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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조차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여름 날 오후, 몇 달째 가뭄인 하늘에는 시원한 소나기를 몰고 올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짝 말려버릴 기세로 무섭게 타오르는 뜨거운 오후 햇빛 아래, 산 밑 작은 마을 광장에는 장이라도 들어선 듯이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작렬하는 한낮의 태양에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며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경청했다. 땀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그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설교자가 지저분한 누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누차 흩으며 핏대를 세우며 외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설교자의 얘기를 귀로 듣고만 있을 뿐, 시선은 모두 하나에 쏠려 있었다.
시선은 통나무로 만든 십자형의 틀에 묶여 있는 여자에게 볼록렌즈로 태우기라도 할 것처럼 점으로 단단하게 모여 있었다. 십자가는 통나무와 쓰레기들로 쌓아올린 작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 십자가에 아가씨의 손과 발이 밧줄로 칭칭 묶여 고정되어 있었다.

설교자는 사람들이 자기의 얘기를 듣건 말건, 누구를 쳐다보던지 간에  아가씨를 손가락질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그는 마을 뒷산의 말라죽은 나무처럼 바짝 말라, 안색은 누리끼리하고 눈빛은 희번득거리고 있었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나무 형틀에 묶여 있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며 연신 손가락질했다.
그녀의 얼굴과 목, 그리고 드러난 피부에는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역력한 몸이 보였다. 여기저기 불에 지져진 흉터가 있었지만 고통과 피곤에 찌든 창백한 얼굴은 의외로 묵묵했다. 헝클어져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푸른 머리는 밤의 어둠보다 진했고, 까마귀 날개같이 새까맸다. 검은 눈은 분노와 고통으로 동공이 크게 확대되어 있었고 창백해진 도톰한 입술에는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빛내며 모여 있는 사람들에 비해 여자는 묘하게도 정적으로 가라앉아  이 자리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녀 재판관은 지루한 설교를 끝내자마자, 여유도 두지 않고 심판하듯 외쳤다.

“저 마녀를 지옥으로 돌려보내!”

마을 사람들이 그 말에 흥분한 것처럼 주먹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재판관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심문관이 데리고 다니는 곱사등이 애꾸눈 사내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나와서 장작에 횃불로 불을 붙였다.

몇 달 동안 비는 오지 않았고, 그 덕에 나무는 바삭바삭 잘 말라 있었다. 곧 장작에 불이 붙고 번져나가면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사람들 모두 지옥불처럼 뜨거운 화염에 땀을 흘리면서 여자가 비명을 지르기를, 그리고 어서 잘 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녀를 죽이면 비가 올 것이라고 그들은 내심 믿고 있었다. 아니 그러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천공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그림자가 마을을 덮친 것은!

그림자는 마을 상공을 다 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크다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함으로 마을 동쪽의 이타카 산맥에서 다가와서 마을을 뒤덮었다. 그림자가 해를 가리자 마을 아래는 그 그림자에 덮여 곧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완전히 하늘을 뒤덮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림자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드, 드, 드래곤이다……!”

라고 더듬더듬 말하자마자 적막하게 내려앉은 광장에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넋을 잃고 하늘만 바라보며 그 웅장함에 힘이 빠진 사람도 있었다. 애들을 울부짖고 성인들도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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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올리라고 해서 올립니다. 중편이고 이계깽판판타스틱로맨스를 꿈꾸며 쓴 땅콩이에요. ^^;
비겁한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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