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조현병자의 황천





*본편 무관*

김규식은 정신병원 침상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이 티끌 같은 행성에 군림하던 인류는 병탄되는 중이었다. 거대한 물고기 인간으로 보이는 그레이트 올드 원(Great old one) 다곤이 뜬금없이 바다 속에서 떠올라 눈을 치뜨자 딥원(Deep ones)들로 무작위로 사람들이 바뀌었다. 딥원은 생김새가 축소된 다곤 같아 얼굴이 심해 어류였고 손가락 발가락 사이엔 물갈퀴가 나고 등이 굽고 살갗은 비늘로 덮였다. 끝없이 인간으로 충원되는 딥원의 군세는 체력은 고릴라와 비등하고 지능마저 인간과 동일해서 인류는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인류의 일부는 정신이 무너져 미쳐버려 더욱 인류의 반격을 어렵게 했다. 딥원들은 때때로 미친 것처럼 행동했고 딥원이 되면 미치는 것 같았다.

김규식은 딥원 때문에 미친 것이 아니었다. 김규식은 다곤이 오기 전부터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려 폐쇄병동에 갇혔다. 김규식은 조현병의 한 증상인 망상에 빠지는 바람에 동네 어린 아이를 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고 그곳에서 심리 상담원들을 만나 조현병임이 판명되어 보호자인 부모에게 신병이 넘겨져 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김규식은 약을 먹고 거의 제 정신이 돌아온 상태였다. 약간 생각이 혼란한 것만이 증상으로 남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김규식은 명징하게 지금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조현병자 중에서는 일상생활도 못 하는 중증도 있지만 김규식은 약만 먹으면 다소 모자란 정상인이었다.

군경은 정신병원을 딥원의 군대에 내주기로 결정하고 더 먼 전선으로 후퇴했다. 직원들도 딥원 앞에 겁에 질려 병원을 버리고 달아났다. 인간들 사이에 있어도 딥원으로 바뀌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딥원의 군대 근처에 있으면 더욱 쉽게 딥원으로 변했기에 직원들을 욕할 수는 없었다.

김규식 곁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이미 모두 딥원으로 변했다. 환자복을 입은 딥원들은 부자연스럽고 둔해 보이는 움직임으로 김규식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김규식이 사는 이 행성은 괴우주 정신 등급에서도 문명 등급에서도 말석에 속했고 때문에 별다른 정신 정보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곤도 딥원도 실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당했기에 곧바로 멸망을 향해 달렸다.

그래도 김규식은 몇 가지 정보는 파악했다. 딥원이 되면 미치는 게 사실이라면 저들도 미친 것 뿐이었다. 김규식은 조현병 즉 보통 미쳤다고 말할 때 지칭되는 그 병에 걸려 있었고 지금이야 증세가 없지만 증상을 체험했다. 기괴한 망상이 진행되었고, 거역할 수도 있는 환각이 명령을 내렸으며, 무엇보다도 술을 너무 마시면 의식이 끊기되 몸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블랙아웃 상태도 조현병 증상이었다. 딥원 또한 통합된 광기를 느끼고 있고 이를 의지로는 거부할 수 없을 뿐일 수도 있었다. 딥원을 조종하는 게 다곤이라는 것 까지는 몰랐어도 김규식은 거기까지는 사고만으로 추리해냈다.

김규식이 사는 행성은 궤도 엘리베이터 건설 중인 활기차던 곳이었다. 때문에 양자역학이 태동 중이었고, 김규식은 그에 관한 지식 극히 일부를 알았다. 모든 것이 다곤과 딥원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지만, 김규식은 인류 지식의 정수 약간을 바탕으로, 사는 과정이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무생물 입자들의 변화 과정일 뿐임을 알았고, 설령 딥원에 의해 다른 무엇으로 바뀐다 해도 대우주의 존재들이 언제든 어디에서든 반복되거나 이합집산 한다면 그것이 죽는 순간 곧바로 부활하는 것일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인간은 잠자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 하고, 술 많이 먹거나 미치거나 해서 겪는 블랙아웃을 의식하지 못 하듯이 죽음은 꿈 없는 잠일 뿐이며 때문에 죽음에서 깨어나면 세월을 느낄 수 없을 터였다. 딥원이 닥치지도 않고 김규식이 미치지도 않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도, 가능성이 있다면 무한하고 영원한 대우주 속에 김규식 앞에 떠오르지 만다는 법이 없었다. 비록 상상일 뿐이라도 말이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이상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딥원들이 넘치는 병동 안의 살풍경한 모습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설령 대우주가 코스믹 호러 자체라서 죽고 나면 영원히 미쳐서 희롱 당할지라도 그건 마음의 상태 중 일부만을 비자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일 따름이었다. 주체적으로 아직 살 수 있는 지금은 희노애락을 자발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런 김규식의 마음 상태를 코스믹 호러의 지배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김규식은 고동치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 저항해도 감당 못 할 환자복 입은 딥원들의 군집을 처연히 바라보았다. 건장한 딥원들이 달려들어 김규식을 때렸다. 김규식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까마득히 접어드는 불행임을 보았다. 불행과 고통을 피하기 위한 활동들이 삶의 큰 이유가 되기도 하다는 걸 김규식은 잘 알았다.

어느 순간 김규식의 의식이 끊겼다.

고통이 사라지고 김규식의 눈앞에 우윳빛 뿔이 귀 위에 하나씩 달린 늠름해 보이는 사내가 보였다. 감각이 생생했다. 오히려 더 증폭된 감각이었다. 김규식 앞의 그가 말했다.

“난 스스로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최고의 칭호를 인간(因間)이라 하는 종족의 일원인 황천상제 하늘인간 트라무드 운능천이라 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그대를 저승으로 데리고 온 것이니 그대는 비굴해 할 일이 없는 것이요.”

김규식의 마음속에 그가 태어나 자란 행성의 역사에 관한 정보가 폭격되듯이 쏟아져 내렸고 이해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괴우주 보편적 지성체 형태의 일원이던 김규식은 그의 행성이 다곤에게 파멸하고 말았다는 걸 알았다. 그곳의 영혼들은 흩어져 자신처럼 운능천 앞에 선 것도 알았고 그들은 각각 단독으로 심판받는 중이었다. 하늘인간 운능천의 지성은 문명 6단계 파라탐 초문명의 일원답게 높아서 수십억 인류와 각자 소통했다.

운능천이 김규식에게 말을 이었다.

“내가 정신의 최종 결정권자는 아닐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 앞에서 심사받는 처지인 김규식님에게 겸허하게 대하는 것이고요. 물론 김규식님은 지금 펼쳐진 현실도 거짓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자유일 뿐이고 일단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제 종족은 인간 칭호를 가장 높이 쓰는 것입니다. 김규식님에게 다른 평범한 그 별 영혼들과 같은 처우를 하겠습니다.”

김규식은 황천으로 갔다. 인신족의 황천은 거쳐 가는 곳이지만 천국이다.


[2016.11.25.]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271 단편 코스모스 아뵤4 2016.12.01 0
2270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저승 혹투성이 창고지기 니그라토 2016.11.25 0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조현병자의 황천 니그라토 2016.11.25 0
2268 단편 토끼의 집 김정명 2016.11.08 0
2267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뱀파이어, 인신족과 격돌 니그라토 2016.11.03 0
2266 단편 음악, 외침 IMAC 2016.11.02 0
2265 단편 디도의 영주 김정명 2016.11.02 0
2264 단편 한심해씨의 유쾌한 특허 百工 2016.10.28 0
2263 단편 심사제외) ㅡ 검을 사랑한 사내 13월 2016.10.27 0
2262 단편 술마시던 이야기 13월 2016.10.19 0
2261 단편 다수파 이나경 2016.10.19 2
2260 단편 꽃들의 정글 오청 2016.10.17 0
2259 단편 죽은 매장자의 애독자 송망희 2016.10.03 0
2258 단편 (심사제외) 남저서구 무협임 13월 2016.10.02 0
2257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지장보살의 재미 니그라토 2016.09.23 0
2256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살려주고 잊어버리다 니그라토 2016.09.23 0
2255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시옥황 아트만과 악귀 니그라토 2016.09.23 0
2254 단편 총통령의 야망 MadHatter 2016.09.18 0
2253 단편 겁의 과실 송망희 2016.09.11 0
2252 단편 탑승객4 인스머스의눈 2016.09.07 0
Prev 1 ...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