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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08 : 35 : 00
노려보듯이, 라에느는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대 위의 그녀는 이제, 간주 사이를 흥얼거리며 꿈꾸는 듯한 눈빛을 하고 어딘가, 모를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눈빛,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촉촉하게 젖은 금록의 빛.
그 때였다. 흐르던 음악을 찢어발기듯이 어디선가 자동소총의 발사음이 들려 온 것은.
그 소리에 뒤이어 듣기 싫은 마이크의 접속 불량음이 끼이잉 하고 뒤따라왔다. 멍한 눈빛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당황한 눈빛을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무대에 서 있던 그녀도 당황한 빛을 하고 주변들 두리번거렸다.

- 우리들은 A. D. R. T. F. 의 Diver다.

귀를 괴롭히는 높은 주파수의 전자음이 가라앉자마자, 낭랑한 목소리가 노래 대신 스타디움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우리들은 SOLLV의 문화 지배에 반대하며, 그 독점 방편에 의한 콘서트를 거부한다.

라에느는 슬쩍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8시 36분 14초. 주변의 수군거림이 조금씩 커져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 작전 스타트 후 6분 14초라, 빨라졌네. ”

- 지금부터 이 스타디움은 우리 A. D. R. T. F의 관리로 들어간다!

조그맣게 간헐적으로 웅성거리던 관객석의 소란이 그 마지막 선언을 계기로 크게 퍼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패닉 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은 언제 노래를 들었던가 한 것처럼 무대를 방관하고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그 웅성거림을 자극이라도 하듯이 또 한번, 멀리서 자동소총의 소리가 들려왔다.  

pm 08 : 40 : 12 스타디움의 복도.

" 1조는 기계실로! 2조와 3조는 VIP룸들을 맡는다! “
“ 카피! ”

한 떼의 청년들이 리더의 외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복도를 달려갔다. 일정한 복장 같은 건 입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움직임에는 능란함과 훈련 잘 된 통일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 리더, 관객석 쪽은 괜찮을까요? ”
“ 상관없어, 우리가 일반 시민에게 손대지 않는 건 약속이고, 그쪽엔 프로들이 가 있으니. ”

앞서 뛰고 있던 청년이 뒤에서 나온 질문에 잘라버리듯이 가볍게 대답했다.

같은 시작, 관객석.

“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이봐요 리 씨. 듣고 있어요? ”

라에느는 이어폰에 달린 마이크를 살짝 잡아당겨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잠시 침묵이던 이어폰 너머에서 가벼운 대답이 돌아왔다.

- 아아, 듣고 있어.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틀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물어 보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라에느는 고개를 들고 그가 있음직한 건너편의 관객석을 슬쩍 바라보고는 되도록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먼저 움직일께요, ”
- 그녀….
“ 네? ”
- 저 가수, 죽여야 하는 건가.

라에느는, 리의 말에, 아직도 무대에서 내려갈 생각조차 못하고 당황하고 잇는 그녀를 흘끔 바라보았다. 하얀 드레스, 푸른 머리칼, 어쩐지 길을 잃어버린 요정과도 같은 느낌. 분명히 그녀가 SOLLV의 사람임에는 확실했지만 이런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하고 있기에는, 그녀는 너무나도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어 보였다.  

“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 그런가.

안도하고 있을까, 리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왜 안도하는 걸까. 문득, 눈을 들어 라에느가 있는 건너편 관객석을 바라보자, 그 곳에서 금빛 새가 날아오르는 것이 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 ...? ”

다시 보자, 그것은 자리를 박차고 아래쪽으로 뛰어내리고 잇는 라에느였다. 그녀를 감싼 길고 무거운 금발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중에 흩어지고 일렁이면서 조명을 받고 더욱 아름답게 산란해, 그녀를 마치 새처럼 보이게 한 것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더욱 가볍고 유연해, 더욱 더 그녀를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가벼운 동작으로 관객석에서 무대로 통하는 복도에 내려 선 그녀에게 제복을 입은 한 떼의 남자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리 역시 세이버의 손잡이를 잡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러면 약속대로. ”


pm 08 : 40 : 55 VIP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소파에 기대고 앉아, 태연하게 웅성거리는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잇는 중이었다. 변함없는 차가운 눈빛, 들려왔던 방송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세티 역시, 조금 전, 들려온 방송을 듣고는 오히려 냉정한, 그녀다운 표정으로 돌아가서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섰다.

“ 어쩔까요 마스터? ”
“ 아아, ”

대수롭잖다는 듯이, 이드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세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옅은 미소가 걸린, 조각과도 같은 얼굴.

“ 그녀의 노래를 더 못 듣게 된 것은 아쉽지만, 에오더드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슬슬 돌아가 볼까. ”
“ 네, 그럼. ”

세티가 말을 마치며 이드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과 동시에, 닫혀졌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리고 한 떼의 청년들이 문 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그 무리의 선두에 섰던 청년이 두 사람에게 자동소총을 겨누며 외쳤다.

“ 그대로 움직이지 마!! ”

슥, 세티와 이드의 시선이 청년들을 향했다, 손에 m16 자동소총을 든 청년이 다섯 명, 그 총구는 모두 두 사람을 정확히 겨눈 상태로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세티는, 그 차가운 광택을 내는 다섯 개의 구멍 앞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태도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청년들은 잠시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멍하니 세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선두로 들어왔던 청년이 재차 총을 겨누었다.

“ 그 자리에 서! 농담처럼 들리나? ”

세티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짙푸른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고 청년이 느낀 순간, 거의 5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었던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밀착거리로 좁혀져 있었다. 자신의 눈 바로 앞에서, 차가운 오션 그린의 녹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청년이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어느 사이, 세티의 손은 총신을 잡고 있었다. 그저 가녀린 아가씨로만 보이는 그녀의 외견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악력이, 총신을 잡고서,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다른 네 사람도, 그 상황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판단하지 못하고 당황할 뿐이었다. 방아쇠를 당기기에도, 달려들기에도 저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 상황에 대해서 청년들이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못했다. 총신을 잡고 버티고 있던 세티는 그것을 잡고 잇는 청년이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자, 오히려 그 힘에 자신의 힘을 더해 총구를 누르며 반대쪽을 쳐 올렸다. 힘의 흐름이 바뀌어버린 자동소총은 두 사람의 힘에 퉁기듯이 밀려나가 위로 튀어올랐고, 개머리판은 정확하게 총을 잡은 청년의 턱을 치고 그대로 그의 손에서 빠져 나와 허공으로 치솟으며 한 바퀴 돌았다.

“ 이, 이런- ”

난처함과 당혹감으로 말을 더듬으면서도 그나마 그 자리에서 물러 날 수 있던 것은 그때서야 그 사태를 파악한 다른 청년들이었고, 턱을 얻어맞은 당사자는 말을 하거나 물러나지 조차 못하고 그대로 휘청거리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면서 신음했다.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자동소총을 능숙하게 낚아 챈 다음 떨어지는 힘 그대로 무릎을 꿇은 청년의 후두부를 내려찍은 사람은, 그것을 쳐 올린 세티였다. 허물어지듯, 청년의 몸이 쓰러져 내렸다.
예상치 못한 사태로 웅성거리던 VIP룸 입구는 그녀가 내려찍은 소총을 다시 들어올린 순간부터, 조용해졌고 싸늘하게 식은 오션 그린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자신의 다음 목표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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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08 : 42 : 30
관객석에서 내려서자마자, 리에게도 라에느와 마찬가지로 한 떼의 제복 입은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마치 인형처럼 같은 표정을 하고 비슷한 체형을 한 그들은,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허리 뒤에서 팔뚝만한 곤봉을 꺼내 들었다. 일반적인 그것보다 약간 두툼한 것으로 봐서, 분명히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 사람들 앞이니까 저쪽도 총기는 쓰지 못해요, 죽이지만 마세요

귀에 꽃힌 이어폰을 통해서 약간은 즐기는 듯한 라에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리는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비슷했던 일이 있었다. 자신을 생포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던 자들, 그들의 무기 역시 검이 아닌 저것과 비슷한 둔기였다. 기본 훈련을 받을 당시에 맨캐쳐나 그물을 들고 있는 상대와도 상대해 본 경험도 없지 않았는데, 그런 경우 상대방의 움직임은 일정 선을 넘지 못하고 제한되기 마련이었다.
자신을 둘러 싼 청년들을 한번 주욱 훑어 본 리는 얇은 가죽장갑을 낀 오른손을 가볍게 세이버의 손잡이로 가져갔다가, 피식 하고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웃고는 세이버를 뽑으려던 그 손을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어차피 세이버로 죽이지 않고 누군가를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자신이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고 상대방도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맨손 쪽이 확실히 더 싸우기 편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둘러 싼 청년들의 어깨가 움찔 하고 반응하는 것이 보였다.

“ 이것도 오래간만인걸. ”

여전히 옅은 웃음을 입가에 띄운 채로 리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었던 것처럼, 그를 둘러 싼 사람의 원이 한순간 확 하고 줄어들면서 재차 포위망을 좁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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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08 : 44 : 12  VIP실,
붉은 색의 고급스런 카펫이 깔려 있던 바닥에는 군데군데 검은 얼룩이 번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죽은 듯이 쓰러져서 미세한 경련만을 하고 있는 청년이 넷, 세티는 한 손에는 지금까지 무기로 사용했던 m16소총을 든 채로 차가운 눈으로 그 청년들을 훑고는 시선을 들었다. 들어올 때 맨 후미에 있던 한 명이 그녀의 공격권 안을 벗어나, 문 밖으로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 그대로 둬라. ”
“ 괜찮을까요? ”
“ 그 정도라면 별 문제는 없겠지. ”

지금까지 태연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로 세티와 AD 청년들과의 난투극에 등을 돌리고 있던 이드는, 세티의 시선이 계속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 그런데- ”
“ 네? ”

세티는 그때서야 문에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는 듯이 살짝 입가를 올린, 어쩌면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에, 여태껏 차가운 세큐리터의 표정으로 있던 세티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었다.

“ 어째서 쏘지는 않았지? ”
“ 그건- ”

세티는 제대로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드의 말대로, 바닥에 쓰러진 청년들은 총상은 입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벼운 상처를 입고 기절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 .... 선물해 주신 옷에 피가 튀면 안 되니까요. ”

그녀가 말한 대로 세티의 원피스에는 아무런 얼룩도 튀어있지 않았다.
카펫을 축축하게 적시며 번져나가는 피, 그 위에 널부러진 채 꿈틀거리는, 살점이 패이고 관절이 꺾이고, 깨어진 머리에서 뇌수액을 흘리고 있는 청년들, 그런 무참한 상황의 한 가운데에 그린 듯이 서 있는- 그 모든 무참함의 가해자인 그녀는, 이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스타디움 안에 들어오던 그대로의 깔끔하고 단정한,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차림이었다. 하다못해, 그녀가 신은 스타킹에는 올 하나도 나가있지 않았고, 구두 역시 반지르하게 윤이 난 애초의 모습 그대로였다.

“ 그랬군. ”      

그의 말은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어쩌면 그답지 않게 약간의 웃음기까지 배어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차가운 것이. 세티의 등을 훑고 내려갔다. 그의 웃음, 부드럽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 자신의 앞에서, 그가 웃고 있다.

“ 그럼 갈까? ”
“ - 예. “

손수 옷걸이에서 자신의 롱코트와 세티의 흰 모피 반코트를 내려 팔에 들고 이드는 살짝 턱짓을 하여 다시 닫힌 문을 가리켰다. AD청년들이 들어오면서 경첩 한 개가 약간 뜯어져 나가 있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도망쳤던 청년이 닫고 나가서, 문은 약간은 불안정하지만 잘 닫혀있었다. 복도와 방, 혼란과 안정, 소란스러움과 침묵을 그대로 가르고 있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한 장의 문.
아직도 등 뒤에 서늘한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몸이 그대로 녹아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기묘한- 공포감에 가까운 한기였다.    
세티는 문에 달린 금색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것은 선뜩한 차가움의 감촉으로, 얇은 장갑을 넘어서 세티의 손 안에 잡혔다. 세티는, 그 서늘한 감촉을 떨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을 세차게 오른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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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08 : 45 : 08  복도.
아직 소년의 얼굴이 약간쯤 남아있는 청년은, 핼쓱하게 질린 얼굴로 연해 뒤를 돌아보며 복도를 뛰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허둥거리며 복도 끝의 코너를 돌은 청년은 턱에까지 차 오른 숨을 가쁘게 헐떡이며 벽에 등을 붙이고 자신이 달려온 복도를 흘끗 바라보았다. 두툼한 카페트가 깔려 잇는 복도는 지금 막 그가 뛰쳐나온 방 안의 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 여, 여기는 SI-리스, 2조 전멸! 제 1 VIP실의 인물은 마이너 알카나 이상, A랭크의 세큐리터가 동행중! 계획대로 F-34통로로 후퇴함! ”
- 카피. SI-리스, F-34통로를 지나서 8번 출구의 다이버들과 합류하기 바람.

이어폰에서는 거의 기계음처럼 감정 없는 단정한 목소리가 자동응답기처럼 그의 보고에 답했다. 한 숨에 토하듯이 말해 버리고 난 청년은 맥이 풀린 듯, 그대로 카펫 위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여전히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미세하게 떨리고 잇는 것이, 그가 아직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믿기에는 너무도 힘든,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제 막 처녀티를 내는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소총을 휘둘러서 동료들을 쓰러뜨리는 광경은, 직접 눈 앞에서 보았음에도 결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세큐리터란 것일까. 보통사람의 배도 넘을 듯한 민첩한 움직임, 맨 뒤에 서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자신도, 동료들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었다. 방아쇠를 당길 여유조차 주지 않고, 그녀는 그렇게 동료들을.......
기억에 깊이 남은 것은 그녀의 짙은, 바다처럼 깊은 초록의 눈이었다.            

“ ..사람 같지 않았어... ”

부들,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 축 늘어뜨렸던 팔이 경련처럼 떨려왔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감을, 그녀는 자신에게 충분히 맛보여준 듯했다. 청년은 무릎을 끌어당겨 떨리는 팔로 그것을 와락 끌어안았다. 떨려오는 팔을 감추려는 듯이 혹은, 가장 본능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기 위해. 끌어안은 무릎사이에 얼굴을 박고서도, 청년의 몸 떨림은 쉽게 멎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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