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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괴력의 미소녀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돌과 나무를 휘어 감고 황량한 대지를 훑는다. 거친 모래를 품고 날아오르는 바람은 거칠 것 없이 질주한다.

  모래가 흩날렸다. 바람은 벽에 부딪히자 벽을 돌아가려고 한다. 쉽게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돌아 나오면서 바람은 자신을 막은 벽을 뒤돌아본다. 거기에는 놀랍게 인간이 있었다. 아니, 인간처럼 생겼지만 크기는 몇 배나 되는 ‘거인’이 있었다.

  아케드. 털이 잔뜩 뒤덮여 있는 외눈박이 몬스터였다. 지능이 없어 언어도 없었고 오로지 괴성만 질렀으며 단순한 행동만을 반복했다. 작은 생명체를 찢어 죽이는 것. 그것만이 존재의 의미.

  쿠우우우우!

  “젠장, 아케드다! 도망쳐!”

  사람들은 아케드를 발견하고 온갖 욕설을 해댔다.

  “이 길은 안전하다고 했잖아! 빌어먹을!”

  “왜 아무도 발견 못한 거야!”

  “피해!”

  “옆으로 가! 흩어져! 떨어지란 말이야!”

  사람들은 짐과 마차를 버리고 도망갔다.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아케드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인간들을 쫓았다.

  이십 명의 남자들은 모두 무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하나 같이 도망가는 데 정신이 팔렸다. 무장은 장식에 불과했으니까. 이쑤시개밖에 안될 검을 들고 어떻게 몬스터와 상대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도망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숲으로 가!”

  무리의 대장인 듯한 남자가 침착하게 칼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사람들은 일제히 숲으로 뛰어들었다. 마차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곧 사람들은 다시 마차 근처로 도망쳤다.

  “끝장이다!”

  “빌어먹을!”

  “맙소사!”

  숲 속에서 아케드 셋이 나타났다. 매복. 지금까지 극도로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던 아케드의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태껏 아케드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일 또한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살아남기에 바빴다. 살아남아야 이 같은 사실도 전해질 수 있었다. 아케드 넷이 사람들을 포위했다. 사람들은 결국 비장의 각오를 다지며 무기를 꺼냈다.

  “죽어 보자!”

  “젠장!”

  “모두 무기 들어!”

  숲으로 피하라던 남자가 다시 외쳤다.

  “잘 들어라! 이렇게 된 이상 가장 공간이 넓은 곳으로 단숨에 뚫고 간다.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내 뒤에 네 명까지는 아케드의 한 쪽 다리를 노리고 파고들어!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혀서 균형을 깨트리는 거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모두 탈출한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어느새 그들은 진형을 짜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윽고 대장이 소리쳤다.

  "준비!"

  연이어 기합 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듯한 소리도 살짝 섞여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무기를 내던지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장이 먼저 달려나갔다. 사람들은 전부 대장을 따라 달렸다.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 그 순간, 뒤 쪽에 있던 아케드 한 마리가 허공을 날아 그들 앞에 있던 아케드와 부딪혔다.

  쿵!

  “뭐지!”

  “아케드가 날았어!”

  “나가떨어진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뭐, 뭐, 뭐야! 이게!”

  누군가가 외친 아케드가 날았다는 말은 정확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또 다른 아케드 한 마리도 허공을 날아 나가떨어졌다. 지면이 강한 충격으로 진동했다. 먼지가 휘날렸다. 사람들은 전부 뒤쪽을 쳐다보았다. 또다른 몬스터가 나타난 것일까? 놀랍게도 먼지가 걷히자 나타난 사람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에 작고 연약해 보이는 몸집을 가진 인형 같은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혹시 다치신 분은 없으세요? 힘 조절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헤헷. 괜찮으시죠?”

  사람들은 모두 당황한 나머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남은 몬스터의 괴성이 들렸다. 아케드 두 마리가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긴급한 상황인데도 소녀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여유롭게 마주 달려 나가더니 아케드가 내리친 몽둥이를 여린 손으로 사뿐히 잡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몽둥이를 부러트리고 나서는 안으로 파고들어 아케드를 허공에 들어올렸다. 아케드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자 마주오던 남은 아케드는 당황해서 멈춰 섰다. 그 순간 소녀는 아케드를 있는 힘껏 내던졌다. 아케드끼리 충돌하면서 몇 십 미터를 나가떨어졌다.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부러졌다.

  “믿을 수 없어!”

  “괴, 괴물…….”

  “저런 소녀가 어떻게…….”

  그때 먼저 쓰러져 있던 두 마리의 아케드가 갑자기 일어났다. 고성을 내지르면서 주위에 있던 인간을 집어 들었다.

  “끄아아악! 살려줘!”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터라 피할 틈조차 없었다. 그때 소녀가 재빨리 부서진 나무 기둥을 들어 올리더니 정확히 아케드의 손을 향해 날렸다. 아케드는 비명을 지르며 인간을 떨어트렸다. 누군가 떨어진 인간을 부축하고 서둘러 물러났다. 소녀는 나무기둥 몇 개를 연속으로 집어던졌다. 아케드는 얼굴을 가렸으나 복부와 다리를 맞고 다시 쓰러졌다.

  남은 한 마리의 아케드가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녀는 당황하지 않고 체술(體術)로 몸을 틀었다. 아케드의 측면에 도달한 소녀는 보법(步法)을 이용해 간격을 좁혔다. 그리고 아케드의 발을 밀어 균형을 무너트린 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아케드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동작이었다.

  “미, 믿을 수 없어.”

  “괴력…… 어떻게 저런 여자아이가.”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눈을 깜빡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믿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소녀는 손을 턴 다음에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소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카락이 물이 빠지듯 백금발에서 흑발로 탈색되었다. 길었던 소녀의 머리카락 역시 점차 짧아져서 마침내는 단발머리로 변했다. 사람들은 모두 마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까의 그 괴력도 설명이 되었다.

  “마법사? 천사?”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저토록 어린 소녀가 일부러 육탄전을 벌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뺨을 붉게 물들인 채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다치신 분 없으세요?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소녀는 어느새 구급상자를 들고 있었다.



카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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