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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The Power - 2장 음모(4)

2003.08.17 19:2608.17


고창천과 장문수를 스플린트가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고 남은 나머지 일행들은 아까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참이나 걸어갔다. 그러나 1시간이 다 되도록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아무리 강한 육체적, 정신적 훈련을 받은 그들이라 할지라도 어디에선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적이 있다는 사실에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보니 약간밖에 꺼지지 않던 번들거리는 바닥이 가면 갈수록 자신들을 저 지하 밑바닥으로 빨아들일 것 같은 늪지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무디어져 가는 이런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굵게 울려 퍼졌다.

"여깁니다! 여기!"

저만치 앞장서서 주변을 경계하며 걷던 김찬건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외침에 모두들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는 황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 제일 먼저 도착한 수안이 그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리킨 곳은 아주 굵은 두 나무 줄기가 서로 맞닿아 뒤엉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이 숲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늘 보아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수안의 손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틈이 벌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뭐가 있다는 건가?"

"저......저 안을 자세히 보십시오."

김찬건은 파르르 떨리는 손끝을 저 암흑만이 가득한 틈새를 향해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수안은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틈새 가까이 들이댔다. 틈새 안쪽에는 분명 나무줄기와 구별되는 뭔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수안은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깨에 메고 있던 솟차레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오른손을 쫙 펴서 틈새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죠?"

막 도착한 고수휘가 틈새에 손을 넣고 끙끙대는 수안을 가는 눈으로 흘겨보며 물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머지 대원들도 모여들었다. 앤턴 너머로 비치는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잡았다!"

수안이 외침과 동시에 오른손을 틈새에서 꺼냈다. 모두들 숨죽이며 그가 꺼낸 물건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주 낯익은 물건이었다. 지금 그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솟차레 총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해서였는지 총구 부위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은 흔적도 없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는 것이다. 모두들 총구 부위만 남아있는 솟차레 총을 보고, 서로를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말도 안돼!" 박 권이 부르짖었다."어......어떻게 솟차레 총을 이렇게 박살낼 수 있지!?"

"솟차레 총은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합금인 인슬레이논으로 만든 거야. 어떻게......"

김찬건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른 대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외쳤다.

"대단하군."수안은 손으로 잡고 있는 총구만 달랑 남아있는 솟차레 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이걸 봐.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불규칙하게 나머지 몸통 부분이 떨어져 나갔어."

"무슨 뜻인지......"

곽철민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도 모릅니까!"옆에 서 있는 고수휘가 앙칼지게 외쳤다. 왠만 해선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그녀도 우려했던 추측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는 것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어떤 무기를 쓰더라도 이런 식으로 솟차레 총은 부숴 지지 않습니다. 인슬레이논 합금으로 만든 솟차레 총은 수 백 만 엘리온(통칭어로 쓰는 무기의 파괴력 수치 단위)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솟차레 총이 이렇게까지 총구와 몸통이 동강날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흠......고수휘 대원의 말 대로다. 이런 식으로 솟차레 총을 동강내려면......"

수안이 선뜻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를 바라보는 대원들은 서로 곁눈질하며 앞으로 받을 충격에 미리 대비했다.

"힘이다."

"힘이오!?"

수안의 뜻밖의 말에 모두들 옆 사람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했다.

"설마 손으로 저렇게 만들었다는 겁니까!? 신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 해도 솟차레 총을 저런 꼴로 만들 수는......"

김찬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걸 봐! 이 떨어져 나간 부분을 잘 보란 말이야. 마치 구부렸다 폈다를 몇 번한 것 같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보라구."

수안이 말하면서 총구만 달랑 남아있는 솟차레 총을 모두에게 내밀었다. 그는 자신이 예리하게 주목하고 있는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모두들 그가 가리키는 부분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몇 번 구부렸다 폈다 한 것 같은 굵게 주름 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이럴 수가......괴......괴물이라도 있는 건가!?"

곽철민이 공포와 두려움이 짙게 베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뿐 아니라, 모두들 차가운 얼음이 살갗에 닿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으며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크윽!"

고수휘 뒤에 서 있던 서기수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뒷덜미를 문지르며 무척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들 서기수가 적에게 당한 줄 알고 반사적으로 솟차레 총을 어깨에 대고 가늠자에 한쪽 눈을 맞춘 채,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앤턴 속에서 비치는 그들의 눈은 공포와 두려움의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남자보다 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고수휘조차 총을 받치고 있는 왼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어떠하겠나!

"이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바닥에 놓여 있던 솟차레 총을 집어든 수안이 황급히 서기수`에게 다가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무 것도 아......아닙니다."

갑자기 몰려왔던 고통이 약간은 가라앉았는지 이내 정신을 다잡은 서기수가 두 손에 묻고 있던 머리를 들며 애써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충분한 걱정을 안겨 줄 정도로 안쓰럽게 들렸다.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수안이 몹시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때의 일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처참했던 과거가 말이다. 그 일 이후로 이유가 어찌되었든 한 번 맡은 일에서는 두 번 다시 동료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였다.

"그......그게 갑자기 뒷덜미에 벌이 쏜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는데, 처......처음엔 참을 만 했는데,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니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서 그만......"

"바보 같은......언제부터 그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나?"

"아......아마 부숴 진 솟차레 총을 발견한 직후부터 인 것 같습니다."

서기수는 두꺼운 전투복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수안은 그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수안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계속 가는 건 무리였다. 수안은 친구라면 질색이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다. 포그월을 발견한 것과 먼저 파견된 조사팀이 잘못됐다는 걸 암시하는 부숴 진 솟차레 총......일단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 숲에는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그래! 일단 스플린트로 돌아가자. 보통 일이 아니다. 일단 지원부터 요청해야겠어......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몸을 일으켜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모이라고 손짓했다.

수안은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기수를 등지고 주위에 모인 대원들에게 여러 정황을 들어 스플린트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전 그럴 수 없어요!"

고수휘가 고개를 휙 돌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김찬건, 곽철민, 박 권 등 이 세 사람은 수안의 명령에 기꺼이 따르기로 했으나, 수안이 몇 번이나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태도는 완강했다. 다른 대원들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기수를 들먹이며 그녀를 설득했으나, 그녀는 한사코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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