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콰앙’

한가로운 풀밭에 총성이 울렸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나비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나비의 치켜뜬 눈을 감겨줄 생각도 못 했다. 고작 일곱 살의 나이였다. 다 컸네, 어른들이 그래도 한없이 어린 나이. 눈앞에 펼쳐진 새빨간 액체가 피 인줄도 모르는 나이였다. 나비의 몸이 축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온통 당혹스러운 상황의 연속. 갑자기 손 한 짝을 잘려버린 이의 마음이 이랬을까. 허망함에 아픈 줄도 모르는 그런 감정. 속절없이 사라진 나의 무언가를 놓지도, 잡지도 못했었다.

 

 

 

이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매일이 그랬다. 세상은 유독 나에게서만 뭔가를 자꾸만 앗아가려 했다. 애초에 결여된 상태로 태어났다.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 그럼에도 나는 태어났다. 불운처럼 나타나 제 부모를 갉아먹는 아이. 아버지는 진즉 떠났다. 젊고 예쁜 아가씨랑 도망쳐서 살림 차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내게는 상냥한 엄마가 있었기에. 뉴스를 틀면 부유한 이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의 건물이 어쩌고, 투기가 어쩌고. 재산이 몇 억이니 몇 조니 했다. 부럽지도 않았다. 그냥 다른 세상 사람들이려니 했다. 그래도 가끔은 부러웠다. 아주 가끔. 쌔빠지게 가난한 이 삶이 구질구질해서 눈물이 나올 때쯤. 예를 들면 겨울에. 날이 추워지면 학교엔 패션쇼장이 열렸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명품까진 아니어도 꽤나 값비싼 브랜드들의 패딩을 입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냥 마이 입었다. 춥지 않은 척. 어차피 누가 물어줄 것도 아니었지만 애써 내게 적당한 온도인 양 굴었다.

 

 

 

불법 밀렵꾼의 짓이었단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내 머리에 피가 마를 나이 쯤 됐을 때. 뭔갈 맞췄고 쓰러진 소리가 났으니 우쭐한 마음에 풀숲을 헤쳐 걸어왔을 거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난 어린 나를 보고 놀랐을 테지. 울지도 않고 입만 쩍 벌리고 앉아 나라 잃은 표정 짓고 있는 어린 애라니. 게다가 그 앞에는 새빨간 피 철철 흘리는 작은 고양이. 뒷일 책임지기 싫어하는, 나이 똥구멍으로 처먹은 밀렵꾼은 그길로 도망을 쳤을 거다. 묻어줄 생각도 못했다. 한없이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고작 일곱의 해밖에 살아보지 않은 아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죽음이란 개념도 알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일어서서 삽처럼 나비를 흙과 함께 퍼냈다. 왜 퍼냈다는 표현을 썼냐면, 혹여나 살에 내 손이 닿으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어 조심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아무튼 그 상태로 집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점점 딱딱해지는 촉감. 집 앞에 도착해서도 그 자세를 유지하고 섰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엄마가 나와서 내 손에서 나비를 데려갔던 것 까지가 내 기억의 전부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시작됐다. 아니, 그 다음날이었던가. 꿈에서 자꾸만 누군가 죽어나갔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잠에 들지 않겠다 떼썼다.

“동글아 왜 그래. 일찍 자야 키가 쑥쑥 크지.”

동글이는 엄마가 나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동글동글하게 살라고 붙여줬다고 들었다. 정작 나는 누구보다 각진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말이다.

“싫어. 안 잘래.”

끝까지 떼써서 엄마를 곤란하게 만든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사람이 어찌 안자고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지쳐 잠이 들곤 했었다. 하루는 내 손에 들린 총으로 엄마를 죽였고, 하루는 의자에 묶인 채 맞아 죽는 비누를 봐야만 했었다. 그 어릴 적 일을 어쩜 이리도 생생히 기억하냐며 갸웃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마디 뱉었다.

“부럽네요.”

어릴 적을 무난하고 탈 없이 지내온 이들의 특권이었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하고 소소하게 지내왔기에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불운하게도 어린 나이에 죽음을 목격했다.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그 시절엔 그게 오롯이 내 잘못이라 여겼다.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라 생각했다. 치료라도 받았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이런 사람으로 자라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도 조금은 든다. 아니, 애초에 그날 나비를 데리고 풀숲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큰일이다. 이 생각에 빠지면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찧는다.

“죽여 버릴 거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나는 소리친다. 동시에 중얼거린다. 가만 안 둬, 가만 안 둘 거야. 모든 생명들의 뿌리를 뽑아 없앨 거야. 저주를 퍼붓다 이내 거친 숨을 내쉬며 잠에 빠지듯 기절하고 만다. 자주 이런 꼴을 하고 있으니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걸핏하면 죽여 버리겠다 소리치고 자해하는 미친년. 그게 내 수식어이자 이름이었다.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냥 소름끼치는 애. 혹은 무서운 애 정도가 내 위치였다.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녔다. 친구라는 존재는 나비에서 끊겼으니 아쉬운 줄도 몰랐다. 선생조차 나를 없는 취급 할 줄은 몰랐지만. 그 때문에 조금은. 아주 조금은 상처가 됐다. 공부 같은 건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사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 동글이 학교는 재밌었어?”

엄마는 아직도 나를 동글이라 불렀다.

“응.”

단조롭게 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반에 큰 소란이 일었다. 뜬금없게도 내가 주인공이었다. 고삼 교실에 저런 정신병자가 있어서야 되겠느냔 학부모의 항의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복도에서 하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지금서 다시 생각해보면 참 무식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좀 상처로 다가왔다. 내 편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 나는 그렇게 무단조퇴를 했다. 집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난생 처음 피시방에 가봤다. 적은 돈으로 긴 시간을 때울 수 있어 좋았다. 게임은 해본 적이 없어 포털사이트에서 만화나 주구장창 봤다. 배가 꼬르륵 거렸지만 그저 손가락만 움직였다. 마우스 휠을 오르내리며 봤던 만화를 보고 또 봤다. 집에는 야자 끝날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저 자퇴할게요.”

이 한마디로 내 자퇴는 속전속결 이루어졌다. 담임이라는 작자도 참 웃겼다. 그렇게 쉽게 제자를 포기해버리다니. 언젠가 죽여 버릴 것이니 열 받지 말자 다짐했다. 그길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나 자퇴했어.’ 엄마에게 문자 한 마디 띡 보내놓고 핸드폰을 껐다. 미안함보단 귀찮음이 앞섰다. 그리고 그날 꿈엔 담임이 나왔다. 칼로 배를 찌르고 머리를 찌르고 눈알을 찔렀다. 흐르는 피가 검었다. 그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미묘하게 올라간 입 꼬리가 보였다. 다음날 느지막이 눈을 떴다. 동글아 밥 먹어, 말하는 엄마 덕분에 복작거려야 할 부엌이 조용했다. 그제야 꺼두었던 핸드폰이 생각났다. 띠리리링 우스운 벨소리와 함께 핸드폰 전원이 들어왔다.

‘너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냐.’

아버지 문자였다.

‘세상병원으로 당장 와라.’

이어진 문자에 순간 정신이 멍했다. 삐이- 귀에서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이혼하고 날 버리고 떠난 주제에 문자까지 보냈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거겠지.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병원이란 네 글자의 주인공이 우리 엄마가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유독 나에게 냉정했다. 냉정하다 못해 가혹했다. 유일한 내 희망인 엄마. 결국 세상은 내 엄마마저 앗아가 버렸다. 이건 명백했다. 세상은 내가 불행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진미미.”

아버지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듣지 않아도 들렸다. 분명 나를 책망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네 엄마 일을 내게 떠넘기느냔 투였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운 엄마는 사지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꼭 감은 눈은 열릴 기미가 안보였다.

“네 이름만 계속 불렀다.”

아버지가 말했다.

“가망이 없다는 구나.”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래도 한때 잠깐이라도 엄마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일말의 슬픔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잡을 손이 없었다.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하는 수 없이 붕대 위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 따스한 온기가 가득했던 손이었다. 아직도 따스함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가망이 없다니. 믿기지 않았다. 가망이 없다는 말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만 쓰이는 말이 아닌가. 현실을 부정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의 붕대 감긴 손을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평소 따스한 말 한 마디 해준 적 없었다. 그토록 따스한 엄마였는데. 후회가 뼈에 사무쳤다.

‘삐이-’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생명 유지 장치의 소음.

“의사, 의사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

병원 복도에 대고 소리쳤다.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왔다. 그 뒤의 기억은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울고불고 난리치는 내 모습. 흰색 천을 엄마의 머리 위까지 덮던 의사. 몸부림치는 나를 만류하던 아버지와 간호사.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앉아있었다. 너무 울어 온 몸에 힘이 없었다.

“미미야 어쩌니.”

“우리 미미 안쓰러워서 어쩐다니.”

엄마 직장 동료 아줌마들이 엉엉 울어댔다. 내가 보낸 문자 받고 얼빠진 채 울며 공장을 뛰쳐나갔다 했다. 그러다 졸음운전 중이던 큰 트럭에 치여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 나는 미친년이었다. 아주 죽어버리고 싶었다. 트럭에 치여 향 뒤에 누워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고 내가 되어야했는데. 이 미친년은 그것도 모르고 꿈에서 선생을 죽이고 쾌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름인 미미도 어쩌면 미친년 미친년의 줄임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앞에 붙어있는 ‘진’이란 성 덕분에 진정성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미친년, 또라이, 쳐 죽일 년이었다. 그런데도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나를 동정했다. 나 때문인데. 나 때문에 죽었는데. 결국 난 살인잔데. 내 인생은 왜 이따위로 생겨먹었을까 생각하며 울었다. 엉엉 우는 나를 보고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 거라 여겼을 거다. 얼추 구색도 갖춰졌겠지. 불운의 사고를 당한 엄마를 위해 엉엉 우는 하나뿐인 딸. 3일 동안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드문드문 왔다 갔다. 엄마나 나나 원체 발이 넓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내 삶은 발이 넓다는 수식어에 비빌 수준도 되지 못했다. 좁디좁은 인간관계. 아버지는 그래도 마지막 양심이었는지 3일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다. 나를 버리고 가서 행복하냐 물을 뻔 했다. 하지 않았다. 긍정의 대답으로 내 인생을 한 층 더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냥 하얀 리본 머리에 꽂고 주저앉아 하릴없이 울기만 했다. 이런 젠장 내 인생 왜 이래. 다 죽여 버릴 거야.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엄마의 시신은 화장을 했다. 납골당 맨 밑에 안치했다. 누구는 순서 기다려서 가운데 목 좋은 자리를 선택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텅 빈 집은 팔아버리고 아빠네 누나 집에 얹혀살게 됐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내 고모인 셈 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모라고 불렀냐고? 엿이나 까 잡숴. 안 불렀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 때문이었던가. 존댓말은 썼다.

“저기요. 저 집 나가요.”

“어디 가게?”

“친구네요.”

거짓말이었다. 고모도 알았을 거다. 엄마 장례식 내내 내 또래의 사람은 친척들 빼곤 없었으니까.

“그래.”

그럼에도 흔쾌히 나를 내어놨다. 내 나이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당최 어른들이란 호기심이 없었다. 담임도 그렇고, 아버지도도 그렇고, 고모도 그랬다. 그에 반해 어린 애들은 호기심이 많았지. 고모네 집에 살던, 그러니까 내 사촌오빠 쯤 되는 인간이 그랬다. 어찌나 나에 대해 호기심이 많던지.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것저것 캐물었다.

“미미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많이 컸네. 예뻐졌다.”

하나같이 기분 나빠지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제일 궁금해 하던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 하반신이었다. 아 상반신도 포함. 그러니까 내가 그 집에 들어가고 한 달쯤 뒤였나? 그 인간이 한밤중 내 방에 몰래 들어왔다. 살금살금 어두운 방 공기를 가로질러 내 옆에 누웠다. 침대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바닥. 물론 그 집 식구들은 다 침대에서 잤다. 아무튼 그 인간은 더럽고 냄새나는 머리통을 내 옆에 뉘이고 슬금슬금 손을 갖다 댔다. 마음 같아서는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일단은 참았다. 그 인간은 결국 내 옷을 벗기려 들었다. 순간 이마를 확 들어서 그 인간 대갈통을 후려쳤다.

“악”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뒤로 내 기억이 없었다. 입에 축축한 뭔가 닿는 기분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온통 쑤셨다. 그리고 특히 하체가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다.

“씨발.”

당했다. 그 개 같은 자식이 기어이 그 잘난 호기심을 충족해버린 것이었다. 왜 남자라는 동물은 그렇게 자기 아랫도리의 호기심을 그렇게 못 견뎌할까. 하찮은 존재. 극도로 화가 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분노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도 후졌다. 다시 말해서, 눈물 대신 이를 갈았다는 뜻이다.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저기요. 저 집 나가요.”

“어디 가게?”

“친구네요.”

“그래.”

“그러니 돈 주세요.”

고모의 눈이 훼까닥 돌았다.

“돈? 무슨 돈.”

“우리 집 팔아넘긴 돈이랑 보험금이요. 고모가 가지고 있잖아요.”

“이년아. 너 내가 키워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냐?”

잠잠하던 고모는 돈 얘기를 하자 본색을 보였다. 고작 한 달 집에 들여놔 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얼른 주세요.”

“못 줘. 아니 안 줘.”

고모는 빽 소리를 질렀다. 고모도 언젠간 죽여 버릴 것이었다. 잠시 후 오만 원짜리 지폐 너덧 장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이거나 먹고 꺼지라는 의미일 것이었다. 별 수 없이 주워서 고모의 집을 나섰다.

“퉤”

집 앞에 침을 뱉었다. 고작 이십 만원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물론 있긴 했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야옹”

눈앞에 길고양이가 자기 발을 핥고 있었다. 나비 생각이 났다. 동시에 탕 총소리 귀에 들렸다. 머리가 아팠다.

“아악”

비명을 지르자 고양이는 날쌔게 도망쳤다. 불현 듯 화가 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저 귀찮다 생각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비틀대고 있으니 몇몇 남자가 붙었다.

“괜찮으세요?”

표정을 보아하니 개수작이었다.

“놔 이 새끼야.”

흐릿한 걸음에 반해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남자는 돌연 표정이 변하더니 쌍욕을 뱉고 자리를 떴다. 무시하고 걸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읊조리며 한없이 걸었다. 그러다 눈물이 났다.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화가 났다가 또 갑자기 우울해졌다. 내 인생은 망했다. 엄마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 하나쯤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울어주는 이 하나쯤은 있을까 생각하다 관뒀다.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뒤지고 나면 고모한테 연락 가겠지. 그러면 고모는 헐레벌떡 뛰어와서 안 그런 척 가증스런 표정 짓고 내 주머니나 뒤질 것이다. 지가 줬던 돈이 아직도 들어있나 싶어서. 씨발 그래서 홧김에 길 건너에 있던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탔다. 옥상은 23층. 적당한 높이였다.

“어이, 아가씨.”

“어머, 아가씨 뭐해요?”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녀가 소리쳤다. 뭘 보냐는 눈길로 한 번 스윽 쳐다봤다. 그리고 날았다. 바닥을 향해.

‘쿵’

‘삐뽀삐뽀’

몸이 부서졌다. 욕 나오게 아팠다. 근데 뭐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이내 정신 잃었다. 천국 따윈 안 가도 돼요. 그냥 나 좀 내버려둬.

 

 

 

엄마를 만났다.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주변은 구름과 무지개로 가득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

엄마는 잔잔한 미소를 보여줬다.

“엄마, 엄마 어디 가?”

엄마는 미소를 유지한 채 자꾸만 멀어져갔다.

“엄마, 엄마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다고.”

눈물이 났다. 끝은 엉엉 오열했다.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흑흑. 엄마.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엄마. 미안해요. 동동이. 내 별명 다시 한 번만 불러줘.”

 

 

 

“저기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정신이 드세요?”

발랄한 상대의 목소리. 쓸데없이 상냥하고 지랄이네. 생각한 뒤 ‘대갈통이 깨질 것 같다. 네 눈엔 내가 괜찮아 보이느냐.’ 라고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에, 켁, 켁”

그러니까 우스꽝스럽게 켁켁대는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마세요. 아직 무리하시면 안 된대요.”

목소리가 자꾸 들렸고, 일으키려던 몸은 자동으로 쿵 눕혀졌다. 사실 5센티 정도 일어났던 것 같다.

“깨어나셔서 너무 다행이에요. 저 걱정 정말 많이 했거든요. 많이 힘드셨죠? 그리고 지금은 많이 아프실 거구요. 아 근데 대답은 하지 마세요. 말씀 안 하시는 게 좋다고 했거든요. 의사 선생님께서요.”

어떤 여자가 자꾸만 귀에서 쨍알댔다. 묻고 싶었다. 저 뒤졌나요? 근데 이놈의 목은 쇠를 갈아 쳐 마셨는지 도통 소리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충 눈치껏 생각해보자면 죽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천국에 갈리는 없고. 지옥에 병원이 있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너무 다행이에요. 제 차에 뛰어내리셔서요. 물론 제 차가 찌그러지긴 했는데 괜찮아요. 저 돈 많거든요.”

여자가 헤헤 웃으며 묻지도 않은 정보를 늘어놨다. 일단 목소리가 나오면 내 소개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미친년인데 좀 닥쳐줄래?’ 일단 생각만 했다.

 

 

 

“미미야 일어났어? 밥 먹자.”

그러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나는 어쩌다보니 그 돈 많은 여자애랑 같이 살게 됐다. 물론 일방적인 얹혀살기였지만 말이다. 이 착하디착한 중생은 내가 민망해하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해댔었다.

“내가 혼자 살거든.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살려면 좀 외로워서. 헤헤. 나랑 같이 지내줄 수 있지?”

“흠. 글쎄.”

우습지만 조금 튕겼다. 어차피 갈 곳도 없으면서.

“아이 그러지 말고오. 나랑 같이 지내자.”

그렇게 이 친구의 구슬림에 넘어간 척 하며 함께 지내는 중이란 얘기다. 이 친구의 이름은 나나. 윤나나랬다. 처음에 듣고 풉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내 이름이 미미였다. 내 이름을 듣고 나나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세상에. 나나 앤 미미 크로스네요?”

그러면서 자기 오른손을 사선으로 들었다. 바라는 게 있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생각했다.

‘뭐. 어쩌라고.’

 

 

 

물론 미친년으로 소문난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유하게 나오진 않았었다. 더구나 인간관계라면 젬병인 인간이 아니었는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꺼져.’ ‘닥쳐.’ ‘뒤질래?’ ‘죽여 버릴 거야.’ 같은 말 뿐인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저 나나라는 여자는 자꾸 말을 걸었다. 그것도 아주 상냥하게.

“저기요 배 안 고프세요? 뭐 좋아하세요? 제가 사다드릴게요. 병원 밥 맛 없죠.”

“아니. 좀 닥쳐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로 사회성 결여자였다. 그런데 나도 별 수 없었다. 친절까지는 아니어도 대화의 티키타카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장장 19년간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성명 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마음과 다른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유의 문장을 어떤 단어들로 구성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분노와 배신감이 아닌 부끄러움. 내 얼굴에서 홧홧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머 얼굴이 빨개요. 어디 안 좋으세요? 열이라도.”

여자는 내 이마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걸 보자 순간 울컥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내게 해주던 행동이었다. 눈시울이 아려왔다. 천장을 쳐다봤다. 그런데도 눈물이 뚫고 나오려고 했다. 천장이 뚫릴 기세로 쳐다봤다.

‘또륵’

결국엔 나와 버린 눈물이 기폭제라도 된 양 나는 대놓고 엉엉 울었다. 여자는 놀라지도 않고 나를 포옥 안아줬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여자가 입은 고급 원단의 옷은 축축이 젖어들었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 괜찮아 질 거예요.”

여자가 내 등을 토닥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토닥여주니 눈물이 더 나왔다. 거의 한 시간 쯤 운 것 같았다. 거의 10년간 울지 않았던 내 눈물이 이 날 다 나왔던 것도 같았다. 울음이 멎자 또다시 창피한 기분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괜찮아.”

따스한 여자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녹였다. 처음 느끼는 감정. 문득 내 얘기를 해주고 싶다 느꼈다.

“저는요. 미미에요. 안미미.”

“어머 정말요? 세상에. 나나 앤 미미 크로스네요?”

“네?”

“저는 나나거든요. 윤나나.”

여자의 이름도 나만큼이나 유치하고 우스웠다. 그런데 왜인지 정감이 갔다. 그래서였을까. 내 얘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있잖아요. 저는 정신병자에요.”

“아니에요.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정신이 아픈 게 왜요. 뭐 어때서요. 그것도 감기 같은 거예요. 치료하면 나아지는 그런.”

여자의 말은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아까 눈물을 다 쏟았기에 더 나올 눈물은 없었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19년 동안. 혼자였어요 늘.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마저 돌아가셨거든요. 저 때문에요. 그러니까 제가 정신병자여서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두서없이 말했다. 그래도 내 최선이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길게 대화 해 본 적이 있어야지. 자책했다. 하지만 여자는 탓하거나 하물며 인상 한 톨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네 그랬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아요. 미미씨. 우리 말 놓을래요? 사실 나도 19살이거든. 어때 미미야?”

여자가 제안했다. 사실 좀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답 않고 묵묵히 있었더니.

“알겠다는 거지? 그래 좋아 미미야.”

같은 말을 하며 자기 멋대로 단정지어버렸다. 사실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기에 나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나야.

 

 

 

나나는 내가 만나온 족속들과 태생부터가 다른 인간이었다. 순수한 첫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더 더럽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맞다. 나는 미미. 미친년 미친년이다.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나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다. 친구가 있어봤어야 알지. 모든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나는 아니었다. 내가 삐걱대면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곧 알게 됐다. 얘도 친구가 없었던 거다. 나와는 다소 다른 이유로.

“너 뭐 필요한 거 있어? 다 말해줘. 사줄게.”

나나는 돈이 많았다. 그것도 정말 무지 많이. 큰 집에 저 혼자 살았다. 외로웠었나보다. 학교는 안 다녔다고 했다. 그냥 집에서 개인교습을 받았다고 들었다. 친구가 있긴 했지만 다들 자기 돈을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나 뭐라나. 그렇게 나나와 같이 지내다보니 나도 점차 마음이 풀렸다.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비유를 해야 할까. 나나를 내 마음대로 다루는 일이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쉽게 느껴졌다. 나나네 집에 들어가고 한 달쯤 됐을까? 나나가 좋아한다는 몇 십 년 산 와인을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난 사실 꿈이 있어.”

내가 말했다.

“어머 세상에. 미미야 뭔데? 말해줘 너무 궁금해.”

나나는 호들갑 떨며 궁금해 했다.

“있잖아.”

“응.”

“근데 네가 좀 놀랄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영악하게 말꼬리를 늘였다. 과거의 나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그런 말투.

“괜찮아. 괜찮아. 꿈인데 뭐 어때.”

“진짜 괜찮겠어? 듣고 놀라면 안 돼.”

“알겠어. 걱정 마.”

나나는 푸스스 웃었다.

“내 꿈은 말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여 버리는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여기까지 말하자 나나가 무어라 답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선수를 쳤다.

“장난 같지? 근데 아니야. 진짜 진지한 꿈이야. 소원이기도 하고.”

쉴 새 없이 말을 뱉었다. 그러자 나나는 말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커지려는 순간을 목격했으나 이내 다시 작아졌다.

“그,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미미는 어려서부터 많이 힘들게 살았잖아.”

어쭙잖게 이해하는 척 하는 나나가 우스웠다. 놀라지 말아달라던 나를 배려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내 가학심을 더 자극했다.

“나나야. 내 과거 얘기 해줄까?”

“응. 해줘. 들을래.”

나는 나나에게 내 과거 얘기를 맛보기만 들려줬다. 어려서 나비를 잃은 얘기, 그래서 나를 탓하며 살다 결국 나를 잃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할 때는 눈물까지 내비쳤다. 어깨를 토닥이는 나나의 손길이 느껴졌다.

“근데 학교에 어떤 애 부모가 와서는 그러는 거야.”

“뭐라고?”

“고삼 교실에 정신병자가 있는 게 말이 되냐면서. 온갖 욕을 하더라고.”

“뭐? 아 그 때 말했던 그.”

나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을 떡 벌리고 있으니 귀여운 앞 이빨 두 개가 보였다. 동공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자퇴했어.”

“와 그런 나쁜 사람이 다 있냐. 와.”

나나는 최대의 욕이 ‘나쁜 사람이다.’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지금 나나는 굉장히 분노한 상태라는 뜻.

“그 날 엄마가 돌아가셨고. 나 때문이야. 내가 자퇴만 안 했어도.”

흑흑 울며 나나의 어깨에 얼굴을 대었다. 나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미미야.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절대.”

단호히 말하는 나나를 보며 나는 확실히 느꼈다. 이 착한 나나는 나를 절대 버리지 못하겠구나. 더 나아가서 이 친구가 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나나야. 너는 왜 혼자 살아?”

“부모님이 외국에서 일하시거든. 근데 나는 한국이 좋아서.”

부모는 외국에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사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당장 내 계획을 방해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준비를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이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내 장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띵동’

택배 기사가 방문했다. 나나가 주문해 준 내 물건들이 한가득 이었다.

“아이고 뭘 그렇게 많이 사셨대.”

택배 기사가 헥헥대며 말 걸기에 문을 쾅 닫아버렸다. 재수 없게. 참견하고 있어.

“나나야. 배송 왔어. 고마워.”

예의상 나나에게 전화해 고마움을 표했다. 나나는 낮에 샵에 가서 온갖 관리를 받았다. 나에게 같이 가자며 끈질기게 제안했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다른 것들도 많이 도와주는데 그런 것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어.”

킥킥. 가증스러운 변명이었다. 그러면 나나는 감동받은 눈망울을 보였다.

“아니야. 진짜 괜찮은데. 미미야 그러면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꼭 말해줘야 해? 알겠지?”

“알겠어. 약속.”

그렇게 해서 낮은 나만의 자유시간이 되었다. 나나는 내 명의로 카드도 만들어 건네줬다. 진짜 돈이 넘쳐흐르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파서 피자를 주문해 놓았다. 기다리는 사이에 배송 온 노트북이나 구경해야지. 굴지의 대기업 NH 제품이었다.

“와 너무 좋다.”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모니터 비닐을 떼고 무선 마우스를 딸각거렸다.

‘띵동’

“피자 배달이요.”

피자가 도착해서 먹으며 포털사이트를 구경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난생 처음 피시방에 가보았던 날.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때도 포털사이트 검색을 했었는데. 사람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구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상황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단연 ‘노’다. 그때는 이런 삶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하루는 나나가 제 친구라며 어떤 남자애를 데려왔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 정리가 잘 돼있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명치가 걸린 느낌이 드는지 나도 몰랐다.

“안녕. 미미라며? 나나한테 얘기 들었어.”

남자애가 말했다. 뭘 들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추악한 과거를 얘기했을 리는 없었다. 나의 순수하고 착한 나나가 그럴 리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나 이외의 또래 사람을 처음 만나봤다는 것이었다. 나나를 대하는 것에만 익숙해진 내가 다른 사람, 그것도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비호야. 한비호.”

남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손 못 본 체했다. 때마침 나나가 음료를 들고 거실로 왔다.

“둘이 얘기하고 있었어? 미미야 얘는 내 친구 비호야.”

“응 방금 통성명 했어. 근데 친구가 수줍음이 많은가보다.”

비호가 답했다. 둘이서 나를 빼고 내 얘기를 했다. 나의 어색함을 느꼈는지 나나는 쉴 새 없이 대화를 이끌었다.

“부모님은 잘 지내셔?”

“응 그렇지 뭐.”

“너희 부모님은 잘 지내시지?”

“그럴 거야. 통화 할 때면 항상 뭘 보셨다, 뭘 드셨다 얘기 하며 즐거워하시니까.”

“다행이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나빴다. 내가 모르는 나나의 얘기. 하지만 무어라 말을 얹을 기술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발을 보고 앉아있었다.

“아 맞다, 미미야 어제 잠 잘 못 잤다며? 피곤하겠다. 들어가서 좀 쉴래?”

나나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착한 나나는 내가 멋쩍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아니야. 괜찮아.”

안 괜찮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내가 사라지면 저 둘이 뭘 할지 궁금해 하고 싶지 않았다. 나나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래? 다행이다.”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면서 셋 모두를 어색하게 만들며 버텼다.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는지 비호는 한 시간도 채 있지 않고 집을 나섰다.

“아 맞다, 나 이따가 약속이 있어서. 슬슬 일어나봐야겠다.”

“그래. 가 봐.”

“나나야, 미미야. 그럼 나 갈게. 나중에 또 보자.”

인사하고 비호는 집을 나섰다. ‘쿵’ 집 문이 닫혔다. 나나와 나 둘만이 남은 거실. 어색함이 감돌았다.

“미미야. 많이 불편했지? 미안해. 내 멋대로 데려와서.”

착한 나나는 자기 집인데도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내 방에 들어갔다. 나나가 나에게 미안해하기를 바라면서.

“미미야. 미미야. 화 많이 났어?”

역시나 나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내가 화났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화가 났지? 단지 내가 모르는 사람을 데려와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나 피곤해서. 좀 쉴게.”

문 너머에 있는 나나에게 말을 전했다.

“그래? 알겠어. 푹 쉬어 미미야.”

시무룩한 나나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나나가 신은 털 슬리퍼가 슥슥 멀어지는 소리 들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왜 이러지. 무슨 상관이라고. 근데 내 동의 없이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인 건 좀 너무했어. 이렇게 합리화를 했다.

 

 

 

다음날은 느지막이 일어났다. 원래라면 샵에 가 있어야 할 나나가 집에 있었다.

“미미야 일어났어? 배고프지. 뭐 좀 먹을래?”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는 똥강아지 모양새. 아무래도 어제의 앙금이 남아있다 여겼나보다. 왠지 마음 깊은 곳에서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유쾌해졌다. 그래도 나의 기쁨을 완전히 표출해선 안 됐다.

“음. 괜찮아. 그나저나 너 왜 아직 집에 있어?”

“오늘은 예약을 좀 늦게 잡아놔서.”

“그렇구나.”

“배 안 고파? 너 좋아하는 피자 시킬까?”

“아니, 아니야.”

단호히 답하자 나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대신.”

“대신?”

“부탁이 있어.”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전부터 계획해 온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건 그 첫 단계였다.

“부탁? 뭔데? 말만 해.”

나나는 내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기뻐했다.

“전에 내가 말했던 내 꿈이랑 관련 있는 건데.”

“응.”

“사람 좀 구해줄 수 있어?”

“사람?”

“응. 좀 덩치 크고 힘 센 남자로.”

내 말을 들은 나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힘 센 남자는 왜?”

“안 들어줄 거야?”

나는 대답 대신 반문했다.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지금 당장 구해볼게. 걱정 마.”

역시 나나는 반문에 약했다.

“너. 그 위험한 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위험한 일? 흠 글쎄. 나는 안 위험하지. 그냥 나쁜 사람들을 벌주려는 거야. 그 때 말 했잖아. 기억 안 나?”

“아냐, 아냐. 기억나지 그럼.”

나나가 허둥지둥 답했다.

“근데... 그 사람들 죽이려고?”

“응.”

“아. 정말?”

“응. 왜? 안 돼?”

“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된다고 해줘.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잖아. 나 너무 힘들었어.”

울먹이며 말했다. 나나는 그런 나를 보고 당황했다. 어깨를 쓸어주며 그렇지, 우리 미미 힘들었지, 그랬다.

 

 

 

‘미미야 이 사람 어때?’

다음날 나나는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앳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애 얼굴이었다.

‘정확히 뭘 하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한 대. 뭐든. 믿을 만한 사람이 소개해줬어.’

이어서 보낸 문장을 보고 어제 내 부탁의 결과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네.’

‘어디서 만날래?’

‘집으로 보내줘.’

‘괜찮겠어?’

괜찮겠어? 이 말에 담긴 의미. 아마 한비호를 대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고 보낸 메시지였을 거다.

‘괜찮아.’

‘알겠어.’

그래도 내 숙원을 이룰 장대한 계획을 망칠 수는 없었다. 고통스레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짜릿했기에 더욱 과감해지기도 했다.

“흐흥.”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역시 돈이면 다 되는구나. 나나한테 사람 좀 구해 달라 부탁했던 게 바로 어제 일이었는데. 하루 만에 구하다니.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회귀 살인」이라는 제목의 소설책이었다. 제목 그대로 회귀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줄거리의 책이었다. 내용이 재미있어 읽기 시작했지만, 어찌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일종의 예행연습이랄까.

‘띵동’

책을 읽는 사이에 초인종이 울렸다. 분명 그 남자일 것이다.

 

 

문을 열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다. 더구나 인상이 험악한 남자였기에 한비호보다 대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사진이랑 느낌이 좀 다른데.

“들어간다?”

어라. 반말이었다. 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는 나를 가로질러 집 안 거실로 직행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짜릿한 기분이었던 아까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한 마디로. 어색했다. 극도의 어색함. 발가락으로 바닥만 쿡쿡 쑤셨다. 남자는 소파에 앉았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불러놓고.”

남자가 운을 뗐다. 내가 고개를 들었다.

“말이 없네.”

남자가 구성하는 문장들은 짧았다.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렇게 뜸을?”

묻는 남자에게 대뜸 사람을 죽여줘, 말하기 어려웠다.

“누굴 패줘? 아니면 죽여?”

“아니. 저기.”

드디어 내 목청이 울렸다. 금세 말이 멈췄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기분.

“아이씨. 너 이름이 뭐야.”

“진미미.”

“뭐? 미미? 이름이 미미라고?”

남자가 푸하하 웃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나야.”

내가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너한테 돈 줄 사람 이름말이야.”

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구린 멘트였다.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

의외로 남자의 반응은 담백했다. 그리고 웃지 않았다. 뭐 돈 줄 사람이라 예의라도 차리는 건지. 웃기지도 않네.

“P라고 불러.”

“응?”

“내 이름. P라고. 뭐 의미는 알아서 생각하고 귀찮게 이것저것 묻지 마라.”

내 이름을 듣고 웃었으면서. 그러는 본인의 호칭도 가관이었다. 피가 뭐야 피가. 사람 죽여서 피 낸다고 피야 뭐야.

“알겠어.”

물론 겉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래도 아까 남자의 폭소 때문인지 분위기가 한결 느슨해졌다. 이제는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한비호보다 오히려 더 대하기 쉬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P는 필요 없는 말은 안 해서 좋았다. 얘도 사회성이 많이 결여됐구나. 그런데 뭐 이쪽 일 하는 데 사회성 같은 건 필요 없을 테니 아무렴 어때.

“죽여줘.”

본론부터 말하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

“누구를. 어떻게. 아예 죽여? 아니면 반만?”

역시 P도 그편을 선호하는 눈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고심했다. 물론 결론은 진작 생각해왔었다. 모조리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씩 죽이는 것도 괜찮겠는데? 뭐 결론은 다 죽어버리는 것이겠지만.

“다.”

결국 생각해낸 대답은 한 글자였다. 제아무리 범상치 않아도 이런 대답은 예상 못했겠지.

“음.”

P가 뜸을 들였다. 역시나.

“그러면 좀 많이 비쌀 텐데. 괜찮아?”

아니었다. 아. 어쩌면 좋아. 그의 대답을 듣고 살짝 기분이 이상해졌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발끝이 오므라들고. 얼굴이 덥혀졌다.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 같기도.

“어. 음. 괜찮아.”

“돈이 많구나. 좋아. 언제부터.”

“다음 주.”

첫 타자는 아버지였다. 다음 주에는 아버지와 새 아내의 결혼기념일이라 들었다. 누굴 직접 죽여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날짜는 왠지 기념일에 맞춰야 할 것 같은 기분. 물론 나는 생일 따위 신경써본 적 없지만 말이다. 뭐 아무렴 어때.

“오케이. 자세한 얘기는 내일 모레. 오늘은 일이 있어서.”

P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집을 나섰다. 내 대답은 듣지 않았다. 도도하네. 아까의 이상한 기분이 또다시 들었다. 아 왜 이러지. 낯선 감정.

 

 

 

“미미야 어땠어?”

한껏 고조된 나나의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들려왔다. 자기가 보낸 남자가 괜찮았느냐 묻는 것일 게 분명했다.

“괜찮았지. 나나가 찾아줬잖아.”

“다행이다. 근데 있잖아.”

“응?”

“물어봐도 돼? 네 계획?”

“음.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앗, 음, 응. 알겠어, 하고 나나가 답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구태여 말을 붙여 내 화를 돋우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

“근데 어떻게 이렇게 바로 찾았어?”

내가 물었다.

“그냥. 돈이면 다 되잖아.”

나나가 엄지와 검지로 동전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그래. 돈이면 다 되지. 항상 돈과 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돈이고, 돈이 나였다. 이런 날이 오다니.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P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됐다.

“오늘인가?”

나나가 물었다.

“응. 어떻게 알았어?”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나나가 말꼬리를 늘이며 음을 붙여 말했다. 괜히 심란해지는 마음.

“너 이제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예약 시간 늦겠다.”

서둘러 나나를 내보냈다.

“알겠어. 나 그럼 이제 가볼게. 이따 봐 미미야.”

나나가 나가고 적막이 찾아왔다. P를 기다리는 시간. 왠지 긴장이 됐다. 내가 왜 이러지.

‘띵동’

고민하는 사이 P가 도착했다. 역시 겉치레식 인사말은 없었다.

“그래서?”

“진경호. 49세.”

“오케이. 죽여?”

“응. 아, 근데 같이 가.”

“왜?”

P의 미간이 구겨졌다.

“할 말이 있어.”

“전해줄게.”

“아냐. 꼭 가야 해. 앞으로의 모든 일에 나를 데려가야 할 거야.”

내 말을 듣고 P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왜?”

“좋거든.”

“뭐?”

“그 순간이.”

“미친.”

아 맞다. P는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몰랐겠구나.

“맞아. 내 이름도 미친년 미친년이잖아.”

“아. 세상에.”

P가 자기 이마를 탁 소리 나게 때렸다. 고개를 탈탈 털었다. 내 과거를 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알아둬.”

“골치 아프게 생겼네.”

“뭐?”

“그럼 다음 주 수요일 저녁 7시. 데리러 올게.”

P는 자잘한 사항들은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나는 그게 편했기에 말을 얹지는 않았다.

“그래.”

내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종료됐고 P가 집 안에서 나갔다.

 

 

그 날이 됐다. 지난주에 약속한 아버지를 죽이는 날. 7시에 맞춰 아파트 현관 앞에 나가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가 눈앞에 섰다.

“타.”

P가 뒷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젠장. 오토바이를 가져올 줄이야. 나는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다. 겁이 났다. 그래도 일을 망칠 수는 없으니 탔다. 사실 삶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근데 좀 아쉽긴 했다. 이제야 삶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인생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의 안락한 집에 도착했다.

“누구야?”

P가 물었다.

“아버지.”

“할 말은?”

P가 물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겠다는 내 의중을 알아챘는지 P는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단독주택이었다. 잘 해놓고 사네. 부러움 보다는 분노가 느껴졌다. 내 인생은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네. 누가 낳아 달래? 그냥 안 낳고 좆 관리 잘 했으면 이렇게 제 딸에게 죽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 이런 씨발. 당신의 종말을 당신 스스로 앞당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디 나를 원망하지 마시길. 사실 원망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냥 내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만 주세요. 제발.

“들어가?”

P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P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갔다. 뭐야. 미리 알아둔 거야? ‘잘 한대. 뭐든.’ 나나가 P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들어간 집 안에 불이 꺼져있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 가만. 불빛이라고?

“짜잔. 자기야. 결혼기념일 축.”

아버지 아내의 말은 차마 끝나지 못했다. P가 여자의 입을 막았다. 칼을 목에 갖다 대었다.

“쉿”

여자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40대 초중반 쯤 된 얼굴.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실 저 여자는 잘못이 없는데. 있다면 내 아버지와 결혼을 한 죄 정도? 저 여자에겐 미안했지만. 이 집에서 오늘 살아나갈 사람은 P와 나. 단 둘 뿐이었다.

‘띠리릭’

이윽고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났다. P는 어느새 여자의 팔과 다리를 밧줄로 묶고 입은 청테이프를 붙였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났다.

“다, 당신들 뭐야?”

아버지가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여보. 여보 무슨 일이야.”

그 와중에 자기 아내를 챙기겠다고 무릎을 이용해 이쪽까지 기어왔다. 그 꼴이 우스웠다.

“진미미?”

아버지가 내 얼굴을 알아봤다. 내가 P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P가 아버지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목을 졸랐다.

“켁켁”

“닥쳐.”

P의 말에도 아버지는 몸부림쳤다.

“닥쳐. 가만히 있어.”

아버지는 여전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여자는 죽어.”

P가 아버지의 아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몸부림을 멈췄다. 배신감. 제 자식은 이렇게 처참히 내버려두고 자기의 새 아내는 살리고 싶어 하는 그 알량한 마음이라니. 이윽고 P가 나를 돌아봤다. 할 말이 있으면 지금 다 하라는 눈치였다.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얼른 뭐라도 말을 꺼내야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뱉은 말은.

“아버지.”

내 목소리가 속절없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 진심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전하는 자리였다. 비록 피 튀기는 살육의 현장이었지만. 그건 내 진심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연달아 불렀다. 아버지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아버지. 행복하세요?”

침묵 끝에 내가 물었다.

“행복하시냐고요. 네? 무책임하게 자식새끼 낳아놓고 나 몰라라 도망가서는. 엄마가 죽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요.”

말하던 와중에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죽었어요. 떨어졌거든요. 아니 날았지. 날았어. 바닥으로. 킥킥. 미친년 정신병자 살인자. 존나게 힘들게 살았거든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왜 죽어야 되나 싶더라고.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닌데. 예? 당신이잖아.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왜 나를 낳았어. 왜 나를 버렸어. 왜. 왜. 왜!!!”

마지막엔 결국 절규에 가까운 말을 토해냈다. 내가 내가 아닌 기분이었다. 그냥 모든 걸 쏟아놓은 기분.

“미미야. 미미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갑자기 미미랬다. 성 떼고 다정한 척 불렀다. 역겨웠다.

“아버지. 당신은요. 정말 역겨워요.”

짐짓 토하는 시늉을 했다.

“가증스럽고. 죽여 버리고 싶어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요? 네? 모르죠? 다 죽여 버리겠다고. 나를 이렇게 만든 인간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왔어요. 사실 불가능할 줄 알았지. 근데 되더라고. 갑자기. 바닥을 향해 날았더니. 몸이 부서지도록 날았더니. 이런 날이 오더라고.”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났다.

“미미야. 잠시만.”

아버지가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P가 들고 있던 칼에 의해 저지당했다. 아버지의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한텐 미안하지만.”

말하고 P에게 고갯짓했다. 푸욱, P의 칼이 아버지의 배를 쑤셨다. 쿨럭, 피를 토했다. 눈의 실핏줄이 터져 빨갰다. 관자놀이 쪽의 핏줄이 바짝 서서 절박한 인상을 줬다.

“너, 너.”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나를 불렀다. 저쪽에선 아줌마가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기 남편이 칼에 찔리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으니 제정신은 아닐 것이다.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청 테이프로 막힌 입 때문에 소리는 지르지 못했다. 조금 처량해보였다. 근데 뭐 어때. 저 아줌마는 나보다 두 배는 행복했을 걸? 아니, 세 배? 네 배? 아마 엄마보다는 열 배 쯤 더 행복했을 거야. 생각하는 사이에도 P는 아버지를 연달아 찔렀다. 주변에 아버지의 피가 흥건했다. P가 일어서고 아버지의 몸은 속절없이 나뒹굴었다. 내장과 피가 이리저리 튀어있었다. P는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하지만 손에 묻은 피 때문에 더욱 번져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됐다. 다음 타자는 아버지의 아내. 그녀는 피범벅이 된 P의 얼굴을 보고 온 몸을 엉망진창으로 떨었다. 그 뒤의 장면은 보지 않았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는 취미는 없었다.

‘푸욱’

역시나 살을 찌르는 소리가 들렸다.

“휴.”

아버지의 아내는 찍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죽었다. P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1분도 채 안되어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부탁한다.”

P가 그들에게 말한 뒤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구나. 밖에는 한 대의 차가 있었다. 뒷좌석에 P와 둘이 들어가 앉았다. P는 피 묻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오토바이는?”

“야.”

내 질문에 P가 목소리를 깔고 답했다.

“나는 프로야. 실수 같은 건 없어.”

이 한 마디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도 참 웃겼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어나갔는데 P가 타고 온 오토바이를 걱정하는 모양새라니. 반대로 생각하면 아버지란 존재가 P의 오토바이만도 못했다는 반증이었다. 잠시 후 트렁크가 밑으로 쑤욱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탁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아까의 그 남자들이 앞좌석에 탔다. 그들 중 한 명이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나의 집 앞으로 데려다놓았다.

“간다.”

P가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응.”

이렇게 오늘의 일과는 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 문을 열었다. 따스했다. 아까 집을 나서기 전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아, 뭐랄까. 뭐지. 이 기분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왔어? 늦었네?”

나나가 늦게 들어온 나를 반겼다.

“응.”

“그 남자 만났어?”

“응. 오늘 한 건 했어.”

“한 건?”

나나가 되물었다.

“응.”

내 대답을 듣고 나나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는 게 역력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나나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죽였, 어?”

이어진 나나의 말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비밀이라며 나나의 앙증맞은 입술에 내 두 번째 손가락을 갖다 대어야 할지.

“쉿”

결국 세 번째 안을 택했다.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아직.”

그리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타겟은 나의 고삼 담임이었다. 생각만 해도 부들부들 몸이 떨리고 욕이 나오는 존재. 당신이 그 날 나를 막아주기만 했어도. 우리 엄마는 살아있었을 텐데. 당신이 그러고도 선생이야? 이 나라는 선생부터가 글러먹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크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내 발자취마다 수군대는 이들의 입김이 들러붙었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정신이 단련된 공식 미친년이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평범한 애들이었다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이 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냐? 그런데 그 선생이라는 놈은 당최 학생의 일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고통에 공감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성가셔했다. 그러니 나의 자퇴 발언에 화색을 하고 처리했던 거겠지. 아무튼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죽여야 할 인물로는 더없이 적합했다.

‘내일 저녁 8시.’

P에게서 문자가 왔다.

‘알겠음.’

답하고 잠에 들었다.

 

 

 

정확히 8시에 맞춰서 그때 봤던 오토바이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다. 구태여 타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뒷자리에 올라탔다. 한 번 타봤다고 전보다 수월해진 몸놀림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사사로운 수다는 없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P는 오토바이를 이끌고 선생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첫 타겟이었던 아버지가 살았던 곳은 단독주택이었기에 수월했는데 좀 성가셔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소리라도 지르면 누가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P는 그런 상황까지 고려했을 거란 느낌이 들었지만.

“다 왔다.”

P가 오늘 처음으로 내게 말을 했다. 다 왔다, 세 어절의 말이었지만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았다. 다 왔어. 이제 내려. 들어가자. 등등의. P가 앞장서 선생의 집으로 향했다. 이곳은 아직 비밀번호 키가 상용화되지 않은 곳이었다. P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꼬챙이 하나를 꺼내더니 문을 쑤셨다. 그리고 약 10초도 되지 않고 문이 철컥 열렸다. 단숨에 문을 열었다.

“누구야.”

안쪽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음성이었지만 낯이 익었다. 그놈이었다. 그 선생놈. 답은 하지 않았다. 그건 P와 나 모두 암묵적 동의 한 사항이었다.

“야옹”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존재가 나타났다. 고양이었다. 아 이런. 고양이의 존재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머리가 아팠다. 몸이 순간 비틀했다. P가 내 쪽을 돌아봤다.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한 번 내저었다. P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어느새 선생이 우리의 눈앞에 서 있었다.

“니들 누구야.”

선생이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소리 낮춰.”

P가 말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험악한 분위기를 읽기라도 한 건지 P에게 발톱을 드러내며 뛰어올랐다.

“먀옹”

P가 칼을 휘둘렀다.

“캭”

고양이가 힘없이 떨어졌다. 한쪽 다리에서 새빨간 피가 흘렀다.

“잠깐”

내가 P의 칼을 멈췄다. 두통이 일었다.

“고양이는 괜찮잖아.”

내가 말하자 P는 다시 선생에게로 눈을 돌렸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에 선생은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신고를 하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바로 P가 선생의 손을 발로 차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악”

선생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냐고. 왜 그러냐고.”

“닥쳐.”

P가 말했다.

“다, 당신들 누구시냐고요.”

겁에 질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한결 작아진 목소리였다. 그걸 듣고 내가 P의 뒤에서 나섰다.

“김상철.”

선생의 이름을 불렀다. 선생의 좁쌀만 한 눈이 조금 커졌다.

“너는. 너는.”

“그래. 정신병자 진미미.”

선생은 나를 바로 알아봤다. 하기야 고작 1년이 지난 일이었으니까. 존재감은 없었지만 인생 자체가 강렬했던 나를 잊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강렬함이었다.

“근데 네가 여긴 어떻게.”

선생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상철 선생님.”

내가 말하고 긴 침묵을 이었다.

“행복하셨어요?”

“으, 응?”

“행복하셨느냐고요.”

내 말을 들은 선생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무슨 답을 해야 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아, 아니. 내가 왜.”

“안 행복하셨어요?”

선생의 대답을 듣자 웃음이 나왔다. 큭큭.

“왜요? 왜 안 행복했어요? 귀찮은 일들은 다 포기하는 사람이었잖아요. 당신. 당신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기나 해?”

“예, 예?”

“당신이 씨발. 그 날 나를 잡아주기만 했어도 말이야. 우리 엄마는 안 죽을 수 있었다고. 당신이 선생 자격이 있기는 해? 왜 그랬어. 어? 왜 그랬느냐고. 나는 학교에서 항상 혼자였지. 그래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내 잘못이라 여겼겠지. 하자 있는 미친 정신병자 같은 년. 왜 하필 당신네 반이 되었느냐고. 옆 반 담임이랑 얘기하는 거 내가 못 들었을 줄 알았어?”

후,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말을 할수록 감정이 격앙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인생이었어. 학교에서마저 버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왜? 그래도 당신은. 씨발. 선생이었잖아. 애들이, 어린 학생들이 날 버리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었어. 근데 당신은 왜 그랬어? 응?”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또 나왔다. 닦지 않고 내버려 뒀다.

“아, 아니 미미야.”

“또, 또 이래. 항상 진미미라고 부르더니만. 죽을 것 같아져서야 다정한 척. 웃기지도 않아. 역겨운 새끼야. 뒤져 그냥. 나는 다짐했거든.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야. 나도 죽었는데 남들 죽이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 두 번째 타겟이 당신이야.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

폭포수 같은 말을 쏟아 붓고 P에게 고갯짓을 했다. P역시 나를 보고 고갯짓 했다.

‘푸욱’

“아악. 사, 살려주세요.”

그 때와 같은 방식으로 P는 선생의 배를 칼로 찔렀다. 선생의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새빨간 피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저 선생은 과거에 나를 버리면서 이런 날이 올 것이란 생각을 했을까? 아마 전혀 못 했을 것이다. 나조차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런 날은 결국 와버렸다. 사람은 잘못을 하기 전에 나중에 어떻게 될 지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것이었다.

“야아옹”

그때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의 앞발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거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어느새 선생을 처리한 P는 칼을 여전히 세운 채로 고양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

내가 P를 저지했다.

“얘는 내가 데려갈게.”

내 말을 듣고 P의 눈에 의문스러움이 떠올랐다. 무시하고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흐르는 피가 내 옷에 스몄다.

“왜.”

처음으로 P가 나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대답해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걸 얘기하려면 내 어릴 적 이야기까지 끌어와야 했다. 귀찮은 일이었다.

“그냥. 내가 고양이를 좋아해.”

어물쩍 넘겼다. 눈치 빠른 P는 어차피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되묻진 않았다. P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무사히 고양이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어머 세상에. 미미야 무슨 일이야?”

집에 들어서자 나나가 호들갑 떨며 물었다. 피를 흘리는 고양이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병원에 가야겠어.”

상세히 설명해 줄 정신이 없었다. 내 말을 듣고 나나는 차를 대기시켰다.

“네 아저씨.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좀 데리고 가주세요. 고양이 전문으로요.”

나나가 비서에게 전화했다. 10분도 되지 않아서 차가 도착했다.

“같이 가.”

내가 혼자 나가려고 하자 나나가 내 팔을 잡았다. 답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일이세요 아가씨.”

차에 타자 비서가 물었다.

“별 일 아니에요. 길고양이를 발견했는데 발을 다쳤나 봐요.”

나나가 나를 대신해 변명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야아옹”

고양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옹거렸다. 아프겠지. 이해했다. 나비 생각이 났다. 총을 맞고 즉사했던 내 사랑하는 가족 나비. 이 고양이는 이름이 뭐였을까. 왜 하필 내가 증오하디 증오하는 그 선생의 집에 있었던 거야. 왜 그따위 인간이랑 같이 살았니. 잠시 후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고양이가. 다쳐서요.”

처음으로 입을 뗐다.

“애기 이름이요?”

간호사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미”

나나가 무어라 말하려던 것 같았는데.

“나비요.”

내가 얼른 답했다. 다른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그 때 내가 살리지 못했던 나비가 생각나서. 이번 나비만큼은 살려주고 싶었다.

“애기 어디가 아파요?”

간호사의 물음에 답 없이 고양이의 앞발을 보여줬다.

“상처가 심하네요.”

“괜찮겠죠?”

나나가 말했다.

“일단 진료실로 들어 가실게요.”

늦은 밤이어서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진료실에 금방 들어갔다.

“아이고. 어쩌다 이렇게 됐대요. 지금 출혈이 너무 심한 상태라서.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

의사가 말했다. 절망했다. 나의 두 번째 나비. 나비가 위태로운 상황이란다.

“선생님. 제발. 제발 우리 나비 좀 살려주세요.”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절박하게 말한 이유는 뭘까. 어릴 때의 내 첫 나비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도 이렇게 바로 병원에 데려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지금 당장 수술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비의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나나와 함께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나가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다시 한 번 물을 만도 했건만. 나나는 여전히 묻지 않았다. 왜 하필 이름이 나비인지, 그것도 궁금했을 텐데도. 그 마음이 고마웠다. 세심한 배려. 그 상태로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다. 의사와 간호사가 수술실을 나왔다.

“어떻게, 됐나요?”

나대신 나나가 물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만.”

“다만?”

“아직 의식은 없는 상태네요. 경과를 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절망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의식 없는 상태로 나를 떠났던 엄마.

“위험한. 상황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출혈이 너무 많았던지라 결과를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겠습니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수도.”

의사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P에게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그랬니. 왜 그랬어. 고양이는 잘못이 없었잖아.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죄 없는 아버지의 아내는 잘도 죽여 놓고. 갑자기 고양이는 안 된다고 우기는 꼴이 우스웠다. 물론 내 얘기를 하면 이해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얘기를 P에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아아. 너무나도 마음이 혼란했다.

“미미야.”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을 때 나나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흐흑”

눈물이 절로 났다. 요새 나약해진 것만 같다. 걸핏하면 눈물이 나왔다. 내가 왜 이러지.

“미미야. 집에 가서 일단 쉬자. 너 많이 힘들어 보여.”

“아니. 아니야. 나비 깰 때까지 기다릴 거야.”

“너. 어릴 때 잃은 나비 생각나서 그래?”

나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나의 걱정 어린 눈을 바라봤다. 눈물이 맺혔다. 나나의 눈에도 따라서 눈물방울이 맺혔다.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연 엉엉 울었다. 나나도 울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흠흠.”

그때 의사가 헛기침을 했다.

“나비 깨어나면 연락드릴 테니 지금은 댁에 가서 쉬시는 게 어떨까요.”

얼른 집에 가라. 나 좀 쉬게, 하는 의미가 함축된 듯했다. 싫다고 마냥 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알겠다 말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뜨끈한 물로 씻었다. 아까 묻은 나비의 피가 물에 씻겨 내려갔다. 다 씻고 나오니 나나가 내 방 침대에 앉아있었다.

“미미야. 오늘 같이 잘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너도 피곤할 텐데 어서 가서 자.”

하지만 나나와 함께 있는 일은 또 다른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알겠어. 미미야. 그러면 혹시라도 혼자 있기 외롭거나 하면 나 불러. 알겠지?”

“응. 고마워. 나나야 잘 자.”

인사하고 나나가 내 방을 나갔다.

‘탁’

나나가 불을 끄고 나간 내 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날 오랜만에 나비를 봤다. 그러니까 어릴 적 키웠던 나의 고양이 나비 말이다. 내 오른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내 오른손을 쥐고 흔들었다. 결국은 나비의 목까지 칼을 가져다댔다. 나비는 야옹 야옹 울었다. 내 몸에 자기 몸을 비볐다.

“야옹”

곧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지켜야했다. 필사적으로 알 수 없는 힘을 버텨냈다. 1센티라도 더 나아가면 나비의 목에서 피가 흐를 것이었다.

“미미야.”

그런데 누가 나를 불렀다. 그 소리에 순간 힘이 빠져 나비의 목이 잘려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얼굴에도 튀었다. 이마에 튄 피가 흘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미미야. 여기서 뭐 해? 미미야?”

아악. 그리고 끔찍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은 나나의 얼굴이었다.

“미미야. 미미야. 괜찮아?”

나나가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악몽을 꾸는 것 같더라고. 괜찮은 거야 미미야?”

나나는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러니까 나의 악몽을 나나가 깨뜨려 준 것이었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았는데. 괜찮아졌어. 나나야. 네 덕분이야.”

나나를 끌어안았다. 나나도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어깨를 토닥여줬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나나가 속삭였다.

 

 

 

P에게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나도 연락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날로부터 3일이 지났건만. P에게서도, 병원에서도 연락은 없었다.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다고. 얼른 다음 타겟을 죽여야 했고, 살아있는 나비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고, 상황이 오지 않았다. 나나는 그런 나를 배려했다. 구태여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그냥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P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저녁 7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결한 문장이었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날 시간 맞춰 아파트 현관으로 나섰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P의 입이 움찔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오롯이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묻지 않았다.

“가자.”

오히려 말을 막았다. 세 번째 타겟은 고모였다. 동시에 그 아들도 같이 처리할 셈이었다. 그러려면 자연히 그 가족도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조금 큰 건이었다. 신경이 예민했다. P에게 하고 싶은, 아니 따지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내 원대한 목표를 위해 참았다. P는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나와 P를 태운 오토바이가 고모의 집에 도착했다.

“아 맞아. 여기 아들은 내가.”

“죽이겠다고?”

“응.”

P는 부연 설명을 바라지 않았다. 말없이 내게 칼 한 자루를 쥐어줬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 이곳저곳을 조용히 살폈다. 큰방에 고모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P가 고모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깨를 툭툭 쳐서 깨웠다. 고모가 눈을 뜨고 소리를 질렀다.

“악! 꺄아아악”

“쉬잇”

P가 칼을 고모의 입에 대고 쉬이, 했다. 고모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우스운 광경. 고모는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고모.”

난생 처음으로 고모라고 불러봤다. 고모의 눈길이 내게 닿았다. 치켜뜨고 있던 고모의 눈이 더욱 커졌다. 내 부름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P의 칼이 여전히 그녀의 입에 있었다. 언제라도 당신의 입을 뚫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

“지금 여기 누구누구 있어요? 답해요.”

고모는 여전히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P는 칼을 고모의 입에서 치웠다.

“나, 나밖에 없어.”

그제야 고모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왠지 내 여유를 보여주고 싶었달까?

“잘 지내셨어요?”

“으, 응, 아니, 아니.”

내 눈치를 보는 듯한 답이었다.

“왜요. 제가 돈도 드렸잖아요. 아니지. 뺏어갔었나?”

내가 킥킥 웃었다. 고모의 표정은 더욱 굳어갔다. P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 근데 그거 알아요?”

“뭐?”

억눌린 고모의 목소리가 답했다.

“고모 아들이요. 저 강간했었는데. 모르셨죠. 내가 집 나간 이유가 그거였어요. 뭐, 고모 입장에서야 골칫덩이가 나가주니 좋았겠지만.”

고모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려 했다.

“왜요. 억울해? 그때 그냥 말로 하지 왜 이제 와서 이 지랄이냐고?”

고모는 답이 없었다. 내 말이 그 말이지, 알면서 왜 그러는 거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래서 혼자 답했다.

“왜냐면요. 그때 내가 말을 했으면 당신들이 제대로 듣기나 했을까? 미친년이 지랄 났네. 재워주고 먹여줬더니만 은혜를 원수로 갚네. 뭐 이런 말이나 하지 않았을까? 그쵸.”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다.

“아무튼 고모. 그래서 행복했어요? 내가 떠나서.”

잠시 말을 멈췄다. 집 안 공기가 고요했다.

“나 그날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요? 나 죽었었어요. 옥상에서 슝. 탁. 사지가 꺾여 뒤졌었다고. 근데 어쩌다보니 살았네? 그래서 결심했죠. 아 내가 이렇게 살게 된 건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을 죽이라는 신의 계시구나. 그래서 왔어요. 죽이려고. 고모, 고모부, 아들 순서로 죽일 거예요.”

“사, 살려주세요.”

고모가 사지를 아까보다 심하게 떠는 것이 보였다.

“무서워요? 저도요.”

말하고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무서웠어요. 아무도 도와주는 이는 없었죠. 저 이제야 스무 살이에요. 갓 성인. 근데 아버지는 도망가고 엄마는 죽고, 당신 아들은 강간이나 해대고. 씨발. 진짜 좇 같은 인생 아니에요? 하. 씨 말 하다보니까 진짜 열 받네. 당신은 내 돈이나 쳐 뺏어가고. 그러니까 있잖아요. 잘 가요. 잘 가세요. 씨발.”

마지막 말을 듣고 고모가 눈을 더 크게 떴다.

“으, 응? 무슨 말”

간절한 고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P가 고모의 목을 찔렀다. 이전과는 다르게 목을 찌른 이유는. 아마도 오늘 일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었으리라. 배를 찌르면 급소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번을 나누어 찔러야한다. 그동안은 그래도 됐었지만 오늘은 세 명이나 죽여야 했기에 힘을 아끼는 것이리라. 그랬기에 고모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목이 잘린 채 검붉은 피를 내뿜고 있는 꼴이 가히 가관이었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고모부와 그 아들은 잠시 후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런데 P가 뜬금없이 말을 붙였다.

“괜찮아?”

내가? 아니면 고양이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고모가? 물으려 했다. 그런데 띠리릭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 고모부였다. 고모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모에게 한 말과 같았다. 같은 말을 라디오처럼 반복하기는 싫었다. 그냥 인사나 건넸다.

“안녕하세요. 고모부. 저는 오늘 당신을 죽이러 왔어요.”

마치 오랜만에 만나 안부나 묻는 듯한 무심한 말투.

“뭐, 뭐야. 니가 왜 여기에 있어?”

고모부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고모는 죽었어요. 안방에 들어가 보실래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모부는 신발을 벗지도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허둥지둥 기어 들어가는 꼴이 우스웠다. 오늘은 다들 우스운 날이었다.

“너, 너 무슨 짓이야. 제정신이야?”

고모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귀가 아팠다.

“죽여.”

P에게 말했다. 원래 말로 죽음을 지시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고모부에게는 왠지 그러고 싶었다. 당신이 죽기 전에 오롯이 나의 의지로 당신이 죽는 것임을 알리고 싶은 마음. 위압감을 주고 싶었다는 의미가 맞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고모부도 목이 베어 죽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고 P는 안방 문을 닫고 나왔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까 P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냐는 말.

“안 괜찮아.”

P에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런데 연락 한 통을 안 해?”

갑자기 열이 확 올랐다. 아무리 사람 죽이는 일을 한다 해도. 나와 저는 그래도 조금은 친밀한 사이 아니었던가. 배신감에 손이 떨렸다. 눈알이 뒤집혔다.

“야. 너. 하. 말을 말자.”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연락을 해야 돼?”

“너.”

“우리 이런 대화 하는 것도 웃긴 거 알지?”

P가 말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할 말을 찾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도어락이 다시 울렸다. P와 나는 서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마주봤다. 일단 알겠으니 이 일부터 처리하고 얘기 하던가 말던가, 이런 의미를 담은 눈으로.

“아악”

고모의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뒤로 자빠졌다. 찔리는 게 있어서 그랬겠지.

“니가, 니가 왜 여기에 있어.”

괜히 비명소리가 문 밖으로 울려 퍼졌다. P가 그의 머리채를 쥐고 집 안으로 데려왔다. 쿵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가 바닥에 찧었다.

“닥쳐.”

P가 그에게 한마디 했다. 그는 자기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온 몸을 떨었다. 근데 유독 이 놈은 더욱 내 화를 돋우었다. 존재 자체가 분노의 기폭제였다.

“이 성범죄자 새끼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니면 힘이 없어서 그대로 조용히 물러날 줄 알았던 거지? 나 같은 인생은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거야? 진짜 열 받네.”

“사, 살려주세요. 제발.”

고모의 아들은 내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개새끼마냥 바닥에 오줌이나 질질 싸재꼈다. P는 그 꼴을 보기 역겨웠는지 인상을 찌푸리곤 눈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지린내가 올라왔다. 나는 똑바로 쳐다봤다. 손에 들고 있던 칼날을 한 번 쓸었다. 손끝에서 피가 흘렀다.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고모의 아들은 그것을 보고 더 몸을 거칠게 떨었다. 진짜 없어 보이는 놈. 인생 루저새끼. 저딴 새끼가 감히 나를 강간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물론 그 누가 했더라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을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다가가 배에 칼을 세게 꽂았다.

“윽”

놈이 피를 토하며 신음했다. 원래의 계획은 저놈의 잘못을 하나하나, 상세히 짚어주는 거였는데 말아먹었다. 저놈의 면상을 보자마자 죽여 버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배를 찔렀다.

“악”

놈은 다시 한 번 신음했다.

“켁,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제발.”

놈이 애원했다. 거실 바닥에 흘러있던 그의 오줌은 그의 피와 함께 섞였다. 최대한 나와 닿지 않게 했다. 더러웠다. 오줌도, 피도. 그의 인생 자체가 더러웠다. 이번엔 머리를 찔렀다. 귀를 찌르고, 눈을 찔렀다. 팔, 다리, 손 닥치는 대로 찔렀다. 찔리는 족족 신음하던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찌르는 대로 몸이 푸욱 푸욱 들어가기만 했다.

“후”

힘이 들었다.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챙그랑 소리가 났다.

“끝났어.”

P에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대기 중이던 차에 준비되어있던 P의 옷을 내가 입었다. P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뭘 봐.”

내가 P에게 한 마디 했다.

“너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지?”

P가 말했다. 확신하는 말투였다.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기껏해야 이제 일을 하지 않겠다, 뭐 이런 얘기나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깊은 질문이 들어왔다.

“왜.”

직접적인 답을 피했다.

“너한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사실 몇 개는 알거든. 들었으니까.”

“그렇지. 들었지. 내가 하는 말들 옆에서 듣고 있었지.”

“길게 할 얘기는 없고. 그건 아니라고.”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되물어도 P는 답하지 않았다.

“가자.”

그저 가자고 얘기할 뿐이었다. 그랬음에도 그의 한 마디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날 밤에는 또다시 그들을 죽였다.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그의 아들을 내 손으로 하나씩 야금야금 죽였다. 이런 식으로 현실을 복기하는 꿈을 꾸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내 손으로 죽인 것은 아들 하나뿐이었지만 말이다. 내 말은. 그냥 말이 그렇다는 뜻이었다. 내 손으로 칼을 쥐고 하나하나 배에 찔러 넣었다. 그들은 바닥에 묶여있었다.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놈은 오줌을 싸재꼈다. 개새끼도 아니고 더럽게 뭐 하는 짓이야. 화가 났다. 그래서 한 번 더 찔렀다. 두 번 더 찌르고, 세 번 더 찔렀다. 정신이 돌았다. 계속 찔렀다. 그런데도 아들놈은 죽지도 않고 자꾸만 소리를 지르고 오줌을 싸댔다.

“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소음이었다. 목을 찔렀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여러 번의 칼질에 결국 아들놈의 목이 잘려나갔다. 그런데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문득 무서워졌다. 떨어진 그의 머리통은 내 발밑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아악”

이번의 소리는 내가 지른 것이었다. 무서웠다. 발에 톡톡 닿는 그의 얼굴이 무서웠다.

“헉헉”

잠에서 깼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다시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그 꿈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마치 지금의 내 기분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지난번 P와 대화를 하고 난 뒤부터는 기분이 찜찜했다. 불쾌했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나나는 이제야 자기와 시간을 보내준다며 기뻐했다.

“미미야 그동안 나 너무 심심했어. 다시 돌아와서 기뻐.”

“내가 어디 갔었나. 난 항상 여기 있지.”

웃으려 노력했다.

“근데 나 할 얘기가 있어.”

갑자기 나나가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바쁘게 목표를 이루러 다니는 동안에 엄청난 빅뉴스가 있다고.”

“뭔데?”

별로 내 흥미를 당기지는 못했다. 머릿속에서 P의 말이 웅웅거렸다.

‘너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 같아?’

그렇다고 확실하게 답했어야 하는 건데. 아씨. 생각은 후회를 낳는다. 후회는 자책을 키운다.

“나 만나는 사람 생겼어.”

“뭐?”

나나의 갑작스런 고백. 무감하던 내 뇌가 갑자기 깨어났다. 심장이 쿵 하는 기분.

“그렇게 놀랄 일이야?”

나나가 물었다. 그러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닌데. 왜 놀랍지? 너는 언제나 나만의 것이리라 믿었던 걸까. 아니 근데 어쩌다가.

“누구야?”

“너도 아는 사람이야.”

“누구?”

“비호.”

아아. 비호라니. 내가 아는 그 한비호? 어쩌다가? 왜? 왜 하필 걔야? 아. 머리가 아팠다. 기분이 더욱 안 좋아졌다. 방 안으로 홱 들어갔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나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뻔했다. 모르겠다. 친구가 남자친구 생겼음을 고백할 때 원래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인지. 당최 모르겠다. 친구가 있어봤어야 알지. 다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안 그러던데. 기뻐해주던데. 궁금해 하고. 누구야? 어때? 잘 해줘? 등등의 질문을 퍼붓던데. 나는 전혀 그런 기분이 안 들었다. 홧김에 P를 불렀다.

‘오늘 7시. 데리러 와.’

‘누구?’

‘아무나’

‘알겠어.’

나의 당치도 않는 요구에 P는 말없이 응했다. 돈이나 주면 장땡이라는 건가. 생각해보면 P의 인생도 참 단순하고 우스웠다. 아무나 죽여 달라는 요구에 알겠다, 라는 대답이라니. 그 와중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보아하니 동물병원이었다.

“여보세요?”

“나비 보호자분 되시죠? 여기 동물병원인데요. 오늘 나비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보호자분? 보호자분 괜찮으세요?”

떨어진 핸드폰 수화기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비가. 나비가.

“죽었대.”

나나에게 달려가 말했다. 나나는 말없이 안아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내고 들어간 나를 위로해주는 나나. 나에게 나나는 없어선 안 되는 존재였다. 쓰레기 같았던 내 삶을 지상으로 들어 올려준 나나. 나의 나나. 하. 어쩌면, 어쩌면 나는 나나를.

“진미미”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P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나가 문을 열어줬다.

“불러놓고 왜 안 나와 있어.”

P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 내 절망스러운 표정을 본 모양이었다. 눈짓으로 나나에게 물었다. 얘 왜이래, 하고.

“나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대.”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P가 알아듣긴 하려나. 죽여, 끝장내, 뒤져. 이런 단어들밖에 모르는 사람 아닌가, P는?

“아.”

의외로 P는 짧게 탄식했다.

“안 가?”

이어 나에게 물었다.

“아니. 가. 나나야. 나비를 부탁할게.”

“어디 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따 올게.”

나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나에게 나비를 맡기고 P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하절기의 낮은 짧았다. 대신 밤이 길었다. 7시만 되어도 날이 어두웠다.

“오늘은 누구?”

P가 물었다. 정해진 이는 없었다.

“다.”

처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아무나 죽여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극심한 분노가 치솟았다. 잠시나마 느꼈던 아늑함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나비가 죽었다. 나나가 떠났다. 내 것이었던 이들은 모조리 떠나간다. 그것이 불변의 이치인 것이었다. 그들이 나의 것이라 여기며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애초에 세상은 나를 미워하는데. 내게 행복 따위를 남겨줄 리 없었는데. 바보같이도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다?”

P가 반문했다.

“응. 칼 줘. 내가 할게.”

P는 순순히 칼을 내어줬다. 골목으로 갔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뒤쫓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불쾌한 행위였다. 여자가 힐끔힐끔 뒤를 돌았다. 남자는 그럴 때마다 다다다 뛰어갔다. 겁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1분정도 지켜봤다. 그리고 확신했다.

“저 개새끼 죽여 버려야지.”

혼잣말인지 P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뱉었다. P가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자를 향해 칼을 뻗었다.

“윽”

파렴치한 남자의 신음이 들렸다. 그런데 남자의 악력이 세서 나를 제압하려 했다.

“너, 너 뭐야.”

남자가 피를 흘리며 물었다. 그리고 내가 쥔 칼을 빼앗으려 시도했다. 그 모습을 보고 P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손쉽게 남자를 제압했다. 남자와 여자의 악력 차이를 실감했다. 허망했다. P에게 칼을 내밀었다.

“죽여.”

내 말에 P는 순순히 그 남자를 죽였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명백히 죄가 있었다. 어두운 밤중에 죄 없는 여자를 희롱하려 들었다. 그게 얼마나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개 같은 새끼.”

문득 고모의 아들이 떠올랐다. 내 앞에서 오줌을 질질 싸재끼며 죽어가던 놈. 화가 치밀었다. 그 사이에 P는 그 남자를 처리하고 돌아왔다. 예의 그 남자 둘이 시신을 회수해갔다. 혹시 CCTV가 있었던가. 잠시 걱정했지만 P의 단단한 옆얼굴을 보고 걱정을 접었다. 확신에 찬 표정. 아마도 P는 오늘의 일 또한 완벽하게 처리해 줄 것이었다. P는 나의 돌발행동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무어라 말을 얹지도 않았다. 그저 깊은 눈으로 내 행동을 바라봤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났다. 차라리 왜 그러냐 물어주면 좋으련만. 아아. 그럼 나는 무어라 답하게 될까. 나비가 죽어서 그래. 네가 죽였잖아. 그러니까 네가 죽어줘야겠어. 그러면 P는 순순히 죽어줄까.

“나비가 죽었어.”

“그래.”

“네가 죽였어.”

“그래. 알아.”

“나는 정신병자야.”

내 말을 듣고 P는 답이 없었다.

“어렸을 적 나비를 키웠어. 그런데 죽었어. 누가 죽였는지는 몰라. 내 눈앞에서 죽었어. 총 에 맞았어. 그 뒤로 나는 매일같이 누굴 죽였어. 꿈에서 말이야.”

P에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P는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너도 똑같아. 너도 나비를 죽였어. 약한 나비를 죽였다고. 그리고 저 남자도 똑같아. 약한 여자를 괴롭혔어. 희롱했어. 다 똑같은 놈들뿐이라고.”

말을 하다 보니 눈시울이 울컥했다. 하늘을 바라봤다.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었다.

“그래.”

어둠을 뚫고 P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말이야. 너도 크게 다를 바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사람들을 죽였다. P는 나의 부름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죽이고, 죽이는 피 튀기는 나날들. 그런데 하루는 P가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문제가 생겼어.”

P가 말했다.

“무슨?”

“지난 번 일에 문제가 있었나 봐.”

P는 말하고서 자기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거기엔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실려 있었다. 고모의 가족 사건이었다.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일단 가자.”

P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 해결해.”

P가 말했다. 나에 대한 염려였는지, 고객을 잃을까 두려웠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말을 마친 P는 오토바이를 출발해 어딘가에 도착했다.

“들어가자. 이상한 덴 아니야. 걱정 말고.”

“걱정 안 해. 죽어도 상관없고.”

내가 답했다.

“며칠 걸릴지도 몰라. 잘 처리하라고 하긴 했는데.”

“왜 그런 건데?”

“그냥. 가끔 그럴 때가 있더라.”

말 하며 3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도착하니 문이 나왔다.

“여긴 내가 지내는 곳. 조만간 너네 집에 경찰이 들이닥칠 거야. 근데 어차피 윤나, 아니, 그래. 윤나나는 돈이 많으니까 알아서 잘 빠져나오겠지.”

“그래. 그렇겠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너도 돈으로 구해왔고.

“그리고 나도 알아서 잘 빠져나올 거야. 윤나나가 너도 잘 해결해주겠지. 그 때까지만 여기서 지내. 얼마 안 걸릴 거야.”

P가 말하는 사이에 집 안을 둘러봤다. 내가 사는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렸다. 이게 집이야 돼지우리야. 웩. 정리라도 하고 살지. 벌써부터 내 집이 그리웠다. P는 조용한 집안 공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습관이라도 있는 건지. TV를 켰다. 뉴스 속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NH그룹 회장이 전례 없는 검찰청 행차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TV 속 앵커가 속보를 전했다. 생각 없이 듣고 있었는데 별안간 P가 채널을 돌렸다.

“아 너무 무거운 얘기는 별로네.”

P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P의 집에서 지낸 지 사흘이 지났다. 나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P에게 물어보면.

“잘 해결 중. 걱정 하지 마.”

같은 소리나 해댔다.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나가고 싶은 거라고. 그런데 잠시 후 P가 허둥지둥 방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지역을 옮기기로 했어.”

“응?”

“서울은 위험해. 충청도로 갈 거야.”

“뭐라고?”

난데없는 소리였다.

“나나는?”

“나나가 문제가 아니야. 얼른 준비해.”

알 수 없는 흐름이었다. 난데없이 무슨 충청도.

“난 안 가. 집에 갈래.”

“안 돼.”

“왜.”

“거긴, 안 돼.”

“말 해주기 전까진 안 움직여.”

내 말에 P가 움찔했다.

“나나가 잡혔어.”

이어지는 P의 말에 다리 힘이 풀렸다. 다행히 뒤에 소파가 있었기에 그 위에 안착했다.

“아니 왜?”

믿을 수가 없었다. 나나는 돈이 많잖아. 돈이 많은데도 안 되는 일이 있어? 그럴 리 없는데. 정신이 붕괴되고 있었다. 아악. 손발이 저려왔다. 이윽고 머리도 저렸다. 숨이 가빠졌다. 정신이 통 없었다. 의지 없는 몸이 부웅 떴다가 덜덜거리며 이동하는 느낌이 났다.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눈을 뜬 곳은 햇살이 들어오는 침실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파노라마처럼 이전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나, 나나가 잡혔다고 했지.”

나나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인기척은 없었다.

“P! P 어디 있어.”

P를 불렀다. 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났다. 어떻게 일궈온 행복인데. 감히 내 행복을 앗아가. 내 놔. 나나를 내놔. 분노로 울부짖던 내 눈에 부엌의 칼이 들어왔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내 손을 그었겠지만 이젠 달랐다. 씨발. 이제야 행복해지려 하는데 삶을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대신 복수를 해야 했다. 여기가 어디지. 충남인가. 전에 충남에 간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칼을 들고 몸부림치는데 문소리가 들렸다.

“P?”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P가 아니었다. 낯선 사람이었다.

“아이고 아가씨. 뭐해요. 위험해요.”

푸근한 인상의 아줌마였다. 아악 분노가 일었다.

“P는?”

“P가 누구에요?”

아줌마의 대답에 나는 폭발했다. 들고 있던 칼로 아줌마의 목을 찔렀다. 배를 찌르지 않은 것은 일말의 배려였다. 즉사하는 편이 상대에게는 더 편한 선택이었기에. 아줌마는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검붉은 피가 거실 바닥에 흥건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취미가 없었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했다. 차마 감지 못한 아줌마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나비가 생각났다. 아, 나비. 나의 나비. 흑흑 울부짖었다. 손에서 칼이 떨어져나갔다. 챙그랑. 그렇게 나는 거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낯선 이 상황이 무서웠다. 내 인생은 나락이었다. 그곳을 향해 날았다. 몸이 부서졌었다. 그런데 용케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를 부순 이들을 찾아가 복수했다. 악한 이들을 벌주었다. 나의 사랑하는 나나와 함께 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 나나. 나나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나에게 고했다. 그런데 갑자기 붙잡혔다니. 내가 겪는 일들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현실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이전에는 치열한 고통에 지쳐서,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들만 벌어져서.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일들만이 벌어져서. 또다시 문소리가 들렸다. 아아. 차라리 나를 죽여줘.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땅으로 날리던 나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나 홀로 죽을 용기가 사라졌다.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미미님?”

들려온 목소리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비서 아저씨? 아저씨가 어떻게.”

나나의 비서였다.

“미미님. 아가씨께서 찾으세요.”

“아저씨. 나나 어떻게 됐어요? 지금 이거 현실인가요? 아니죠? 네? 아니라고 해줘요 제발.”

구질구질한 말들을 했다. 비서는 내 말들에 답을 하진 않았다. 대신 나를 부축해 차로 데려갔다.

“아가씨를 용서하세요.”

비서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나를 제가 왜 용서해요. 용서할 게 없는 아이에요.”

오히려 나나가 나를 용서해야 하는 게 아닌가. 뒤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 비서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비서는 나를 나나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면회실 의자에 앉아있자 안쪽 문이 열리고 나나가 들어왔다. 청색의 데님 옷을 입고 있었다. 죄수복이었다. 면회실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나나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지냈던 거야.”

그 사이에 앙상해진 나나의 볼을 보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요새 들어 눈물이 자주 나왔다.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미안해.”

나나가 말했다.

“아니야. 네가 미안해 할 게 뭐가 있어.”

역시 착한 나나. 나나는 언제나 자기가 굽히고 들어왔다. 자기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도. 고맙고 미안한 나나. 미안할 건 나였는데. 그런데 갑자기 면회실 문이 열렸다.

“야, 나와.”

P였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P가 갑자기 나나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나오라는 말을 하며.

“왜 그래. 나 안 나가. 이제야 나나를 만났어. 방해하지 마.”

내 말에 나나는 눈물을 흐느꼈다.

“너는. 너는 쟤가 어떤 앤지 몰라.”

P가 말했다.

“너보다는 잘 알아.”

“아닐걸? 너. 쟤 이름은 알아?”

“무슨 말이야. 나나 이름을 아냐고?”

“어. 그러니까 나나. 그 가명 말고 진짜 이름말이야.”

“뭐?”

P가 이상한 말을 했다.

“아니, 아니다. 미안. 실언했다. 어쨌든 나오라고.”

“무슨 말이야?”

이번엔 나나를 보고서 말했다. 나나는 여전히 울고만 있었다. 나의 어여쁘고 착한 나나. 울지 마. 나나가 우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P가 한 저 이상한 말에 왜 화를 내지 않는 거야? 왜 하염없이 울고만 있니. 그리고 왜 네 이름이 나나가 아니야? 설마 아니지? P가 지금 정신이 훼까닥 돈 거지? 나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면회 시간은 끝이 났다. P는 그길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너 어떻게 여기 왔어.”

P가 화난 투로 물었다.

“내가 답해야 해?”

“어.”

“왜.”

“아. 그냥 좀.”

P는 그동안 내가 봤던 날들 중 말을 가장 많이 했다.

“너 나한테 왜 그래? 나 좋아해?”

억하심정이 쌓여 이거나 먹어봐라 하고 했던 말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하는 말 중 바보 똥개 해삼 멍게 말미잘, 하듯 그런 유의.

“응.”

그런데 돌아오는 답이.

“뭐라고?”

“응. 그러니까 제발 내 말 좀 들어.”

그 뒤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한 기분. 좀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야. 너 나 알아?”

“응.”

“날 안다고?”

“응.”

P는 연달아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니가 날 뭘 알아. 아는 척 하지 마. 재수 없어. 같이 다니면서 고작 몇 마디 주워들은 것 가지고 내 인생 함부로 평가하지 마.”

악에 받쳐 외쳤다.

“인천 출생. 진경호와 심영선의 딸. 어릴 적 진경호는 도망가고 엄마인 심영선과 둘이 살았음. 19살이 되던 해에 심영선이 사고로 죽고.”

P는 기계적으로 내 정보를 읊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고.”

다른 정보들은 얼핏 들어 알 수 있었다 해도. 엄마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었을 텐데. 어떻게? 네 정보력을 동원해서 조사라도 한 거니?

“의뢰를 받았어.”

“누구한테.”

후. 심장이 떨렸다. 왠지 들어서는 안 될 답이 들릴 것 같았다.

“윤나희. NH그룹 막내딸.”

다행히 아니었다. 나나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아, 윤나나라고 해야 하나.”

“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었다. 그 자리에 쿵 주저앉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 순간 나나가 울먹이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왜 나나는 끝까지 울고만 있었던 거지.

“네 엄마가, 그러니까 심영선이 왜 죽었는지 알아?”

P가 말했다.

“사고.”

“그래 사고였지. 큰 트럭에 치였다고? 웃기는 소리. 내가 그거 처리하느라 애 좀 먹었었지.”

“아니. 아니야.”

“윤나희가 죽였어. 윤나희가 음주운전 하다가 네 엄마를 치어 죽였다고. 근데 걔네 집이 워낙 빵빵하잖아. 너한테는 부모가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고 했지? 아니야. NH그룹 회장이 걔네 아버지야.”

“아니? 아닌데. 증거를 대. 왜 나나를 음해하는 거야. 왜? 나나가 너한테 제대로 입금 안 해주기라도 했나보지? 내가 줄게. 내가 준다고. 그러니까 그만 해.”

P를 향해 악을 썼다. 머리가 아팠다. P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거짓투성이였다.

“잘 생각해봐. 진미미. 너는 윤나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P의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나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옥상에서 몸을 날리고 죽어가던 나를 살린 나나.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퍼주었던 나나.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가 없다며 자기와 친구를 해달라던 나나.

“윤나희가 너에게 헌신을 할 이유가 있어? 걘 그냥 불쌍했던 거야.”

“아냐. 아니야.”
“나한테 조사를 좀 해달라더라. 진미미라는 애의 인생에 대해서. 그랬더니 진짜 우습더라. 기구해도 이렇게 기구한 인생이 있을까 싶었어. 미안했겠지. 윤나희는 기구한 인간 진미미의 엄마를 죽여 놓고는 조금이라도 회개하고 싶었던 거야. 웃기지? 감방에나 들어갈 것이지. 그건 용케 피해놓고.”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래.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아니. 모르겠어. 근데 그럼 왜 이제야 나나가 감옥에 가 있는 건데? 그렇게도 돈이 많은 애가.”

“그건”

P는 거기까지 얘기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응? 왜 그런 건데? 말을 좀 해봐.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보라고. 아까까지 잘만 떠들었잖아 이 새끼야.”

결국 나는 다시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손발이 저려왔다.

“아악”

P는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어떤 알약을 먹이려 들었다. 버둥거렸다. 하지만 P와 나의 악력 차이는 상당했다. 결국 알약을 삼킨 나는 잠시 후 잠에 빠져들었다.

 

 

 

나비가 보였다.

“야옹”

기분 좋게 우는 나비를 끌어안았다.

“엄마, 나비 기분이 좋은가 봐.”

“그러게.”

답하며 엄마가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콰앙, 소리가 났다. 발에 뚝뚝 흐르는 액체의 촉감에 놀라 밑을 봤더니 나비의 몸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나나가 보였다. 웃고 있는 나나가 오른 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미미야. 보고 싶었어. 이제 나비 말고 나를 좀 봐주면 안 돼?”

“왜. 왜 죽인거야? 너였어? 나비를 죽인 게?”

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다 깨어났다. 꿈이었다. 꿈인데도 참 지독했다. 총을 맞은 게 나이기라도 한 듯 가슴이 아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비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나도. P가 해 준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를 죽인 게 나나라는 말. 사실 나나가 아니라 NH그룹의 막내딸인 윤나희라는 것까지. 아직 믿을 수는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 사실상 P가 이렇게 세세하게 나를 속일 이유는 없어보였다. 그리고 나나가, 아니 어쩌면 윤나희일 지도 모르는. 나나가 나를 거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띠리릭’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P였다. 나에게 충격적인 사실들을 안겨준 P.

“너는.”

P는 대답이 없었다.

“이름이 뭐야.”

나나가 나나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럼 P는? P는 뭘까. 알고 싶었다.

“P.”

“장난 할 기분 아니야.”

“장난 아니야.”

“말이 돼? 어떻게 사람 이름이 P야.”

“없어.”

“뭐?”

“난 이름이 없어. 그냥 다들 P라고 불러.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뒤통수를 터엉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네 인생은 그럼 퍼즐조각 맞추듯. 그렇게 말이 돼?”

P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을 후벼 팠다. 단연코 아니었다. 누군가는 에이 그런 인생이 어디 있어, 하고 비웃을 게 나의 인생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어. 흔적도 없더라. 알잖아 내 정보력. 찾아보려고 했는데 못 찾겠더라고. 그냥 박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그렇게 나도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았어.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싶더라고. 차라리 고아원에나 버려주지. 그랬음 이름이라도 있었을 텐데. 하필 내가 가게 된 곳이 조직 폭력배 집단이었어. 여기선 이름 같은 거 안 지어주지. 자기들끼리도 이름을 안 부르는데. 더구나 애기 이름을 누가 지어주겠어. 낯간지럽게, 치워. 이런 소리나 하지. 그냥 어려서부터 아무나 줘 패고 다녔어. 그 때부터 싹수가 노랬던거지. 그러니까 조폭 삼촌들이 그러대. 저놈은 아무나 피 내고 다니니까 그냥 P라고 부르자. 못 배운 놈들이 그렇지 뭐. 이름 짓는 재주도 더럽게 없어. 근데 그게 내 이름이 돼버린 거야. 못 배운 놈들이 우스갯소리로 지은 P라는 이름. 진짜 우습지.”

P의 말이 끝나고 정적이 감돌았다. 전에 P가 내게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너는 네 인생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해?’

그건 아마 제 얘기였나보라고 이제야 생각했다.

“내가 사람 죽이는 일을 하지. 어떻게 안 걸리는 줄 알아?”

P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거나 다름없어.”

“뭐?”

“출생신고가 안 되어있다고. 이름도 없는 놈한테는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내 DNA는 흘려도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나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P의 얘기는 들을수록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를 안 하려들었구나.

“그래서 인생 참 좇 같다, 하면서 살고 있었어. 사람들이나 줘 패고 죽이면서. 그런데 어느 날 너를 만난거야. 네 조사를 하면서 생각했어. 얘도 인생 참 엿 같게 살았네. 마치 나 같다. 그렇게 생각했어. 더구나 나는 네 엄마의 죽음을 조작하다가 널 알게 된 거잖아? 동질감 같은 것도 느껴졌어. 아 비록 나는 부모가 없지만.”

킥킥. P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그래서 그랬나봐.”

P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뜬금없다는 거 잘 아는데. 네가 좀 좋아졌어. 전에 말했던 거 전부 진심이야.”

P는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우웩”

본의 아니게 토악질이 나왔다. 역겨웠다. 동시에 나나 생각이 났다.

“나나, 나나 보러 갈래.”

P의 집에서 뛰쳐나와 나나가 수감되어있는 교도소로 향했다. 면회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미 누가 나나를 만나고 있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니 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비호였다. 맞다, 그는 나나의 애인이었다.

“안녕”

비호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답을 할 생각은 없었다.

“들어가 봐.”

비호는 굴하지 않고 내게 말을 붙였다. 무시하고 나나가 있는 면회실로 들어갔다.

“나나야.”

이름을 부르자 눈물이 나왔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정말 네가 우리 엄마를 죽였니? 내가 그동안 알아온 나나는 대체 누구니. 하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

대신 이 말만 나왔다.

“나도.”

나나가 이어 말했다.

“미안해.”

“뭐가.”

“전부 다. 근데 있잖아. 네가 뭘 들었든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 역시 나나가 그럴 리 없지?”

온 마음이 들떴다. 나는 다른 사람 말은 믿지 않는다. 증거가 있든 없든 그저 나나의 말이 내게는 진리이자 진실이었다. 나나는 내 삶을 구원해 준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윤나희야.”

“어..?”

생각과는 다른 말이 나나의 입에서 나왔다. 아닌데. 나나인데.

“그러니까 내 말은. 미안해. 너희 엄마 일은. 정말로.”

“아아.”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눈물이 차올랐다. 진짜였구나. 아아. 믿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적어도 네가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 줬더라면 나는. 나는 그냥 그대로 네 말만을 믿으며 살았을 거야. 근데 왜 내 믿음을 깨뜨려. 왜.

“미미야, 미미야.”

나나가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유리벽을 쿵쿵 쳤다. 꽉 막힌 실리콘 틈새를 뚫고 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미야.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잠깐만 다시 내 말 좀 들어줘.”

수화기를 들 힘이 없어 멍하니 앉아 나나만을 바라봤다.

“진심이었어. 너를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었어. 그것만은 꼭 알아줘. 사랑해.”

나나는 수화기를 들지 않는 나를 위해 악을 질렀다. 먹먹한 나나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감돌았다. 진심이었구나. 그랬구나. 그건 고맙다. 근데. 근데 말이야.

“너는 나의 유일한 희망을 앗아갔어.”

“미미야. 미미야.”

나나는 자꾸만 내 이름을 불렀다. 소리쳤다.

“배신자.”

나는 마지막 말을 뱉고 자리를 떴다. 눈물을 훔치며 면회실 밖으로 나섰는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의외의 인물. 한비호였다.

“잠깐.”

한비호가 내 팔을 잡았다.

“이거 놔.”

세차게 뿌리쳤다.

“나나에 대해 할 얘기가 있어.”

“너한테서 듣고 싶지 않아.”

“나나는 널 좋아해.”

한비호의 마지막 말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래서 일단 미안하게 됐다.”

“뭐가?”

“나나, 아니 나희가 왜 교도소에 있는 지 알아?”

“아니.”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P에게 그렇게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던 것을.

“다 너 때문이다.”

“뭐?”

나도 모르게 한비호의 멱살을 잡았다. 재수 없는 놈. 나한테 멱살을 잡혔으면서도 놈은 뻔ᄈᅠᆫ한 표정이었다.

“뭐라는 거야. 제대로 얘기를 해.”

“너 때문이라고. 말 그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결국 한비호의 멱살을 뿌리쳤다.

“너. 나희 좋아하지.”

“응.”

“그러니까 연애 상대로 말이야.”

“뭐?”

“사랑하느냐고.”

아니, 한비호가 지금 나한테 뭘 묻는 거지. 나나를 사랑하느냐고?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P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와는 다른 기분.

“나희도 널 사랑해.”

내가 답하지 않자 한비호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저기에 들어가 있는 거야.”

한비호가 교도소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좀 제대로 말 해 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나희는 나랑 결혼해야 해. 근데 너 때문에 모든 게 뒤틀리고 있다고.”

“뭐?”

“그래서 NH그룹 회장님이 나희를 저기에 가둔 거야. 마음을 돌릴 때까지. 그건 알고나 있었어?”

전혀 몰랐다.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아. 나나는. 아니 나희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좋아하는가 하면 미워할 수밖에 없고, 미워하다보면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까 네가 잘 좀 설득해 봐. 네 말이라면 껌뻑 죽잖아.”

한비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때마침 P가 교도소에 왔다.

“진미미.”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찾았잖아.”

“왜?”

“왜냐니. 네가 그렇게 도망쳤잖아.”

“내가 왜 좋아?”

P의 말에 동문서답을 했다.

“하. 됐다. 너 안 좋아해. 됐냐?”

P가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나희를 좋아하듯,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꺼내줘?”

“뭐를?”

“윤나희.”

“어?”

“네가 꺼내달라면 꺼내줄게. 알잖아. 나 뭐든 잘 하는 거. 둘이 같이 어디든 떠나. 떠나서 지지고 볶든 말든 알아서 잘 살아.”

“그럼. 너는?”

너는 나를 사랑한다며. 그래도 괜찮은 거야?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왔잖아. 또다시 그렇게 돼도 괜찮은 거야? 묻고 싶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를 배려하기엔 나희에 대한 내 마음이 너무나 컸다. 뒤늦게 깨달은 마음이 애달팠다.

“나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잘 하거든. 뭐든. 사는 것도.”

“응. 꺼내줘. 나희가 원하면.”

“그래. 꺼내줄게. 걱정 마.”

P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랬다. 그건 쓰다듬은 게 확실했다. 때린 것도, 밀친 것도 아닌 다정한 손길이었다. 밀어내지는 않았다.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는 사실을. 그길로 나는 P의 집에 들어갔다. 가서 손톱을 까득 물어뜯으며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사실 봤다기보단 그냥 켜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었다. 내 온 신경은 핸드폰으로 가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P가 나희를 꺼냈다는 연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마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인천터미널. 7시.’

여느 때와 같이 간결한 P의 메시지였다. 문장은 간결했지만 내포한 의미는 한없이 커다랄 것이다. 나를 위해 해준 P의 헌신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마워. 하지만 너를 사랑할 수는 없어. 나의 사랑은 온전히 나희의 것이야.

 

 

 

인천터미널에 6시에 도착했다. 원래 약속 시간에 이렇게 일찍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전과 달리 너무도 설렜다. 정말. 정말 나희가 나올까? 동해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장장 한 시간을 텅 비다시피 한 터미널 의자에 앉아서 보냈다. 신발로 바닥을 콕콕 찧기도 하고 쥐고 있던 티켓을 이리저리 구겨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안 갔다. 그래도 설렜다. 기대가 되었다. 약간의 걱정도 됐지만, P의 능력을 믿었다. 실수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우습지만 새삼스러웠다. 나도 사랑을 받는구나. 내가 만약 P를 사랑했다면 인생은 나름의 탄탄대로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출생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었어도. 그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희처럼 강요된 약혼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어떤 장애물도 없었던 셈이지. 하지만 나는 나희가 좋았다. 나희의 본명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았다. 내 엄마를 죽인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이건 조금 마음이 아팠다. 나희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엄마를 죽인 나희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괜찮았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미친년이었으니까. 미친년은 이래도 된다.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마도 날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온 인생. 조금은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요.

“미미야.”

나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나희가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눈물이 흘렀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마음을 깨닫고서 처음으로 마주한 나희. 나희로서 처음 맞는 나희.

“나나, 아니 나희야. 보고 싶었어.”

“응. 나도. 우리 얼른 떠나자.”

나희와 나는 손을 잡았다. 아까 산 구겨진 티켓을 내밀고 버스에 올랐다. 심장이 벅차올랐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미미야 미안해.”

나희가 나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나희야.”

“정말 괜찮겠어? 너희 어머니는. 네 유일한 희망이었잖아. 근데 있잖아 진짜 고의는 아니었어. 그리고.”

“쉿. 괜찮아.”

나희의 입에 손을 대고 애써 변명하는 말들을 막았다.

“나 미친년이라 괜찮아.”

내 말을 듣고 나희는 깔깔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나도 함께 웃었다.

“그럼 나도 할래. 미친년.”

“그래. 우리 둘은 미친년들이야.”

그렇게 우리는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겨울의 바다였다. 띠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아 미안.”

나희의 핸드폰이었다. 그 핸드폰을 뺏어 쥐었다. 버스의 창문을 살짝 열고 핸드폰을 내다버렸다. 나희는 그런 나를 보고 꺄르륵 웃었다.

“다 꺼지라고 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 나희 네가 나를 살려준 거야. 나는 옥상에서 추락했었어. 그런데 너를 만나고 나는 비행했어. 바닥을 향해 날아간 거야.”

“그래. 그랬지. 바닥을 향해 날아갔어. 너는 사지가 부서졌었지. 정말 끔찍했어. 많이 아팠지.”

“응. 그래도 괜찮아. 그 덕에 너를 만났으니까.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불운이 너를 만나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을지도 몰라.”

나와 나희는 행복했다. 마침내 버스는 동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내렸다. 무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쉴 새 없이 깔깔댔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나희와 함께 앉았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쯤은 우리의 행복을 막지 못했다. 중간 중간 P의 생각이 났다. 나희를 어떻게 빼왔을까. 내가 사라지면 이제 그 애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미미야 무슨 생각 해?”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희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P에게는 문자 한 통을 남겼다.

‘고마워. 너의 사랑은 평생 기억할게. 그리고 나는 너를 평생이라고 부를 거야. 평생아.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잘 있어. 안녕.’

P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좋았다. 아니, 오히려 안쓰러웠다. 그와 내가 같은 결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호감을 느꼈다. 처음엔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내게 사랑을 표하자 나는 구역질이 났다. 그 때 깨달았다. 나는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 같은 건 할 수가 없겠구나.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평범한 인생은 살아본 적도 없는 인간이었다. 죽고 죽이고.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 와중에도 P는 내게 즐거움을 주었다. 너도 나랑 비슷하구나, 하는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유의. 그래서 그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평생이라 소개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P라는 호칭과 일맥상통하니, 괜찮다 여겼다. 그리고 그걸 바랐다. 자신의 이름을 평생이라 소개하길. 그렇게라도 내가 그와 함께하길. 혈혈단신이던 그의 삶에 1그램이라도 평생 함께하길.

 

 

 

밤이 되고 나희와 나는 펜션에 들어갔다. 옥상에 평상이 있어 하늘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었다. 비수기였기에 펜션에 손님이라곤 우리 둘 뿐인 듯싶었다. 나는 나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별 구경하러 가자.”

“좋아.”

나희는 내 손을 맞잡고 나를 따라왔다. 쌀쌀한 날씨에 담요 하나를 함께 나눠 둘렀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가끔 걱정을 했다. 행복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행복 뒤엔 반드시 불행이 자리하고 있을 거란 상상. 어쩌면 현실. 물론 내게는 나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불행이었다.

“미미야 사랑해.”

“나도.”

“동글이라고 불러줘.”

엄마가 불러주던 내 이름을 나희가 불러주길 바랐다.

“동글아. 사랑해.”

나희는 왜냐고 묻지도 않고 내 요구에 응해줬다.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나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희도 내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 사랑에 단단히 빠져들었다. 나희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나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꽤나 긴 시간동안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들어갈까?”

말하는 나희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희야.”

“응?”

“미안해.”

“뭐가?”

내 인생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것만을 위해 오롯이 살았다. 옥상 난간에 올라갔다.

“미미야. 뭐 해?”

나희의 표정이 불안정해졌다.

“나희야.”

“응?”

“날 사랑해?”

“응. 당연하지. 너 갑자기 왜 이래 불안하게.”

“그럼 내 인생의 목표도 기억해?”

“어?”

“세상 모두를 죽인다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이젠 아닌 거 아니야? 나를 만났잖아. 사랑해.”

“그래 맞아. 사랑해. 그럼 내 손을 잡아줘.”

나희는 마지못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날았다. 나희의 손을 잡고서. 바닥으로 비행했다. 1초도 안 되어 우리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발견하는 이가 없어 우린 구조되지 못하고 죽겠지. 나희는 내 세상이었다. 나는 결국 나의 목표를 이루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죽음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맞는 순간. 그것이 내 행복의 최정상이었다.

 

 

 

다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날 한 시에 죽고 싶다는 생각. 그게 부모님이건, 연인이건, 반려동물이건 상관없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너무도 두렵고 무섭다. 반대로 나의 죽음도 무섭다. 사랑하는 이들을 이 세상에 남기고 나 홀로 떠난다는 것. 더구나 죽음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인지.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그 어떤 위험도 함께 손을 잡고 헤쳐 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쿵’

우리는 동시에 떨어졌다. 끝까지 함께였다. 사랑해. 나희야.

 

 

 

이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는 매일이 그랬다. 세상은 유독 나에게서만 뭔가를 자꾸만 앗아가려 했다. 애초에 결여된 상태로 태어났다.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 그럼에도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떠나고 엄마는 죽었다. 고모에게 구박당하고 그의 아들에게 강간당했다. 처절하게 끔찍한 삶. 뛰쳐나와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나의 유일한 희망을 앗아갔던 나희에게서. 또다시 유일한 희망을 보게 되었다. 후레자식이라며 욕을 해도 좋다. 엄마를 죽인 년이랑 놀아나니까 좋냐.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죽었다. 나희와 한 날 한 시에. 나는 나희와 평생을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유독 가혹한 나의 세상은 어쩌면. 이 날을 위한 큰 그림이었던 건 아닐까.

 

 

 

“진미미”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저 멀리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P? 아니, 평생.”

P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지옥이겠구나. 그런데 나희는 어디에 있지. 나희와 함께이고 싶었는데.

“진미미, 정신이 드냐고.”

P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머리가 웅웅댔다.

“나희.”

나희가 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삐뽀삐뽀’

구급차 소리인 것 같은데. 구급차? 소리의 정체를 깨닫자 후다닥 놀라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으키려 노력했다.

“환자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흐릿한 눈앞에 주황색 옷들이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진미미, 너 미쳤어?”

P가 말했다. 머리가 아팠다. 얘는 대체 왜 여기에 있고, 나희는 어디에 있는 건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입에 무언가 덮이는 감촉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뜬 후 보인 것은 흰색. 온통 흰색이었다. 그리고 왼쪽을 보니 P의 모습이 보였다. 왜지?

“진미미.”

P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희는 어디 있어?”

본능적으로 물었다. P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P는 답이 없었다. 띠.띠.띠. 기계음이 들렸다.

“병원이야.”

P가 말했다.

“병원?”

“나 안 죽었어?”

“어. 안 죽었어. 너 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내가 그러라고.”

P는 우다다 말을 쏟아내다 문득 멈칫했다.

“후. 말을 말자. 일단 쉬어.”

“나희는. 나희는 어디 있냐고.”

P는 자꾸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불길한 기분. 팔등에 소름 오소소 돋았다.

“커튼 좀 걷어봐. 옆 침대에 있지? 얼굴 좀 봐야겠어.”

무작정 P를 옆 침대 쪽으로 밀었다. 비록 미약한 힘이었지만 P는 힘없이 밀려났다. 그리고는 커튼을 걷었다.

“봐. 없어.”

P가 한숨을 쉬었다.

“왜. 왜 없어?”

“후. 좀 쉬어.”

“아니. 들어야겠어. 나희는 어디에 있어?”

P가 눈을 감는 게 보였다.

“죽었어?”

내 말에 P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아악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당장!”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가 다가왔다.

“환자분. 무리하시면 안돼요. 진정하세요.”

그리고는 내 팔에 꽂힌 링거 팩을 갈아 끼웠다. 하지만 진정이 될 리가 없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왜? 왜지? 왜 P는 꼭 나희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을까.

“미안해.”

P가 사과했다. 점점 더 최악의 추측에 힘이 실렸다. 왜 나는 살았는데 나희는 보이지 않아? 우리는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이란 말이야.

“네가 그렇게 문자 보내고 기분이 쎄했어. 네가 꼭. 죽으려는 사람 같잖아.”

P는 자기 머리를 헤집으며 울먹였다.

“그래서 너 가는 데를 쫓아갔어. 근데 네가 뛰어 내리는 거야. 왜 그랬어? 내가 그러라고 윤나희를 그렇게 어렵게 빼내온 줄 알아?”

P는 울고 있었다.

“행복했어야지. 행복하게 살았어야지. 보란 듯이 당당하게. 죽으라는 뜻이 아니었다고.”

“행복했어. 나한테는 그게 최고의 행복이야. 왜 망쳐? 나는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지 못해. 뛰어내린 게 아니야. 날았던 거야. 내 세상이었던 나희와 함께 바닥으로 날았던 건데.”

나도 울었다.

“네가 다 망쳤어. 왜 날 살렸어. 왜 나희는 죽었어. 왜. 왜. 왜!!!”

당장이라도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몸에는 온통 붕대가 감겨 있어 거동조차 어려웠다.

“나는 이제 평생 불행할거야. 평생이라는 말을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어. 너를 평생이라고 부르겠다 했잖아. 네 덕분에 나는 이제 평생 불행해질 거야. 사랑하는 이는 죽었어. 나희를 떠나보낸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불행해. 네가 전에 그랬지.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아느냐고. 지금 다시 대답할게. 응. 불행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최선을 다해 나의 불행을 바라고 있는 기분이야. 됐어?”

P는 내 말을 들으면서도 하염없이 울었다. 뻔뻔한 낯짝을 한 대 후려주고 싶었다. 붕대 감긴 내 손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불행한 와중에도 시간을 흘렀다. 나는 그날의 사고로 하반신을 잃었다. 매일을 울며 보냈다. 정확히는 나희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옥상에 가지 않았을 일이었다. P는 매일 나를 찾아왔다. 나의 모든 수발을 들었다. 내가 부탁을 하는 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희에게 가는 것. 불가능하다 여겼기에 말하지 않았다. P는 내가 원한다 여기는 것들을 알아서 다 했다. P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역겹다 느껴졌다. 하루는 P에게 물어봤었다.

“어쩌다 나만 살았어?”

묻는 내 얼굴엔 눈물이 가득했다. 그러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워낙 시골이라. 한 번에 두 명을 데려갈 수가 없었어. 먼저 온 구급차에 널 태웠지. 이해해줘.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윤나희가 아니라. 뒤늦게 윤나희를 태우러 구급차 한 대가 더 갔어. 근데 이미 죽은 뒤였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P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내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런 내가 P를 죽일 수 있을까? 그건 그가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칼을 자기 목에 꽂지 않는 한은 없을 일이었다. 나희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렀다 들었다. 정상의 궤도를 벗어난 사람의 죽음. 사람들 관심을 쏟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NH그룹 회장의 의지였다. 그리고 가족 무덤에 묻혔다. 하지만 보러 가지 못했다. 내가 무슨 낯짝으로 나희를 보러 가겠는가. 결국 나희를 죽인 것도 나였다. 나는 끝까지도 미친년이었다. 그런 주제에 나 홀로 살아남았다. 나비도, 엄마도, 나희도. 결국 내 손으로 죽게 만든 것이었다. 지은 죄가 많았다. 미친년의 말로가 이런 걸까. 분노도, 애정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P는 나를 병원에 가뒀다. 혼자 두면 죽을 것을 알았던 모양이었다. 꼬박꼬박 나오는 병원의 맛대가리 없는 밥을 위장에 욱여넣고, 때때마다 약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창밖의 계절은 변해갔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했다. 불행 뒤에 오는 행복에 안주했었다. 엄마를 죽인 나희를 사랑한 벌을 받는 걸까. 아니면 내가 죽인 목숨들이 유령이 되어 내 삶을 옥죄여 오는 걸까. 내게는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던 걸까. 나는 P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결국 그를 평생이라 부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남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평생이라 소개했다. 내가 그를 평생이라 부를 때도 있었다.

“너를 평생 원망할거야..”

그러면 P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답하면서. 바닥을 향해 날았다. 몸이 부서졌다. 정신이 부서졌다. 내 존재 자체가 흐릿해졌다. 나는 앞으로도 평생을 이 지옥 속에 살아갈 것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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