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오늘도 새 옷이었다.
세티는 자신이 침대에 던져놓은 옷을 보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이드가 아침식사가 끝나고 희원의 편에 전해준 짧은 원피스 드레스는, 세티의 눈 색을 그대로 어둡게 한 듯한 딥 그린의 벨벳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긴소매의 끝자락에는 약간 손을 가릴 정도의 플레어가 들어가 있었고, 치맛자락에도 마찬가지의 플레어가 들어가 있었다. 칼라를 장식한 하얀 레이스 외에는 불필요한 장식은 없고 간결한 실루엣만을 살린 세련된 디자인에 칼라와 같은 레이스로 만든 하얀 장미의 코사지만이 가슴에 달려있었다.
희원에게 들려 보내긴 했지만 분명히, 직접 고른 것이리라. 그의 취향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 그 원피스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어째서.
그는 나에게 세큐리터에게 그 마스터가 보내는 것 이상의 신경을 쓰는 것일까. 치프 세큐리터인 에오더드가 그에게 좀 더 친밀하게 접근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에오더드에게는 이런 식으로 옷을 보낸다던가, 파트너로써 동행을 요구한다던가 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세큐리터와 마스터일 뿐, 그 거리는 좁혀질 수 없다. 세큐리터는, 애초부터 오펀인 것이다.
솔브의 미래가 될 프린스도, 그들을 보좌할 프레미어도 아닌, 어시스턴스라는 말로 치장된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뒷골목과 슬럼을 채우는 오펀. 아무리 알카나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세큐리터는 오펀이었고, 인간이 아닌 도구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세티는, 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충성심 이외의 것이 아니길 빌었다. 그리고 그랬어야 했다. 자신은 세큐리터이니까. 그리고 그 편이,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도 좋았다. 오래 전부터, 과분한 것은 바라지 않기로 결심한 그녀였기에, 세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메이저 알카나 이드 유리테스의 세큐리터인 것으로 족했다. 그렇기 위해 그때에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것이 아니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재차 다잡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막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려는 때였다. 이유 없이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세티는 알 수 있었다. 흥분된 것도, 불안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느낌이 치받아 올라와, 심장을 두근거리도록 하고 있었다. 무어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모호한 기분.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좋은 기분으로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짙은 푸른 눈동자가 머리 속을 채우고 들어왔다. 슬프고 그러면서도 무표정한,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 어디서 본 것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푸른색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문득, 세티는 정신이 들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물에 놀라, 급히 눈가를 비비고는 눈물을 숨기듯이 화장을 시작했다. 이상스런 일이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만 돌아가는 것 같다. 세티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두근거림도, 눈물도, 그리고 이드조차도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그녀를 이끄는 것만 같았다.
우스운 일이다. 바보 같은...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이 흔해졌던 걸까. 두근거림도, 눈물도, 모두다 없던 것이려니 하고 살아왔던 필요 없는 것에 속하는 것들일텐데. 왜 필요 없다고 버린 것에,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고개를 저어 머릿속에 든 생각을 몰아내고, 세티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화장한, 눈에 익으면서도 낮선, 자신의 얼굴. 저것이 세티 루릭, 인간이 될 수 없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는 하나의 세큐리터인 세티 루릭. 그것이 자신인 것이다.
오늘 저녁은, 콘서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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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가게는 여전히 영업정지의 팻말을 내어 단 채였다. 그리고 그 홀에서는 일주일전과 같이,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세영은 자신이 애용하던 라이플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케이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두 시간 반 분량의 mp3플레이어를 주머니에 넣고, 야간용 사이트가 달린 선글라스를 앞 포켓에 넣는 걸로 그의 준비는 끝이었다.
고개를 들자, 허리까지 흘러내린 금발의 커튼이 보였다. 묶어 올린 무거워 보이는 금발과 검은 7부 소매의 타이트 티셔츠, 그리고 하얗게 드러난 허리에 살짝 걸쳐진 찢어진 블랙진,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의 라에느, 그녀였다.
단지 오늘은 평소의 살짝 굽이 높은 앵클부츠가 아니라,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끈을 조여 신는 군화에 가까운 구두를 신고있었다.

" 라에느, 콜은? "
" 먼저 움직였어요, 시스템을 장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
" 그런가 "

라에느는 손가락 부분이 뚫린 가죽장갑을 끼고 몇 번 손을 쥐었다 피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 묻지 못했다. 어째서 내가 파이팅 피스트인 것을 한번에 알아보았는지, 어째서 내 이름이 스승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러나 그는, 스승님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모든 플레인스 트러블러들이 그렇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 외로워 보이는 눈.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잇는 것을 알았지만, 말을 걸지는 못했다.

" 돌아오면.... "
" 응? 라에느 뭐라고? "
" 아, 아니, 혼잣말. "

돌아오면 할 것이 있었다. 스승님이 살던 곳은 어떤 곳이었는지 그에게 물어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그도 무사해야 했다, 그래 꼭 돌아오게 되면 묻겠다.

" 기다렸습니까. "

그리고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짧게 잘린 머리와, 레인코트, 그 아래에서 마치 장식처럼 아름답게 그와 어울리고 잇는 세이버, 머리를 잘라서인지, 안경을 쓴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약간 어려보였다.

" 그럼 갈까 "

지금까지 바 안에 잇던 은이, 차 열쇠를 짤랑거리면서 바를 나왔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가게를 나갔고, 세영과 라에느가 그 뒤를 따라갔다. 리는, 그 무거운 나무문을 빠져 나오다가 문득 의문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지낸지도 열흘이 넘었는데 그 동안 한 번도 이 가게의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였다.
문 옆에는 그다지 알아보기 힘든 까만 금속제의 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은빛의 필기체로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 Silver
피식, 리는 미소를 지었다. 은- 이라. 가게주인과 어울리는 이름인걸,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돌아오자 여기로. 오늘밤 무슨 일이 있던 지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자,
언제나 모험을 끝내고 미풍으로 돌아갔듯이, 그래, 그렇게 다시 돌아오자 꼭.
오늘밤은 콘서트의 밤이었다. 그리고,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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