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모두의 XX 下

2003.11.22 22:0611.22

                                             §

제 3 막. 감기 환자의 등장, 혹은 래비어트 시번의 시련. 그를 따라 방에 들어갔을 때 라비는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여관, 바로 자신의 옆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방을 죽 둘러보았다. 책이 한 쪽 벽을 완전히 메우고 있어서 방은 정사각형처럼 보였다. 라비는 처음에 그 많은 책을 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다가가서 보니 모두 먼지가 잔뜩 앉아있었다. 읽는 것은 둘째로 그렇게 쌓아둔 후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렸다. 제멋대로 널린 잡동사니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이 방의 주인은 넙적하고 네모난 물건이면 모두 가능한 만큼 쌓아올려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체불명의 상자와 낱장의 종이들로 이루어진 오색 빛깔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려는 듯 방 가운데 서 있었다. 이 방에는 창도 없고, 이제 막 닫히고 있는 문틈에서 불 꺼진 복도의 희미한 빛이 들어올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발광 물질이 발라진 것처럼 방 안에는 기기묘묘한 광채가 감돌았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으로 라비는 그 빛이 반딧불이의 꼬리 같다고 생각했다. 그 곳은 방이라기보다 아공간에 떠 있는 견고한 상자 같았다. 감기 환자 또한 장기 체류객이라기보다는 그 방과 함께 태어난 사람 같았고, 좀 더 무례하게 말하자면 그 방에 있는 커다란 잡동사니처럼 느껴졌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라비는 비로소 그 밉상의 감기 환자가 앉아 있는 침대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약이 테니스공만큼 큰가요?”
“물론 보통의 자그마한 알약이지.”
감기 환자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아주 악질에게 걸린 것이다. 저런 남자를 따라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고 라비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조금씩 지끈거리던 머리가 이제는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아파왔다.
심란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복도로 뛰쳐나왔을 때, 그때는 한 시경이었고 라비는 어디로든 나가려고 했다. 아마 동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뛰어나가 어제처럼 헤매었으리라. 램은 층계참에 서서 종업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농담에 종업원이 웃었다. 라비보다는 나이가 많고 램보다는 어린 그 종업원이다. 라비는 방문에 기대어 있다가 두 사람이 내려간 후 복도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성이 난 듯 거친 발걸음으로. 음식을 잘못 삼킨 것처럼 답답증이 일었다. 아마 램이 떠날 준비를 서두르는 탓이거나 로테가 약혼자를 만나러 간 탓일 테다. 아니면 로테가 약혼자를 만나러 갔는데 램이 지도나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일이 자신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만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혀 무관한 다른 일 때문일까. 그는 짧은 복도를 몇 번이고 돌았다. 그러다가도 금방 기운이 빠져 걸음을 멈추고 멍청히 서 있기 일쑤였다.
감기 환자가 등장한 것은 열 몇 번째 왕복 중 라비가 그의 방을 지나간 직후였다. 어이, 하고 부르며 그는 발작적인 기침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배를 움켜잡고 괴로워했다. 눈물을 닦고 옷을 털고 허리를 두들겼다. 그런 일련의 동작이 어딘가 연극적으로 보여서 라비는 오히려 불쾌해졌다. 그는 괜한 허식을 보이는 사람에게 뿌리 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라비의 표정이 어떻든 남자는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대체 왜 그렇게 쿵쿵대며 걸어 다니는 거지? 라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감기 환자는 살짝 인상을 쓰며 그 바람에 약을 떨어뜨렸어, 눈이 어두워서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하고 설득하듯 자근자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듯 라비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홍채는 거의 검은 빛이 도는 푸른색으로 그 자체가 커다란 눈동자처럼 보였는데 기미가 낀 노란 얼굴과 대조되어 몹시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 약을 찾으라는 건가요? 글쎄, 말하자면 그렇지. 라비는 다시 남자를 훑어보았다. 추한 용모에 가려 있던 색 바랜 파자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의 여행 경험을 비추어 보아 이런 사람들은 빚쟁이처럼 끈질기다.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놔주지 않는다. 라비는 일단 잘못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얼른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순순히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저 침대 밑을 살펴보고, 정말 보이지 않네요? 이럴 작정으로. 방이 어떨 것이라고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정말, 억지 좀 쓰지 말아요.”
“억지? 내가?”
“그렇잖아요. 이런 방에서 어떻게 손톱만한 알약을 찾겠어요?”
억지스러운 상황을 불러온 것이 자신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라비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그 탓에 약이 하나 뿐은 아닐 텐데, 하는 목소리는 연약하게 들렸다. 아무튼 예의를 갖추어 침대 밑을 살펴보려 해도 그 방에는 시트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기 환자는 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말 억지를 부린 건지, 또 약은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내려는 것처럼. 이쯤에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비는 천천히 감기 환자에게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때 감기 환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네 동료는 어딜 간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라비는 순순히 대답했다.
“메일 보내러 갔어요. 좀 전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군? 그래서 심란해 진 건가?”
거의 문께에 도달해 있던 라비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린 소년의 의무감, 예의로 눌러 두었던 불쾌감이 터져 나와 전신을 감쌌다. 저기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 앉아 있다, 라는 의식이 머리 속을 점령했다. 그는 문에 등을 붙이고 서서 뒷짐 진 두 손으로 문고리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보고 감기 환자는 시트 아래로 내려놓았던 두 발을 느슨한 십자모양으로 꼬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거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라비가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쿵쾅거리며 복도를 걸어 다녔잖아.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 과연 그랬어.”
“약은, 사다드리겠어요. 하지만 그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할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 글쎄. 난 그냥 네가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라비를 향해 의미심장한 두 단어를 입술로 만들어냈다. 라비는 손에 힘을 주어 문고리를 돌렸다.
“아무래도 당신은 산책을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방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밖에 나오자 나무 냄새 섞인 공기가 한껏 폐부로 들어와 겨우 숨이 트였다. 답답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라비는 침을 삼키며 먼지 앉은 문 장식을 바라보았다. 감기 환자의 마르고 거친 손이 당장이라도 안으로 잡아당길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그러나 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한 걸음 남겨두었을 때 뒤쪽에서 문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난 네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 곳에 있었어. 기억해 둬, 시번.”
라비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후였다. 벽 너머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다우너 여사에게 몇 가지 잔소리를 듣고 램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것 같아 다른 여관으로 옮기려고 하면 어머니처럼 잘 대해주고, 안심하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야멸찬 태도로 돌변했다. 그녀가 뺨을 때린다해도 할 말이 없지만 사서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라비가 어떻게 북쪽의 섬을 알았는지는 지금도 미지수였다. 술김에 무슨 말을 지껄였다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방으로 올라와 그는 지친 듯 의자 위에서 몸을 움츠렸다. 하루 종일 방안에 고여 있던 공기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거기서는 기분마저 침전시키는 냄새가 났다. 램은 팔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열기와 소금기 섞인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러자 어서 여기를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그의 동료는 침대에 걸쳐진 듯 누워 있었다. 한쪽 다리만 바닥에 대고 있는 모습이 위태롭고, 한편으로는 느긋해 보였다. 그것은 라비가 여정에 지쳐 낮잠이 들 때 자주 취하는 포즈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한 손은 눈 위에 얹고. 그러면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램은 영락없이 그가 깊은 잠에 빠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라비가 낌새도 없이 일어났을 때는 어어, 하고 놀라고 말았다.
“자는 줄 알았는데.”
라비는 기지개도 켜지 않고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 창 너머를 바라보는 눈에 아련한 빛이 감돌았다. 이런 때 그의 눈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져서 마치 다른 세계를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좀 피곤했던 것뿐이야.”
“어디 아프니?”
“그게, 그건 아닌데-”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싫증이 난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램은 침대의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 동료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손목에 따뜻한 숨결이 와 닿는다. 열이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라비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아래서 벗어난 후 의자 위로 달아났다. 램은 여전히 침대 한 편만을 차지한 채 입을 열었다.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며. 그러다간 진짜 큰일 날 거야, 농담 아냐.”
“그런 얘긴 누가 해?”
“로테 어머니.”
라비는 한쪽 무릎 위에 턱을 괴고 바닥을 응시했다. 그의 말을 곰곰이 살펴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곧 시들해졌는지 등을 쭉 펴고 품에 안기듯 의자에 기대었다.
“메일은 잘 보냈어?”
“잘 보내고 할 것도 없지.”
그 때 열풍이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생선 비린내와 녹은 버터 냄새를 함께 품고 있는 바람이었다. 둘은 잠시 입을 다물고 서로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뺨을 달구는 바람을 맞았다. 거기에 대항하려는 듯 라비가 후우, 하고 깊이 한숨쉬었다.
바람이 지나가자 램이 침대를 가로질러 라비 앞으로 다가왔다.
“그보다는, 돌아오는 길에 그 남자를 보았어.”
“그 남자?”
“로테의 약혼자야.”
“아아….”
라비는 입을 우물거리며 동료를 바라보았다. 선량한 눈매와 그 눈과 미미한 웃음을 머금은 입술, 그 밖의 모든 것은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는 얼굴 전부를 말이다. 할 말을 찾던 라비는 이내 열에 덴 듯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램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때렸다.

사소한 잡담을 나눈 후 램은 다시 지도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을 침대 위에 누워 구경하던 라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달뜬 마음은 아직도 심장 밑에서 들썩거렸다. 로테의 약혼자에 대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말투를 쓰는 사람인지 물어보지 못한 게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도 그것이 왜 궁금한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궁색해졌다. 이 회의가 머리 속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며 종래에는 동료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저 해 본 말일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저녁 햇살이 얼굴에 내려앉았을 때 그는 가위에서 깨어나듯 눈을 떴다. 마침 램도 지도에서 고개를 뗀 참이었다. 둘은 모처럼 사이좋게 마주 앉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라비는 감기 환자에 대해서 정작 한 마디도 물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남자 때문에. 허나 누구의 잘못이든 정말 모처럼 만의 즐거운 저녁 시간이지 않은가. 그는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의 연약한 위장은 몹시 피폐해져 있었다.
라비는 고심 끝에 뱃속에 양념을 채워 넣은 닭구이를 골랐다. 기다리는 동안 램은 석간을 펴 들었다. 지방 신문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하등 쓸모없는 그 물건을 램은 좋아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라비의 눈은 어쩔 수 없이 펼쳐져 있는 일면으로 향했다.  <서북부 앞바다 폭풍주의보 해제> 헤드라인을 보고 그는 소리 없이 놀랐다. 그 일이 이미 까마득히 먼 과거로 흘러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덕적 허영심에 미미한 상처를 입고 차가운 양배추를 씹는 래비어트 시번. 애피타이저는 레몬 드레싱이 쳐진 야채 샐러드였다. 결국 이게 이 날 라비가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음식이 되었는데 그 일은 꼭 감기 환자가 재미있어 할 방식으로 일어났다.
램이 지방보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라비는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이토록 강한 식욕을 느껴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원래 라비는 음식에 있어서 수도승과 동급이라고 할만치 무감했다. 어쨌거나 배만 부르면 그만, 그거야말로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 그도 이때만큼은 구운 닭에 대한 상상에 잔뜩 취해서 몸이 달아올랐다. 푸른 토파즈 빛깔 눈동자가 반짝이며 종업원의 뒤를 쫓는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라비라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만큼은 감이 좋았다고 할까. 그 남자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으므로 라비는 종업원 보는 것도 잠시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당황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와서는 당황하는 법이 아니다, 라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세무서에 가야할 것을 잘못해 이곳에 왔다는 얼굴로, 말하자면 자신이 이 곳에 온 이유를 알아내려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뛰어왔는지 양 볼이 상기되어 있었고 고동색 머리카락은 이마 위에서 춤을 추었다. 감빛 모직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꽤 말쑥해 보인다. 비록 옷 자체는 유행이 지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남자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라비는 자신의 방만한 감상이 들킨 줄만 알고 숨을 멈추었다. 아직 신문을 보고 있던 램이 <이런 일이 다 있군> 하고 중얼거렸다.
남자가 이쪽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당신이 램 티어드가 맞소?”
기사를 읽느라 좌우로 움직이던 램의 눈동자가 멈추었다.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탐색해 온 라비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순간적인 동요였다. 그는 거의 지체 없이 신문을 팔절 크기로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이미 예의바르고 선량한, 패스파인더 공인 번호 0149의 램으로 돌아간 후였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상냥한 목소리다. 이 목소리에는 성큼성큼 걸어온 남자도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는 갑갑한 듯 셔츠의 목 부분을 손으로 벌리고 헛기침을 했다. 라비는 이 남자가 바로 로테의 약혼자이리라고 확신했다. 램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여기, 이 도시에 달리 누가 있을까. 램도 이 남자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토록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라비는 놀랐다. 그 공언을 들은 사람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물론 남자에게 얼굴을 보았소, 하고 알은 척을 할 상황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싫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자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
마치 그런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램은 곧장 일어났다. 바로 저것이 남자를 안다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라비는 생각했다. 두 남자가 가게를 나간 후에도 그는 계속 문 쪽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둘의 모습이 어슴푸레 비쳤다.
그는 각성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좀이 쑤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기회였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물어 본다고 해도 결국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동료는 웃고, 얼굴을 찡그리고,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마치 수십 가지 일이 있었던 것처럼, 일어난 일은 하나인데. 그는 거역할 수 없는 욕구에 머리채가 잡아끌려진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바닥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쓰렸다.

라비가 밖으로 나왔을 때, 적포도주 빛 노을은 하늘을 물들이며 동쪽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아래 서 있는 두 남자의 얼굴에도 붉은 그늘이 보인다. 그들은 굳어 있던 몸을 조금 움직였다. 라비의 출현에 가타부타 토를 달지는 않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참관인을 맞이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제각기 미소와 목례를 보내고 두 사람은 다시 몸을 움츠렸다.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의 뺨에 지궐련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램은 창가에 기대선 채 여관 앞에 있는 붉은 색 우체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도 같았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미소도 없고, 무심한 표정만 존재했다. 라비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날 저녁 램에게는 씁쓸한 매력이 감돌았다. 현재의 비참한 처지와 뿌리부터 얽혀 있는 멋인 탓에 적이 고독하고 또 쓸쓸해 보였다. 라비는 넋 없이 동료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로테도 바로 이 자리에서 저이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실처럼. 그의 뺨은 붉게 젖어 있었고 귀 뒤쪽이랑 머리카락에 가려진 이마는 아주 어두웠다. 단순히 노을 탓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라비는 동료가 방문자보다 나아 보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의 시선이 또 한 차례,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소년의 눈길을 모르는 듯 둘은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남자였다. 그는 문 옆에 세워져 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내가 로테와의 관계를 물으러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오.”
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오산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때 난 이곳에 없었소. 하지만 후에, 우리가 약혼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들었소. 그녀가 무언가 감추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소.”
“그럴 겁니다.”
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손님을 대하듯 담백하고 순종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두 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녀를 자랑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을 놀라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일면조차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라비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용광로에서 막 끄집어 올린 쇠붙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안주머니를 더듬으며 담배를 찾았다. 그러나 쉽사리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라비는 그가 보다 근본적인 해소법, 즉 램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 기분을 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때 램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여하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은 듯 만 듯한 눈으로 여관 앞 소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서는 여느 때와 같은 정체불명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녀에 대해서, 당신에게 듣고 싶은 것은 한 마디도 없소.”
남자가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다가섰다.
“나는 오히려 당신에 대해 묻고 싶소. 티어드 씨, 당신은 우리가 다음 주에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조금 더 다가섰다.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요.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그런데도 당신은 여기에 왔소. 내가 지금 부당한 말을 하고 있는 거요?”
“계속 말씀 하십시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당신이 돌아온 의도가 의심스럽소. 그리고 그 의도는 생각하면 할수록 비열하고 추잡하게만 느껴져요. 당신은 지금 결혼을 앞둔 옛 연인을 찾아와서 그녀의 집에 머물고 있는 거요. 틀렸소?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은 해 본 거요?”
남자는 램의 목전에 다다라서 힘줄이 불거진 두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함부로 소리를 내면 무언가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곧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사람. 그가 느껴야 할 모멸감이 옮겨 온 듯 라비는 숨이 막혔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것처럼 어지럼증이 났다.
잠깐만요, 하고 입을 연 것은 분명히 라비였다.
“잠깐만요.”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혀는 조금 뻣뻣했고 입술은 굳어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느낌이었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제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이 있지 않았다. 남자는 두어 걸음 물러나 라비를 바라보았고 램은 창가에 의지하고 있던 등을 바로 세웠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내가 이렇게 훌륭히 참아냈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라고 할 수 있다면 소리를 내어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라비가 다시 말한다.
“저 사람은 내 패스파인더이고 목적지를 정하는 건 나예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시겠죠?”
남자는 항의하고 싶은 듯 입을 우물거렸다. 끝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소년의 건방짐에 기가 질려서인지도 모르고 그저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풍이 불지 않았으면 우리는 북쪽의 섬으로 갔을 거예요. 그 바람도 저 사람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내가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일에서 추문을 만들려는 사람은 오히려 당신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라비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남자는 입을 우물거리지도 않고 담배를 태우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옅은 갈색 눈동자로 소년을 응시할 뿐. 그의 눈을 마주하고 라비는 탁월한 감각,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그날 싸움이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아이와 같은 감각으로 눈꺼풀 뒤에 숨은 마음을 알아차렸다. <저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램도 믿지 않고, 이 곳에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조차도 그랬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라비는 한 차례 큰 연극을 해치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남자는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더니 이렇다 할 결론도 내리지 않고 소로로 뛰어들었다. 거기서 그는 허리를 조금 굽혀 인사했다. 램도 그에 답하여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차가워진 저녁 식사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왔다. 먼저 일어난 것은 램이었다. 라비도 그의 뒤를 따라 급히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식은 기름이 흐르는 닭고기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강렬했던 식욕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잠깐, 내가 잘못했어? 그 사람이 나빴잖아.”
램은 발을 멈추고 동료를 돌아보았다. 그가 먼저 계단 위로 올라섰기 때문에 키 차이가 훌쩍 벌어져 있었다. 정수리로부터 둥글게 퍼져나가는 머릿결을 바라보며 램이 대답했다.
“그런 말 안 했는데.”
라비가 그를 쫓아 한 계단 올라섰다. 그래도 좀처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난 네 무례함을 좋아해. 거기엔 뭐랄까,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 혹시 마카오씨가 화를 낸다면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쯤이 되겠지. 괜찮아.”
램은 가볍게 라비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라비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뜻밖의 정보를 입안에서 되뇌었다. 마카오, 마카오. 마치 열대 지방에서 나는 열매 같은 이름이었다. 우스운 한편 거기에 남자가 했던 말, 행동, 그의 옅은 갈색 눈동자까지도 담겨져 있는 것 같아 공연히 화가 났다. 그는 두 계단씩 달음 쳐 올라 램의 옆에 섰다.
“그러니까 형이 애초에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았잖아.”
“그래, 맞아.”
그는 라비를 보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계단을 성큼성큼 밟아 올라갔다. 뒤에 남겨진 라비는 자신이 음흉하고 교활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족적인 무례함을 가장해서. 거기에는 당당함도 기분 좋은 직설도, 뭣도 없었다.
램은 방으로 가지 않고 복도 끝에 있는 반원형 테라스에 서서 마치 처음인 듯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돌아온 것은 열 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산책을 나갔다 왔는지 차가운 공기가 옷에 배어 싸늘한 바람이 한동안 주변에 맴돌았다.

이 날 밤 라비는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났다.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새벽 네 시, 그는 다시 꿈에서 쫓겨나와 희미한 달빛과 푸른 새벽의 여명이 방에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실상 이 밤에 램은 그 어느 때보다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숨 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작은 뒤척임도 느낄 수 없었다. 힘이 빠져 동그랗게 구부러진 손은 하얀 시트 위에서 파리한 빛을 발했다. 부드러운 손등에서 뻗어 나온 곧은 손가락이 제각각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듯 느슨하게 벌어졌다. 세풍이 불어오자 머리카락이 한 가닥, 뺨을 타고 떨어진다. 라비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고적하도다, 고적하도다.

식은땀을 닦으려고 손을 올렸을 때 그는 손끝에 묻은 희미한 잉크 자국을 발견했다. 푸른 잉크였다. 지우려고 몇 번이나 문질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한 만큼 래비어트 시번에게는 힘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 묵직한 두통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을 끌어올리기 전 짧은 순간에 그는 동료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욕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그의 외출 준비는 의식처럼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특별히 멋을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지간해서는 나갈 마음을 먹지 못했다. 문 앞까지 갔다가 거울을 보기 위해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마치 그 사이 어떤 결점이라도 생겼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문이 열리는 빈도로 보아 지금도 딱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라비의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누우를 걸치는 램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늘도 날씨가 좋으려나-. 지독한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밖에 나갈 때면 그는 저 남방의 외투로 몸을 감싸야했다. 날이 흐려도 습관으로, 아니면 해가 날 것을 염려해서 꼭 한 손에 챙기고 다녔다. 흰 천으로 빈틈없이 몸을 감싸고 있는 동료의 모습은 이제 라비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램은 거울을 보고, 탁자 앞에 앉아 무언가 메모를 남긴 후 다시 거울을 보고, 작은 가방을 든 채 방을 나갔다.
한 번 잠이 깬 이상 다시 자기 어려웠다. 라비는 이불에서 몸을 끌어낸 후 얼마나 잤는지 헤아려보았다. 두 시간, 아니 세 시간.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았다. 눈꺼풀이 무겁고 속이 메스꺼웠다. 이 불쾌한 포만감은 점차 욕지기로 바뀌어서 결국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괴로운 신음이 화장실 안에 울렸다. 이런 때 하얀 변기 구멍은 비위를 더욱 상하게 만든다. 라비는 거기서 떨어져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램이 남기고 간 쪽지를 펼쳐 보았다. 잉크는 그때 묻은 것이다.
다시 손끝을 바지에 문질러 보았지만 역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메모가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늦을지도 모름. 밥은 꼭 먹을 것, 그리고 남서부는 어때? 마지막 말은 나중에 덧붙인 것 같았다. 아침에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젯밤에 화가 났던 것은 틀림없는데. 그러나 밤사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섬 같은 것은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쪽지를 여러 번 읽었다. 필기를 빨리 하기 위해 작고 가볍게 변형된 필체와 의미심장한 듯 아닌 듯 짧게 쓰인 문장, 또 짙고 차가운 푸른 잉크까지도 정확하게 떠올랐다. 그런데도 정작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라비는 차갑게 식은 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아니다, 그는 그저 푸른 잉크를 좋아하는 것뿐이다.
생각을 반복하면 간단했던 일이 어려워지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혀 모르는 일로 탈바꿈한다. 어제는 로테를 하루 종일 보지 못했어, 눈이 맑은 마카오씨, 램은 지금 이 마을에 없는 것 같다. 딱히 속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식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위병은 어디까지나 고독한 수행이었다. 앓아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었고 같은 위병 환자들끼리도 서로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아프고 혼자 약 먹고, 그러다가 결국은 배를 잡고 뒹굴게 되는 것이 이 병의 예후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 식당 안 쪽에 있는 작은 응접실로 들어갔다. 투숙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일행이 아닌 두 사람이 각자 신문을 보고 있을 뿐 안은 아주 조용했다. 라비는 거기서 시럽을 넣은 우유와 모닝롤을 먹었다. 맛이 좋았다. 무엇보다 투숙객에게는 공짜였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몇 번이고 가져다 먹게 되었다.

왜 그렇게 서먹하게 구니, 하고 남자가 말을 걸어왔을 때 라비는 둔탁한 두통을 느꼈다. 영역이 다른 두 사람이 맞부딪힐 때 생기는 고통이었다. 아니, 단지 소화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기 환자는 푸른 색 잠옷에 노르께한 카디건을 걸치고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에 거슬리던 소리, 고무판으로 비질하는 것 같이 괴이쩍은 소리는 그의 낡은 슬리퍼가 내는 것이었다. 라비는 앞축이 닳아 기묘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신발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회색 발도 보였다.
“달리 친근하게 굴 것도 없잖아요.”
“나는 우리가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정오에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응접실에는 아침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라비와 이제 막 들어온 감기 환자 외에 아무도 없었다. 라비는 감기 환자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도 누군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지 않을래? 방에 올라가서 먹어야겠으니까.”
그는 접시를 내민 채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라비는 이내 그것을 받아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감기 환자가 빵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신중한 손놀림이 어쩐지 장식적으로 보여서 라비는 또 싫증이 났다.
그가 부엌으로 들어가 하녀와 무언가 트레이딩을 하는 동안에 라비는 줄곧 계단 아래 서 있었다. 웃는 소리와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찬장을 여닫는 소리가 연달아서 들려왔다. 이윽고 감기 환자가 한 손에 우유를 들고 나왔다. 그가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에도 라비는 여전히 계단 아래 선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램도 당신을 알아요?”
감기 환자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투박한 몸놀림에 병 가득히 채워져 있던 우유가 조금 흘러내렸다.
“그럴 리가 있냐.”
라비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이미 감기 환자는 2층에 도착한 후였다.

사람이랑 마주 대하는 것은 정말 기가 질린다고 감기 환자는 우유를 따르며 말했다. 그 말이 방으로 자신을 불러들인 것과 아무래도 모순이 되었기에 라비는 상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착한 것을 모르는 듯 그는 웃으면서 빵을 베어 물었다. 잔뜩 바른 꿀이 빵의 갈라진 양 끝에서 빠져나왔다.
“그 남자야 나를 모르겠지만 난 그가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어.”
“로테와 함께?”
“응, 그랬지.”
라비는 두 손으로 우유 잔을 쥐었다. 컵에 맺혀 있던 이슬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어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라비는 계속 컵을 잡은 채 그 안에 든 하얀 액체가 작게 파문을 그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제 마카오라는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라비의 말에 막 세 번 째 빵을 집던 감기 환자는 자못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수긍했다는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명확한 행동인걸. 결혼식이 이제 내일 모레니까.”
“……모레?”
라비는 불에 덴 듯 파뜩 고개를 들었다. 그때 마침 감기 환자는 고개를 젖히고 우유를 마시는 중이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라비는 일부러 그의 뒤쪽에 한 번 시선을 주고 얼굴을 돌렸다. 다시 우유 잔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잡고 있는 젖은 손도 이제 보인다. 라비는 두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유바의 가든파티에서 불을 쬐며 나눈 이야기와 마카오가 찾아온 일까지 모두를 되살려보았다. 이제 겨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왜 그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일로 변모했다. 동료가 의자에 앉아 쪽지 쓰는 장면에 이르러서 라비는 저도 모르게 기침 같은 한숨을 쉬었다.
감기 환자는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 화가 나기 때문에 라비는 되도록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야기는 신문기사처럼 무미건조하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감기 환자는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놀랍다. 점잖기가 마을에서 제일인 마카오가 말이지.”
“그게 더 놀라운데요.”
그렇게 말하고 어쩐지 목이 타 라비는 우유를 조금 입에 댔다. 평소에 고소하다고 생각했던 맛에서 비린내가 느껴져 괴로웠다. 그는 흰 액체를 입에 담은 채 잠시 동안 우물거렸다. 비위 거슬리는 맛이 온 입 안으로 그리고 점차 목구멍으로 퍼져나갔다.
“이봐요, 아저씨. 램이 처음 여기 왔을 때 정말 같이 머물고 있었나요?”
“그랬어. 그 남자와 로테양이 같이 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봤지.”
그때 일을 생각하는지 감기 환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벽을 응시하였다. 라비가 의자에서 두어 번 뒤척였을 때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며칠 째 서늘한 날이 계속 되고 있었지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분명히 여름이었다. 시기와 맞지 않는 날씨 때문에 라바냐에 오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로테와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잘못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로테의 집, 마을에서 유일한 여관, 빨간 우체통이 서 있는 건물, 폭이 좁고 아담해서 장난감처럼 보이는 집, 그곳에는 내가 먼저 들어갔다. 누우 자락이 문에 휘감겼다. 로테는 내 뒤를 곧 따라 들어왔다. 마침 안에는 여관 주인, 그녀의 어머니 혼자만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편지를 몇 번 보냈다고는 했지만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로테는 야반을 타 가출을 한 것이다. 두 여자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연극의 클라이막스 직전에나 느껴지는 답답함이 가슴을 졸라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로테였다. 그녀는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엄마, 이 사람이 내 패스파인더에요 하고 웃었다. 그리고 두 여자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의 어머니가 나와 종업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짐을 2층에 첫 번째 방으로 옮겨다 주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로테가 한 말은 사실이었지만 다우너 여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릴지는 미지수였다. 다시 생각해보건데 그 말은 지난 3개월 동안 두 사람이 매일 같이 함께 있었노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았다. 정말 그랬다. 심지어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 미묘한 일이라도 일어났다면 오히려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맡은 것은 나의 첫 업무였고 그녀를 대하는 내내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로테양은 단지 고객이라고 마치 경문을 외우듯 아침마다 마음을 다 잡았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은 바로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우리 사이는 산뜻하게 마무리가 되었으리라. 여기저기에서 초보티를 낸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니, 모든 것이 실로 초보다웠다.
여관에서 머물렀던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짧다면 짧을 그 기간이 당시에는 몹시 길게 느껴졌다. 매일 매일 신경이 한 뼘씩 줄어들었다. 딱히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로테와 그녀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식사를 했다. 오전에는 여관 일을 조금 돕고 점심 식사 후 로테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유바까지 가서 시장을 보고 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열 시 경에는 잠이 들었다. 이,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 모두 지난 3개월은 없었던 일로 해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내 연약한 신경을 갉아먹었다. 로테와 그녀의 어머니, 나아가서는 종업원과 채소가게 아저씨, 우체국 직원, 청소부, 또 세탁소 부부까지 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웃 아가씨가 어느 날 데리고 들어온 남자가 버젓이 그 집에 살고 있는데. 그런데도 모두 입을 다물고 나를 받아드리는 것이다. 적어도 로테의 마음,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으며 내가 그것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나중에는 완전히 미지의 것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다우너 여사에 이르러서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잘못된 연극 무대에 올려진 배우처럼 나는 삐거덕거리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일주일 째 되던 밤, 나는 자신과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들었다.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하던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여관 뒤에 딸린 작은 정원에서, 또 구름이 한 점 낀 밝은 달빛 아래서, 금방 내 것이 될 것 같았던 아름다운 두 눈 앞에서. 그때도 그녀는 평소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 본 채로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 반이었다.
‘하지만 로테, 이제 끝났어. 넌 아…… 아니, 잠깐만요!

램은 여관의 뒤뜰에서 로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곧 그녀가 시장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시장에 다녀올 때면 그녀는 항상 후문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가곤 했다. 문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그 옆에 걸린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일련의 동선이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그 버릇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시계를 꺼내보니 이제 막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서 있기는 했지만 장소가 공교롭게 되었다. 자신이 지금 하려는 행동이 로테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십중팔구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쁜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그 때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몇 번이나 길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기진해서 문 옆에 앉아 있을 때 아무런 소리도 없이 로테가 나타났다. 무릎 바로 밑을 지나는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은 차림이 이제 막 집 밖에 나갈 수 있게 된 소녀처럼 보였다. 내일 모레 한 사람의 아내가 될 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라바냐에 온 후 수없이 마주대했던 얼굴이 지금 순간만큼은 닿을 수 없는 이계의 것으로 느껴졌다. 이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아련해졌다.
로테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램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라바냐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로테가 피하듯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들 그는 원래 목적 따위 까맣게 잊은 채 시장바구니를 건네받고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램은 붉은 머리칼에 가려진 로테의 얼굴을 보려고 몸을 숙였다. 그러자 로테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나에게?”
“물론 너에게.”
그렇게 말하고 램은 웃었다. 물을 머금은 것처럼 희미한 미소였다. 이 미소를 깨닫고 그는 자신이 퍽 두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웃으며 그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로테를 향해 말을 이었다.
“청첩장을 보낸 건 역시 너겠지?”
“그래, 나야.”
“처음에는 네 이름을 사칭한 누군가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무래도 짐작 가는 사람이 없었어. 무엇보다 우리 사이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역시 본인 밖에 없어.”
“내가 보냈어.”
“어째서?”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발짝 더 물러나며 얼굴 보여주기를 피할 뿐이었다. 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단지 알리고 싶어서? 그건 좋아. 하지만 로테, 편지에는 청첩장 뿐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어. 맞아?”
“맞아.”
“그럼 대답해 줘. 너는 내가 오길 바랬니? 결국 나는 왔고 너와 만났어. 하지만 네가 왜 청첩장만을 보냈는지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어.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아니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경고였어? 부탁이야, 이제 그만 알려 줘.”
말이 끝나는 순간 램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의 큰 눈, 조금 벌어진 입술과 홍조, 섬세하게 움직이는 안면 근육이 어떤 인상을 나타내려 하고 있었다. 허나 이제 표정을 읽는 일에는 지쳤다. 그는 그녀의 입을 통해 하나의 일, 정말 있었던 단 하나의 이야기만을 듣고 싶었다.
“리셀로테!”
그는 입을 다문 채 집으로 들어가려 하는 로테를 잡았다. 예상외로 그녀의 몸이 크게 흔들리면서 램 쪽으로 완전히 기울여졌다. 어쩌면 삼 년 전 그 날 있어야했던 일처럼 그녀가 그의 품속으로 거의 들어왔을 때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테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듯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라비는 탁자 위에 발을 올리고 앉아 동료가 놓고 간 여행 책자를 보고 있었다. 램이 들어왔을 때, 그는 여느 때처럼 시선을 한 번 주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눈에 남은 잔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얼굴로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피?”
그의 손길을 피하는 동료의 표정이 서늘했다. 늘 입가에 머물던 미소도 없고 괜스레 미안해하며 짓던 눈웃음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라비는 그 표정들을 싫어했다. 여차하면 그런 짓은 관두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무 것도 덧쓰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니까 겁이 났다. 입가에 흐르는 피가 불길한 상상을 부추겼고 굳은 얼굴의 동료가 돌연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아 불안했다. 뒤늦게 실수를 알아챈 듯 램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아, 하며 침대에 앉았다.
“맞았어.”
“뭐?”
“맞았다고.”
그는 라비가 건넨 휴지로 상처를 눌렀다. 입을 열 때마다 혀 전면에 피가 스며들었다. 맞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순한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수치심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래, 다시 생각한다. 그 자가 지금 눈앞에 있다면 아까처럼 맥없이 얼굴을 내주지는 않을 테다.
“대체 왜? 누구한테?”
라비는 그의 앞에 서서 당황한 채 계속 질문을 던졌다. 램은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렸다. 위에서부터 울리는 맑은 목소리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귀에 거슬려 견딜 수가 없었다.
“왜? 글쎄, 대체 왜 그랬을까. 상대는 마카오 토파스였어. 한 방 먹이더니 이러저러 말도 하지 않고 결투를 신청하더군. 바로 내일 밤에 말이야. 빌어먹을, 그 자가!”
말을 마치고 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거렸다. 그 동안 라비는 침대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동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존립을 해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램이 그를 다시 바라본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어깨를 빳빳이 굳히고 있는 동료를 보자 억눌러 두었던 괴로움이 가슴을 조여들어왔다. 그는 돌아서서 소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상처는 생각보다 작았다. 라비는 가방에서 약을 찾아와 동료의 입술 위에 발랐다. 그 동안 램은 한 손을 눈 위에 올린 채 말없이 누워 있었다. 램프가 꺼진 방에 석양빛만이 희미하게 들어와 두 사람의 마음에 쓸쓸함을 더해주었다. 그것을 계속 신경 쓰면서도 둘 다 불을 켜려고 하지 않았다. 눈 위에 꼭 붙어 있는 손을 내려다보면서 라비는 그가 얼굴을 가리려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런 자세로 낮잠을 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까 한 말, 사실이야?”
“뭐, 결투?”
그렇게 되묻고 램은 짧게 웃었다. 자조에 차 있긴 했지만 좀 전처럼 지독한 반응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라비는 안심하고 몸을 돌려 동료 쪽을 다시 보았다.
“사실이야. 내일 저녁 일곱 시에 놀이터에서.”
“설마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 곤란하게 됐네, 정말.”
그는 두 손을 이마 위에서 깍지꼈다. 약이 굳기 시작하자 상처가 조금씩 당겨왔다. 그 느낌이 마치 피부가 갈라지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칼 쓰는 일에서 도망칠 순 없어.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맞아서 신경질 나.”
“뭐야, 바보 같이.”
램은 대꾸 없이 천장을 바라본 채 한동안 누워 있었다. 라비가 그의 몸을 몇 번 흔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묘하게도 울상으로 보였다. 그 얼굴이 어두운 가운데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에 램은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 날이다. 로테의 결혼식 전 날, 램과 마카오가 결투를 하기로 했으며 또한 라비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날. 라비는 아침부터 내내 응접실에 있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응접실에 드나드는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모두 투숙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관의 객실은 모두 여덟 개, 그 중 적어도 다섯 개는 빈 방이었다. 램과 라비의 방 맞은편에 묵고 있는 노부부는 방에서 식사를 했다. 결국 모두 아침 식사만 하러 왔다가 잠깐 쉬러 들어온 손님이고 그 중에는 애초부터 공짜 식사를 하러 들어온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치 자신이 그 인물들 중 하나 되어 종업원에게 적발 당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램은 이미 외출한 후였다. 그와 함께 검도 보이지 않았다. 라비는 침대에서 튕겨나와 가방 안을 뒤져보았다. 메일 용지와 지도, 그리고 동전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겨우 한숨을 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계는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가 어제 보았던 여행책은 책갈피가 꽂힌 채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동료의 침대는 늘 그렇듯 깨끗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희뿌연 새벽빛 아래서 램이 눈을 뜨고 이불을 개고 지도를 챙기고 다시 몸을 돌려 동전 지갑을 손에 들고 그러면서 한쪽 허리에는 칼을 차고 방을 나서는 모습을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의 동료와 마카오는 서로에게 검을 겨누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라바냐에서 일어난 모든 사실들의 결정체였다. 그런데도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 거대한 껍데기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생생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마주보면 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이 진지하지 못한 드라마에 그는 피로감을 느꼈다. 우리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려는 걸까?
로테, 이제 끝났어.
“아니, 잠깐만요, 틀렸어요. 램 티어드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라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화불량성 두통이 가세한 어지럼증에 잠시 눈앞이 깜깜해져 거의 넘어질 뻔했다.
“앉아, 시번.”
“결국 당신도 모르는군요, 그렇죠?”
그는 의자를 잡았다. 잠시나마 감기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런 만큼 잊고 있던 감기 환자를 향한 미움이 한층 커져서 머리를 옭아맸다. 그는 지금 자리에 앉은 채 소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속을 꿰뚫어 보려고 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행동인지는 누구보다도 라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실을 사실로 있게 하는 사실, 말하자면 본심이에요. 물론 나는 로테와 램이 무슨 사이인지 궁금했어요. 그건 램이 이곳에 오고 싶어했는지 어쨌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 와서 날 미치게 하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아무 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둘이 사랑을 했대요? 그게 어때서요. 사랑했던 여자가 있는 곳에 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건 이해해요. 하지만 왜 그것을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없는 걸까요? 상상력이 우릴 좀 먹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너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니?”
“그래요.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좋아, 시번. 넌 마치 당장 그 남자에게 달려가 사실을 확인처럼 굴고 있어. 하지만 이걸 알아 둬. 중요한 것은 있고 없고 하는 것이 아니야. 믿느냐 마느냐가 문제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줌도 되지 않아.”
“당신이 확신하는 걸 내게 말해 줘 봐요. 어리석은 소년이 반박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초조해하고 있으면서.”
감기 환자는 목이 타는 듯 앞에 놓인 우유 잔을 들어 단숨에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 흰 액체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라비는 구역질을 느꼈다. 부엌데기 여자가 그제 산 우유를 주었는지 사흘 전에 산 우유를 주었는지 그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런 작은 문제조차 뒤돌아서면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어 입을 벌린 채 달려들었다.
“래비어트 시번, 내가 널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마. 난 네가 좋은 길로 가길 바라고 있어. 우리가, 네 염원대로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물어본다고 치자. 그리고 다행히도 그가 대답을 했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어쩔 거지?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무엇을 가지고 확인할 참이야? 모든 것을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넌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될 거야. 무언가를 알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만든 환상을 믿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는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라비의 팔을 잡아 당겼다.
“세상이 하나라고 생각해, 둘이라고 생각해?”

라비는 아까 전부터 감기 환자가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응접실 밖으로 나가는 기척이 났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라비는 치명상을 입은 듯 배를 잡은 채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모년 모일 일곱 시. 모처. 그날은 결투하기 좋은 밤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애교처럼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제 속눈썹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왔다. 놀이터에 깔린 거친 모래가 발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방은 여느 때보다 어두웠고 암흑이 내려앉은 놀이터에서는 오직 비 내리는 소리만이 묘하게 증폭되어 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남자는 사뭇 비장해보였다.
먼저 검을 뽑은 것은 마카오 토파스였다. 그의 몸이 뒤쪽으로 크게 휘청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램은 이 남자가 오늘 저녁 난생 처음 대검을 하기 위해 애썼을 것을 생각하자 우스우면서도 어쩐지 서글퍼졌다. 그는 검을 빼지 않았다. 두 어깨는 밑으로 늘어져 손가락 끝에도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자 오한이 났다. 빗줄기가 두꺼워질수록 긴장이 풀리고 맥이 빠졌다.
결투를 벌인다면 마카오가 자신에게 둔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램은 알고 있었다. 아니, 혐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모든 의혹이 혐의로 그쳐야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과감히 검을 버려야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생각해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막상 놀이터에 오고 그 남자의 얼굴을 마주 대하니 그 간단한 굴종을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다.
저쪽에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재촉하는 소리인 것 같았는데 비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청각뿐만 아니라 시야도 몹시 막막하다. 민감한 피부도 지금은 비에 젖어서 마치 마취된 듯 둔했다. 숨이 조금 가쁘고, 전신이 얇은 보에 뒤덮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몇 번이고 왼쪽 허리춤에 손을 올리다가 말았다.
“이봐요, 마카오씨.”
상대는 곧추 세우고 있던 검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잘 안 들린다는 시늉을 했다. 램은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누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수록 뒤로 끌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마카오를 불렀다. 상대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티어드씨, 검을 뽑아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참이오?”
“좋아요, 당신과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나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마카오는 눈짓으로 반문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실상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검을 받치고 있는 팔을 조금 떨었을 뿐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 마카오의 모습에 말문이 막혀왔다. 램은 일부러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 싸움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는 게 되는 겁니까?”
“……그건,”
마카오의 입술은 아 모양이나 우 모양을 만들다가 이내 허물어졌다. 허리까지 올라왔던 검이 다시 바닥을 향한다. 그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롱소드를 지팡이처럼 짚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포즈로, 아아, 단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더라면! 끝내 램은 검을 빼들고 이 의리없는 싸움에 몸을 내던졌다. 두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청명하게 대기를 울렸다.

이 첫 수에서 마카오는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다시 그와 검을 섞어야 한다는 생각에 램이 질려 있을 때 누군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이런 순간에, 저런 모습으로, 이렇게 등장을. 그 사람은 틀림없이 로테였다. 달려오는 중 우산을 잃어버렸는지 그녀도 흠뻑 젖어 있었다. 비를 뒤집어쓴 세 남녀가 찰나에 서로의 표정을 확인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여자였다. 그녀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두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고했다.
“시번군이 쓰러졌어!”
“뭐?”
“나도 어쩐 일인지 모르겠어. 제발. 곧 어떻게 될 것만 같아.”
램은 황황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손에 검이 쥐어져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로테는 마카오에게 기대서 있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약은? 약이 분명히 있을 텐데.”
“물어봤어. 평소에 먹는 약이 없냐고. 그러니까 침대 밑에 떨어뜨렸다고,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어. 그 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응?”
둔기에 얻어맞은 듯 비틀거리며 놀이터를 빠져나온 램은 이내 골목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터질 듯 타올랐다. 괴로움에 값을 매길 수 있다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진리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고통과 비슷한 정도였다.

여관에 도착하니 마침 밖으로 나온 종업원이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의사를 부르러 가는 참이라며 그는, 대체 무슨 병인가요, 응접실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걸 보고 정말 놀라지 않았겠어요, 아무튼 저렇게 아파하는 건 처음 봐서 말이에요, 하고 정신없이 내뱉었다. 그러는 동안 램은 위경련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다. 식당에는 딱 평소만큼 손님이 있었다. 그들 중 아직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몰랐던 몇 사람이 램을 보고 놀랐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을 들자 허벅지 부근이 아릿하게 당겨왔다.
라비는 램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손은 이불을 꽉 쥐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질린 얼굴 안에서 눈만 유난히 커 보였다. 그리고 그 눈에는 지독한 고통을 겪었음을 호소하듯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대었다. 램이 옆으로 다가가자 이불을 쥐고 있던 힘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에 답을 하듯 램은 동료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라비는 큰일을 해치웠다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공기가 위에 닿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금방 의사를 부르러 갔어. 약은 어쩌다가 흘린 거야, 대체.”
“그건 아무래도 좋아, 아니, 꼭 좋지는 않지만. 그보다 의사가 오기 전에 꼭 듣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주겠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주제에 여전히 당돌한 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램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는 피가 맺힐 만큼 입술을 꽉 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봐, 난 모두 각오하고 물어보는 거야. 놀라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또, 믿으려고 노력도 하겠어. 그러니까 형은 솔직하게 말 하면 돼.”
“좋아.”
“로테하고 어떤 사이야?”
램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두어 번 깜박거렸다. 일견 고민하는 것도 같았고 어째서 그런 질문을 들어야하는지 의아해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자 곧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 대답했다.
“친구야.”
이번에는 라비가 램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 눈이라도 열어 보려는 듯 한참 동료의 얼굴을 응시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돌리고, 아아, 아파라, 하고 앓으며 허리를 고꾸라뜨렸다.

라비가 기억하고 있는 일은 여기까지이다. 눈을 떠보니 날씨는 맑았고 자신은 새하얀 벽지로 덮인 방 가운데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공기 주머니 같은 공복이 목 아래까지 차올라서 거북할 뿐이었다.
사과를 다 먹고 병실 청소까지 얼추 끝마친 램은 보조 침대에 앉아서 지도를 펼쳤다. 내일 배가 있다던데, 하고 입을 연 것도 그쯤이었다. 창 쪽을 향해 누워 있던 라비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알게 뭐야, 하고 대꾸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이제 이곳에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정반대편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램은 빙긋 웃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더듬는 가느다란 소리가 끊길 듯 이어졌다. 해는 서서히 가라앉으며 부드러운 주황색 빛을 발했고 한층 따뜻해진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와 귀밑머리를 어루만졌다.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로 평온한 오후였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안락함과 싸우려는 듯 라비는 입가를 굳힌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색 환자복을 걸친 어깨가 평소보다 좁아보였다.
“정말 로테를 좋아하지 않았어?”
미동도 없이 누워있던 그가 한순간 벌떡 일어났다. 램은 지도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라비의 등 너머로 비치는 낙양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얼굴을 보고 라비는 숨을 들이켰다. 입을 다문 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수초가 요 일주일만큼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때 아닌 웃음을 터뜨린 것은 램이었다.
입을 막고 킥킥거리기 시작한 그는 결국 못 견디겠다는 듯 숨을 내뱉으며 크게 웃었다. 그 맑은 웃음소리가 길게 길게 라비의 귀에 울렸다. 그는 까닭을 모른 채 동료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뜨거워진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며 램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아가씨를 좋아한 건 너잖아.”
“뭐?”
반론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는데 내심은 좀처럼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라비는 마른 침을 삼켰다. 목이 몹시 말랐다. 그 사이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보조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지도를 찾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웃음을 참고 있기 때문임을 알자 라비는 다시 배가 아파왔다.

틀려, 그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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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요(...)
진아님//반갑습니다- 자유 게시판에서 항상 글 보고 있었어요. 오늘 진짜 춥더군요!
명비님//와아 명비님!! 명비님 글 굉장히 좋아해요. 리플 달아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ㅁ;

읽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
댓글 1
  • No Profile
    아무 10.03.25 14:16 댓글 수정 삭제
    이 사이트에 처음 들어와서 처음으로 접한 글입니다. 인상적이었어요. 평화롭고, '패스파인더'와 함께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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