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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법사 그리고 상인




  “자네, 정식 마법사인가?”

  로첸디아 왕국 수도 알펜.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알펜은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즐비했고, 거리에 화가도 많았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모두 색들이 화려했고, 거리마다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바야흐로 날씨 좋은 늦여름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년은 탑에서 나온 이후로 여관에 묵어 곧바로 잠을 청했다. 차원이동은 상당한 체력을 빼앗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온 소년 앞에 펼쳐진 장면은 가히 신세계였다. 소년은 정신없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평생을 살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난 뒤, 대륙 지도를 한 장 산 다음에 제이든 왕국을 향해서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중년의 남자가 따라붙더니만 말을 건 것이다. 소년은 황금빛 지팡이를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견습 마법사의 경우 모두 민무늬의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만을 사용한다. 견습용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다면 정식 마법사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맞아요. 왜 그러시죠?”

  “놀라워서 그렇다네. 어린 나이에 정식 마법사가 된 경우는 알카디엔 출신인 16세의 하이넬 밖에 없다고 들었네만. 자네 같이 어린 나이에 정식으로 마법사로 인정된 경우를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 말이야.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나?”

  “열 다섯이요.”

  “하이넬보다 무려 한 살이나 적구먼. 정말 놀라워.”

  ‘그 소녀 말고는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네. 그렇지만 도대체 정체가 뭘까?’

  소년은 경계하는 눈빛을 지었다. 그 중년의 남자는 갈색 머리카락에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체격은 큰 편이었는데 그 만큼 살집도 붙어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은 고급스러운 실크였다.

  ‘귀족인가?’

  “그런데 자네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제이든 왕국. 알카디엔으로 가요. 이 방향이 맞죠?”

  중년의 남자는 과장될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오, 자네도 알카디엔의 마법사인 건가? 아니, 그러면 내가 모를 리는 없지. 제이든 왕국은 내가 주로 물건을 거래하는 곳이니까. 아, 내 직업이 상인이라네. 아무튼, 알카디엔이 아니면 보아하니 케이븐 왕국 에젠틴 출신인 것도 같구먼. 에젠틴처럼 전투 마법을 중시하는 곳처럼 편한 옷차림이니. 어쩌면 여기 프리드리엔 출신인가? 그렇지만 그곳은 교육 기관이라 능력이 뛰어나도 어린 아이를 정식으로 인정하지는 않을 터인데. 설마, 섬 나라 로드가니아의 위드알리 출신은 아니겠지? 내 많은 마법사를 봐왔지만, 아직까지 위드알리 출신 마법사는 본적이 없네만.”

  ‘상인? 상인이 왜 이토록 마법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거지? 이런 자에게 내 정체를 말해도 되는 걸까? 아니, 어차피 상관없을 것 같아. 내가 토랑즈에서 차원이동해서 이 세계로 왔다는 사실이 숨겨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니예요. 그렇지만 위드알리 출신 분에게도 마법을 배웠어요. 제가 마법을 배운 곳은 토랑즈예요.”

  “토랑즈? 무슨…….”

  상인이 말을 흐리면서 잠시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토랑즈를 모르는 건가?’

  갑자기 상인이 소리를 높여 외쳤다.

  “맙소사! 설마, 그 마법사들의 도시 토랑즈를 말하는 건가? 그곳은 15년 전 이미 사라진 곳이지 않은가! 15년 전 대재앙의 날! 자네가 태어났을 때 이 대륙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말일세! 날 놀리는 겐가? 자네가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모르나 본데, 난 대륙 전역에서 유명한 자카르 상단의 주인, 자카르 파비에첸이라네.”

  “대재앙의 날? 그게 뭐죠?”

  상인 자카르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대재앙의 날은 인류 전멸의 위기였다. 그것에 대해 이 대륙에 살면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인류 최대의 비극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환장하겠군!’

  “자, 자, 자네! 진심 아니지? 어떻게 모른단 말인가! 지금 이 대륙이 엉망이 된 것도 전부 대재앙의 날 때문이거늘! 15년 전, 이계의 게이트가 열리면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

  소년은 크게 놀랐다.

  “이계의 게이트? 몬스터? 무슨 소리예요? 자세히 말해봐요.”

  자카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예 질린 표정이었다.

  “자네가 마법사라는 것이 의심스럽군.”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 말인가? 토랑즈는 대재앙의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런데 거기서 마법을 배웠다니 말이 되나?”

  ‘바보 아니면 정신병자로군. 대재앙의 날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무슨 놈의 마법사! 너무 어리기에 신기해서 말을 걸었더니만, 사기꾼이었군.’

  자카르는 차가운 눈초리로 소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자카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 설명드릴게요. 그러니까 이계의 게이트부터 설명해주세요. 갑자기 어떻게 나타났다는 소리죠?”

  자카르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누구도 원인을 모르네. 이계의 게이트가 어디에 어떻게 생긴 건지 알 수 없어. 그 대재앙의 날, 세상은 캄캄해졌지. 그리고 어디선지 모르겠지만 사방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출몰했어. 살육이 시작됐지. 마법이 없었다면, 인간들은 모조리 죽었을 걸세. 그러니까, 바로 저렇게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나 인간을 잔인하게 찢어 죽였다네! 헉! 맙소사! 우리가 언제 도시를 벗어나 있었던 거지? 마법으로 보호받는 도시를 제외한 곳엔 온통 몬스터 천지란 말일세!”

  처음 소년과 자카르가 만난 곳은 제이든 왕국을 향하는 국경 근처였다. 자카르는 이야기에 빠져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년은 줄곧 제이든 왕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경비병들은 마법사인 소년이 도시 밖을 나가는 것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꽤 많은 평야를 걷는 와중에 결국 몬스터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자카르가 가리킨 곳에 거인 몬스터가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소년은 처음 몬스터를 보게 된 터라 넋을 놓고 있었다. 자카르는 황급히 소년의 팔을 잡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몬스터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붙었다.

  "으아아아아악!"

  소년은 비명을 내질렀다.

  흰로브를 입은 소년이 황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아마 평생 이처럼 처절하게 달려 본적이 없을 것이다. 그 옆엔 뚱뚱한 체격을 가진 푸짐한 인상의 자카르가 같이 달리고 있었다.

  "저게 뭐죠!"

  자카르는 살이 많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꽤 잘 달리고 있었다.

  "뭐긴, 뭐냐! 몬스터지!"

  소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저런 몬스터가 있다니!”

  자카르는 성을 내며 소리쳤다.

  “어쩌라는 게냐!”

  “어떻게 해야 하죠?”

  “알게 뭐냐!”

  ‘내가 미쳤냐? 정체도 알 수 없는 정신병자를 돕고 있게. 소환에 필요한 크리스탈도 부족한단 말이다.’

  자카르는 더 이상 소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황금빛 알 모양의 물건을 꺼냈다. 한 손으로 잡을 만한 크기의 알 모형이었는데, 가운데 금이 가 있어 열 수 있는 구조였다. 남자는 뒤에서 덩치 큰 외눈박이 거인 몬스터가 쫓아오고 있는데도 침착하게 두 손으로 알을 여는데 집중했다. 그러자 그 속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훼리스핀!>

  소년은 달리는 데 집중하느라 자카르의 행동을 제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 어느새 자카르의 발밑에는 발이 네 개 달리고 허리가 지나치게 긴 반투명한 푸른빛 생명체가 나타났다. 자카르는 그 빛 덩어리에 올라타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아저씨!”

  소년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자카르의 모습은 눈으로 찾기 힘들 정도로 멀어진 상태였다. 혼자 남겨진 소년은 달리는 것조차 포기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힘들어…….”

  우어어어어어어!

  주위가 어두워졌다. 몬스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외눈박이에다가 인간의 몇 배나 되는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는 나무를 통째로 뽑은 듯한 몬둥이가 들려 있었다. 온 몸에 털이 수북하고 괴성은 귀청을 찢을 정도로 컸다.

  소년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결코 정신을 놓지 않았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마법과 함께 혹독한 수련을 거친 몸이었다. 몬스터가 내리친 갑작스런 공격을 몸을 굴려 피한 다음에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헉, 헉. 안녕하세요? 몬스터님. 전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만나자마자 헤어져서 아쉽지만 죽어주셔야겠어요.”

  소년은 지팡이를 내민다. 지팡이 끝에서 빛이 뿜어진다. 사뿐히 지팡이가 허공에 원을 그리자, 복잡한 룬문자가 새겨진 마법진이 나타난다. 곧바로 수십 줄기의 전격이 직선으로 뻗쳐 나간다. 전격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몬스터의 몸을 관통한다.

  쿠아아아아아!

  쿵.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른 몬스터는 새까맣게 구워졌다. 소년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채 몬스터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이거 먹을 수는 없겠지?”

  바람이 한 차례 불어 닥치며 먼지를 휘날렸다. 소년은 몬스터에게 시선을 떼서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끝없는 평야가 펼쳐졌다.

* * *

  “저희 자카르 상단은 그 어떤 물건이라도 완벽하게 운반해 드립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몬스터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소환수로 손님 여러분의 물건을 지켜드립니다. 믿고 맡기십시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완벽하게 모시겠습니다. 저희 자카르 상단의 신용은 이 자카르가 직접 보장합니다!”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제이든 왕국 국경 근처에 위치한 소도시 루티치. 국경 근처에 위치했기 때문에 로첸디와 왕국과 제이든 왕국 사이에 다양한 물건들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이었다.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자는 대륙 최고의 상단 가운데 하나인 자카르 상단의 주인 소환술사 자카르였다.

  주로 소환수를 이용하여 안전한 운반업으로 세력을 키워왔고 그 이후에는 한 지역의 특수한 물건을 싸게 매입하여 다른 지역에 파는 일로 장사를 해왔다. 도처에 널린 몬스터 때문에 도시 사이의 이동이 어려워진 탓에 자카르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었다.

  훗날 대재앙의 날이라 불린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던 때는. 그 이후에 마법사들의 호위를 받거나 비공정을 이용한 수단이 아니면 도시 사이의 왕래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자카르는 대륙 최고의 상인이면서 또한 대륙 유일의 소환술사였다. 자카르는 고대의 마법물체 ‘알테이더’를 통해 차원이 붕괴된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소환수를 소환할 수 있었다. 그 마법물체가 직접 이 세계의 좌표를 계산하여 지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카르는 그 덕분에 많은 부를 축적해왔다.

  “그 보증 믿어도 되나요? 아닌 것 같은데요.”

  자카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시비를 걸었다. 자카르는 그 맹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다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불과 며칠 전에 자신이 말을 걸었다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고 버리고 간 소년이었던 것이다. 살아남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자카르는 식은 땀을 흘렸다.

  “아니……. 넌!”

  사람은 누구나 판단 실수로 오점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카르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이토록 후회된 적이 있는지 고민했다. 그때는 크리스탈이 부족해서 전투 소환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년의 마법 실력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카르는 지체 없이 자신이라도 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자카르가 십 수 년간 쌓은 신용은 왕국과도 직접적인 교류를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 소년이 자신을 음해한다면,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 한 순간에 신용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대재앙의 날 이후로 마법사들의 지위는 크게 상승했다. 자카르는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어린 나이에, 몬스터가 사는 대지에서 혼자 살아남을 실력이라니. 정식 마법사가 맞았군.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니었어.’

  “자카르 상인님. 할 말 없으세요?”

  자카르는 씩 미소를 지었다. 여유 있는 태도로 팔을 벌리며 소년에게 다가간다.

  “어이, 이보게 친구.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참, 농담도 잘하는군. 당연히 믿어도 되지. 날 안 믿으면 누굴 믿는다는 말인 겐가. 하하하,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먼. 어디 한적한 데 가서 얘기나 하도록 합세.”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어린애에 불과해.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신용을 여기서 무너트릴 수야 없지. 괜찮아. 지금껏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온 내 입은 누구라도 설득할만한 마법이라고 할 만하지. 아무렴.’

  자카르의 동작은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속했다. 자연스럽게 소년을 품에 안은 다음에 어깨동무를 하고, 금세 사람 무리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어깨동무를 풀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제발 이러지 말게. 당시에 난 그 길밖에 없었네. 보통 사람인 나로서는 마법사인 자네를 믿었을 뿐이야. 그게 무슨 잘못인가? 그런 곳에 혼자 다니는 것을 보면 당연히 훌륭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일 테고, 나 같은 게 같이 있으면 방해라도 될 것 같았네. 그저 나 같은 사람이야 자리 피해주는 것 말고 더 있겠나. 내가 비록 남자고 어른이면서 몬스터에게 달려들어 보호하지 못한 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네. 그러나 내 진심이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게.”

  ‘쳇. 애초에 토랑즈니 뭐니 해서 헛소리를 늘어놓은 탓이잖아. 이런 어린 녀석에게도 굽신거려야 하다니. 마법사가 아닌 것이 정말 원통하군!’

  소년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 대답했다.

  “몬스터에게 달려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아까 말한 대로 소환수를 부를 수도 있었잖아요. 여기까지 오면서 그 동안의 명성을 많이 들어왔어요. 대단하시던데요.”

  ‘요것 봐라. 쉽게 물러서진 않겠다는 건데.’

  “아, 아니. 원래 소문은 다 부풀려지게 마련이지 않나.”

  “소문이라뇨. 누구나 인정하는 실제 사실들만 접해도, 장난이 아니던걸요.”

  ‘어쭈.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야, 역시.’

  “그래도 당시 나에겐 크리스탈도 부족했다네. 자네가 이해를 해주고―”

  “부족했는지, 아까웠는지. 글쎄요.”

  ‘이 녀석 협상이 뭔지 알고 있군.’

  자카르는 서서히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만큼 순진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소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 자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뭔가? 돈? 불러보게. 나에게 원한은 없지 않은가?”

  소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자카르는 초조한 표정으로 소년을 주시했다.

  “대상인이라면 이 대륙에 훌륭한 정보망이 있겠죠? 전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절 도와주세요. 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제게 주어진 사명 말이에요. 그걸 완수하기 위해서 우선 한 사람을 찾으려고 해요. 전 이곳 지리에 관해서도 모르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잘 몰라요. 그 대신 저도 제가 가진 정보를 제공하겠어요. 도와주시겠죠?”

  ‘그 정도라면 별거 아니군. 이 아이가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라면,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암. 인맥의 중요성이야 이전부터 뼈저리게 느껴왔으니.’

  “노력해 보지. 그런 일이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걸세. 비록 훌륭한 정보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아는 상인들이 많으니, 도움이 될 걸세.”

  소년은 자카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그럼 당장 가도록 해요. 급해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요.”

  자카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시장을 더 확장할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여기만 확보하면 알트리안 상단을 완벽히 누를 수 있건만!’

  “아직, 일이 다 마무리가…….”

  소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정말 그러실 건가요? 앞으론 그 마무리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자카르는 잠시지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폈다.

  ‘맹랑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얼른 가도록 하지! 내 생각이 짧았네. 밤이 되기 전에 이동하도록 하지. 그런데 자네 이름은 어떻게 되나?”

  소년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카디앙! 제 이름은 카디앙이에요."


카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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