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커다란 샴 꽃은 연 특유의 아름다운 자태를 내보이고 있었다. 무어 특별히 따져 말할 것은 없다지만 말이다. 매혹적인 연 정령 무희들의 나긋나긋한 몸짓이나 교태가 어린 그네들의 발놀림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을까? 가끔 되뇌어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라고. 코  끝에 감도는 향에 감읍하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본다.

        "소교! 명을 받자와 모시나이다. 교주의 진언을!"

흥취를 깨는지고. 저 무례한 아해 누구인고? 음을 듣자하니 아직 미령한 아해일 듯한데 감히 소교의 흥취를 깨는 무례함을 알기라도 하는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허나 명색이 소교이다.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거라. 내 곧 나설 터이니."

부드러운 홍의를 펄럭이면서 정령 무희들이 소교,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소교의 백의 소매자락 아래로 고운 섬섬옥수가 나타났다. 섬섬옥수가 익숙한 동작으로 인을 맺으니 이내 오색의 나비가 날아올랐다. 늠름한 나비장군은 정령 무희들의 옆에 서서 더 나위할 바 없는 멋진 춤을 어우르기 시작했고 소교 유아는 그 모습을 즐거이 바라보며 작게 흥겹게 미소했다.

아무런 머리장식도 없이 흘러내린 소교 유아의 흑단빛 머리는 언제 연못 안에 있었냐는 듯 윤기를 머금고서 한 가닥 한 가닥 휘날렸다. 그리고 소교 유아의 신형이 사라진 연못가는 분홍빛 연꽃 위에 오색나비들이 고운 날개짓을 하는 광경만 남아있었다. 차마 물러날 기회를 놓친 전달자 아해만 털썩하니 주저앉아서 자신의 바지를 지렸을 뿐이었다. 향기로운 연꽃이 가득한 연못가에 어울리지 않는 지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어이 터트리고 만 울음보 역시.

작은 발이 사뿐하게 옥석이 가득 깔린 마루 위로 내려앉는다 싶더니, 곧 결 고운 흑단머리와 연꽃 빛 입술을 한 소교 유아가 앉아 있었다. 다소곳하게 예를 갖추고 앉은 그녀의 매무새는 연못의 연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지 교주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다.

        "날로 갈수록 네 자태가 고아해 해지는 것이 매화 같구나."

분홍빛 입술이 한 일자로 다소 굳게 다물어진다. 소녀의 흑진주 같은 눈은 그녀 앞에 근엄하게 서 있는 교주에게로 향했다. 교주의 회색 머리 위에 늘여뜨려진 옥색 장신구가 때마침 불어온 서늘한 바람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혹여, 탈이라도 나셨는지요?"

진지한 유아의 질문에 교주 마 희는 서늘하게 헛헛히 웃는다. 앞으로 풀어놓을 이야기를 생각하니 다소 아찔한 모양이다. 벌써 일흔 살이 다 되어가는 그녀이지만, 불과 마흔 정도로 보인다. 향기로운 바람이 그들이 앉아 있는 전각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네 나이가 몇이더냐?"

소녀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더니 곧 영롱한 옥음으로 대답한다. 당차고도 은은한 기품이 배어 나오는 기도다.

        "열 아홉입니다."

잠시 서늘한 조소가 소녀의 입가에 어우러지더니 다음 말을 잇는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정확한 나이, 소녀 모릅니다. 버려진 아이니 말이지요."

한 모금- 차를 들이마신 교주 마 희는 한동안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술을 전수 받았고, 또 선대 신녀의 신기를 이어받은 소녀다. 이 아이에게 짐을 맡기는 것은 잔인한 짓이 아닐까. 소녀의 양 어미가 되는 지도 모르는 신녀의 처단을 이 아이에게 맡겨도 되는 것일까.

신녀, 그녀가 사라진 그 날도 오늘처럼 푸른 하늘이었지. 마희는 한숨을 내 쉬었다. 교단에서는 대대적으로 두 사람의 교주를 배출하였다. 나라의 신탁을 받는 신기를 이어받는 신인과, 교단을 이끌어갈 교주. 하지만 몇 해전-. 그 악랄한 마교의 난, 그 때 나라의 고귀한 신녀의 행방 역시 묘연해졌다. 마희는 눈앞의 소녀가 그 당시 얼마나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자신을 거두어진 양모인 신녀를 기다렸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막연한 친우가 되는 신녀 역시 끔찍하게도 신녀의 위치를 싫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우지 할 수 있는 신탁을 받는 신녀. 그녀가 얼만큼 엄하고 끔찍한 감시와 시선을 받아내야 했을 지. 그리하여, 마희 그녀가 교주로서 임명 되었을 때 내심 얼마나 하늘에 감사했는지. 자신의 이기심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마희는 눈 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신녀는 자신의 후임을 정하지 않고서 사라졌다. 그것은 교단에서 두 번째의 신녀를 내어야 함을 의미했다. 마희는 식어버린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소녀에게 내키지 않았던 명을 끝내 내렸다.

        "소교 유아. 그대는 교주의 명을 받들라. 여러 장로들과, 또 지엄하신 나랏님의 부탁이니라."

유아 역시 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마주잡으면서 명을 받들었다. 허나, 유아의 눈 안에는 내키지 않는다는 빛이 역력했다. 아니, 나랏님의 부탁이라는 말 그 한 마디 후부터 유아의 입술의 한 쪽 끝이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그대는 행방이 묘연해진 신녀의 뒤를 찾아라. 힘든 여정이 될 것이야. 하여, 신수와의 동행 또한 허가한다."

윤기가 도는 선홍빛 입술 끝이 미묘하게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유아의 아미 역시 입술 못지않게 치켜 올라간다.

        "이거, 참. 지엄하신 부탁이군요."

스륵. 수수한 백의 자락이 전각을 스치고 지나간다. 교주 마희는 다소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유아에게 덤덤하니 덧붙인다.

        "받들지 않으면, 네가 하련? 신녀 말이다."

마치 발에 천근만근 되는 추를 단 듯, 쿵쾅거리면서 전각을 나서던 유아의 발이 소리 없는 묘 족이라도 되는 냥 재빨리 걸음을 총총히 한 것은 그 말이 떨어진 직후이었다. 교주 마희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았을 때에는 이미 소교 유아의 신형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이전
에, 소교 유아가 거칠게 내려놓은 찻잔은 아직도 뜨거웠다. 김이 피어오르고 있을 만큼. 교주 마희는 그것을 보면서 설핏 웃었다. 잔 주위에는 붉은 머리를 지닌 투명한 작은 형체가 잔을 감싸고 있었다.

        "괜한 열을 내서 아까운 잔만 우그러지게 만들었구나."

마희는 아까 와는 다른 의미를 담은 시선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연민만이 가득했다. 그것은 아까 와는 다른 의미의 연민이었다.

        "살아서 돌아와 다오."

돌아서서 유아가 두고 간 찻잔에서 열심히 온기를 데워주고 있던 열의 정령을 물러나게 한, 마희는 짐작했던 것보다 더한 잔의 뜨거움에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진정으로 친우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설마, 네 양딸인 저 아이가 널 패서 데려오겠느냐. 날 원망 말거라. 먼저 비겁하게 도망간 이는 너였음이야."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1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4 unica 2003.11.25 0
30 장편 모두의 XX 下1 양소년 2003.11.22 0
29 장편 모두의 XX 上2 양소년 2003.11.21 0
28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1 unica 2003.11.15 0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unica 2003.11.15 0
26 장편 [有水有火] 첫 장과 마지막 장 -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1 unica 2003.11.15 0
25 장편 【 STORY 오브 聖 魔 】(2)1 〃*夢*〃 2003.11.15 0
24 장편 【 STORY 오브 聖 魔 】(1) 〃*夢*〃 2003.11.15 0
23 장편 「프리웬지 파우더」「제 1-1장」「돌아오는 길」1 정수지 2003.11.06 0
22 중편 [죽저] 1. 非 (04) 비형 스라블 2003.11.06 0
21 중편 [죽저] 1. 非 (03) 비형 스라블 2003.11.05 0
20 중편 [죽음 저편에는] 1. 非 (02) 비형 스라블 2003.10.29 0
19 중편 [죽음 저편에는] 1. 非 (01)3 비형 스라블 2003.10.28 0
18 중편 水領神─-…「제 1-1장」1 정수지 2003.10.24 0
17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5)1 최현진 2003.08.19 0
16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4) 최현진 2003.08.17 0
15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3)1 최현진 2003.08.16 0
14 장편 The Power에 대하여2 최현진 2003.08.15 0
13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2) 최현진 2003.08.15 0
12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1) 최현진 2003.08.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