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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Planet N

2021.03.02 16:3803.02

어느 먼 미래.
과거 50년 동안 우주사업에 있어서 가장 큰 화두는 외계자원 개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 달, 화성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이 충분히 개발이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로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행성을 발굴하고 탐사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외계생명체 발견이다. 그 동안 외계자원을 개발하면서 생명체가 살았던 행성들은 우리은하나 외계은하에서 많이 발견되었으나, 아주 작더라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생명체가 살았던 행성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류는 믿고 있다. 외계생명체 발견을 위한 노력은 인류의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인 업적의 달성 명분보다는 언젠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인류 전체가 이주해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을 찾으려는 의도가 더 크다. 외계생명체 흔적이 있는 행성들은 이미 황폐화 되어 식민행성으로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최초로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이 곧 우주식민행성 건설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각 국가간에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하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다.

우주외계지질학 박사인 C박사는 국립우주외계연구원(National Space Extra-Galaxy Institute, NSEGI)에서 근무하고 있다. 33살의 C박사는 NSEGI에서 일한 지 4년차이고, 외계생명체 탐사팀에서 외계행성 광물과 토양을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외계행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데, 우선적으로 토양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연구이다. C박사는 외계행성의 광물, 토양 등을 분석하는 지질조사를 위해서 우주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C박사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 자체가 적성과 잘 맞기도 하지만, 우주 출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다는 것이 더 크다. 일을 마치고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화성과 달 리조트에 놀러 갈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 화성과 달 여행은 경비가 워낙 비싸서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는 자주 갈 수가 없다. C박사는 직업의 특수성 덕분에 큰 비용 부담 없이 출장 겸해서 화성과 달의 고급 리조트에 자주 놀러 가는 편이다. C박사는 화성보다는 달 리조트를 더 좋아한다. 스파를 즐기면서 아름다운 지구를 감상하기에는 달이 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검은 우주 속에 떠있는 푸른 지구를 찍어 SNS에서 올리면 하트가 셀 수도 없이 달린다. 그런데 요즘 C박사는 매우 우울하다. 6개월 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NSEGI로부터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달 리조트 클럽에서 만난 외국인 전 남자친구가 마리화나를 하다가 걸렸고, 그가 마리화나를 C박사의 집에 숨겨 놓았다고 우주연합경찰에 자백을 했다. C박사는 호기심으로 한 두 번 해본 게 전부였고, 전 남자친구가 마리화나를 자신의 집에 숨겨 놓은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런데 헤어진 남자친구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도핑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 마리화나 소지 죄로만 기소가 되었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C박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NSEGI에 마리화나를 한적이 없고, 헤어진 남자 친구로부터 이별에 대한 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소명을 했다. 마리화나를 한적이 없는 점, 억울하게 당한 점, 그리고 그간 뛰어난 연구실적 냈던 점을 감안하여 연구원에서는 감봉과 외계지질분석 업무 배제 1년의 징계를 내렸다. 다행히 해고는 면했다. 그래서 C박사는 우주출장을 가지 못하고 지구 본원에서 운석 분석 업무만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처박혀서 운석 따위나 분석하고 앉아 있으니 답답하고 지루함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6개월을 이 업무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짜증이 극에 달한 요즘이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와중 C박사에게 흥미롭다고 해야 할지, 아님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 발생했다. 기괴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C박사는 최근 겉으로 아무런 특색이 없어 보이는 흔하디 흔한 운석 하나를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NSEGI에는 이 정도 평범함 운석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이 굴러다닌다. 그런데 C박사가 이 운석의 내부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전기 드릴로 운석 안을 파내는 작업을 하다가 안쪽에 보통 운석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한 느낌이 든 C박사는 운석 내부를 더 깊이 파 들어갔다. 운석의 1/3 정도를 파내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C박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석 안에는 사람의 엄지 손가락과 비슷한 화석이 하나 박혀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손가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렇다고 다른 유인원의 것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큰 엄지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화석 말고도 머리카락 같은 털 뭉치가 화석에 감겨있었다. 그야말로 C박사의 머릿속은 충격과 혼란 그 자체이다.
‘아니, 어떻게 운석 안에 화석과 털 뭉치가 있단 말인가? 운석이 아닌가? 분명 운석 맞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대기권으로 들어 올 때 엄청난 열이 발생할 텐데 이런 털 뭉치가 그 열을 견디고 그대로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거 도대체 뭐지?’
한 동안 머릿속이 멍하다.
“C박사 뭘 그렇게 멍하게 있는 거야? 하긴 C박사 성격에 지겹긴 할거야?” 지나가는 U박사가 말을 걸었다.
“아.. 네.. 맞아요. 지겨워서요. 잠시 멍을..”
당황한 C박사는 대충 대답을 하고 누가 볼까, 운석을 재빨리 원래에 들어있던 상자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가장 큰 서랍에 그 상자를 넣고 열쇠로 잠갔다. 그리고 그날은 칼같이 퇴근을 하고 집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건 분명 운석이 맞다. 몇 번을 분석했기 때문에 아닐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운석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는 단서임에 확실하다. 자신은 지금 징계 중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고민 끝에 우선 DNA분석부터 하기로 결정했다. NSEGI의 내외계비교생물 연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E박사에게 연락했다. E박사는 과학고시절부터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이다. 지금의 상황을 E박사에게 자세히 이야기 했다. 그리고 지금 일은 둘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하고 운석에 있는 화석과 털 뭉치의 유전자 분석을 부탁했다. E박사 또한 이번 건은 외계생명체를 최초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둘만의 비밀로 하고 상부에 보고 없이 유전자 분석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틀 후 E박사가 유전자 분석을 끝냈고, 혼자 살고 있는 C박사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C박사가 초조하게 E박사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C박사의 스마트폰에 초인종이 울리고, E박사의 신원을 확인한다. E박사임을 확인한 C박사는 건물 입구 출입문을 여는 버튼을 터치했다. 5분 정도 지나자, E박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E박사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 보인다.
“야, 너 C박아, 너 나 엿 먹이려고 장난 치는 거지? 진짜 또라이 같은 뇬이, 이런 걸로 장난치냐?” E박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이야? 야 E박아. 진짜 너야 말로 장난치지 말고 분석 결과나 얼른 말해줘.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로 우주은하대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우주은하대스타고 지랄이고, 이거 운석 맞아? 확실해? 어디 경기도 화성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아니야?”
“아니야. 나도 의심했는데 운석 성분도 그렇고 방사성동위원소 측정 결과로도 지구 것이 아닌 걸로 확인 됐어. 그리고 연대기 측정 분석 결과 이 화석은 7,559년 밖에 안됐어. 오래된 화석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어떤 행성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이런 거 당연히 다 분석을 하고 내가 너한테 얘기한 거야. 이 멍탱아, 아유 띨띨한 E박이 저거. 어쨌거나 이 운석은 마젤란 은하 좌표 MCB 3789 2345 9541 2987 에 있는 행성들의 토양 성분, 방사성동위원소 측정 값이랑 95.79% 일치해.” C박사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 진짜, 장난 아니지? 너 약 빤 거 아니지?” E박사는 약간 흥분한 투로 말을 한다.
“야 이씨, 옛날에 한 번 해 보고 한 적 없다고, 몇 번 말해. 나 진짜 진지해. 진짜 운석 맞는다니까.”
“그럼 더 대박인데. 너 놀라지마. 그 손가락은 완전 돌이 돼버려서, 거기서는 유전체를 추출을 못했고 그 털에서만 추출해서 분석했어. 그런데 유전체가 지구 생명체의 유전체랑 동일해. 그것도 완전하게.”
“얘 뭐래? 말도 안돼. 너야말로 진짜 장난 치지 말고 제대로 좀 얘기해 봐.”
“진짜야, 나 지금 졸라 진지해. 지구 생명체 DNA랑 완전하게 동일해. 이중나선 구조에 가운데가 수소 결합으로 연결 되어있고 그리고 양 쪽 줄기는 당이야. 그 당은 인산으로 중간 중간에 연결돼있어. 그리고 염기도 정확하게 티민(T),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이 네 가지로 구성 되어 있더라고. 지구 생명체랑 완전하게 같은 언어로 코딩이 되어있는 거지.”
C박사의 눈은 휘둥그래해 졌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 떠… 케.. 이거 운석 확실한데.. 내애… 내가 뭔가 분석을 잘 못 했나?”.
“조금 이상한 게 손가락 화석이랑 털 뭉치에 약품처리가 되어있더라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것 때문에 대기권에 들어올 때 열 손상을 입지 않은 거 같아.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뭔 줄 알아?”
“더 놀라운 게 있어? 뭔데, 빨리 말해줘?”
E박사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랑 동일해. 그것도 완전하게 똑같아. 수컷 네안데르탈인이야.”
“뭐라고, 진짜?”
“응 진짜야. 지금 DNA 정보 갖고 AI가 프로틴 폴딩 돌리고 있어. 그 결과는 모래쯤 나올 거야. 그럼 생김새, 골격, 크기, 뇌용량 같은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어. 결과 나오면 그 때 다시 얘기하자.”
“그럼 인류가 그렇게 찾아 헤맨 외계 생명체가 네안데르탈인이란 말인가? 그리고 외계생명체랑 지구생명체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거네?”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E박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틀 후 C박사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뉴스를 보면서 E박사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는 유명 영화배우 K의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다. C박사의 스마트폰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기다리던 E박사이다. E박사는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C박사에게 건네면서 말한다. “내가 고인류 학자는 아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구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랑은 다른 것 같아.” 
“어떻게 달라?” C박사가 프로틴 폴딩으로 나온 네안데르탈인 이미지를 뚫어져라 보면서 물었다.
“키가 4미터가 넘어. 작으면 4미터에서 크면 6.5미터까지 될 수 있을 것 같아. 인간이랑 비교하면 키에 비해서도 골격이 훨씬 크고 근육량도 훨씬 많아.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랑도 비교가 안되게 신체 조건이 어마어마하게 발달되어 있어.”
“그러네. 흑발에 푸른 눈에 피부는 하얀 편이고, 이마가 돌출되어 있고, 코는 뭉뚝하면서 크고, 입술은 굉장히 두껍네. 그리고 귓바퀴는 인간에 비해서 많이 정면으로 보고 있네. 그리고 진짜로 가슴, 팔, 허벅지, 복부 근육이 엄청난데.”
“근육을 더 늘리고자 한다면 훨씬 더 발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C박사가 E박사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헉 이거보다도 더? 그러면 지능은 어떤 거 같아?”
“지능은 우리보다 낮은 것 같아. 뇌용량도 작고 뇌신경세포도 우리보다는 훨씬 덜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됐어. 그렇지만 시각, 청각, 후각 같은 감각 기관은 우리보다 훨씬 더 발달된 것 같아. 아마 지구랑 비슷한 환경의 행성에서 원시 상태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건 어디까지나 분석 값을 토대로 한 내 추측일 뿐이지 확실 것은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네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를 최초로 발견했다는 거야.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 발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E박사의 목소리가 많이 흥분해 있다.
“E박아, 나 징계 풀어달라고 해야겠어. 잘 못하면 내가 외계생명 발굴 프로젝트에서 배제 될 수 있잖아. 위에 보고 하지 않고 너한테 분석을 비밀스럽게 부탁한 것도 내가 배제되는 게 걱정돼서였어. 너도 같이 가야지. 너 남편한테는 얘기 안 했지?”
“응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요즘 말도 잘 안 해.”
다음날 C박사는 무작정 NSEGI 원장인 H박사를 찾아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를 찾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징계를 풀어주고 탐사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과 E박사를 이번 프로젝트에 반드시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기밀 누설죄로 구속될 각오를 하고 언론에 흘리겠다고 했다. 구속이 되더라도 옥중에서 이와 관련한 책을 써서 그리고 풀려난 후에는 강연을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손해볼게 없다면서 원장을 몰아붙였다. 원장은 한 달을 고민했다. 장고 끝에 자기가 NSEGI 원장의 자리에 있을 때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앞으로 자신이 우주외계부 장관이 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주국제연합(SUN) 총장에도 야망이 있던 원장은 이 기회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장은 C박사에게 일단 징계를 해제하는 대신, 만약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에 대한 근거가 미약할 경우 더 큰 징계가 내려 질것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당연히 C박사는 원장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운석과 DNA 분석 결과를 확인한 원장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의 강력한 증거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우주외계사업 국가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는 대통령, 국무총리, 우주외계부 장관, 우주외계부 차관, NSEGI 원장, NSEGI 부원장 그리고 C박사, E박사만 참여하여 극비리에 진행이 되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자신이 외계생명체를 발견한 그리고 외계식민행성을 건설한 우주 최초의 대통령이 되어 역사에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하면 외계식민행성의 초대 대통령도 할 수 있겠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그 자리에서 프로젝트 진행이 결정 됐고, 그 다음 주에 바로 예산까지 편성이 되었다. NSEGI는 결정이 나자마자 살아있는 외계생명체 탐사 프로젝트를 위한 비밀 팀을 꾸렸다. 프로젝트 명은 <Planet N>으로 정해졌다. 탐사 준비를 하면서 가장 큰 논쟁은 전투병력을 함께 보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외계은하인 마젤란 은하로 가려면 반드시 시공간접힘터널을 이용해야 한다. 많은 인력, 우주비행기, 그리고 여러 대의 전투비행기를 한꺼번에 보낸다면, 시공간접힘터널을 통과하는 에너지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지금의 예산으로는 터무니 없고 추가 편성을 해야만 한다. 오랜 논의 끝에 전투병력은 보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외계생명체가 인간처럼 과학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을 만큼 진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석에 따르면 외계생명체인 네안데르탈인의 지능은 인간보다 많이 낮고, 또 엄청나게 큰 그들의 손은 무언가를 세밀하게 만들 수 있는 정교함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비행기 한 대에 갖추어진 무기만으로도 그 행성 전체를 제압하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허술해 보이지만, 고도의 과학 문명을 발전시킨 외계생명체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Planet N> 프로젝트 탐사대원은 우주비행기 기장 A대령, 전투병이자 부기장 R소령, 전투병이자 정비 엔지니어 R대위, 의사이자 영양학자 O박사, 외계탐사 물리학자 G박사, 우주물질 화학자 A박사, 우주외계행성 기상학자 N박사, 그리고 외계지질학자 C박사, 내외계비교생물학자 E박사로 최종 결정이 됐다. 탐사 우주비행기는 NSEGI에서 최첨단 성능을 자랑하는 케이-인텔리전스호이다. 시공간접힘터널 공항은 달에 있다. 시공간접힘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중력이 큰 목성과 달이 일정 거리 이상 멀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그때까지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고, 출발할 수 있는 날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Planet N> 프로젝트 탐사대원들은 그 기간 동안 달에서 합동훈련을 받는다. 임무 학습, 우주비행 훈련, 우주 건강관리 교육, 우주비행기 정비 및 무장 등을 하면서 외계생명체 발견을 위한 우주비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극비리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대원들은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훈련을 받고 있다. 한 달이 지났고, 이틀 후면 출발이다. 훈련을 마친 C박사와 E박사는 숙소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다. 숙소 한쪽 벽에 설치되어 있는 큰 스크린은 폴 고갱의 회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C박사가 샴페인을 한 모금을 마시고 말한다. “달에서 보는 지구는 언제나 예뻐.”
“맞아. 오늘은 더 예뻐 보인다.”
“우리가 찾을 행성도 지구만큼 예쁠까?”
“내 생각에는 지구보다는 예쁘지 않을 것 같아. 비밀 프로젝트여서 지금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내 생각에도 지구가 더 예쁠 것 같아. 그나저나 이틀 후면 드디어 떠나네. E박사 너랑 과학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함께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찾으러 간다니 진짜 신기하다.”
“그러게 나도 너무 신기해. C박 너는 이번 탐사 느낌이 어때?”
“느낌 완전 좋아.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거라는 확신이 들어. 우리가 갈 행성에 사는 생명체는 우리를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우리가 막 하늘도 날아다니고 말이지.”
“그러게 완전 놀라겠지. 우리가 이 역사적인 발견에 함께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E박아, 너랑 내가 이 프로젝트에 핵심이야. 내가 최초로 그 화석을 발견했고, 넌 최초로 유전자 분석을 한 사람이야. 우리가 그걸 보고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의 단서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 지금 우리 코 앞에 있는 거야. 너랑 내가 이 우주 역사에서 한 가운데 서있는 두 명이라는 걸 잊지마. 하하하”
“하하하 내가 역사에 남다니, 정말 꿈만 같다.”
C박사와 E박사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찾으러 간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C박사와 E박사는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건배했다.

케이-인텔리전스호는 시공간접힘터널을 통과해 마젤란 은하에 들어왔다. 터널을 통과하는데 3일이 걸렸다. 좌표 MCB 3789 2345 9541 2987까지 가는데 세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인텔리전스호는 목적좌표를 향해 어두운 우주공간을 87,500km/h로 날아가고 있다. 한편 지구에서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는 <Planet N> 프로젝트의 정보가 누출이 되었다. E박사와 사이가 안 좋은 E박사의 남편이 그 동안 E박사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해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운석의 정보를 보고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E박사와 C박사가 나눈 톡의 대화내용을 자세히 살펴본 후 그 운석이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핵심 단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 E박사의 남편은 위성연합국에 이 기밀 정보를 팔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다가 국가우주정보원에 발각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Planet N> 프로젝트 정보가 언론에 새어나가면서,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의 결정적 단서가 발견이 되었고 케이-인텔리전스호가 행성 탐사를 떠났다는 것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근거 없는 온갖 소문들이 생겨났다. 이미 살아있는 외계생명체가 확인이 됐고 만나러 가는 중이다, 외계생명체와 통신을 여러 차례 주고 받았다, 이미 세 번의 만남이 있었다, 외계생명체가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다, 외계생명체의 침공이 멀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외계생명체와의 전투를 준비해오고 있었다 등의 각 종 음모론까지 난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계생명체는 과학문명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NSEGI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대중들의 불안 심리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 단서를 어떻게 찾았는가로 옮겨갔다. 운석을 통해서 단서를 발견하였고, 최초 발견자가 C박사임이 알려졌다. 그리고 나자 C박사는 우주적인 스타가 되어버렸다. C박사의 팬클럽이 생기기 시작했고, C박사를 인류의 구원자로 추앙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늦게나마 살아있는 외계생명체 탐사 팀을 준비하는 몇몇 국가들도 생겨났다. 더욱이 우주테러 악당으로 지목된 화성독립연합(MIU)은 급하게 소형 전투 우주비행기 2대를 마젤란 은하로 보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케이-인텔리전스호를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MIU는 마젤란 은하에 인간을 창조한 신이 있다고 믿는 단체이다. 지금은 화성을 거점으로 우주테러 악당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마젤란 은하에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MIU는 마젤란 은하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외계행성을 발견하는 것이 신에게 부름을 받는 최우선적 사명이라고 여겨왔다. 무조건 케이-인텔리전스호보다 먼저 발견해야만 한다. 케이-인텔리전스호는 목적좌표를 향해 순조롭게 날아가고 있다. 마젤란 은하에 진입한지 20일이 지나고 NSEGI 본부로부터 MIU에서 보낸 우주비행기가 뒤쫓아가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런데 MIU 우주비행기의 기종과 몇 대가 추격해오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Planet N> 프로젝트 대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먼저 출발한 케이-인텔리전스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소형 우주비행기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3대 이상의 우주비행기를 동시에 시공간접힘터널을 통과시킬 자본과 기술력이 없기 때문이다. 케이-인텔리전스호의 화력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가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젤란 은하에 들어 온지 한 달이 지났다. 좌표 MCB 3789 2345 9541 2987까지는 두 달이 남았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며칠 전부터 케이-인텔리전스호에 장착되어 있는 망원경으로 좌표 MCB 3789 2345 9541 2987의 행성들을 관측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좌표 내에 행성은 약 500개 정도일 것으로 분석되고, 항성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전을 하고 있는 생명체가 살만한 행성은 10개에서 20개정도로 압축된다. C박사는 분석 결과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0~20개 정도이면 그 중에 하나에는 충분히 외계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아직 살아있다면, 우주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인류를 보고 얼마나 놀랄지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케이-인텔리전스호의 나머지 대원들도 자신들이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발견할 최초의 인류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흘렀다. 목적좌표까지 한 달이 남았다. 보름 내로 MIU 우주비행기가 케이-인텔리전스호를 따라잡아 공격해 올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 거기에 대한 대비는 완벽하게 되어있고, 각 대원들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 발굴에 대한 임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고, 레이더에 MIU 우주비행기가 잡혔다. MIU 우주비행기 두 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A대령, R소령, R대위는 전투태세에 들어 갔고, 나머지 대원 O박사, G박사, A박사, N박사, C박사, E박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MIU 우주비행기 한 대가 앞서서 다가오고 있고 나머지 한 대는 거리를 두고 앞서가는 우주비행기 보다는 느린 속도로 비행한다. 드디어 공격을 해온다. 앞서오는 MIU 우주비행기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A대령 지휘하에 R소령, R대위는 방어 미사일을 발사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상대 우주비행기를 격추할 공격 미사일을 발사한다. MIU 우주비행기가 속도를 더 높였고, 아슬아슬하게 케이-인텔리전스호의 공격을 피한다. 그런데 앞에서 오고 있는 MIU 우주비행기가 지금의 속도로 계속 비행을 한다면 케이-인텔리전스호와 충돌할 수도 있다. 무언가 그들의 공격형태가 조금 이상하다. 한 대만 매우 빠르게 비행하면서 공격을 하고, 나머지 한 대는 느리게 비행하고 공격도 하지 않는다. 그 동안 여유롭게 대응을 하던 A대령은 레이더와 적의 비행속도를 다시 확인한 후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A대령은 다급하게 R소령과 R대위에게 방어용 미사일과 공격용 미사일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케이-인텔리전스호의 다른 대원들도 전투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술렁이기 시작한다. 적이 쏜 모든 미사일을 격추했고, 공격용 미사일 한 대가 MIU 우주비행기 아랫부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미사일을 맞은 부분에서 불꽃이 튀더니 잠시 후 회색 연기를 내뿜는다. 그래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케이-인텔리전스호를 향해 돌진한다. 분명 자살 공격이다. 자살 테러는 역사책에서나 보았지,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우주시대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MIU의 우주비행기가 무수히 많은 미사일을 쏘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미사일을 쏘는 이유는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케이-인텔리전스호와 충돌할 때까지 자신들의 우주비행기가 격추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방어하고는 있지만, 이대로 있으면 1분도 안되어 MIU의 우주비행기와의 충돌할 수 밖에 없다. MIU 우주비행기와 충돌하면 케이-인텔리전스호는 산산조각이 날것이다. 케이-인텔리전스호의 대원들은 탈출을 하기 위해 우주복을 다급하게 갈아입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C박사는 자기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C박사와 E박사는 탈출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서로 부둥켜 안고 기도를 한다. 나머지 대원들도 우주복을 갈아입기를 포기하고 울거나 기도를 한다. C박사는 기도하다 말고 밖을 보았다. 적의 우주비행기가 육안으로 보인다. 충돌직전이다. 그때 갑자기 섬광이 번쩍하더니 케이-인텔리전스호를 향해 돌진하던 MIU 우주비행기가 폭발했다. 충돌직전에 폭발하는 바람에 케이-인텔리전스호는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
“적의 우주비행기가 갑자기 폭발했어요. 다들 보세요.” C박사가 외쳤다.
다들 엎드려 죽기만을 기다리며 기도를 하던 대원들은 C박사의 말을 듣고 밖을 보기 시작한다. 밖에는 강한 빛을 발하는 구형태의 비행체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비행체는 방향을 유선형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직각, 둔각, 예각 형태로 바꾸면서 움직인다. 순식간에 MIU 우주비행기 나머지 한 대도 격추 시켰다. 그런 다음 그 비행체는 방향을 틀어 케이-인텔리전스호를 향해 광선 같은 것을 쏘았다. 그 광선을 맞은 케이-인텔리전스호는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다 완전히 정지했고, 내부의 모든 등들이 깜박깜박하더니 잠시 후 시스템 자체가 멈춰버렸다. 내부의 모든 등이 꺼지면서 실내가 어두워졌다. 케이-인텔리전스호 내부 중력 시스템도 작동이 멈추면서 대원들이 공중에 둥둥 뜨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대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고 적막만이 흐른다. 이때 A대령은 일단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전 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두운데다 무중력 상태여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내부에 산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잠시 후 누군가 “컥’ 소리를 내면서 기절했다. “컥” 소리를 듣고 다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 둘씩 “컥” 소리를 내며 기절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C박사가 눈을 뜬다. 편안하게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MIU 우주비행기와 전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C박사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있는 곳은 고급 호텔인 것 같다. 매트리스의 쿠션이 단단한 침대에 앉아 있다. C박사는 일어나 창문으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C박사가 있는 방은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풍경이 지구와 엇비슷해 보이지만, 지구가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 볼 수가 있다. 낯설게 생긴 건물과 나무들이 보이고,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 하늘을 날아 다닌다. 날아다니는 새들 중에는 크기가 타조만한 것도 있다. 한 쪽 벽에는 커다란 TV 같은 것이 걸려있다. 갑자기 TV가 켜졌고 화면에는 E박사가 보여주었던 네안데르탈인과 닮은 생명체가 나타났다.
“잘 주무셨나요?”
말을 한다. 그것도 한국 말을 한다. C박사가 발견했고 E박사가 분석했던 바로 그 DNA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종으로 보인다. C박사는 우리가 결국 살아있는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놀라셨군요. 잘 주무셨나요?” 네안데르탈인이 C박사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C박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는 당신들이 찾고자 했던 살아있는 외계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입니다. 당신이 있는 방은 지구와 같은 중력으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 행성은 지구보다 중력이 5배가 큽니다.”
“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죠?”
“다른 사람들도 C박사님처럼 각자의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다들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얘기를 잘 들으세요.”
“네. 그런데 제가 여기에 어떻게 왔죠? 그리고 당신들은 누구죠?”
“이제부터는 듣기만 하고, 질문은 나중에 하세요. 저는 당신이 찾은 화석의 DNA와 같은 종의 생명체가 맞습니다. MIU로부터 공격 받고 있는 당신들을 우리가 구해서 이 행성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당신들은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를 찾았습니다.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죠? 그러니까 당신들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외계행성에 와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행성이죠. 우리 종은 하나의 본 행성과 열두 개의 위성행성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성행성 중 5개는 인공행성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분석했던 운석은 우리가 지구로 보낸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지구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구는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든 실험실에 불과합니다.”
“네? 지구가 실험실이라고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C박사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화면 속 네안데르탈인이 단호하게 말한다. “일단 듣기만 하세요. 다시 말하면 지구는 생명 현상의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설계해 놓은 우리의 실험실입니다. 영장류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그들의 행동, 언어, 문화, 성, 지능, 도덕성 등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달해 나가는지에 대한 연구를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당신들이 부르는 학명인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비교를 통해 지능과 생존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와 닮은 네안데르탈인을 호모사피엔스보다 체격이 더 크고, 근육량도 더 많고, 지능도 조금 더 높게 유전자를 조작했습니다. 대신에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의 개체가 무리 지어 살고 협동도 더 잘 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고요.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보다 네안데르탈인이 생존경쟁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지구의 지배적인 영장류는 네안데르탈인이 되지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큰 무리를 짓고 살아가던 호모사피엔스가 지능이 더 높은 네안데르탈인보다 언어 발달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어휘와 표현력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해졌습니다. 의사소통 능력이 더 뛰어나게 되다 보니 호모사피엔스는 우리가 유전자에 조작했던 집단의 규모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집단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어발달로 사회성이 훨씬 더 뛰어나게 된 호모사피엔스가 지능이 더 높은 네안데르탈인과의 생존경쟁에서 압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패한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지능은 지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지능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바라본 매우 협소한 개념이었다는 교훈을 얻었죠. 지능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시점에서 실험을 중단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단하지 않고 호모사피엔스가 문명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지 계속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는 놀랍게도 여기 살고 있는 우리보다 과학기술을 훨씬 더 빠르게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우리가 13개의 행성을 가지기까지 대략 5,500만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지구, 달, 화성 이 세 개의 행성에서 살아가기까지 800만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호모사피엔스의 발전 속도를 보고 우리는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하였습니다. 지구에 우리의 유전자를 보내면 호모사피엔스가 얼마나 빨리 우리를 찾아 올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들은 훨씬 빨리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즉 당신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위협이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문제는 호모사피엔스의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지구, 달, 화성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실험실이 말이죠. 많은 비용을 들여서 만든 실험실을 영구적으로 못 쓰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이유로 우리는 실험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를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또 우리의 실험실을 완전히 못쓰게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호모사피엔스만 절멸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들이 망쳐놓은 우리의 실험실을 복원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호모사피엔스를 납치해 와서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는 그대로 두고 호모사피엔스만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고통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C박사는 스크린 속 네안데르탈인이 하는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인간보다 더 지적인 생명체가 같은 시간대의 우주에 살고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저들은 인간은 자신들이 유전자를 조작한 생명체라고 말을 하고 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C박사가 묻는다. “지금 한 말은 당신들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 죽여버린다고요? 보아하니 당신들은 우리보다 과학기술도 뛰어나고 고등한 생명체인 것 같은데 그렇게 한 종을 절멸 시켜도 되나요?”
“왜 안되죠? 그건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십시오. 당신들도 필요하면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실험하던 동물이나 기르는 가축을 살처분하잖아요. 그거랑 뭐가 다르죠? 우리도 우리 종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할 뿐입니다.”
C박사는 할 말을 잃었다. 둘 사이에 한 동안 침묵이 흐른다.
말문이 막혀 멍하니 있던 C박사가 어렵게 입을 뗐다. “그그.. 그렇다면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방법이 있나요?”
“우리는 50년 후에 호모사피엔스를 절멸시킬 예정입니다. 앞으로 50년이 되기 전까지 지금 살고 있는 태양계 밖에서 당신들이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아서 이주하면 됩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며칠 후 지구로 돌아 갈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TV 화면이 꺼지면서 네안데르탈인도 사라졌다.

케이-인텔리전스호는 달에 도착했고, 대원들은 모두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전 인류는 혼란에 빠졌다. 50년 안에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한다니,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와 새로운 행성을 찾으려고 각 국가가 치열하게 경쟁을 했던 것과는 달리 협력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국제외계행성탐사기구(IEPEN) 설립이 추진 되었고, 대부분의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을 했다. IEPEN를 설립하자마자 전 인류를 이송할 수 있는 우주비행기 생산에 들어갔다. 3년 동안은 인류가 살아갈 만한 후보 외계행성 탐색에 전념하는 계획을 세웠다. 3년~15년 간은 탐색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후보 외계행성들에 동시다발적으로 탐사팀을 직접 보내서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15년 안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15년~40년 동안은 새로 발견한 행성에 주거, 상하수도, 도로, 발전소, 학교, 병원, 공장, 공항 등의 기본 시설을 건설해 나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35년~45년사이 10년에 걸쳐 전 인류를 완전히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수립하였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50년안에 인류는 새로운 행성으로 완전하게 이주가 가능하다. IEPEN는 외계행성 발굴, 이주 계획이 확정이 되자마자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외계에 살고 있는 네안데르탈인은 인류가 새로운 외계행성을 발굴해 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가 50년안에 절대로 새로운 외계행성을 발굴하고 이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협력을 해서 진행해 나가는 것을 보니, 충분히 발견하고도 남을 것처럼 보였다. 네안데르탈인은 20년을 지켜보았다. 10년만에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였고, 호모사피엔스는 그 행성에 기간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가 세웠던 계획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인류의 과학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인류의 가속화된 발전 속도는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더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정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이제는 정말 실험을 중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인류가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기 전에 절멸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C박사는 어느덧 50대 초반이 되었다. 살아있는 외계생명체의 단서를 최초로 발견한 C박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20년 동안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C박사는 정부 신설부처인 외계이민과학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축하도 할 겸 C박사와 E박사는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함께 먹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계획했던 것 보다 훨씬 빨리 인류를 절멸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모른 채, 둘은 인류 생존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있다.

1년 후, 네안데르탈인은 지구, 달, 화성 지역 곳곳에 수많은 폭탄을 동시다발적으로 투하하기 시작했다. 폭탄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떨어진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부서지고, 도로가 파괴되어 간다. 지구는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른다. 폭탄은 떨어짐과 동시에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 후 하얀 가루를 분사시킨다. 폭탄에서 나온 가루는 바람을 타고 넓게 넓게 퍼져나간다. 그 하얀 가루는 도시를, 산을, 숲을, 사막을, 바다를 뒤덮어가기 시작했다. 폭탄이 터지고 삼일 만에 지구전체가 하얀 가루로 뒤덮였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가루가 지구, 달, 화성을 가득 채웠다. 가루를 마신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가루를 마시고 쓰러진 사람들은 얼마 있지 않아 몸에 불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미세하고 무거운 하얀 가루는 땅속으로도 파고들어가 지하 방공호에 숨은 사람들도 공격한다. 지구, 달, 화성에 있는 사람들 중 그 가루를 마시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생명체들은 그 가루를 마셔도 치명적인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인간에게만 치명적이다. 폭발로 희생된 동물들이 조금 있기는 했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각 행성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은 폭탄이 터지고 하얀 가루가 뒤덮이는 변화로 극한의 공포에 떨고 있다. 동물들의 생활이 멈추었다. 폭탄이 터지고 열흘이 지나자 하얀 가루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가루가 가라앉으니 시야가 점점 확보되기 시작한다. 시야가 확보가 되었지만 동물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며칠이 더 지나자 배고픈 동물들이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동물들은 지구에 살아있는 인간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생동물들은 인간이 살던 도시와 농촌으로 몰려 들어왔고, 인간과 함께 살던 동물은 그들의 먹잇감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서서히 퇴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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