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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의 사정>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생일조차 챙기지 않는 그 정도의 무지로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마트에서 일하고 혼자서 방에 틀어박히는 여자. 소년에게 엄마란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앉히고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소년은 그것이 짜증 났다. 내가 잘못한 게 뭐지. 여자는 신이 나 보였다. 자신을 혼내는 게 어쩌면 저 여자의 유일한 낙이 아닐까.

 

컴퓨터로 하는 게 뭐니?

 

소년은 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것이 없다. 의무가 없다. 왜 이야기해야 되지. 여자는 엄하게 말하였다.

 

만남 채팅이 뭐 하는 건지 아니?

 

어색한 공기. 무거운 분위기. 찌른다. 눌리고 압박한다. 소년은 그런 느낌이 싫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느낌들을 좋아할까. 도망치고 싶다. 소년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너 누구 만나니?

 

몰라.

 

소년은 뛰쳐 나갔다. 방으로, 세계로, 빛으로. 안녕. 회신되지 않는 고장 난 신호기로.

 

당장 이리 안 와!

 

비명. 여자가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파진다. 병이 깊어진다. 찌른다. 무언가, 무언가. 소년은 자판을 쳤다. 보지도 않고서 충동적으로. 자신은 신과 약속했다. 어떤 약도 들지 않는 지독한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불쌍한 아이. 소년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년은 죽고 싶었다.

정말 그러니, 얘야?

 

 

<스바루의 소원>

 

경찰서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마트로. 밤새 공원에서 아들을 지켜보았다. 집을 뛰쳐나간 아들을 그녀는 숨이 차도록 쫓았다. 순찰을 돌던 경관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녀의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얇은 잠옷을 걸친 그에게 밤바람은 차가웠고 매서웠다. 여자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였다. 내가 그 애를 너무 몰아붙인 걸까. 기분이 좋지 않다.

 

안녕하세요, 마사코 씨!

 

정육 코너에서 일하는 점원. 안녕하세요. 어느 코너에서 일하는 누구 씨. 누구 씨에서 누구 씨 까지. 그녀는 인사만으로 마트를 한 바퀴 돌았다.

 

마사코 좋은 하루야.

 

그 동료. 만약 동료가 그 말 자체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어제, 이야기하던 거 말이야.

 

아, 주문은 했나?

 

응?

 

저번에 주문해야 됐던 거.

 

지친다. 그녀는 이미 머리 아픈 문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마트의 개선사항이나 코너의 누구누구가 주식을 했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다. 그 편이 쾌활한 마사코 씨를 보이기 편할 테니까.

 

피곤해 보이시네요.

 

고타는 이번 달에 새로 들어온 알바생이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우왕좌왕하던 때도 있었으나 일을 곧잘 배웠고 사람들을 따르기도 잘했다. 그 역시 우리 마트의 쾌활한 마사코 씨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고는 하였다. 그녀는 그런 고타가 기특했다. 우리 아들도 저 애처럼 듬직했다면 어땠을까.

 

피곤할 때는 미역이 좋대요.

 

어머, 그러니.

 

우스갯소리나 잔잔한 농담. 그녀는 마음을 놓았다. 만약 우리 아들도 저 애처럼.

 

얘, 그렇게 하면 안 돼!

 

고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바라본다. 게와 톱밥을 쌓은 나무 상자는 보기에 가벼워 보이나 꽤 무겁다. 밑에서 부 터 받쳐 들지 않으면 초심자들은 엎기 쉽다. 그녀는 타이르듯 고타에게 충고해주었다.

 

역시, 마사코 씨는 친절하시네요.

 

그럼.

 

웃음. 농담. 몇몇 개의 색깔. 그런 바람이 있다. 아들과 터놓고 웃는 그런 날들을 그리는 바람 말이다. 그녀는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마사코 씨, 진짜 소원을 알려 줘요.

 

 

<마사코의 소원>

 

병원의 창으로 짙게 검정이 칠해져 눈앞이 가리워진다. 소년은 자신의 유치함을 알았다. 세계니, 죽음이니, 신이니, 하는 그런 말들. 그래서 그는 그 스스로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들의 눈을 감게 해 자신을 보지 않게 하자. 자신의 소원은 곧 그 여자의 소원이 될 것이다.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못난 것이니까. 사람은 본디 자신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제집에 두지 않는 법이다. 그 여자도 분명 나에게 눈치를 주었을 것이다. 둔해 빠진 자신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지. 어제의 일은 나에게 한 경고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 여자는 한계에 다다라 나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겠지. 나의 소원은, 나의 바람은.

날 사라지게 해줘.

소년이 소원을 빈다. 바람을 빈다. 온통 물든 깜깜함이 소년의 소원이었고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줄 의무가 있다.

얘야, 네 진짜 소원을 비렴.

 

병원의 창으로 소년은 스스로가 별똥별이 되길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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