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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이보오. 예서 묵으려고 하오. 빈 방이 있소?”

춘풍이 부는 계절치고는 제법 더운 바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던 객잔의 점소이는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도,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목청을 돋구었다. 제법 자세가 잡혀 있는 모습이다.

        “네! 있습니다! 몇 분이십니까? 얼마나 계실 건지요?”

더불어서, 식사도 하실 겁니까? 이 질문을 내 뱉으려던 점소이는 그대로 입을 벌리고서 얼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의 주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나, 다른 점소이들도 입을 벌리고서 놀라고 있었으니. 아니 그것은 감탄이라고 봐야 더 맞을 것이다. 절세의 가희가 저리할까? 아니 전설상의 천녀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런 자태이다. 검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구름 같은 모양을 만들면서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게다가, 붉은 입술 사이로 엿보이는 하얀 치아 역시 진주와도 다를 바가 없다. 깨끗한 두 동공 역시, 빛나는 것이 미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그야말로, 절세미녀이었다. 거기다가, 의장 역시 화려한 금빛과 옥빛으로 감싸인 것이 “내, 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임세.” 라는 고백을 내 뱉어도 그대로 믿을 정도의 그러한 이었다. 미녀는 자신에게 향한 시선이 부담스러운 지, 소맷자락을 들어서 그녀의 붉은 입술 위로 가져다 댄다. 불안한 지, 자신의 입 안으로 소맷자락을 집어넣으면서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다. 그 모습마저도 어찌나 가련하고도 아름다운지, 객잔의 모든 이들은 먹던 손길이나, 담소하던 행동도 모두 멈추고 숨을 죽였다.

        “빈 방이 후우. 없는 것인가요?”

또르륵. 굴러가는 그 목소리는 가히 은쟁반에 옥구슬의 굴러감과도 같았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아름다운 소리이었다.

        “나..낭자. 실례했습니다. 이..있습니다. 최고급 방으로 준비하라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그제서 한 시름 놓은 듯, 미녀는 고개를 살포시 숙인 채로 한숨을 내 뱉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고귀한 댁의 아씨임에 분명하건만. 하지만 객잔의 어느 누구 하나 미녀에게 접근하려는 시도조차도 해 보는 사람이 없었다. 객잔에 모이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저렇게 가냘프고 날아갈 것 같은 청초한 미녀라지만, 그녀의 등 뒤에 보이는 가느다란 긴 물체의 정체는 분명히 검의 형태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무림인임에 분명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접근도, 말도 말자. 혹여, 무림에서 나온 사람들의 다툼이 있더라도 모른 척 하자. 이것이 객잔에 모이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진 암묵적인 합의이었고, 커다란 불문율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죄송합니다! 이..이리로 드시지요.”

무어, 또 하나의 불문율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방까지의 안내는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만?”

미녀는 붉은 입술 사이로 한숨을 내 뱉으면서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도 아리따운지, 안내를 자청하고 나선 점소이 이외에도, 흑심을 품고서 나선 다른 //무림인//들도 잠시 멈칫 했을 정도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그들의 방만함을 후회해야 했다. 뼈저리도록 말이다.

        “한 사람이면 됩니다.”

그녀가 이 말을 내뱉었을 때에는 이미 여럿이 한 쪽 팔이라던가, 다리에 피멍이 든 이후이었다. 매우 빠른 타격이었다. 언제 빼어서 내리쳤냐는 듯, 미인의 등 뒤에는 기다란 검이 다시 꽂혀 있었다. 다소, 비릿한 조소가 그녀의 붉은 입술에 머금어지고 나서야, 주점 안의 사람들은 또  하나의 만고불변의 진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말보다는 행동이신가. 가히, 아리따우신 미녀치고는 손속이 매섭지 아니하신가?”

아직은 사내의 목소리라 불리지 못한 변성기 이 전의 낭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주점 안의 사람들은 거침없이 이어지는 소년의 말에 무의식중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과히 고서가 그른 말 이르는 법 없지 않은가. 자고로 미인은 마음까지 미인은 아니다. 령매 그렇지 않은가?”

미녀는 자신에게 거침없이 쏘아붙이는 소년을 차근차근히 훑어 내렸다. 한들한들 부채를 부치고 있던 소년은 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지자, 매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깨끗한 미소가 소년이 머금어지자 단정하고 수려한 그 용모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미녀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고 붙박힌 인물은, 소년이 령매라고 부른 여인이었다. 사실, 주점 안의 사람들은 꽤 출중한 미모를 지닌 소년보다는, 두 미녀에게 시선이 번갈아 가면서 꽂히고 있었다. 령매라고 불린 미인은 화려한 연홍빛 의상보다는, 또렷하게 빛을 내는 금안이 특징이었다. 벽안이라던가, 금안은 그렇게 흔한 눈빛은 아니다. 그 눈빛들이 나타내는 의미는 두 가지 중의 하나이었다. 신수의 화신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신수와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후예라는 것. 두 번째 경우라면 그 차이가 천지차로 나타나게 된다. 높이 여김을 받는 고귀한 인재이거나, 인재감이 못 되어서 쫒기는 사람. 하지만, 금안의 미인은 고급스럽고 화사한 의장으로 봐서는 아마도 쫒기움을 당하는 사람같이 보이지는 아니하였다.

        “소녀의 미모를 이리 인정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자. 소녀의 성은 라(灕)요, 이름은 윤(奫)이라 하옵니다. 공자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면서 소년에게 물어보는 미녀의 시선은 금안의 령 낭자에게 박혀 있었다. 질시어린 시선보다는 감탄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것을 눈여겨보던 소년은 피식 웃으면서 포권을 마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성은 주(珠) 가요. 이름은 유하(儒嘏)라 하오.”

확실히, 초라한 주점 안은 눈부신 두 미녀로 인해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점소이의 목소리도 아주 밝게 통통 튀어나오고 있었다.

        “어서 옵셔. 손님께서는?”

확실히 드문 주점에 이렇게 환한 미인들이 찾아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점소이는 환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주점 안을 돌아보았다. 안내할 탁자를 찾으면서. 하지만 불행인지 요행인지, 비어있는 탁자는 하나 밖에 없었고, 점소이는 그 특유의 손바닥 비비기를 하면서 두 미인 낭자에게 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저기, 아씨들. 그리고 공자님. 탁자가 하나 밖에 없는지라. 괜찮으시다면, 이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같이 앉으심은?”

점소이는 두 미녀와 공자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몸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가장 까다로울 듯싶던, 라윤이 흔쾌히 발걸음을 옮기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이래저래, 주점 안의 소동은 잠잠해진 듯 보였다. 겉으로는 말이다.

        “그래,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무엇이 그리도 더운 지, 주가 소년은 부채질을 느릿느릿 해 대면서 피식 웃어 보였다. 주점 안의 사내들은 그렇지 않아도 두 미녀를 데리고 나타난 소년에게 질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차였다. 반면, 유하가 웃어보이자, 근처의 여러 낭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래. 어디 한번 그것을 먹어 볼까나? 만두하고, 그래. 그래. 죽엽청 있으면 부탁하오. 그래. 새고기 구이도 부탁하오. 어디보자, 그래. 주점에서 추천하는 음식도 한 두어 접시 있으면 내오고.”

음식 주문을 받아 적던 점소이는 귓가에 걸리는 미소를 감추지도 않고서 허리를 숙이면서 “곧 대령합지요!” 라는 말과 함께 빠른 속도로 주방으로 사라져 갔다. 한편, 많은 음식을 시키는 주 공자를 보던 라윤은 한쪽 눈썹을 우아하게 치켜 올리면서 물었다.

        “죽엽청 이라던가, 만두는 추천하는 음식에서 기본으로 딸려 나올 터인데, 무엇하러 따로 시키신 것인지요? 주 공자님?”

곱상한 외모에 설마 그리 많이 먹으려고..? 라는 생각을 포함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유하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거리면서 점소이가 두고 간 따스한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아, 령 매가 매우 많이 먹어서 말이지. 그리고 죽엽청 이라던가 만두를 자주 시키는 터라. 한번 시켜 본 것이오.”

이곳이 북쪽 지방이더냐! 이 말을 내뱉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은 라윤은 애써, 고운 미소를 떠올렸다. 메슥거리면서 올라오는 속내를 참고서 말이다.

        “저, 주 공자의 동생이 되십니까? 령 낭자는? 아니면..?”

라윤의 질문은 서툰 호감을 담은 채로, 유하에게 던져졌다. 하지만, 유하는 점소이가 잽싸게 내오는 만두와 죽엽청을 들기에 정신이 없었다.

        “동생? 아니오. 호오, 이런 맛이었군.”

왜인지, 라윤의 얼굴은 다소 창백해졌다. 하지만 이내 곧 화사한 미소를 띄우면서, 라윤은 유하에게 재차 물었다.

        “그럼 혹여, 주 공자의 정혼자이신지요?”

확실히, 라윤의 입가에 떠올라져 있는 미소는 매우 어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라윤을 흘낏 보면서 유하는 만두를 입 안에 집어넣고서 우물우물 씹어댔을 뿐이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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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ca 03.11.25 02:52 댓글 수정 삭제
    우..엥-. 어째서 제 이름이 이렇게 뜨는 거지요? unica 로 이름을 넣었는데...; 플라이투문..아직 달나라 구경은...쿨럭;
  • No Profile
    진아 03.11.25 11:06 댓글 수정 삭제
    아아.. 수정했습니다.
    가입하면 꼭 이런 증상이 생기네요. ^^;
  • No Profile
    명비 03.11.26 00:45 댓글 수정 삭제
    봐도, 또 봐도 재미나요>.<;;

    ...명비는 어쩌면 좋을런지. 히유융 ㅠ.ㅠ
  • No Profile
    진아 03.11.29 01:47 댓글 수정 삭제
    쓰시면 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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