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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천에 싸여 붉은 빛을 영롱하게 뿜어내는 홰가 여기저기 걸린 거리. 바다의 짠내음이 공기에 섞인 진득한 공기에 술 취한 몸을 맡기며 거리를 배회하는 마도로스와 그들 들이기 위해 넝쿨처럼 옭아매는 반라의 여인들. 거리는 눈이 아프게 환하면서 속이 더부룩하게 눅눅했다.

“오빠~, 한 번 들어와요. 잘 해줄게.”

몸에 꽉 끼는 타이츠인데 그 역시도 얼기설기 찢어져 속살이 간간이 보였다. 이런 곳에 있지 않으면 강간이라도 당했다고 착각할 파격적인 옷차림의 풍성한 금발 숄 헤어를 가진 여인도 그녀 앞에 다른 여자들처럼 손님을 끌기 위해 손짓과 넝쿨 짓을 연신 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그녀는 달걀형 얼굴에 꼿꼿한 자존심이 그대로 드러난 오똑한 코, 앙 다물면 사뭇 새침한 소공녀스타일의 여인이었다. 거기다가 유혹적인 입가에 있는 작은 점까지. 어디하나 빠질 것 없는 미인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뒤에 있는 건물은 도시괴담에나 나올법하게 허름하고 누추한 여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올 거 같은 그런 위화감을 은근히 내뱉고 있었다. 이 초라한 여관이 안타깝게 여인의 미모를 갉아먹고 있었다.
몇 번 헛손을 치는 와중에 여인의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이스! 여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몇 번 헛입질만 하더만 드디어 물었다. 여인은 행여나 애써 잡은 물고기가 달아날까 손을 빨리 움직여 물고기의 몸을 꽉 붙잡았다.

“오빠~, 서비스 잘해줄게. 놀다가~.”

여인이 잡은 물고기는 어깨 정도로 오는 검은 장발에 검회색 빛 코트와 후드가 달린 망토를 두른 동안형 얼굴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나사 하나가 빠진 듯 멍해 있었다. 여인의 손길에 청년의 얼굴이 기계적으로 돌아가 여인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에 여인은 당황했지만 이내 ‘이 놈을 놓치면 오늘 장사 완전 물 된다.’는 생각에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걸고 살갑게 다가섰다.

“어머~, 오빠 몇 살이야? 되게 어려 보인다. 어디 가는 길이야? 딱히 중요한 일 없으면 들어와봐. 내가 서비스 기가 막히게 해줄게.”

여인은 청년의 몸에 온 몸을 비비적거리며 콧소리가 가득 실린 낭랑한 목소리로 청년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였다. 청년은 별 저항 없이 여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다.
가게는 무척이나 초라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이대는 카운터와 술 진열장에는 회백색 먼지로 카펫을 깔아 놨다. 벽 구석구석은 거미들이 이미 전세 내놓다 못해 자기 집 안방으로 삼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등지에도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이미 오래전에 지워지고 없었다.

“가게가 많이 누추하지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리며 여인이 살 웃음을 치면서 청년에게 말했다. 웃으라고 던진 농담이었건만 사내의 반응은 냉랭했다. 여인은 청년의 시큰둥한 반응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요, 상대가 말을 걸었으면 대답을 좀 해요. 이런 일 한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재수 없는 태도에요?”
“너는 음식을 그릇을 보고 먹는가? 하룻밤 묵고 갈 곳 어차피 눕는 것은 똑같은 곳이다.”

딱딱하고 감정이라고는 병아리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말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도 벙어리는 아닌가봐.”

여인은 헛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마저 올랐다. 계단의 층수가 짧은 건지, 두 사람의 보폭이 큰 건지 두 사람은 어느 덧 2층에 올라와 있었다. 2층은 여느 여관가 다를 게 없었다. 조그만한 복도에 일렬로 방으로 들어서는 입구들이 있는 형태였다. 여인은 남자를 이끌고 두 번째 방을 들어섰다.
이 방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았는지 기지개 키는 소리 한 번 요란했다. 방 역시 홀과 다를 건 없었다. 색 바랜 천들을 덮고 있는 더블사이즈 목조 침대와 작은 티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작은 서랍장이 전부였다. 문에서 마주보는 면에 사람의 머리 위에서 허리까지 닿는 크기의 창이 빛바랜 커튼을 품고 있었다. 커튼은 미풍에 흔들리며 바깥으로부터 안을 가리고 있었다.
여인은 짚으로 속을 매운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청년이 여인 옆에 앉았다. 여인은 사내에게 다시 살 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실 것이라도 가져다줄까요?”

청년은 별 말이 없었지만 여인은 밑으로 내려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브랜디 한 병이 얹어진 술상을 들고 올라왔다. 안주로는 과일 몇 점과 마른 채가 전부였다.

“우리 집에서 내가 꼭꼭 숨겨둔 <아센트라>라는 브랜디에요. 이거 여기 근처 시장에서는 눈씻고 찾아봐도 못 얻을 비싼 물건이에요. 내가 오빠를 위해서 오늘 특별히 이거 까는 거예요.”

여인은 잔에 술을 따르며 나름대로 자존심을 세워보려는지 술에 대한 자랑을 했다. 황갈색 액체가 2/3 쯤 잔에 차올랐다. 청년은 거리낌 없이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오~, 오빠 술 세나보네. 이거 상당히 독한 건데.”

여인은 웃으며 청년의 잔에 술을 더 따라줬다. 청년은 이 역시 한 번에 들이켰다. 그렇게 술이 서너번 오갔다. 여인의 말이 맞는지 여인의 얼굴에 붉은 기가 맴돌았다. 청년은 술이 센 건지 아니면 알콜에 대한 반응이 없는 건지 그렇게 취기가 도는 것 같지 않았다.

술기운에 몽롱해지는 기분을 만끽하며 여인은 슬슬 작업을 시작하려는지 걸치고 있던 넝마인지 옷인지 알 수 없는 천 쪼가리들을 벗어냈다. 껍질을 벗긴 바나나처럼 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그렇게 밉상한 몸매도 아니었다. 여인이 그러는데도 청년은 걸치고 있는 망토의 끈조차 풀지 않았다. 참 귀찮은 손님이네. 여인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가끔씩 이런 손님이 있다. 스스로가 벗지 않고 벗겨주길 기다리는, 여인은 요염하게 손을 놀려 청년의 몸에 걸치고 있던 허물들을 하나둘씩 젖혀나갔다. 두르고 있던 검은 껍질들이 사라지면서 드러난 청년의 몸에 여인의 눈꼬리가 실룩 움직였다. 청년의 몸은 그동안 그녀를 찾아와 하룻밤의 욕정을 풀고 간 다른 뭇 사내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오빠 너무 샌님이다. 뭐 하는 사람이야? 운동 좀 하고 그러지 몸이 이게 뭐야. 검도 있는 것 같은데 검은 폼인가 봐? 후후후.”

여인은 코웃음을 치며 청년을 매트리스 위로 눕혔다. 청년의 가슴으로 여인의 붉은 입술이 다가갔다. 이제 시작이다. 여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앗 차거. 오빠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여인은 입술에 닿은 찬기에 순간 놀라 몸을 땠다. 그리고 청년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봤다.

“우와~, 오빠 사람이긴 한 거야? 여기저기 안 차가운 데가 없네.”

신기한 물건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청년을 두루 만져보던 여인은 경계심을 풀었는지 다시 청년의 가슴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오빠가 워낙 차가운 사람이다보니 몸도 차가운가 보네. 이럴 경우엔 나 같이 뜨거운 여자가 데워져야 해. 내가 오빠를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 기대해~.”

그러면서 여인은 넝쿨이 나무를 타듯 어지러이 손을 움직이며 청년을 애무했다. 청년은 여인의 손길에 감흥이 없는지 천장만 바라본 채 가만히 있었다. 여인은 그런 청년을 더욱 유혹하려는지 요염한 자태로 청년의 몸에 바싹 몸을 붙였다. 여인은 청년의 사타구니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청년의 물건을 쥐었다났다 하면서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청년의 물건은 머리와는 달리 여인의 손길에 감흥을 느꼈는지 얼마 안 가 발딱 섰다. 여인은 청년의 물건을 자신의 몸속에 품었다.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섞었다. 낡은 커튼에 가려진 창밖으로 먹구름 자욱한 하늘이 보였다.
김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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