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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겐 우리가 신이지."
도열의 말에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열은 계속 말을 이었다.
"신이 당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듯이 우리도 우리의 모습을 본떠 로봇을 만들었지. ……도미는 마치 아담과 같아. 봐, 얼마나 순수한가. 녀석은 길로만 도망치고 있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멀리했던 것처럼, 그게 그의 원칙이지. 그리고 우리가 가르친 원칙이기도 해. 하지만, 인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벌써 우리에게 총질을 하거나 아까 산에선 길이 없는 골짜기로 숨어들었겠지. 하지만 녀석은 그렇지 않았어. 우리 인간이 프로그램한대로 길이 아니면 가질 않지. 마치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성직자처럼 말이야."
"타락한 인간을 잡기 위해 착한 로봇을 괴롭힌다. 젠장, ……쫓기 싫어지네요."
정훈이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꼭 잡아야지. 놈을 잡아놓을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니까, 그리고 그래야 도미도 자유로워지겠지."
"그런데 왜 정태영 주변에서 맴돌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죠?"
"어떻게 보면 우리 실수지. 정태영을 임의동행으로 잡아놨거든."
"그럼, 경찰서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눈치라는 게 있잖아. 도미는 자신이 경찰로부터 도망쳐야한다는 걸 안 거야. 그러자 경찰서를 중심으로 한 평형점이 거의 무한대로 증가한 거지. 결국 녀석은 계속 멀리 도망치는 거야."
"젠장, 그렇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쫓아요? 잡을 순 있는 거예요?"
정훈이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이게 도미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녀석이 충전하지 못하게 해서 아예 멈춰버리게 하는 거지. 그렇지 않고 계속 충전할 시간을 주면 영원히 잡을 수 없어."
"보통 한 번 충전하면 3, 4일인데."
"지금 녀석은 비상전원까지 충전해서 일주일이지. 서에서 도망쳤을 때가 마지막 충전이었으니까, 앞으로 대략 28시간정도 남았어."
도열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28시간이나요?"
정훈은 창에 기대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때요?"
"다른 방법?"
"네, 만약 제 1원칙이 아직도 절대적이라면, 그래서 인간이 다치는 걸 볼 수 없다면 말이죠. 이렇게 해보는 거예요."

정훈이 차를 멈춰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도열도 따라 내렸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계속 퍼붓고 있다. 도열은 얼굴로 들이치는 빗줄기를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네 생각대로 됐으면 좋겠군."
"어차피 쫓기만 할거라면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죠."
그리고 정훈은 도미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도미."
계속 달리던 도미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 돌아섰다.
정훈이 손짓해 부르자 도미는 정훈을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조심하게. 섣불리 잡으려고 했다간 괜히 1원칙과 3원칙의 포텔셜 값만 올려놓는 수가 있어."
도미는 차에 좇길 땐 차의 속도에 맞춰 충분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정훈과 도열이 차에서 내리자 도열과 정훈의 10보 앞까지 다가와 섰다.
정훈은 그 정도면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열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하죠."
그리고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도열의 얼굴을 향해 곧장 주먹을 날렸다.
도열의 고개가 휙 돌아가더니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열은 잠시 턱을 주억거리더니 큰 한숨을 내쉬고 도미의 눈치를 보고는 못미더운 표정으로 정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정훈의 코를 향해 빠른 주먹을 날렸다.
정훈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잠시 비틀거리더니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도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도열은 가볍게 몸을 틀어 주먹을 피하고 다시 훅을 날리더니 다시 주먹을 내리질렀다.
"어이쿠."
정훈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도열은 쓰러진 정훈의 가슴으로 올라타고는 다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막 도열의 주먹이 정훈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도열의 주먹이 허공에 멈춰 섰다.
"그만해요."
도미였다.
도미는 도열의 주먹을 잡고 걱정스런 눈으로 정훈을 바라봤다. 정훈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제 말이 맞죠?"
"그렇군."
도열이 대답했다.
도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도열을 바라봤다.
그 순간, 도열의 손을 잡은 도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수갑의 한쪽은 도열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깜짝 놀란 도미가 뒷걸음쳤지만 몸의 균형을 잃고 허둥댔다. 엉덩방아를 찢었다. 이미 도미의 다리에는 정훈이 채운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제 끝났어, 도미."
"난, 난 말할 수 없어요. 전 주인님을 지켜야해요."
도미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알아."
도열이 도미를 일으키며 말했다.
"넌 그냥 깊이 잠만 자면 돼. 그냥 꿈을 꾸는 거야."
도열은 차의 뒷좌석에 도미를 태우자 정훈이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제 생각이 맞았죠? 제 1원칙,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되며, 또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해를 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
정훈의 말에 도열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녀석을 가까이 유인은 해야겠는데 어떻게 유인한다 생각하다가 강성진이 선배님의 파트너를 트럭으로 덮칠 때 도미가 구했다는 얘기에서 착안했죠."
"그렇군."
도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도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왠지 로봇을 속여 붙잡았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힘내세요. 어서, 정태영, 그 자식 잡으러 가야죠."
정훈이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듯 말했다.
그제야 도열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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