는 싱글싱글 웃으며 자기 할 말만 늘어놓았다.

"여기 도전할만하던데? 예선이라고 하면서 링에서 다른 놈과 권투시합을 했는데 내 펀치 한방에 뻗어버리더군, 하하!"

에디는 해머를 만나면 통역기부터 뺏고 멱살을 잡고 화물선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키도, 힘도 없었다. 에디는 애원하는 투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 이 왕 후계자를 뽑는다는 이상한 시합에 참여하겠다고? 왕이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 근육을 사용해보고 싶은 거야?"

"인생의 기회 아니겠어?"

에디의 말에 해머는 낄낄대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에디는 해머의 말을 본심으로 생각한 듯 짜증을 내며 따졌다.

"그럼 나 혼자 화물선 고치고 떠나라 이거야?"

"기술은 네 전공 분야잖아. 난 잘 몰라. 난 여기서 잘 먹고 잘 살래."

해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껄껄 웃은 다음, 에디가 메고 있던 가방을 들어 자기 어깨에 걸쳤다. 그제야 에디도 픽 헛웃음 터트렸다. 세 사람은 도시로 들어왔던 문을 통해 벽 밖으로 나가서 벌판에 홀로 버려져있는 화물선으로 돌아갔다.

불시착한 이 행성의 위치와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쌍성계에 속한 행성인 것은 분명했다. 수시간 엔진과 자세제어장치를 수리하는데 진땀을 뺀 에디는 녹초가 되어 조종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지만, 조종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황금빛 노을 너머에는 또 다른 작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이브릴은 밝아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투덜거렸고 에디는 급한 대로 비상 전원 장치를 가동해서 조종실 창에 금속 셔터를 내려서 빛을 막았다. 에이브릴은 먼저 곯아떨어졌고 그 직후 에디와 해머도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에디는 빨리 일어나라는 에이브릴의 고함소리를 듣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디가 계기판 위에 놓아둔 안경을 쓰자 흐릿해서 알 수 없었던 에이브릴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또렷하게 보였다. 에이브릴은 어떡하냐고 연신 되뇌며 손가락으로 조종실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해머가 사용했던 침낭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에디도 빈 침낭을 보는 순간 해머가 화물선을 떠나서 어디로 향했는지 직감했다.

"그 자식, 진심이었어!"

에디는 셔터를 올려서 밖을 살펴봤지만 잡목들만 우두커니 서 있는 들판의 풍경만이 펼쳐져 있을 뿐 어디에도 생명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화물선 주변을 둘러봤지만 거기에서도 해머의 흔적은 없었다. 결국 에디와 에이브릴은 화물선 안팎과 주위를 몇 번이나 헤매다가 해머를 찾기 위해 다시 도시로 향했다.

**

에디와 에이브릴은 운이 좋았다. 강철 벽을 통과해 도시로 들어간 두 사람은 개구리 상인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다. 통역기가 없었지만 개구리 상인의 몸짓으로도 자신도 해머의 경기를 보러 간다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개구리 상인을 따라 도시 중앙에 있는 돔형 건물로 향했다.

돔형 건물에 들어서자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두 사람을 덮쳐왔다. 어제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돔형 건물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건물 안 벽을 따라서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돌로 만들어진 스탠드가 층을 이루고 있었고, 거기서 사지를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생명체들은 건물 중앙에 있는 둥근 원반을 보고 있었다. 원반은 지름이 10미터쯤 되고 평평했는데, 그 위에는 왕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참가자들의 피로 흥건했다. 피범벅이 된 원반 위에는 털이 북슬북슬한 곰처럼 생긴 한 남자와 해머가 숨을 몰아쉬며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미 몇 차례 공방이 오간 모양인지 원반 위 두 사람의 몸에는 무수한 상처가 나 있었다. 털북숭이 남자와 해머는 조금씩 간격을 좁히는 듯하더니, 털북숭이 남자가 자세를 낮추고 해머의 하반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해머는 잽싸게 드러누워서 털이 무성한 거구를 발로 밀어서 반대편으로 넘겨버렸다. 털북숭이 남자는 재빨리 몸을 뒤집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승리의 여신은 해머를 위해 미소 짓고 있었다. 해머가 이미 털북숭이 남자 등 위에 올라타서 두터운 팔로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털북숭이 남자는 손톱을 세워 해머의 팔을 뿌리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해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털북숭이 남자의 생명이 점점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건물 내부를 채우는 열기와 함성소리는 더욱더 커져갔다. 그때, 끔찍한 경기를 보고 있던 관중들의 머리 수미터 높이 천장 쪽에서 날카롭고 높은 음이 두 번 울렸다.

에디와 에이브릴은 귀를 막으며 천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돔형 천장에는 사람 대여섯 명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원형 발코니가 있었고, 그 위에는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 위에는 금빛 왕관을 쓴 앙상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실내를 채우던 함성과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털북숭이 남자가 몸을 뒤틀며 허덕이는 애달픈 숨소리만 들리는 적막이 건물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감쌌다.

노인은 마치 신탁을 내린다는 듯 천천히, 하지만 위엄 있게 손을 들었고 앙상한 손가락을 펴서 해머를 가리켰다. 그러자 적막으로 차가웠던 실내는 다시 함성과 열기로 가득 찼고, 그제야 해머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털북숭이 남자를 조르던 팔을 풀고 일어섰다. 그리고 열광하는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선 퇴장했다.

해머의 경기가 끝나자 개구리 상인이 관중석 뒤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에디와 에이브릴도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계단은 건물 지하로 이어졌다. 지하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는데, 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곳곳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거나 구급키트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개구리 상인은 병사들 사이를 지나 알코올 솜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있는 해머에게 달려가서는 휘파람 같은 소리를 갖은 높이로 냈다.

- 아주 잘했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군. 앞으로 두 경기만 더 하면 돼!

해머 옆에 놓인 통역기가 내어놓는 말을 듣고서 뒤따라온 에디와 에이브릴은 깜짝 놀랐다. 에디는 해머에게 다가가 따져 물었다.

"너 정말 이거 계속할 거야?"

에디의 말에 해머는 만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너도 아까 황금 왕좌 봤지?"

에디는 해머의 미소가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해머는 에디의 반응이 매우 흡족스럽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 노인 손짓 하나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거 봤지? 황금 왕관, 황금 왕좌... 화물선보다 훨씬 멋지잖아? 사람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그러니 언젠가 파인애플이 돈 되겠다고 먼저 생각해서 팔아본 사람이 어마어마한 부를 얻게 된 거잖아. 그럼 내 근육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평생 파인애플을 옮기는 일보다는 더 값진 일을 할 수도 있겠지."

해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에디와 에이브릴이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해머의 말투에는 방금 전 경기를 보던 군중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

"이제 두 번만 더 이기면 저 왕좌에 앉게 되지. 그깟 파인애플은 잊어버리고 날 응원해 줘. 인생은 도전이야."

- 나도 잊지 말라구. 내 도시 출입증 말이야.

해머의 말이 끝나자마자 통역기가 개구리 상인의 말을 통역했다. 에디와 에이브릴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고 있느라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와서 해머에게 말을 걸었다.

- 소독 다 했으면 회복실에 가 있으시오. 한 시간 뒤에 경기가 있소.

해머는 에디와 에이브릴에게 눈을 찡긋 해 보이고서 병사와 다른 선수들 사이로 사라졌다.

"갑자기 사람이 저렇게 변하냐...?"

에이브릴은 떨리는 목소리로 에디에게 말했다. 에디는 머릿속이 복잡해 그저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에디의 머릿속에서 어제, 오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도시로 가보자고 한 것도 해머였고,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한 시기에 잡은 것도 해머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도 해머였다. 황금빛 파인애플과 황금빛 왕좌.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만 같았다. 에디는 검지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머리가 아파왔다.

"에디... 다시 화물선으로 돌아가자. 고쳐야 하잖아."

에이브릴은 에디의 팔을 잡았지만 동시에 개구리 상인이 에디의 반대편 팔을 잡았다. 휘파람 소리와 함께 해머가 놓고 간 통역기에서 개구리 상인의 말이 흘러나왔다.

- 친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나는 그가 왕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해. 대대로 무슨 종족이든 생명이 넘치는 사람이 왕이 되었어. 당신 친구는 넘치는 활력과 야망을 지녔어. 그가 왕이 되는 걸 같이 구경하자.

에디는 잠깐 생각하고서 에이브릴에게 말했다.

"에이브릴, 이왕 이렇게 된 거 보고 가자. 해머가 탈락하면 그때 잘 얘기해서 다시 데려가면 되잖아."

에이브릴은 몇 번 에디에게 그냥 화물선으로 가자고 하다가 결국 해머를 챙기자는 에디의 부탁에 마지못해 그러기로 했다. 두 사람과 개구리 상인은 다시 계단을 통해 관중석으로 올라가서 계속 진행되는 경기를 관람했다.

급소를 공격하지 않고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기는 처절하긴 했지만 참혹하지는 않았다. 천장에서 모든 경기 상황을 보고 있는 황금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이 비참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승자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왕이 판정을 내리기도 전에 관절이 빠지거나, 크게 상처가 나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경기를 속행할 수 없는 부상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관중들은 흥분해서 더 크게 고함을 질러댔다.

해머의 다음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해머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상대방에게 뛰어들어 왼쪽 주먹으로 안면을 가격한 뒤 상대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쳤다. 축 처진 상대방의 등 위에 한쪽 발을 올리고서 해머는 고개를 들어 자신만만하게 황금 왕좌를 바라보았다. 에디도 해머의 시선을 따라 왕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손가락을 펴서 해머를 가리키는 왕의 푹 들어간 눈에서 만족스럽다는 듯한 광채가 번쩍이는 것 같았다. 이 도시를 책임질 수 있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신의 후계자 후보들이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에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어 시간 후, 경기장은 다시 환호성과 열기로 가득 찼다. 경기가 펼쳐지는 원반 위에는 회복실에서 회복을 마치고 나온 해머와 온몸이 돌로 이루어진 한 외계 종족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왕이 손을 들어 시작을 명하자 두 선수는 성난 황소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강한 근육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이루는 물질이 암석이라면 서로 부딪혔을 때 누가 유리한지는 뻔할 노릇이었다. 에디와 에이브릴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제발 멀쩡한 모습으로 화물선으로 돌아가자며 속으로 빌었지만 두 사람의 눈 앞에서는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기가 펼쳐졌다.

"으아아아아!"

끓어오르는 고함소리와 함께 내지른 해머의 주먹은 상대방의 턱에 바로 꽂혔다. 암석으로 된 상대방의 피부는 조각 조각나 공중으로 튀었고 상대방은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가죽끈을 칭칭 감은 해머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해머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몇 번이고 상대방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상대방이라고 가만있지는 않았다. 그는 최대한 균형을 잡으며 해머를 향해 주먹과 발을 날렸지만 하나도 해머의 몸에 닿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큰 모션이 해머의 주먹이 파고들 기회를 주고 있었다. 사정없이 얼굴과 몸을 얻어맞은 상대가 주춤거리자 해머는 자세를 낮추고 그의 허리를 잡았다.

"이야아아아아!"

해머는 괴성을 내지르면서 상대를 들어 올리는 동시에 허리를 뒤로 젖혔다. 공중으로 떠오른 상대는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더니 곧이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경기장 곳곳으로 부서진 돌덩어리가 튀었고 상대방의 몸 여기저기에 큰 금이 갔다. 팔과 다리를 꿈틀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일어서서 싸울 수 있는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대를 발아래에 두고서, 해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천장 곳곳에 설치된 조명이 황금 왕좌를 비추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왕좌에서 반사된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왕은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해머를 가리켰다. 해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고, 곧이어 새 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관중들의 박수소리가 건물을 가득 메웠다.

박수소리는 원형 경기장을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라 천장에 있는 황금 왕좌로 다가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해머가 천천히 왕좌에 앉아 있는 왕에게 다가가자 왕의 머리에서 황금 왕관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늙은 왕은 앞으로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겠다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늙은 왕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갑자기 건물에 있는 모든 조명이 꺼졌고 시커먼 암흑과 정적이 건물 안을 에워쌌다.  잠시 후 조명이 다시 들어오자 경기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찬란한 황금 왕좌에 황금 왕관을 쓴 해머가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곳곳에서 박수갈채와 새로운 왕이 도시와 행성을 잘 다스리기를 바라는 축복의 말이 쏟아졌다. 해머의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는 입을 열고 즉위 후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축제를 열어라!"

왕의 준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건물은 물론 온 도시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때 에디는 질린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거리에서는 낯선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에이브릴은 인파를 헤집고서 돔형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에디를 겨우 따라잡았다. 그녀는 에디의 팔을 붙잡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디 가는 거야?"

그러자 에디는 신경질을 내며 팔을 뿌리치고 대답했다.

"어디긴 어디야? 화물선 작동하나 확인하러 가야지."

"해머는 어쩌고?"

에이브릴의 말에 에디의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에디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걘 이제 왕이잖아. 꿈을 이뤘지. 그런데 난 아냐. 난 화물선이나 몰러 가야지."

"너 지금 삐진 거야?"

에이브릴의 말에 에디는 발을 멈추고 화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에디는 뭐라고 대꾸하려고 했지만 에이브릴이 먼저 쏘아붙였다.

"너 지금 친구가 왕이 되었다고 괜히 기분 나빠서 그러는 거 아냐? 그럼 뭐가 어때서? 화물선 타고 여기를 뜨고 싶으면 해머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진작에 왕 노릇하고 싶었으면 얘기를 하고 갔겠지. 말도 안 하고 갔는데 날 보더니 뭐라고 했는지 너도 들었잖아? 그깟 파인애플은 잊어버리라고. 해머가 왕이 될만한 사람이라면 난 파인애플이나 옮길 사람이야. 난 내 주제를 아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냥 갈 거야? 얼굴도 안 보고?"

"걔도 말 안 하고 그냥 가버렸잖아."

에디는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리고선 다시 몸을 돌려서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어린아이처럼 구는 에디의 철없는 모습을 보고서 에이브릴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에디의 모습이 흥겨운 듯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때 즈음 에이브릴의 일그러진 표정은 다시 누그러졌다. 자신과 에디에게 말도 없이 도시로 돌아왔을 때부터 이미 해머는 황금 왕좌에 마음을 뺏긴 것이 분명했다.

'지금 해머에게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걘 왕이잖아!'

하지만 에이브릴의 마음 한 구석에 또 다른 의심이 싹텄다. 자신에게 우주 저편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뻔하디 뻔한 멘트로 호감을 표시한 것도 해머였지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자 어떤 무지막지한 꼴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경기에 말도 없이 뛰어든 것도 해머였기에 그가 사실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생각. 그 생각은 에디가 화가 난 이유와 일견 맞닿아 있었으리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에이브릴은 단호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하늘 높이 뻗은 첨탑을 힐끗 보고서는 다시 몸을 돌려 에디가 걸어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해와 새로 떠오르고 있는 해 때문에 마른나무와 화물선의 그림자가 길게 뻗었다. 화물선 엔진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이온엔진에 연결된 콘솔을 조작하던 에디는 콘솔 모니터에서 이상 없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디는 다시 조종실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서 조종간을 잡았다. 계기판에서 번쩍이는 불빛과 눈금은 화물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다시 확인해 주고 있었다.

에디는 옆자리에 앉은 에이브릴을 바라보았다. 에이브릴도 고개를 돌려 에디와 시선을 맞추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에디가 조심스럽게 조종간을 당기자 화물선은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화물선은 아무 이상 없이 이름 모를 행성의 대기권을 통과해 우주로 나아갔다. 자동 항법 시스템이 잘못된 항로를 수정하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최적 항로를 계산해 그 결과를 계기판 모니터에 표시했다. 그제야 에디는 긴장을 풀고서 긴 한숨을 토해냈다. 에이브릴도 마찬가지인 듯 평안한 표정으로 에디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에디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제야 화물칸에 있던 파인애플이 생각난 것이었다.

'불시착했을 때 화물칸 냉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으면 어쩌지?'

에디는 화물칸으로 향하면서 화물선이 그 행성에 불시착했을 때 그것 먼저 확인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파인애플이 다 상했다면 에디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적지까지 갔다가 인수 거부 확인증을 받고서 연료를 보충한 뒤 본사로 돌아가 호된 질책을 받는 것뿐이었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해고되고 화물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색이 된 얼굴로 엔진실을 지나 화물칸 앞쪽까지 온 에디는 정신없이 화물칸 해치에 연결된 콘솔을 조작했다. 최근 72시간 동안의 온도 기록을 확인한 후 아무 이상이 없다는 보고 결과를 보고서야 에디의 얼굴빛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긴장이 풀린 에디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에디는 발치에 못 보던 것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낡은 넝마가 화물칸 앞에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뭔가가 있는 듯 규칙적으로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원래 여기 저런 게 있었나?'

에디는 조심스럽게 발을 뻗어서 넝마를 걷었다. 그러자 악취가 에디의 코를 찔렀다. 그 악취 너머에는 웬 노인네가 몸을 웅크리고선 쿨쿨 자고 있었다. 깜짝 놀란 에디는 후다닥 일어섰다. 그래도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쿨쿨 자고 있었다. 에디는 조심스럽게 콘솔 옆에 설치된 인터폰에 손을 뻗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브릴, 총 들고 여기 화물칸 앞으로 좀 와줘. 소리 내지 말고."

곧 에이브릴이 총을 두 손에 꽉 쥐고서 화물칸 앞으로 들이닥쳤다. 에디의 마지막 말은 듣지 못한 듯 큰 소리로 무슨 일이냐며 고함을 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고 있던 노인이 깨버렸다.

"쏘지 마! 꼼짝한다!"

에이브릴은 노인을 보고 총을 겨누면서 크게 외쳤다. 하지만 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에이브릴을 보며 말했다.

"꼼짝 마, 쏜다겠지? 허허... 자네가 더 놀란 것 같군."

그 말에 에이브릴은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수상한 노인네에게서 총구를 돌리진 않았다. 노인은 움푹 들어간 퀭한 눈으로 에디와 에이브릴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불쌍한 노인이니 해치지 말게."

에디는 노인에게 다가가 몸을 뒤졌다. 하지만 노인의 말대로 노인의 앙상한 몸에 걸쳐진 거적때기 같은 옷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에디는 노인을 화물칸 구석에 묶어놓고서 물어봤다.

"여긴 언제 들어왔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그러자 노인은 아직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에이브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젠 저 처자가 총을 내려놔도 될 텐데. 무거워서 계속 아래로 처지지 않나."

"묻는 말에 대답해!"

에이브릴은 총을 고쳐 잡고 소리쳤다. 그러자 노인은 그 소릴 못 들은 척 다른 소리를 해댔다.

"혹시 뭐 먹을 거 없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적이 오래라..."

그때 이 수상한 노인을 노려보던 에디의 얼굴에 당혹감과 놀라움이 섞인 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에디는 노인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노인에게 물어봤다.

"혹시... 왕 아닙니까?"

에디의 말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브릴도 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확인하고자 코를 잡고 가까이서 노인의 얼굴을 살폈고 노인의 말없는 긍정이 진실임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서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 황금 왕좌에 있던...? 해머 전에...?"

"에피메테우스 13세요. 내 본명은 진즉에 잊어버렸지. 이젠 자네들 친구가 에피메테우스 14세가 되었겠구먼. 몰래 여기 올라타서 미안하군. 하지만 나도 살아남으려면 방법이 없었다네."

노인의 차분한 어조에 에디와 에이브린도 침착을 되찾았다. 두 사람은 총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적대심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감정으로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노인은 먼저 물과 음식을 요구했고 에디는 조종실 라커에서 해머 몫의 물과 보존식을 가져다주었다. 노인은 보존식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아쉬운 대로 음식물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노인은 약 30년 전 에디, 에이브릴 그리고 해머처럼 그 행성에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노인은 해머처럼 건장하고 다부진 육체의 소유자였다. 노인이 타고 있던 우주선이 하필 도시를 오가던 상인단을 덮치는 바람에 노인은 병사들에게 잡혀 도시로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은 에피메테우스 12세, 즉 노인이 왕으로 추대되기 전 왕에게서 직접 받게 되었는데, 노인의 지금 모습과 마찬가지로 비쩍 마른 늙은 왕은 건장한 노인의 육체를 보고서 죄를 면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살인의 결과는 사형이었기에 노인은 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처지였다. 노인은 뭐든지 하겠다고 대답했고 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새로운 왕을 선출하기 위한 축제를 열었다. 노인은 본의 아니게 많은 경쟁자들과 위험한 육탄전을 감내해야 했고, 운 좋게 마지막 상대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노인은 승리 후에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원형 경기장이 하늘로 떠올라 선대 왕이 앉아 있던 황금 왕좌 앞까지 갔을 때 노인은 자신이 무죄로 석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누가 도시의 운명을 건장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외지인에게 맡긴단 말인가? 하지만 선대 왕 머리를 두르고 있던 황금 왕관이 둥실둥실 떠올라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졌을 때 노인은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

"그 왕관은 착용한 사람의 정신을 통제하는 강력한 장치였네. 왕관을 쓴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가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냐. 생각한 대로 내 몸이 움직이지 못할 뿐이지."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춘 뒤 큰 트림을 했다. 꽤 지독한 악취가 났을 것이 분명했지만 노인의 몸에서 나고 있던 악취에 익숙해진 에디와 에이브릴은 그다지 심하다고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반짝이며 해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음식을 더 요구했고 에디는 별 말없이 보존식을 더 가져다주었다.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왕관을 쓰면 누군가가 내게... 아니, 내 몸에 무슨 명령을 하게 되지. 쓰자마자 알게 되는 건 왕좌에 앉아야 한다는 간절함이었어.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왕좌에 앉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는지 말이야."

"그게 왜 중요한데요?"

에이브릴의 물음에 노인의 퀭한 얼굴에는 노기가 어리는 것 같아 보였다. 노인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야."

노인은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걸 처음 쓰면 내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거기 익숙해지면 거꾸로 내 몸을 잡아놓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네. 20년을 넘게 그 망할 것을 쓰고 있다 보니 그 사악한 것이 뭔지, 왜 내 몸을 쓰고 있는지 알게 되었네."

"그게 뭔데요?"

"거기 사는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건 지혜를 가진 컴퓨터라네. 그 컴퓨터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의자 속에 갇혀 있다네. 누가 그놈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지혜가 있다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음이 분명해. 그러니 일정한 힘으로 누르고 있어야만 작동하도록 의자 바닥 부분에 스위치를 만들어 놓았지."

노인의 말에 에디와 에이브릴의 두 눈이 둥그레졌다. 두 사람 모두 왕이 된 해머의 역할이 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거야. 건강한 육체일수록 오래 버티지. 자신이 컴퓨터라는 것을 숨기고 대단한 왕처럼 보이는 장점도 있고 말이야. 그놈은 오랜 시간 내게 최소한의 영양만 주면서 그 의자를 떠나지 못하게 했지. 물론 자네 친구가 왕이 되자 날 헌신짝처럼 버려버렸지만 말이야. 난 이제야 자유라네."

에디와 에이브릴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자신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는 안도감과 파인애플을 버리고 황금 왕좌를 선택한 그들의 친구가 맞이한 기이한 운명에 대한 공포가 뒤섞인 그 어떤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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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8 장편 꿈속의 숲 -1. 만남 ilo 2020.04.01 0
2467 단편 시아의 다정 양윤영 2020.03.29 4
2466 단편 조각을 찾아서 한조각 2020.03.27 0
2465 장편 내가 딛고 선 별 위에서는 : 1화 / 문제 떠맡기기. WATERS 2020.03.24 0
2464 단편 어느 화물선에서 일어난 일 이비스 2020.03.19 0
2463 단편 달의 바다 여현 2020.03.08 0
2462 단편 말실수 이비스 2020.03.03 0
단편 황금 왕좌 이비스 2020.02.26 0
2460 단편 신이여 나에게 죽음을 내려주소서 절망의호른 2020.02.11 0
2459 단편 살아있는 오이들의 밤 백곶감 2020.02.04 1
2458 단편 여우의 밤 밤의전령 2020.02.03 2
2457 단편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해수 2020.02.02 3
2456 단편 포획 진정현 2020.01.31 1
2455 단편 닿을 수 없는 홍청망청 2020.01.12 0
2454 중편 혼자서 고무보트를 타고 떠난다 해도 조성제 2020.01.03 5
2453 단편 당신은 나의 애정 캐릭터니까 두영 2019.12.31 4
2452 단편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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