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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2020.06.30 21:3506.30

 미결의 공간이 있다. 그곳은 설계되다만 오래된 미로다. 나는 그곳에서 휠체어의 휠을 굴린다. 사방은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져있고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종종 사람들이 서로를 찾는 목소리가 얇은 벽 너머로 들린다. 벽은 구획을 나누는 칸막이 수준에 불과하다. 닭장과도 다름없는 기나긴 칸의 마디마디를 나도 모르는 누군가들이 오가고 있다. 뜻모를 허기에 굶주린 이들뿐이나 어디에도 음식은 없다. 이럴 때는 사람끼리도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다. 나같은 경우는 특히.

 

 사람들은 미로의 정체를 반추하며 서로 상의할 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믿었다. 이곳 어딘가에 숨겨진 괴물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나가는 길이 설계되지 않았거나 우리 자체가 괴물이라는 생각이다. 산을 오르다 미로에 갇혔다는 어느 남자는 자신의 밧줄로 출구와 입구를 기억해낼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의 뒤를 쫓아 사라진 이들은 그의 가방에서 나오는 밧줄에 이상할 정도로 끝이 없다는 까닭으로 그를 죽였다. 해결을 구하며 테세우스를 자처했던 이들중 타인의 손에 죽지 않은 이들도 드물다. 세상에 아직 죽임당하지 않은 테세우스만 있을 뿐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이는 없다. 우리가 미로속에서 거의 영원에 가까운 세월동안 사라지지 않는 몸이라 필연적으로 빠른 끝을 보는 방법이 살인 뿐이기 때문이다. 해도 뜨면 저물고 영웅은 나타난 뒤 반드시 몰락하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죽은 이들의 핏자국마저도 금세 사라져 이곳은 언제보아도 구분할 수 없는 길과 모퉁이의 연속이다. 같은 길을 지나가게되는 일마저도 드물고 알 수도 없다. 나의 휠체어만이 녹슬어 간다.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으면 나는 미로의 장식물이나 다름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를 이정표로 삼게 될까?

 

 돈을 받고 세상에서 사라지길 결심한 사람들은 살아생전의 기억 대부분을 없애길 바랐다. 내가 아직 바깥 세상의 대부분과 미로의 발생이유를 자각하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사람에게 주어진 마지막 장소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서다. 실험대상으로 선정되었을 때 우리들 중 대부분이 기뻐했었다. 자기 인생을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이 대다수였다. 주변인에게 실험에 참여한 대가로 돈을 보낼 수도 있었다. 이젠 다들 그런 일들을 잊었다. 안락사 도중 뇌의 명멸하는 빛속에서 무한히 늘어나는 사람의 자각을 관측하는 실험. 대상자에게 그것이 얼마만큼의 불행일 수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모든 걸 잊고 미로를 헤매는 마음이 삶보다야 가벼우리라고 다들 생각했던 거다. 나는 부모의 권유로 실험에 지원했으므로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삶의 고통이 내게 분명한 힘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한바퀴 굴릴 때마다 내 세상이 원주만큼 전진한다. 나는 굳은살이 박인 손끝으로 손잡이를 더듬는다. 새하얀 세상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지 않다. 칸막이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흥밋거리 라디오쇼처럼 들어야 할 정도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불분명하다.

 

 "살려주세요!"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면 익숙한 목소리들의 대답이 뒤따른다.

 

 "조용히 좀 해!"

 

 "안 죽으니까 걱정말아요!"

 

 "내가 갈게요, 거기서 기다려요."

 

 "기다리긴 뭘 기다려. 어서 멀리까지 뛰어요!"

 

 기다리라는 목소리는 사실상 사신의 목소리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나 눈에 띄는 존재가 있으면 꿈을 끝내주겠다며 쫓아 다닌다. 그가 나처럼 조용한 사람의 존재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기껏 환상속인데도 걷는 방법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등산을 하던 테세우스나 미노타우로스를 자처하는 저 사람도 밧줄과 무기 정도는 갖고 있는데. 내게 한결같은 나의 일부는 꿈속에서조차 휠체어다.

 

 오랜 옛날에 서른번째 모퉁이에 마주쳤을 때 어떤 여자를 만났었다. 그와 함께 다니면서 인생 몇안되는 친구를 사귄 기분이었다. 그의 이름을 자주 부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제는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미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곳에 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기억을 갖고 이곳에 온 몇 안되는 사람으로서 현실세상을 원망하곤 했다.

 

 내가 그 마음을 따라잡아보려고 내 인생을 일부러 고통스럽게 묘사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걷지 못했던 탓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불합리한 일들도 많이 겪었노라고. 내 몸을 부정하며 인정한 적이라곤 없다는 듯이. 그는 그런 내게 한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의 부정과 불행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는 자신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과 함께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를 위해서 나는 불행했다. 이제와선 내게 무시당하며 나를 세상에 굴러다니게 해주었던 나의 휠체어가 안쓰럽다.

 

 그는 어느날 잠든 나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내 불행을 함께할 자신이 없어졌다고 편지에 적어두었다. 미로에서 귀한종이를 함부로 썼노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다른 용도로라도 쓸 수 있었으면해서 편지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또 모퉁이를 돌았다. 편지의 내용은 모두 외웠다. 편지와 다시 마주친 경험은 없다. 그를 다시 만난 적도 없다. 가끔은 그가 그립지만, 기억하는 게 몇 없는 탓에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홀로 미로를 다니면서도 다양한 무리를 마주쳤다. 나는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했다.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질서정연한 미로속 출구 없는 길들을 나다니는 인간들은 나보다도 못할 때가 많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원래는 그들보다 못났다거나 못나야만 친구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꼴로도 자신들과 비슷한 특징을 찾아헤매는 게 보편적 인간들이었다는 뜻이다. 그저 무수한 경험으로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막연한 무력감과 강인한 정신으로 영원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어느 무엇도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세 칸쯤 떨어진 곳에서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단말마가 들렸다. 얼마나 세월을 보내다 그리되었는지 무수한 목소리가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살았어도 아직 죽고싶지는 않았다. 망각한 인생들은 새하얀 벽을 바라보다 미쳐가기 마련이었다. 나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오랜 옛날을 되새겼다. 내게 손을 내밀고 마주잡던 그에게서 나던 마른 나무냄새,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 놀이공원에 가서 가만히 한참을 기다리는 시간이 남들에겐 익숙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머리 위로 솟아 오르던 밝은 불꽃놀이. 이따금 불행했을지언정 가득차있는 나의 기억은 내 생이 이어지는 동안에만 무사할테니.

 

 현실이 아님에도 그를 본 순간,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미노타우로스를 닮은 그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눌어붙은 검은 핏자국이 모퉁이를 돌아나타났다. 나를 찾으러다닌 게 분명했다.  가느다란 입매로 그가 내게 물었다.

 

 "죽고 싶지 않나요?"

 

 아직까지도 그에게 한번도 이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그는 괴팍해보일지언정 강해보이진 않았다. 목소리로만 들어왔던 우리의 미노타우로스. 나는 내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죽고 싶지 않으니 죽이지 말아요."

 "휠체어가 없더라도 그런가요?"

 

 웅크리며 휠체어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지난 시간 내내 왜소한 나의 다리와 다르게 팔은 그 나름대로 튼튼히 나를 받쳐주었다. 그렇다면 기력이 다하는 데까지 그와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장차 미로의 장식물이 된다해도 기어다니는 일쯤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당신 친구가 죽기 전에 당신 이야길 해주었어요. 한평생 가난했던 가족이 병에 걸려서 당신은 치료비 대신 이곳에 팔려왔죠."

 

 멀리서도 그에게선 피냄새가 났다. 그 속에 내가 찾아헤매던 마른 나뭇가지의 냄새도 섞여있으리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친구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 향기에 기뻤다.

 

 "나는 스스로 이곳에 왔어요. 영원과도 같은 삶을 견딜 인내는 내게만 있었으니까."

 

 짓씹듯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회하지 않나요?"

 

 그가 담담히 물었다.

 

 "나는 나와 함께하던 이들을 구한 것 뿐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영웅이라도 되나요?"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말했다.

 

 "나는 영웅이에요."

 

 "순교로군요."

 

 미노타우로스는 고개를 기울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를 엿듣는지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죽음이 찾아오길 바라지만 죽고싶진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고요. 나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의 인생을 구하려고 죽인다면, 당신자신은 누가 죽여주나요?"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내 숨소리가 내 귀에도 거칠게 들렸다. 그가 애매하게 미소지었다.

 

 "기다림이 죽여줄 거예요."

 

 우리는 마주본 채 서로의 시선을 꿰뚫었다. 내가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거둬갈게요."

 

 "그럼 당신은요?"

 

 "내게도 기다림이 있어요."

 

 살아남자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내가 덧붙이자 고민하는 양 서있던 그가 다가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칼을 넘겨 받았다.

 

 "당신이 미노타우로스가 되길 바랄게요. 잘할 것 같네요."

 

 칼을 고쳐쥐며 내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휠체어를 타고서도요?"

 

 "네, 물론이죠."

 

 어쩔 수 없는 동정심에 눈물이 났다. 나의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애가 정말 죽었나요? 나는 물을 수 없었다.

 

 "나는 살인마도, 피해자도 아니에요. 나는 영웅이에요."

 

 떨리는 내 목소리에 꿰뚫린 그가 속삭였다.

 

 "알았어요, 당신은 테세우스죠.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기다렸답니다."

 

 "잘가요."

 

 "고마워요."

 

 떨어지는 핏방울이 새하얗게 지워지는 미로에서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세상은 기나긴 길속이고, 나는 나의 긴 인생이 누군가의 구원임을 알아 당당하다. 미노타우로스의 몸이 사라지는 공간에서 세상도 조금씩 무너져가는 환상을 나는 본다. 내게도 여전히 인생이 있음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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