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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5)

        “령 매. 아직 자는가? 슬슬 갈 시간이네.”

아니꼬운 녀석. 이미 완벽하게 그녀로 돌아간 라윤은 날카로운 시선을 유하에게 던졌다. 잠 한숨 못 잔 라윤의 눈에는 희미한 붉은 실핏줄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계속해서 들이킨 차는 그의 뱃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일어났습니다.”

여전히 매끄럽고 매력적인 목소리이다. 만일 자신이 정말로 여인이었더라면, 질투를 해도 한참을 했을 그런 여인. 매력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 라윤은 단정을 지었다. 마력적이야. 저 금안은. 탐이 나. 가지고 싶어. 안고 싶어. 가질 거야. 늘, 첫 번째가 되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누군가의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언제나 항상 그렇게 꿈꾸어 왔었다.  

        “낭자. 감사하오. 우/리/ 령 매를 잘 돌보아 주어서.”

사내라고 부르기에도 못한 미성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유하의 입에서 이죽거리는 미소와 함께 흘러나온다. 부채를 하늘하늘 부쳐대면서 피식 웃는 모습은 과히 라윤의 성미를 돋굴만한 자태이었다.

사실, 그리 할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다. 저 둘의 뒤를 따를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그냥 자신의 뒤를 봐주는 호위들에게 말하면 그 말일 뿐이다. 확실히 하늘 위의 생명들이 피가 섞인 후손을 노예로 부릴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니 가문이라면 분명히 정당한 방법으로 인해서 돈을 번 것은 아닐 터. 라윤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그가 “늙은 능구렁이” 라고 칭하는 그의 부왕 즉, 황제에게 자신을 거론한 “늙은 너구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재상의 재치라던가 행정 처리 솜씨는 공정하고 명확했다. 다만. 재물 욕심이 너무 과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사람에 대한 욕심 또한 과했다. 세간에서는 재상이 현 황제의 등극을 도왔던 것이 소싯적 현 황제의 미모 덕분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도 돌았으니 말이다. 재상의 가문에는 하늘 사람 내지는 하늘의 신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상의 나이 또한 유추하기 힘들었다. 확실히, 재상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고운 미인(美人)들만 가득했으니. 남색가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의 핏줄을 타고난 고조 손들을 미루어 봐서는 그도 아닌 듯 했다. 무엇보다도.

        “이건 뭐라는 물건이오? 꽤나 수려하게 생긴 소동(少童)이 아닌가?”

유하는 장터의 물건 중에 재상을 그려놓은 부채를 들어 보이면서 흥미로운 어조로 질문했다. 뒤를 따르다가 이 광경을 본 라윤은 속으로 질색을 하면서 외쳐대고 있었다.

        ‘재수 없는 너구리!’

재상은 아직 어린 소동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아주 미색인 소동. 그러해서인지, 음흉한 그의 속내에도 불구하고, 매력에 속아 넘어가는 불행한 중생들이 많았다. 라윤의 혼사가 정해진 것도 재상의 부름을 라윤이 억지로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라윤의 외모는 미인 측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늙은 능구렁이인 그의 부왕은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아무런 언질도 안 했다. 하여, 재상이 이웃해 있는 초란국의 외동딸인 휘 공주의 부마로 라윤, 그의 이름을 거론했을 때도 아무런 말을 안 할 정도이었으니. 일처다부제인 초란국의 부마-. 그것도 제 2 부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희한하게도 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부왕이 가장 총애하는 라윤의 모후는 평소의 그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태도를 어디다가 두었는지, 날카롭게 재상을 손수 들어올려서 엉덩이를 내리치려고 했고, 라윤 또한 검을 뽑으려고 하다가 호위에게 저지당해서 버둥거렸다. 확실히 초란국의 사람들은 매우 야만적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오죽하면 다소곳하고 온화하여, 황제뿐이 아니라, 같은 후궁과 황후의 총애까지도 받아내는 사람 좋은 라윤의 모후 본인이 나서서 저 무서운 재상의 엉덩이를 내려쳤겠냐고 궁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정도일까. 무어, 확실히 재상은 소동의 체구 그 자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황제는 재상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라윤의 모후는 빙궁에 유폐가 되었고, 라윤의 모후는 유폐되기 직전에 라윤에게 짐 꾸러미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호위에게 정신없이 이끌려서 나온 이후에 짐 꾸러미를 풀어보니, 그 안에는 화사한 여인네들의 옷가지들과 값진 패물들이 들어 있었다.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입지 않겠노라고 버팅기던 라윤이 그것들을 끝내 걸친 것은 호위 중의 한 명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본 이후부터이었다.

        “재상? 호오-. 과히 옛말 그른 것 없군. 이리 귀한 미모에 재간이라니-. 불공평하군.”

유하는 건들거리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어쩐지 그 미소가 자신을 향한 듯해서 라윤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댈 뿐이었다. 묘하게 닮은 분위기이다. 라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빌어먹을 능구렁이 재상 녀석의 웃는 얼굴과 저 웃음의 분위기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으나, 재상의 그 웃음은 매우 사이하고 음울한 그것이었다. 만사를 다 인지하고 있다는 그런 태도. 분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얄미운 그것. 깨뜨려 버리고 싶은 그런 미소. 무어, 유하의 웃음에는 사이하고 음울한 그런 것은 없었다지만 말이다.  

        “같은 사내의 얼굴이 그려진 부채를 사는 것은 좀 그렇군. 이보게. 주인장. 뭔가 다른 거 없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왜 좀 더 야들야들한 미인들이 그려진 춘화집이라던가-.”

주인은 설핏 비린 미소를 지으면서 유하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유하는 크게 웃음을 지으면서 주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령 매 역시 상당히 수상쩍어 보이는 가게 안으로 사라져 갔으나, 라윤은 차마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어, 확실히 지금 그의 모습은 “그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공자님. 어서 오셔요. 새로운 아이들이 많이 들어왔다구요. 아잉- 그러지 마시고 안 쪽으로 네?”

언제인가, 내가 능구렁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재상 다음으로 네 목을 떼어내어 주지 암. 그렇게 다짐하면서, 라윤은 자신의 뒤를 따르다가 기녀에게 잡혀서 고전분투하고 있는 호위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라윤 그들이 정신없이 유하들의 뒤를 쫒아오다가 당도한 그곳은 기루의 거리이었다.

예상 외로 어둡군. 어두운 곳이야. 거기다가 이 악취는! 유하는 아니, 유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루의 거리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진동을 하던 악취이었다. 이래서야 이것은 이미 신수가 아니라 요물이 아닌가. 유아는 얼굴을 미세하게나마 찌푸렸다. 자신들의 뒤를 라윤이라는 처자가 쫒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내쫒지 않은 것도 엄청난 악취 때문이었다. 흘낏 율령을 올려다보니, 율령의 금안 가득히 묘한 흥분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유아의 수려한 미간은 한층 더 찌푸려질 수 밖에 없었다.

        “꽤나 군침이 도는 모양이로군.”

역시 조류이었어. 유아는 그리 한탄하면서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천장에도 벽에도 바닥에도 어디에나 “그것”의 악취는 진동을 하고 있었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이잖아. 유아는 투덜거리면서도 부채를 펼쳐서 천천히 부채질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문 듯 교단 내의 그 연꽃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커다랗고 향기로운 샴 꽃. 교단 안에서만 피는 그 소담스러운 연꽃.

        “공자? 어느 아이를 원하시는지요?”

춘화집에 그려져 있던 똑같은 소녀들이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대로 그녀들의 몸을 내보이고 있었다. 유아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한층 더 크게 지었으나, 그녀의 속은 뒤집어 질대로 뒤집어 지고 있었던 터이었다.

        “악취가 심해. 주인장.”

끌끌거리면서 소녀들을 더 내오던 주인장은 유하의 그 말에 멈칫하면서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았다. 유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령 매를 팔려고 하는데-. 여기면 가장 좋을 듯 하여서 말이오? 어떠오? 나의 령 매가?”

무언가 꿍한 소리를 내려던 주인장은 자신의 앞으로 나서는 율령의 미모를 혹한 듯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자신의 허리춤에 묶인 금괴가 들은 주머니를 유아에게 내밀었다. 그 전에 율령의 얼굴을 잡고서 지분거린 것은 물론이었다. 주인장의 손이 둔부로 내려갔을 때였다. 차갑고도 낭랑한 웃음이 다소 담긴 유하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 금괴라면 나도 있소이다. 하늘의 생명의 핏줄을 이어받은 노예를 팔수 있는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 냄새나는 금괴 따위는 필요 없소. 그 보다는 내 령 매가 매우 배가 고파하고 있소이다. 무언가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내오실 수 있으시오?”

주인장은 욕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빛내면서 그러마- 하고 말했다. 아랫것들은 주인장의 손짓에 따라서 이것저것 음식을 가득 담아서 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아는 차려 나오는 음식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아니요. 내가 원한 것은 그래. 차근차근 시작해 볼까나? 주인장-. 당신 팔부터 어떻소? 당신의 팔 한쪽과 다리를 내어 놓는다면 그나마 숨쉬기가 조금 편해질 듯해서 말이지?”

무어라? 주인장은 주방장을 닦달하려다가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하는 유아를 돌아다보았다. 욕망으로 눈이 번들거리던 주인장의 가는 두 눈이 순간 인간의 것이 아닌 무엇인가로 변하고 있었다. 반들반들 까만빛이 빛난다. 쉰 목소리가 주인장의 목을 타고서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었다.

           //네 이 놈들-! 아니로군! 인간이 아니야. 신수더이냐? 그리고 소환사?//

부채를 펼치면서 유아는 까르륵 웃어대었다. 나직하게 내던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라, 확실한 소녀의 웃음소리이었다. 율령은 금안으로 자신의 여주인을 돌아다보았다. 날카로워진 금안 한 가운데는 이글이글 무엇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허락을 한다. 그 날개를 펴도 되느니- 가라! 율.령!”//

율령의 화사한 금은궁장 위로 금빛의 거대한 날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그녀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닌, 주인장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검은 색의 촉수를 피하다가 스치는 바람에 유아의 틀어 올린 상투 또한 풀러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람 한점도 없는 그런 기루에서-. 거대한 크기의 금빛 새가 날개를 펴고 있었다. 기다란 꼬리 그리고 우아한 선을 그리는 몸의 자태는 분명히.

        “신수? 아니 신조?”

호위를 간신히 빼온 이후에 기루 안으로 들어서려던 라윤은 거칠게 흔들리는 기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부신 금빛이 가득히 천지를 메우고 있었다.

        //“火!”//

분명 유하는 남자이었다. 하지만 유하의 풀어져 헤쳐진 채로 나풀거리는 흑단나무와도 같은 그 머리채는 여인네의 것이다. 그리고 유하의 새하얀 손에서 흘러나오는 불길은 매서운 기도로 주위를 태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유하의 의복이라던가, 머리카락의 끝은 하나도 상하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라윤을 멍하게 만든 것은 금안을 빛내면서 꿈틀거리는 검은 촉수 덩어리와 싸우는 율령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율령의 찢어진 상의 사이로 보이는 탄탄히 다져진 사내의 가슴이었다.

        //“뭐하는 게야. 율령. 모처럼 거하게 상을 차려주었는데. 잡아먹어 버려.”//

기이하게도 라윤이 서 있는 발치에는 유하의 손에서 나온 붉은 불이 와 닿지 않고 있었다. 살짝 살짝 왔다가 물러서는 그런 것. 그래 마치 파도 같았다. 글에서만 보았던 바다의 물결. 유려하고도 화사한 물결을 그리고 있었다. 이글거리면서 타오르는 불길이. 불의 술. 유하의 불의 술은 마치 물처럼 빙글빙글 타오르면서 유하와 기루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다시 한번 명한다. 잡아먹어!”//

문득, 유하의 검은 두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던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라윤의 손에는 어느 덧 검이 빼어져 들려있었고, 이미 여러 차례 눈앞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촉수를 내리쳤었다. 아니 내리치려고 했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투명한 막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火!”//

또 한번 낭랑한 술을 읊는 소리가 유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작은 새의 모양을 한 붉디 붉은 불꽃들이 사방팔방에서 솟아 나오는 검은 촉수를 태우고 또 태웠다. 거대한 신조의 그림자를 몸에 가득히 두른 율령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한 팔을 들어서 휘둘렀다. 아직 팔의 일부분에 걸쳐져 있는 금은 궁장의 화사한 소매가 펄럭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율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거대한 금빛의 모습을 가진 새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의 울음을 내뱉으면서, 날개를 퍼덕였을 뿐이다. 그리고.

        “쳇-. 서두를 일이지. 주인의 땀을 빼게 만들다니. 마음에 안 들어.”

유아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중얼거렸을 때였다. 금빛의 신형이 때마침 꿈틀거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그것을 공격한 것은. 땅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나타난 그것은-.

        “흐윽. 징그러워라. 저런 것을 어찌 소환할 생각을 했담? 참 그 남자도 취미 한번 별나구나.”

아까 붉은 불길을 휘감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주제에 유아는 눈앞에 본체를 들어낸 검은 거대한 “징그러운” 것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 것은.

        “아목(亞目*1주)따윈 질색이야! 아목(亞目)이면 아목(亞目)답게 기어 다니라고! 왜 날라 다니고 난리를 피우는 게야!”

질색을 하면서 손속을 두지 않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반들반들 윤까지 나는 그것에게 붉은 화염을 퍼부어 대던 유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목 따위를 소환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 아니 머리가 어찌 된 것 아니야. 간혹 있긴 했다. 득도를 한 충이 신수가 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지. 어찌! 사람의 말도 안 통하는 아목(亞目) 따위를 취할 생각을 한 것인지. 날개까지 달린 저 이형 아목 따위! 유아는 쌍심지를 키고서 금빛의 신조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외쳐대었다.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다 잡아먹어야 함이야! 한 마리라도 남기기만 해 보아! 내 水의 술을 읊을 터이니!”

확실히 꿈틀거리는 아목의 촉수 아니 더듬이들의 움직임이 줄어든 것은 유아의 입에서 저 말이 떨어진 이후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잿더미 그 가운데서 상의가 완전히 찢어진 금안을 가진 사내가 걸어 나온 것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었다. 라윤은 검을 곧게 치켜 세운채로 자신의 앞에 와서 선 금안의 사내에게 겨누었다. 무언가, 마음 한 쪽이 시큰거리면서 아파오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라윤을 재미있다는 듯 금안의 사내 뒤에서 걸어 나오던 유하 아니 유아는 차갑게 미소 짓는다.

        “참으로 묘한 낭자일세. 신수인 것을 모르시겠는가? 아직도? 그리고 확실히 사내의 성을 가지고 있네.”

그제서 라윤의 두 눈은 유아의 한 손에 들린 둥글고 납작한 그 무엇에 가 닿고 있었다. 윤이 나는 옥으로 만든 그것에는 주유아(珠有我)라는 이름 석자와 소교주명 이라는 네 글자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두 눈으로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윤의 입에서는 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녀석은 또 누구냐. 이름이 무엇이더냐!”

옥패의 그 너머에는 유아의 검은 두 눈동자가 차가운 빛과 함께 보이고 있었다. 흑진주보다도 더 윤이 나는 두 눈동자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교교한 빛을 담은 금안의 사내가 서 있었다.

        “딱도 하시구려. 보는 눈이 휘기라도 했는가. 본 녀의 이름은 주 유아. 소교일세.”

유아의 흑진주 같은 눈동자 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반대로, 금안의 사내의 눈은 무표정 그 자체이었다. 아마도 라윤의 입에서 교단이 어쩌하여-, 이런 소리가 나왔던 듯싶다. 이번에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차가운 빈정거림이 가득한 목소리가 유아에게서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교단의 일이니, 그대 어떤 신분인지는 알 도리 없으나, 본 녀의 갈 길에서 물러서야 함이야. 가자. 율령.”

지독하고 매캐한 탄내와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언뜻 향기로운 샴 꽃의 향이 스며들어왔다. 치장을 즐기던 라윤의 모후가 가끔 들리는 상단에게서 구입하고는 했던 샴 꽃의 향유. 그 보다도 더 진한 향기이었다. 라윤의 검은 내려져 있었으나, 라윤의 검을 들지 않은 한 쪽 손은 꽉 쥐어져 있었다. 교단에서만 피어난다고 했었지. 그 샴 꽃은 말이야.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런지. 감읍하고 또 감읍하나이다.”

초췌한 중년의 사내가 라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 유아 일행의 뒤를 쫒으면서 허리를 백배 천배 조아리며 감읍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잿더미 속에서 하나 둘씩 재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는 신형들이 보인다.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이런 경악이 어린 수군거림이 라윤의 호위와 일어선 신형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라윤 님?”

자신의 옆에서 호위의 걱정스러운 말이 들려올 때까지도 라윤은 그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들어 왔었다. 교단의 사람들이 가진 능력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속을 두지 않고서 없애는 그 잔인함이란, 그 위력이란. 아니 그 이전에-.

        “저들 뒤를 따를 것임이야.”

사내라고? 그 금안을 하고서? 그 교교한 자태와 그 금안을 가졌으면서! 사내라고? 상관없다.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자다. 처음으로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질 것이다. 라윤은 발을 옮겼다. 바스락-. 매캐한 내음을 풍기면서, 라윤의 발 밑에서 잿더미가 바스락 스러진다. 시선을 올려, 바라본 눈앞에는 붉은 노을 너머로 한들한들 그렇게 작아져가는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첫 매듭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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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목(亞目*1주) -> 바퀴아목, 즉 바퀴벌레를 말한다.

*해충은 범죄입니다!* (진지)

이리하여 유아 일행도 첫 매듭을 달게 되었군요.
+_+
두 번째 매듭은 아마도, 모종의 쌍동이 금은여우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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