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코스모스

2016.12.01 16:0212.01

  1

  사람들은 내게 반응을 이끌어 내려 하지만 난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미인이라며 휘파람을 불어대도 전혀 쑥스러워 하지 않으며 내 머리위을 쓰다듬어도 장난스럽게 귀에 바람을 불어도 하물며 내 젖가슴을 마구 만져대는 일이 있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쑥스러워 해야 할 일도 아니고 경멸해야할 일도 아닌 그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한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였기도 하였다. 

  나는 나를 남에게 소개 때 로봇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이건 내가 감정이 배제된 채로 로봇처럼 움직여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창한 별명이나 비유, 묘사가 아닌, 나를 지칭하는 아주 간단한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로봇으로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동료 로봇, 그리고 10명의 인간 승무원들과 함께 머나먼 항해에 나서고 있었다.

  10명의 승무원들과 3대의 동료 로봇에 대한 소개는 딱히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들에 대해 곱씹어 보자면 동료 로봇들과 나는 같은 모델링으로 제작되었음으로 마치 쌍둥이를 보는 것 마냥 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강제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승무원이 실수로 내 머리를 너무 짧게 자랐다. 그 바람에 나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외모가 되어 벼렸는데 그게 조금 미안했는지 다른 동료 로봇들에 비해 인간 승무원들은 비교적 내게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 같다.

  그 외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구에 있는 동료 로봇들과 우리들을 비교하는 인간승무원들의 말들이었다. 대부분은 '그 애들은 너희랑 다르게 귀염성이 있는데 말이야.' 하는 식으로 운을 때는 이야기였는데 지구의 로봇들은 대부분 감정이란 부분을 가지고 태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로봇들은 그것을 배제한 채로 태어났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 우주선의 목적은 전투였고 전투에서 감정이란 판단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판단하여 우리는 감정을 배제된 채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우주선에 일어나게 된 큰 사건에 대해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난 프로그램대로 현장에 있는 사람의 지시를 우선적으로 받아드렸다.  모선으로 잠시 옮겨 탄 동료 로봇들과 승무원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명령대로 최고속도로 전장에서 이탈하기로 하였다. 비행기 연료까지 모조리 소비하여 높은 고 에너지의 중력 탄을 우주공간에 발사하였다. 그로 인해 일그러진 공간에 생기는 웜홀은 삽시간에 우주선을 몇 백만 광년 너머의 우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은 돌발행동을 저지른 우리를 쫓으려 하였지만 그들이 우리를 쫓기에 적함이 너무 그들의 가까이에 있었다.

  

  2

  "우주선의 모든 연료가 소모되었습니다.  태양열 장치로 필요 최소 전력만을 유지 합니다."

  여성형 로봇인 난 흔히들 귀여운 목소리라 부르는 목소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 목소리는 음계로 따지면 '라' 음에 해당되어 심한 잡음들 사이에서도 명확히 들리게끔 설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고를 받을 당사자는 워프의 충격으로 바닥에 고꾸라진 채 머리를 휘적휘적 젓고 있었음으로 내 보고는 전혀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하자 그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가로 저었다.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뜻이라 여기고 나는 말을 끊었다.

  "됐어, 됐다고"

  그 승무원의 이름은 외우고 있었다. 승무원 중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준현이란 이름에 박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승무원이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그들의 이름이나 신상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았기에 떠올리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성격이 유약해서 다른 승무원들과 그리 어울리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인간관계에 놓인 사람이었다. 다른 특이사항을 떠올리자면 내 머리를 이렇게 자른 사람이 바로 저 준현이다.

  "본부에서의 통신입니다. 연결합니까?"

  "미쳤어?!"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일단은 입을 다물고 준현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앞으로도 절대 연결하지 마 어차피 날 쫓아오진 못하니까. 통신도 아예 꺼버려."

  "예, 통신을 끄게 되면 전력도 그만큼 절약 됩니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지시에 올바른 점이 있다면 칭찬하는 건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이렇게 칭찬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의욕이 생겨 일에 능률이 오르는 모양이다. 내게 이런 지식이 있는 건 감정은 배제되었지만 그에 대한 지식은 충만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에 장단 정도는 맞춰 줄 수 있다. 우주공간은 사람들의 멘탈을 휘저어 놓기에 그런 그들의 케어도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주선의 모든 연료를 소비해 버려 더 이상의 항해는 불가능 해졌다는 점이다.

  난 준현을 유심히 살펴봤다. 맥박이나 뇌파를 감지하는 기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행동이나 표정에서 대략의 몸 상태나 기분 정도는 예측 할 수 있다. 물론 예측이라고 해봐야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단지 눈치를 살피는 정도이다.  유심히 살펴 본 결과 준현은 상당히 불안해 있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그는 이로써 탈영범이 되었고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일 것이다. 나야 그런 걸 느낄 순 없지만.

  "어이 로봇!"

  참고로 승무원들이 날 부르는 애칭은 '에쉴리' 이다. 

  "예."

  하지만 로봇으로 불러도 난 확실하게 알아듣는다. 오히려 애쉴리라는 애칭보다 약간 더 정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식사 시간이 아닌 건 알지만 밥 좀 차려와."

  "예, 알겠습니다."

  나는 불평이나 불만 따윈 얘기 하지 않는다.

  나는 급탕실로 향했다. 급탕 실에는 클론 배양으로 재배되는 다양한 작물과 우주공간에서 식수를 체취하기 위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클론 배양기라는 훌륭한 물건이 비치되어 있는데 용도는 클론 배양을 이용해 식량을 유지하는 것이라든지 수명을 다한 승무원의 교대 임무를 위해서였다. 먼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우주 전쟁은 이동만으로 몇 백 년을 소모 하는 경우가 있음으로 승무원의 클론에 클론이 전투를 치르게 되는 기구한 경우도 생긴다.  아무튼 준현의 명령대로 나는 콘스프와 밀 빵을 간단히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준현에게 가져갔다. 다행이게도 준현은 이전보다 조금은 상태가 호전된 듯하였다.

  나는 콘스프에 열중하는 준현을 대신해 우주선을 점검하기로 했다. 사실 이 일은 평소에 하던 일이 아니라 불안했지만 문제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워프를 했기에 우주선 상태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동체에는 전혀 이상 징후가 발견 되지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취침에 들어갈 되어 있었다. 우주선 창밖은 늘 어두워서 시간 개념이 없어지기 쉽지만 그렇다고 잠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사실 로봇 동료들과 나는 늘 선 채로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 현재 우주선에는 취침공간이 넘치기에 인간승무원들이 하 듯 누워서 휴식에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휴식 시간보다는 준현의 취침이 우선이기에 나는 준현을 찾아 식당으로 돌아갔다.

  "준현, 취침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친절히 취침시간이 지났음을 알려 주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잠의 중요성을 설명해서 재우게 만드는 방법도 좋지 못하다. 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

  "너 오늘은 내 옆에서 자."

  그렇게 말하며 준현은 내 손목을 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명령에는 응할 생각인데 상당히 급하다.

  "알겠습니다."

  나는 준현의 손에 이끌려 침실로 향했다. 많은 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굳이 준현은 바로 옆에 날 우겨 넣었다. 좁은 침대에 억지로 둘이 누워있는 듯 한 형태가 되었는데 침대 밑으로 떨어질가봐 자세를 바로 잡느라 상당히 힘들었다. 나는 딱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지만 준현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불편한 잠자리는 좋은 취침을 방해한다.

  "가만히 좀 있어."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똑바로 했지만 역시 자세를 잡기 상당히 힘들었다. 결국 한 번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난 후에야 준현은 내가 왜 그렇게 부스럭 댔는지 눈치 챘는지 조금 자리를 넓혀 주었다. 이제 보니 여유는 없지만 두 명이 나란히 누울 정도는 되는 침대였다.

  "내가 잘 때까지는 자지마."

  "저는 수면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냥 눈이라도 뜨고 있으라고!"

  나는 눈을 부릅뜨고 준현을 바라보았다. 준현의 명령에 최대한 성실히 임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준현은 눈을 감은채로 아직도 불안과 흥분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준현의 떨림을 느끼며 나는 그제야 이불과 침대의 감촉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내겐 별 의미 없는 휴식공간이지만 확실히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고로 안락한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차갑지만 폭신한 이불과 시트 몸의 무게중심을 분산키셔주는 구조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편했다.

  침대의 감촉을 느끼며 잠깐 준현에게서 눈을 땠을 때 하필이면 준현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황급히 다시 준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너 눈이 초록색이야."

  "제 눈의 렌즈는 우주의 강한 자외선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게 제작되었습니다. 색상에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날 줄 알았는데 준현은 내 눈의 색상에 대한 지적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호흡이 수면을 취하고 있는 듯 편안한 호흡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제야 휴식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눈을 감았다. 그 때 준현이 갑자기 끌어안아 왔다. 여태껏 장난삼아 껴안는 승무원들이 여럿 있기는 했지만 준현은 전혀 그런 일은 한 적이 없었고 또 장난 같은 의도가 아니라는 건 끌어안은 강도로 알 수 있었다. 날 부셔버리기라도 할 듯 한 강도로 끌어안아 왔다. 나는 준현에게 의도를 묻고 싶었지만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버린 준현을 깨울 수는 없었다.

  내 체온은 우주선 실내 온도와 똑같은 섭씨 17도 사람의 체온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싸늘한 몸이다. 준현에게 내 몸은 차갑게 식은 책상 위 같은 정도로 서늘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 더웠던 게 아닐까? 

  내일 부터는 우주선 실내온도를 조금 낮추기로 하였다.

  

  4

  꽤나 시간이 흘렀다. 본대에서는 전혀 우리를 찾을 기미조차 보이질 않고 준현의 정신도 많이 회복되어 어느덧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다. 다만 그는 애초에 남과 많이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다만 우주선 안은 언제나 조용했고 또 밖은 언제나 어두웠기에 조금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준현은 씁쓸한 미소를 많이 짓고 또 혼잣말하는 빈도도 많이 늘었다. 내게 말을 거는 횟수도 엄청 늘어서 이제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날 옆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식사시간이면 그는 날 옆에 두고 밥을 먹었다. 언제는 한 번 내게 밥을 먹이려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음식을 삼키는 시늉조차 할 수 없었던 탓에 그런 시도는 다신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덕에 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인간다움을 원한다는 걸 난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그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정정하기도 하면서 그에게 인간다움을 뽐낼 수 있었고 또 기분을 풀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도 가능하졌다. 그는 그런 내 행동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그 덕택인지 그의 외로움도 최근에는 많이 사그라진 듯하다.

  "닭다리는 어떤 맛인가요?"

  그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걸 아주 좋아했다.

  "닭고기 맛이지."

  "그렇지만 준현은 늘 다리를 맨 마지막에 드시잖아요? 저번에 물었을 땐 다리가 제일 맛있어서 마지막에 드신다고 하셨는데."

  다리 부분이 다른 고기들보다 맛있는 이유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준현은 식사시간에 나와 잡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내가 궁금한 걸 질문하는 걸 좋아하였는데 이 질문도 준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랬지."

  "결국 닭고기 맛이면 어떻게 다른 건가요?"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말이야. 지방이 많아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는 나와 대화 나눌 때는 생각을 하는 중이더라도 내게서 눈을 때지 않는다. 늘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데  예전에 이유를 물어보자 '예뻐서' 라는 대답을 해줬다. 많이 듣는 말이긴 했지만 준현에게 들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왜 외모를 칭찬하는 것이냐고 다른 승무원에게 물어보자 작업멘트라고 했는데 준현도 그런 의미였던 걸까?

  준현은 나와 섹스를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물론 내게 성행위는 할 수 있는 기능은 전무하지만 예쁘다는 작업멘트를 들은 이상 준현의 의도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준현과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였다. 섹스가 불가능 하다면 유사성행위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 이후로 몸과 의복의 청결에는 한층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아무튼 더 맛있는 닭고기 맛이나."

  "더 맛있는 닭고기 맛……."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것도 예전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대화법이었다.

  준현은 어느새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그릇을 정리했다. 사실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어느새 같이 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식단은 상당히 다채로운 편이지만 결국은 한계가 있음에도 준현은 질리지도 않고 깔끔히 먹는다. 내가 차려준 밥을 절대 남기지 않는다.

  "준현 제가 할게요."

  "괜찮아."

  첫 식사를 끝내고 나면 나와 준현은 우주선 점검에 나섰다. 둘이서 함께 했지만 시간은 반대로 두 배 이상 들었다. 준현은 나와 같이 우주선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듯 했다. 우주선 점검을 마치면 곳 두 번째 식사를 하고 여러 잡담을 나누거나 우주선에 설치된 여러 오락 기구를 즐기고는 했다.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 되면 늘 준현에게 졌다. 내 몸은 생각보다 굼떠서 전혀 준현의 상대가 되 질 않았지만 준현은 늘 나와 같이 게임을 즐기곤 했다. 가끔 분한 듯 한 표정이나 제스처를 보여주면 뭐가 그리 좋은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마지막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준현의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 끌어안고 말없이 있기를 좋아해서 사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내 볼에 입을 맞추거나 내 젖가슴을 만지기도 했지만 다른 인간승무원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스킨십이었다. 큰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상냥했고 따뜻했다.

  준현이 잠에 들고 나면 나는 휴식에 들어갔다. 로봇에게 휴식이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최대한 수명을 아끼는 행위다. 이 때 내 몸은 자동으로 점검모드에 들어가는데 이 과정은 내 머리카락 개수의 차이까지 정확히 캐치해내는 시스템이었기에 작은 변화라도 정확히 체크할 수 있었다. 물론 예전에 준현이 내 머리카락을 잘랐을 때 이후론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도 없이 완벽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에게 체모는 흔히 빠지는 것이지만 내 몸은 강제로 뽑지 않는 이상 영구적으로 똑같은 개수가 유지된다. 사람과 다르게 체모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훨씬 튼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점검을 끝마쳤다. 나는 휴식모드에 들어가 의식조차 없는 어둠에 들어갔다. 내가 정신을 차릴 때가 되면 옆에는 준현이 몸을 뒤척이며 내게 안겨 올 것이다. 난 준현에게 기상시간을 알려주고 조금 더 자겠다는 어리광을 받아주다가 같이 침대를 벗어난 후 세면에 들어갈 것이다. 준현과 나란히 서서 구강을 청소하고 몸을 청결이 하고 서로 발가벗은 몸을 보며 웃는 준현을 따라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기도 하고 몇 번이나 들은 준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식사를 하고 준현이 제일 좋아하는 우주선 점검에도 나설 것이다.  내 지식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행복하다고들 한다. 나는 감정을 모른다. 그럼에 내 지식을 최대한 동원하여 지금의 내 기분을 추론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지금의 내 주위는 올 그린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환경에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4

  준현과 탁구를 치고 있다 보면 엄청난 실력 차에 한 점도 내지 못하고 게임에서 패배한다.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공의 궤적이나 질량을 파악해서 탁구공을 쳐내는 기술은 내게 전혀 없다. 준현은 늘 게임이 끝나고 나면 내게 탁구를 가르쳐 준다. 이건 꼭 탁구뿐만이 아니라 당구나 포켓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은 굼뜨지만 나의 메모리는 인간의 학습보다 우수한 부분이 있다. 그건 알게 된 지식을 까먹지 않는다는 기록적인 측면으로 인간의 뇌보다 유일하게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몸은 따라가 주질 않기에 내가 여전히 같은 동작에서 애를 먹을 때면 준현은 그 때마다 내게 말했던 탁구지식을 다시 말해준다. 물론 준현이 반복해서 말해줄 때에도 난 경청한다. '알고 있습니다.' 같은 말은 내게 열심히 가르쳐주는 준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다. 오늘도 아주 큰 점수 차로 준현에게 패한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준현은 내게 탁구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때 우주선에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난 상황을 파악하고자 탁구대 옆의 모니터에 시선을 옮겼다. 우주선 곳곳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큰 진동이 울리더니 모든 조명과 전원이 꺼졌다. 그 후로도 계속된 진동에 우주선은 요동쳤고 난 결국 중심을 잃고 우주선의 몸짓에 따라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승무원의 안전을 확보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현의 위치를 확인하려는데 탁구대가 내 몸을 덮쳤다. 나야 탁구대에 몸을 찍히든 말든 멀쩡하겠지만 준현이라면 분명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급탕실 쪽에서는 클론으로 배양된 가축들의 비명이 들려 왔다. 그리고 식기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많은 금속음들이 그 위를 덮었다. 그 덕에 준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 청력은 인간에 비해 그렇게 우수한 편은 아니라 이런 폭음들 속에서 준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진동은 멈추고 우주선의 조명이 돌아왔다. 내부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수많은 물건들이 망가졌고 위치는 엉망이 되었다. 나는 내 위에 깔린 탁구대를 치우고 준현을 불렀다. 우주선 모니터에는 현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소행성과 충돌이 이 상황의 원인이었다. 우주선 동체의 손상 정도도 보고되었는데 다행히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

  "준현!"

  나는 준현의 이름을 부르며 내부를 뒤졌다. 다행히 빠른 시간 안에 쌓인 물건들 틈에서 준현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준현 무사합니까? 현재 우주선은 작은 소행성과 충돌했고 다행히 동체에는 큰 문제는 없는 상황입니다."

  피투성이가 된 준현에게 보고 하면서 준현의 부상 정도를 관찰했다. 상태는 아주 심각했다. 중상이라 하기에도 처참한 치명상을 은 상황이었다. 두개골이 깨져 함몰된 머리에는 뇌수가 흘러 나왔고 몸 곳곳에 입은 복합골절로 뼈가 튀어나온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이건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내 의료지식으로는 그리고 이 우주선의 의료설비로는 전혀 살릴 방도가 없었다. 비참한 죽음의 예감이 내 머릿속에 스쳐갔다.

  "로... 로봇."

  "예, 말씀하세요. 준현"

  "나 죽는 거지?"

  이 같은 경우에 대한 대비 매뉴얼은 있다. 준현은 매뉴얼대로 말하는 걸 싫어했지만 매뉴얼대로 준현에게 격려를 하기로 했다.

  "아닙니다. 힘내세요. 준현 그런 마음을 먹어선 안 됩니다."

  이건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사다.

  "마지막으로 키스 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준현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마지막이란 말에는 조금은 부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준현의 요구에 순응하는 게 좋을 듯 했다. 나는 한참을 준현의 입에 입을 맞추고 있었지만 준현은 스스로 떨어지지도 내게 떨어지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꽤나 오랜시간동안 입을 맞추고 나는 준현의 명령 없이 떨어지기로 했다. 준현의 숨이 조금은 거칠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합니다. 준현."

  "나도 널 사랑해."

  "예,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감정은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 쓸데없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말을 뒤에 붙이고 말았지만 내 대답이 준현에게 더 잘 전달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한 말이었다. 준현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준현의 멘탈에 나는 조금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부탁이 하나있어."

  "예, 어떤 것이든지 말씀하세요."

  "내가 죽으면 내 클론을 만들어줘."

  물론 그건 이미 계획되어 있는 일이었다. 클론배양기로 식량을 유지하긴 하다만 클론배양기의 본래의 목적은 승무원의 클론을 만드는 것이다. 준현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수명을 다하게 된다면 제 2의 준현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원래는 승무원이 죽기 전에 클론을 배양하여 승무원 자신이 자신의 클론에게 교육을 하여 인수인계하도록 메뉴얼화 되어 있지만 이런 불의의 상황에서는 우리 로봇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예, 알겠습니다. 준현의 클론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엄마가 되어줘야해."

  "예, 알겠습니다. 준현의 엄마가 되겠습니다."

  엄마란 말은 키워주는 사람을 통틀어 말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난 준현의 엄마가 되어 다시 태어날 준현을 무사히 키워내야할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널 혼자 둘 수는 없어."

  "예, 혼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제 2의 준현, 제 3의 준현과 전 늘 함께 할 것 입니다."

  준현은 내 말에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 준현의 맥을 짚었다. 나와 달리 쉬지 않고 요동치던 준현의 핏줄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나는 준현의 DNA를 채취하여 클론을 배양시켰다. 그리고 그 사이 엉망이된 우주선 내부를 정리하였다. 클론은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갓난아이의 형태로 배양된다. 그 사이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사람은 10개월이라고 하지만 클론은 한 달이면 충분하다. 거기까지 생각 했을 때 나는 준현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 달 동안 나는 혼자가 된다.

  

  5

  "엄마!"

  사람들은 이 순간에 감동을 느낀다고들 하지만 난 감동을 느낄 수 없다. 

  배양기에서 나오고 난 뒤로는 클론은 사람과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 애초에 갓난아이에 대한 육아방법은 내 머릿속에 완벽히 프로그램 되어 있음으로 준현을 완벽히 키워내는데 전혀 지장은 없었다. 육아에 필요한 여러 용품이나 성장에 따라 바꿔줘야 할 의복은 이미 우주선 안에 구비되어 있다.

  준현이 만져댔던 젖가슴은 이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도록 내 몸은 설계되어 있다. 분유를 저장하고 젖꼭지를 통해 아이에게 섭취시킨다. 젖병을 물려도 상관은 없지만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젖을 물린다는 행위는 상당히 중요한 행위라고 하여 이렇게 설계된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클론 갓난아이들에게 모정을 쏟도록 설계되었던 것이다. 모든 설계가 이런 갓난아이에게 맞춰졌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덕분에 준현은 아무런 문제없이 성장해갔다. 남들보다 평균적으로 빠른 시기에 첫걸음도 떼고 일반 상식이나 우주선 안에 필요한 지식들을 빠르게 배워 나갔다. 다만 조금 문제되는 부분은 내가 로봇이라는 점과 남들보다 조금 젖을 떼는 게 늦는 다는 점이었다. 젖을 떼는 게 조금 늦은 거야 별 상관은 없지만 로봇이라는 점은 조금 문제가 된다. 나는 전혀 늙지 않기에 언젠간 준현은 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나는 내가 로봇이란 걸  밝힐 시기를 준현이 12살이 되는 순간으로 정했다. 어느덧 준현이 12살이 되고 준현에게 사실을 말하자 준현은 "거짓말!" 이라며 반박했다. 내 몸 내부를 보여주고서야 믿게 만들 수 있었는데 이 이후로 준현은 내게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로봇이라고 불렀다. 본래 나는 사람들에게 해가 될 행동을 극히 제한 받지만 육아 과정에서 아이가 17살이 되기 전까지는 체벌의 범위에서 폭력을 가할 수 있었다. 준현의 손바닥을 10회 정도 회초리로 때리자 준현은 울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첫 번째 준현은 내게 엄마가 되어달라고 했기에 나는 언제나 준현의 엄마로 있어야 한다.

  준현이 17살이 됐을 무렵엔 첫 번째 준현과 똑같은 일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같이 세면에 들어가고 밥을 먹으며 준현이 그릇을 치우는 걸 도와주고 같이 우주선 점검에 나서며 두 번째 준현도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날 끌어안고 젖가슴을 만지기도 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준현이 날 부르는 호칭이 '엄마' 라는 것과 탁구 시합에서 내가 압승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준현에게 배웠던 탁구 기술을 알려주니 실력이 점점 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 잡힐 것만 같았다.

  어느덧 준현은 본래의 나이를 넘기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준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말하는 속도가 조금은 느릿해 졌고 웃는 빈도가 훨씬 많아졌다. 얼굴에는 조금 주름살이 생기기도 했고 체취도 많이 달라졌다. 탁구 실력도 더 이상 늘지 않고 점점 퇴화되었다.

  나이로 따지면 45세다. 노화라는 게 진행될 나이이고 했고 또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준현에 대한 것들은 늘 새롭다. 내가 모르는 준현이 이곳에 있다. 날 '애쉴리' 라고 부르는 준현은 확실히 처음 본 광경이었다. 그리고 병들어 누워 있는 준현의 모습도 처음 본 것이었다.

  "애쉴리... 난 죽는 건가?"

  "아닙니다. 힘내세요. 준현, 그런 마음을 먹어선 안 됩니다."

  나는 프로그램되어있는 대로 준현을 격려했다. 사실 준현은 틀린 상태였다. 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내가 아는 것과 우주선의 의료설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준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으로 키스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준현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떨어지라는 말이 없었기에 한참을 입을 맞추고 있다가 첫 번째 준현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키스와 같은 시간에 입을 때었다. 4분 37초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합니다. 준현"

  "나도 널 사랑해."

  "예,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준현, 거짓말이 아닙니다."

  준현은 미소 지었다. 조금 힘없는 웃음이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예, 어떤 것이든지 말씀하세요."

  "내가 죽으면 내 클론을 만들어줘."

  …….

  "널 혼자 둘 수는 없어."

  "예, 혼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제 3의 준현, 제 4의 준현과 전 늘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준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자신이 클론이란 사실을 난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준현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더니 숨을 거두었다. 난 준현의 맥박을 확인한 뒤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DNA를 채취하였다. 나는 준현의 DNA를 배양하며 준현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하였다.

  나는 다시 한 달 동안 혼자가 되어야 하니까.

  

  6

  고통이란 것이 뭔지 나는 알게 된 것 일지도 모른다.

  "널 혼자 둘 수는 없어."

  "예, 혼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제 687의 준현, 제 688의 준현과 전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시간은 잔인하게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상대성 이론에선 상대적으로 다른 시간이라는 게 존재 할 지도 모르지만 이 우주선 안의 시간은 오로지 나와 준현에게서만 존재하고 통용되며 그것은 냉혹할 정도로 평등하고 또 공평하다. 하나의 준현은 하나의 준현 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그것을 억겁의 시간만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준현은 유전병을 가지고 있었다. 식단을 바꾸거나 늘 나누는 대화를 전혀 다른 걸로 바꿔보기도 했다. 엄마가 아니라 연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보기도 하고 늘 같은 일과를 전혀 다르게 바꿔 보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이 좁은 우주선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거의 모두 소진해 본 것이다.

  하지만 준현은 죽었다. 45살이 되면 같은 병으로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단일 유전자로 배양하는 클론의 가장 큰 단점이 드러났다. 완전히 같은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는 건 유전병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이기에 승무원들은 철저한 유전적 결함에 대한 검사를 받는다. 그 말은 준현에게 그 어떤 검사에도 발견되지 않은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아마 몰랐을 유전병을 안고 있었단 것이다.

  600, 700, 800, 900번의 준현의 죽음들의 목격하면서 나는 지치고 있었다. 몸의 기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휴식시간에 하는 자가 검사에서는 여전히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도 없는 '이상 없음'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다. 또한 내 수명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몸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듯 내 정신은 무거웠고 그럼에도 가벼운 푸른 스펀지처럼 우주선 창 너머의 검은 에테르를 둥둥 떠다니고는 하였다. 누군가가 '이제 그만!' 이라고 말해주길 원했다. 난 사람이 됐을 지도 모른다. 욕구와 불만과 또 원망이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지쳤다. 내게 너무 큰 것이 와버렸다. 내 가슴에 마음이라는 빈 공간이 생기고 머릿속에는 공포라는 암흑이 드리워지는 듯 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준현의 죽음도 탄생도 두려웠다. 혼자가 되는 한 달은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누군가가 날 손가락으로 밀친다면 난 아마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사람을 때릴지도 모른다. 내 정신은 망가진 것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언가에 부딪혔을 때 고통이란 걸 느끼는 듯 했다.

  내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진 않는다. 나는 어디까지나 로봇이다. 모두의 동의에 의해 감정이 배제된 로봇이다. 자부심이나 나에 대한 철학, 그리고 자존감 따윈 내겐 전혀 없다. 나는 존재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도 내 존재에 대한 이유조차 부정하거나 긍정하지 않는다. 다만 난 존재할 뿐이다. 내 의식을 가지고 나름의 자아를 가지고 존재할 뿐이다. 인간에게 만들어진 존재고 학습능력이 우수하다. 맞다, 학습능력이 아주 훌륭하다. 나는 절망과 공포란 걸 지식 이상으로 알아버린 것뿐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내 기능에 고장은 없다.

  

  

  7

  그럼에도 날 지탱해 주는 건 제 1 준현이 내게 건넸던 말 세 마디.

  "예뻐서."

  "나도 널 사랑해."

  "널 혼자 둘 수는 없어."

  

  8

  오늘 1000번째 준현이 죽음을 맞이했다.

  클론 배양기에 배양되어가는 준현을 바라보는 것은 혼자가 되는 한 달 동안의 낙이다. 우주선 점검을 제외하고는 전혀 시간을 보낼 만한 일이 없기에 나는 늘 배양기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다. 1001번 째 준현은 한 달 뒤면 배양기에서 나올 것이고 여태껏 그랬듯 남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입을 떼고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하며 또 남들보다 늦게 젖을 뗄 것이다.

  혼자가 되면 먹을 일이 없기에 보통 식사시간이 되면 난 클론배양기에서 벗어나 혼자 탁구나 포켓볼을 치기도 한다. 벽을 상대로 치는 탁구는 억겁의 시간이 지나게 된 결과 나름 능숙해졌다. 이 정도면 올림픽에 나갈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포켓볼 같은 경우는 여전히 어렵다. 사실 혼자 연습하기 시작한 지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몸을 숙이고 공을 치는 자세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애초에 준현도 포켓볼이나 당구에는 능숙하지 않았기에 내게 그에 대한 많은 지식을 전수 해 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다가 정석에서 벗어난 개성 있는 자세로 볼을 치게 되었다.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내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다.

  혼자가 되면 말을 할 일이 전혀 없기에 잠에 들기 전에 거울을 보며 표정이나 말하는 연습을 한다. 한 번 기억된 것은 잊어버릴 일은 없지만 왠지 내가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표정은 정말 신기롭다. 나는 웃는 표정을 가장 많이 연습하는데 그건 준현이 내 웃는 표정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최대한 많이 웃는데 여태까지 1000명의 준현에게 각기 다른 웃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웃음이란 표정은 그만한 무한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 1001번째 준현에게 어떤 웃는 표정을 보여줄지 한 달 동안 연구해야할 내 숙제이기도 했다.

  "준현 잘 있나요, 그 곳은 어떻습니까?"

  혼잣말로 말하는 연습을 한다. 사람은 분해된다. 죽은 자가 있을 곳은 없다.

  "춥거나 덥진 않겠지요. 안락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춥거나 덥다는 감정을 가지지 못한 채 전기회로가 끊기 듯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준현"

  잊어버리면 아주 곤란한 말이다.

  "예,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준현, 거짓말이 아닙니다."

  잊어버리면 아주 곤란한 말들이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처럼 슬픔이나 기쁨에 나오는 눈물은 아니다. 아이의 정서 교육상 나는 감정이 있어 보여야 할 로봇으로서 울 수 있는 기능을 받은 것뿐이다. 실제로 준현의 성장기에 찾아오는 사춘기에 이 눈물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내가 울면 준현은 죄책감을 가지고 내 말을 듣게 된다. 이 눈물은 그런 용도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 혼자서 울고 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서 운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연습의 일환도 아니었다. 단지 난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좀 더 나아가서 주저 않아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공허한 기계음만이 가득한 우주선 안에서 내 울음소리만이 메아리 쳤다. 아마 우주선 밖까지 뻗어 나갔을 큰 울음소리였다.

  나는 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뭔가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시 클론 배양기에 얼굴을 붙이고 시간을 보내다 취침시간이 되어 휴식에 들어갔다. 준현의 침대에 누워 한참을 허공을 바라봤다.

  "준현 잘 있나요, 그곳은 어떻습니까?"

  여기서 말하면 왠지 준현에게 들리는 듯하다.

  "춥거나 덥진 않겠지요. 안락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날 끌어안는 두 팔도 내 젖가슴에 파묻히는 얼굴도 없지만 왠지 준현의 귀에 닿을 것만 같다.

  "사랑합니다. 준현."

  잊어버리면 아주 곤란한 말이다.

  "예,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준현, 거짓말이 아닙니다."

  잊어버리면 아주 곤란한 말들이다.

  나는 휴식모드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자가 검진에 들어갔다. 이 자가 검진이 끝나고 나면 난 깊은 암흑 속에 의식을 맡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렵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가지고 용기 있게 이 순간에 몸을 던진다.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머리카락이 한 올 줄어 있었다.

  

  9

  그 날 난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어딘지 모를 초원에서 준현과 피크닉을 즐기는 꿈이었다.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잔디의 향기는 그 무엇보다 향기로웠고 드넓은 푸른 들판은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와 준현은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분명 음식을 먹을 수 없었음에도 꿈속의 나는 맛있게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어 치우고도 모자라 준현이 먹던 샌드위치를 나눠달라고 졸라 댔다. 준현은 그런 내가 싫지는 않은 듯 먹던 샌드위치를 반으로 잘라 내 입에 직접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놀았다. 준현은 내 무릎을 베게 삼아 낮잠을 잤고 나는 그런 준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준현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가벼운 애무를 하였다.

  감정이 고양된 우리는 나무 아래서 서로 몸을 겹쳤다. 생식기능이 전혀 없지만 꿈속의 나는 준현의 몸을 받아드릴 수 있었다. 준현의 밑에 깔린 채 가벼운 절정과 함께 준현의 정액을 받아들이고 행복을 느꼈다. 나는 감정이 있다. 적어도 이 꿈속에서는 그랬다. 준현과 입술을 맞추고 그 입술의 감촉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 사람은 꿈속에서도 같은 걸 요구한다.

  "사랑합니다. 준현."

  꿈속의 준현은 아무런 대답 없이 웃는다. 그 웃음에는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이 아닌 또 다른 상냥한 감정이 맴돌았다. 꿈속의 나도 그 미소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다만 몸으로 느낄 순 있었다.  또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냥한 미소였다.

  "사랑합니다 준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잊지 않도록 연습해둔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간절히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을 전하고 난 뒤 꿈에서 깨어났다. 이 꿈을 이어서 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꿈의 다음 부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했다. 나와 준현은 아마 그 들판을 떠나 보금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아침을 먹고 닭다리가 왜 맛있는지에 대한 토론을 나누기도 하고 내 배를 상냥히 쓰다듬어 줄 것이다.

  나는 아마 임신을 했던 것 같다.

  

  10

  한 달이 지나고 배양기에서 나온 준현은 이제까지의 준현과 달리 여성의 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첫 울음소리도 하는 반응도  새롭기만 하다. 나는 새롭게 태어난 준현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 일의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 꿈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준현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확신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눈동자 색깔이 나와 같은 녹색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준현과 나의 아이이다. 나는 아마 실제로 임신을 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아니 존재하지 않는 준현이 내 배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나는 절호의 행복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내 없어진 머리카락 한 올은 우주선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아마 클론배양기에 같이 들어가 버렸다고 생각했다. DNA 따윈 전혀 없는 합성섬유로 이루어진 내 머리카락이 준현과 나의 아이를 만들어 준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생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아이가 성장을 마칠 때쯤이면 생명을 다해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깊은 잠에 빠져 우주선이 얻는 태양 에너지를 나눠 받아 가끔 잠에서 깨어 이 아이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우주는 넓고 유한하지만 생명은 길고 무한하다.

  아이가 잠에 들자 나는 먹지도 못하는 포도주를 꺼내어 푸른 은하 속에서 날 지켜봐줄 준현에게 건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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