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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칼에 찔리는 해적왕

2019.12.02 04:3112.02

나는 오늘도 칼에 찔린다. 감각이 없다. 그것들은 진짜 칼이 아니니깐 장난감 칼들에 찔리고 또 찔린다. 내가 사는 곳은 보드게임카페 하루에도 몇 십 명의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운다. 다행인 점은 감각이 없다는 것. 나는 얼굴만 진짜고 몸통은 다른 사람들이 인위로 개조를 해놓은 것이다 나보고 험악하게 생겼다고 조롱한다. 조롱은 아니지 험악한 인상 그것은 해적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카리스마 표정 하나로 적들을 제압 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해적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다.

 

나는 원래 태평양 앞바다를 누비던 해적이다. 태평양 뿐 아니라 여러 바다를 누비며 금은보화를 손에 넣던 악명 높은 해적이다. 내 몸값은 또 얼마나 높았던가. 내 목을 가져가면 한순간 부자로 인생역전 할 수 있을 정도 이었다. 그걸 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 목을 가져가기 위해 나와 싸웠고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목을 맸다. 그걸 상징인 것처럼 뱃속에 채워 넣었다. 인육 정도는 맛있게 먹어줘야 진정한 해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월든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 그것이 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목이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른다. 아프다. 아파. 내 몸에서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있는 부분이다.

 

그날의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를 만든 사람은 어떤 중년의 아저씨다. 1차 가공 전 나를 이상한 약품냄새가 나는 흐르는 물어 박박 씻긴다. 얼굴에 떨어지는 물이 매우 차갑다. 이따금 물이 튀어 입안으로 들어간다. 쓰다. 혀끝이 마비되는 듯하다. 잠시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을 잃는다. 눈을 뜨니 움직이는 기계 위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목들이 움직이는 기계 위에 놓여 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움직여 보고 닦아 본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목들이 일제히 상자에 담긴다. 어떤 아저씨는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이리저리 훑어본다. 그러고는 수건 같은 걸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갈긴다. 합격 소리와 함께 다시 기계 위로 놓이고 상자에 담긴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목들의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에 못 가줘 미안하구나. 해적에게 동료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적일뿐이다. 부적합 목들은 다른 기계로 옮겨진다. 그 기계는 아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잠시 뒤 상자 안으로 쏟아지는 건 가루들뿐이다

 

나도 새로운 기계 안으로 옮겨진다.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머리들이 뭔가 이상했다. 달라보였다.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공기가 가득 찬 느낌을 받는다.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기계 안에서 나와 다시 상자에 실린다.

 

펑 펑 펑 사람들은 나를 튕긴다. 본인들이 튕겨놓고 굉장히 불평을 늘어놓는다. 내가 튕기면 튕길수록 짜증 가득한 얼굴들이 늘어간다. 정작 짜증내고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 같은데 말이다.

 

나의 모습을 보고 충격은 받은 건 내 자신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작다. 갑자기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기계가 마술이라도 부린 걸까. 작아 진 나는 상자에 쏙 들어간다. 다시 기계 위에서 검사를 받고 검사가 끝난 나는 다시 상자에 넣어져 쌓여있다.

 

 

해적이 되기로 결심한 건 초등학생 때 이었다. 마냥 해적들의 삶을 동경한 건 아니었다. 강해 보이던 해적의 모습에 반한 거뿐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왕따였다. 열쇠도 매우 작고 수영도 못했다. 놀려 먹기 딱 좋은 조건은 모두 다 타고 났다.

처음 사람을 죽인 건 고등학교 때 이었다. 그때 나를 괴롭히던 무리의 대장 목을 칼로 내리쳤다. 통쾌함이 밀려왔다. 짜릿했다. 그 순간 해적이 돼야 갰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 로면 물 따윈 두렵지 않았고 누구든 내 손에 걸리면 목을 내리 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다 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보물 따윈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강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해적을 죽이는 걸로 나는 강함을 증명 했고 자른 목을 먹으면 각성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동료까지 모두 죽이고 나서야 내 목이 댕강 하고 잘렸다

칼이 꽂힌다. 수많은 칼이 내 몸을 찌른다. 내 몸은 칼에 지배를 당했다. 칼을 꼽는 저 사람들이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칼이 몸에 슉 들어온다. 내 머리는 또 다시 튕긴다. 반복되는 삶이다.

 

 

쌓인 상자를 하나 둘 옮긴다. 다시 기계 안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몸통과 연결시킨다. 몸통은 무겁다. 나무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플라스틱이다. 나는 몸통과 연결된 뒤 다시 상자에 가지런히 담긴다. 상자에 옮겨진 뒤 다시 개별 포장이 된다. 그 후 다시 상자에 담긴 후 차에 실린다.

 

 

내가 이곳에 온 지 6개월째다. 처음 나를 개시한 사람은 커플이었다. 커플은 사이좋게 칼을 꽂는다. 커플이 왜 이런 게임을 하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여자의 칼이 꼽히는 순간 머리가 튀어 오른다. 나는 정확히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여자는 아프다는 듯 남자에게 애교를 피고 뭐 이런 위험한 장난감이 있냐며 타박을 들었다. 나를 싫어하는 건 그 커플만은 아니었다. 커플들은 죄다 나를 싫어했다.

 

 

바다 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출렁이는 파도와 싸워야 했고 상어나 고래와 싸우기도 하고 적들과 싸우기도 했다. 만화 속 해적과 삶은 전혀 달랐다. 아니지 조금은 비슷하기도 할 것이다.

 

 

나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번 튕기는 삶이니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내 진짜 삶은 무엇인가. 피 비린내 나는 인생을 살았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인생 그래서 고통 받는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나는 다시 상자에 들린다. 버릴 물건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또다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 상자를 든 보드게임카페 사장이 계단을 내려간다. 상자 맨 위에 있던 내 목이 바닥으로 떨어져 대굴 굴러간다. 도로에 떨어진 나는 힘이 없다. 다시 굴러갈 수도 없다. 공장으로 간다면 살 수 있을까. 사 차선 도로에서 나는 얼어버렸다. 그 순간 바다를 누비던 해적왕은 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달리는 차의 바퀴에 완전히 찌그러진다. 피는 안 나오지만, 고통은 존재한다. 아프다.

 

 

매일 걷어차이는 왕따의 삶도 피비린내 진동하던 해적왕의 삶도 지금 이렇게 죽게 돼버리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동경하던 건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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