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by 댕디기댕~!

* 소녀는 어떻게하고 이런거 쓰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요즘은 이런 글이 땡겨서요-하고 궁색하게 변명하겠습니다.
* 제목은 우울의 극치를 달리는 모 밴드의 노래에서 따왔습니다.
* 즉흥이 반절입니다요...랄랄라~

화성으로 가는 꿈 #1

누구도 기계 따위가 세상을 뒤덮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위대한 인간의 철학이 시대를 구원하여, 서로 절대 어울리지 않으리라 여겼던 존재가 조화롭게 맞물리는 때가 오리라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있기나 할는지 마음 속 싶이 의심하면서도 열심히 믿는 구원처럼, 그 향기롭고 아름다운 상생의 시대는 지구 위에 남은 모든 금속이 땅 위로 올라선 지금까지 오지 않았다.

“올해가 몇 년도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닌 도시는 불멸이라 불리우는 기업이 지배했다. 이 인구 2억 1천만의 도시는 아마도 2천 3백여년전에는 인구가 약 4천만에 불과했지만, 엄연한 국가로서 기능했었다.

“4922년, 덧붙여 3월 7일이고, 시각은 아침 6시 21분.”

평소보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내 구역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불멸 제 4331차 하이퍼 아파트먼트 제 7번 기둥의 839번 블록, 4921년 12월에 한규선이 33개월 할부로 구입한 개인용 독립 구역에 한규선이 둘 있었다. 구역에 기본으로 딸린 소형 수면 욕조에서 일어나 걸어나오니 부엌 겸 거실에는 향긋한 아침 식사 내음이 흐르고 있었고, 내가 아닌 한규선이 조리대 곁에 서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어났어? 같이 식사나 하지?”

초자연 현상이나 귀신 이야기는 3445년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송 매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독립 방송 매체도 200여년 후에는 그런 내용의 방송 제작을 그만 두었고, 불멸조차 감히 제어할 수 없었던 정보 통신 상에서도 금새 사라졌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그후 의견이 분분했지만, 여느 학문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았고, 유력한 가설만이 두어개 남았다. 이제 초자연 현상이 벌어질 장소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인류의 의학 발전이 질병의 돌연변이를 단시간내에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기억나는 전부다. 그리고 천년도 훌쩍 지나버린 어느 날 아침에 예수 부활하듯 초자연 현상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베이컨, 구운 식빵, 그리고 메쉬드 포테이토야. 원두 드립을 할 수 없는게 아쉽지만,
  급한대로 인스턴트 커피도 있어.”

급한 김에 속옷만 입고, 한규선과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내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한규선은 내가 식탁에 앉자마자 늘 쓰는 아침 식사용 접시에 차곡차곡 베이컨과 구운 식빵, 메쉬드 포테이토를 얹어 내놓았다. 그리고 아무때나 막 쓰는 인스턴피 커피 한잔가 덤으로 주어졌다. 늘상 최고라고 여기는 아침 식사가 눈앞에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두와 드립퍼를 사다놓는건데, 어쩐지 아쉽다.

“메쉬드 포테이토, 오랜만이지?”

최고의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날은 흔치 않았다. 재료야 있지만, 메쉬드 포테이토를 만들 여유가 있을만큼 일찍 일어나는 날이 드물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베이컨마저 웨이브 조리기에 넣어 돌리거나, 아니면 식빵을 굽지 않고 먹기까지 했다. 후라이펜 위에서 살짝 튀긴 다음 기름기를 닦아낸 베이컨과 폭신폭신함을 잃지 않게 구운 식빵, 그리고 손으로 만든 메쉬드 포테이토를 전부 갖춘 아침 식사를 내 손으로 만들어본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초자연 현상도 나쁘지는 않군. 슬쩍 베이컨을 하나 먹어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내 손맛이 난다. 다음으로 반년만에 한규선이 만든 메쉬드 포테이토를 한수저 퍼먹는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반년에 한 번쯤 만드는 최고의 아침 식사다.

“그래서, 이젠 어쩌면 좋을까?”

내가 만들었지만, 결국 남이 만들어준 것과 다름없다는 점이 더해져 감격스러운, 정말로 감격스러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그저 올해년도를 한 번 묻고 침욱을 지키는 한규선에게 묻는다.

“그건 있다가 저녁에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 같아.”

한규선은 내 질문을 피하며, 식기를 모아다가 씽크대에 넣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었지만,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어쩌면 새로운 한규선이 나타나 낡은 한규선 대신 인생을 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아주 옜날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이 둘이고, 서로 만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괴담이 떠올랐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따져가며 맞춰보았다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아무튼 틀린 점 하나없는 둘을 도플갱어라 불렀다. 아니, 살아남는 쪽을 도플갱어라 불렀다고 배운 것 같다.

“도플갱어?”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고, 뒷처리까지 하는 나에게 물어볼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물어본다. 한규선은 설거지를 하다 멈추고 어깨를 떨며 웃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리가. 그런건 2950년정도 전쯤에 떠돌던 미신일뿐이야, 잘 알잖아?”
“그럼 넌 뭐지?”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지.”

내 질문에 대답하는 한규선의 표정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웃음기를 바탕으로 깐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평범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무작정 다가서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나의 표정에 혹해서 나를 더듬는 다는 생각에 꾹 눌러 참았다.

“중요한 문제가 달리 뭐가 있겠어?”

별안간 내가 둘로 불어났다는 사실을 주지 시키려 반문했지만, 한규선은 다시 씽그대로 고개를 돌리며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오늘은 일주일 중에 가장 바쁜 날이고, 벌써 7시인데,
  아직 속옷 하나 걸치고 있다는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목요일로 내가 가장 바쁜 날이었다. 8시까지는 직장에 도착해 밑준비를 시작해야 별탈없이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서둘러 준비하고 출발해야 8시에 직장에 도착할 시간이다. 얼른 식탁에서 일어나 어제 골라 거실에 걸어둔 양복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옷을 갈아입으며 슬쩍 규선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오늘 아침 홀연히 나타난 규선이 내가 휴일에만 입는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어디가?”
“어딜 가겠어? 출근해야지.”

옷을 입다말고 물어보니, 내가 가야할 곳과 똑 같은 행선지를 말한다. 어쩐지 조금 당황스럽고, 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함께 직장에 가자고?”
“왜? 어차피 출근 셔틀은 2인용짜리 쓰잖아.”

담담한 대답을 들으면서, 대충 입느나 이리저리 틀리고 접힌 옷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부엌의 규선도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로 손을 닦고 천천히 걷어올렸던 소매를 내린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직장에 둘이 같이 가자는거야?
  오늘부터 우리는 두 명이에요라고 허허 웃으면서 소개할까?”
“오늘만 두 명일거야.”
“뭐?”
“괜찮아. 오늘만 참으라구.”

모를 소리와 설명은 조금도 없는 설득에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쩐지 오늘만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을 수 있겠지. 딱 하루뿐이라면, 그냥 신경쓰여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어설픈 안도감이 온몸을 내리 눌렀다. 그래, 오늘만, 오늘 하루만 참는거야. 어차피 똑 같은 존재라면, 목소리도 지문도 동공도 똑같을 테니 별 다른 문제는 없으리라.

“그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거실벽의 콘솔로 내 유일한 사치품인 2인승 출근 셔틀을 호출했다. 이 도시의 하늘은 포화 상태다. 1시간에 600만대의 셔틀이 하늘을 가득 메우기 때문에 매시간마다 출발지와 목표지까지의 길을 할당 받아야한다. 자유 셔틀에는 세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출퇴근 셔틀을 사용하는 직장인이 많고, 나도 당연히 출퇴근용 셔틀을 구입했다. 조금 비싼 편에 속하는 2인승 셔틀(합승 셔틀의 2배, 1인승 셔틀의 1.3배정도 비싸다.)은 설정한 시간 속에서는 언제라도 길을 배정받을 수 있다. 쓸 일이 별로 없긴 하지만, 여러가지 부가 기능도 달려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사람이 둘로 불어난 오늘 같은 아침에도 일단 출근은 아무 걱정없이 할 수 있지 않은가.

“2인승 셔틀을 사두길 다행이야. 우린 선견지명이라도 있는게 아닐까?”

양복 외투를 걸치고, 풀어놓았던 넥타이까지 바로 멘 규선이 어느사이 곁에 다가서며 웃는다. 누구 입에서 어떤 의도로 나오더라도, 칭찬은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당연하지, 나는 현명하거든.”
“정말로 그래.”

게다가 내가 나를 향해 하는 칭찬에 겸양을 차릴 필요도 없다. 그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흐뭇한 기분으로 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곧 출근 셔틀이 날아와 선다. 유행을 타지않은 검은 남색의 몸체를 지닌 셔틀이다. 게다가 오래두고 쓰려는 생각에 고전풍의 디자인을 골랐다.

“생긴 것도 잘 골랐다니까.”
“그러게 말이지.”

어쩐지 흡족한 기분으로 셔틀에 올라타 앉는다. 똑 같은 ID, 똑 같은 유전자, 똑 같은 지문, 똑 같은 음성, 똑 같은 동공을 지닌 사람이 둘 올라탔어도, 출근 셔틀은 아무런 장애없이 천천히 직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명품이라는 평가가 붙는 불멸의 제품이다. 참 잘골랐다. 정말이지, 너무 현명한 선택을 했다.
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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