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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보석함 안에는 검은 우단이  깔려 있고 그 위에
큼직한 보석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개, 한 개가 거의  메추리
알 크기 만한, 무척이나 크고 아름다운 보석들. 선명한 녹색, 파란색, 붉은
색, 노란 색, 그리고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 투명
한 색.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 보석들을   쓸어 내리더니 그중 노란빛의  
보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좀더 작은, 보석 한 개가 들어
갈 만한, 금빛을 띄고, 검은 우단이 깔려있는 상자로 따로 옮겨 놓았다.
  
  " 격리처리인가요, 그 아이는. "
  
  마치 공간이 울리듯이 뒤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하얀 손가락의 주
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보라색의 유리빛 눈, 그리고  단정하게 늘어진 갈
색 유리섬유  같은 머리카락, 무표정한 얼굴,
  
  " 아니면, 이제야 교육을 시작하는 겁니까, 하이프리스티스? "
  " 나타날 때는 인기척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는데요 포페스. "
  
  포페스라 불린 남자는 갸름한 얼굴에 옅게  미소를 떠올렸다. 그가 입고
있는 것 역시,  그녀와 똑같은 보랏빛의 법의, 그러나 단지 약간 다른 것
은 그 법의 위에 드리워진 타바드의 색. 새하얀 그녀의 타바드와는  달리,
그의 타바드에는 붉은빛의 선이 들어가 있었다.
  하이프리스티스와 똑같이 하얀 얼굴은, 그녀와는 다르게 평범했지만,  무
어라 표현하기  힘든 따듯함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 미안하군요, 나는 당신을 만족시킬 만한 예의바른 남자는 아니어서 말
입니다. 루에 레오나인. 위대한 하이프리스티스,. "
  " 나는- "
  
  남자의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던 여인은,  어느새 인지 그 유리인형같
은 표정으로 되돌아와서 남자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감정의 고저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어째서 '월드' 가 당신을 나의 상대역으로 정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요 "
  " 저 역시, 이해하기 힘들답니다 하이프리스티스, "
  
  남자는 그대로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새하얀 손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
었다. 루에가 유리로 만들어진  인형을 연상시킨다면, 이 남자는 마치 부
드러운 면으로 만든 인형을 연상시켰다.
  한없는 자애로움과 포용력, 그리고 바로 앞에서가  아닌 한 발작 뒤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울리는 그런  남자. 무슨 말을 하여도  그것이 비꼼이나
조롱이 아닌 진심으로 느껴질, 그런  남자.
  
  " 하지만 그것이 월드의 뜻이라면, 그를 따르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하이프리스티스, "
  
  그의 미소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미소에 유리인형 같던 루
에의 표정에 약간의 홍조가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일이었고, 그녀
는 다시 언제나의 유리인형으로 되돌아왔다.
  
  " 보석의 아이들에 대한  관리는 월드가 제게  맡기었습니다. 그 결과가
격리처리이든, 처벌이든, 또는 처형이든. "
  " 네 알고 있어요 당신의 아이들이니까요. "
  
  또 그 미소, 루에는  자신의 얼굴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
는... 언제나 이런 미소를 짓는다, 어린 아들 같은, 사랑스러운  미동 같은,
한없이 사랑하고프고, 한없이  다정해 보이는,
  
  " ..... 알버트. "
  " 네? "
  ".. 아닙니다, "
  
  루에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자신 앞에 놓인 다섯 개의 보석들을  바
라보았다. 어느 아이 하나도 그녀의 아이가 아닌 보석이 있으랴,  생명을
떼어서 만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 그러니까 더욱, 저 남자, 포페
스 알버트 페어차일드-  세피라가 가장 사랑한 남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월드의 명으로, 내 아이를 미끼로 내놓았다 라고 는.
  그들의 존재는, 솔브가 존재할 때부터  있어왔다. 뻔한 것이다 지배자와,
거기에 반항하는 자들, 마치 커다란 나무와, 그  나무가 주는 이득을 잊은
채,  햇빛을 가리고 있다고 불평하는 그 주변의 작은 나무들처럼, 그 나무
가 지반을 받쳐주지 않으면, 그들도 모두 같이 허물어져 버리리라고는 생
각조차 않은 채,
  그녀의 앞에 놓인 노란빛의  보석은, 홀로 떨어져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광택을 내고  있었다. 황금빛에 가까운 아름다운 빛으로. 그리고 어느사이
엔가, 루에의 표정은 그녀 특유의 인형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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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이 토파즈,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걸? "
  " 응?.... 아, 아냐 요즘 잠이 좀 부족해서. "
  
  청년은 걱정스러운 동료의 말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고는
고개를 흔들면서 양 눈 사이를 눌렀다. 지난 주 라에느와 다툼이 있던 이
후로는  사소한 오기로 그녀를 마중 나가거나, 퇴근을 기다려주거나 하질  
않고 있었다. 그것이  일주일정도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오기보다는 쑥스
러움이 앞서고 마는 것이었다. 라에느는 변함없이 이 사무실로 음식을 배
달하러 왔다, 변함없이 미소를 지었다. 달라진 거라면 자신이 옹졸하게 그
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토파즈, 정말 안색이 안 좋아, 가면실에 가서 눈 좀 붙이고 오지 그래?
"
  
  동료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약간 멀게 느껴졌다.  요 근래  들어 자주 생
기는 일이었다.  밤새 꿈에  시달리지만, 그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남는 것은 수면부족과 두통이었다. 그리고 이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스위
치를 끈 듯이 불투명한 기억이 생기면서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일은 확실하게 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그 안개 속과 같은 불투
명한 기억 중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말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또... 그.. 증상이...다..
  
  " 어이 토파즈? "
  " ..아아, 걱정하지 마, 이젠 괜찮으니, 잠깐 바람이나 쐴 겸 첼로에 다녀
올게, "
  " 표정이 훨씬 낫군, 그래 좀 쉬다 와. "
  
  청년은 얼굴이 옅은 미소를 띄우면서 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두
통에 시달렸던 찌푸린 얼굴은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옅은 미소,  부드럽
고 옅은, 인공적인 듯한 미소만이 그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 요즘 라에느를 내버려두었지 않아? 슬슬 위로해줘야지. 사랑스러운 연
인인데. "
  
  두 책상 건너에서 다른 동료가 반 농담처럼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청
년에게 말하자, 청년의 입가가 올라갔다.
  
  " 아아 그래, 사랑스러운 연인이니까. "
  
  탕, 쇠로 된 문을 닫고 나와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청년은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 망설이게 된단 말이야, 어떻게 처리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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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의 합일이 있고 나서, 나의 스승은 이쪽의 세상으로 넘어왔다.  그리
고 그는, 나를 주워 자신의 아이 대신 기르며 나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나
는 그가 가르친 무술 외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런 보통의 여자아이
였고. 그렇다고 믿었다.
  스승이, 솔브의 패러독스 진정을 위한 제거리스트에 올라 쫓기기 전까지
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그 도주생활이 시작된 후부터, 나의 신념은 흔
들렸고, 스승이,   나를 지키다가  사살  당하고.  겨우 시간   맞추어 온
ADRTF의 일원들이 나와, 내가  죽인 추격자들을 발견한 때를  정점으로
해서, 나는 내가 더 이상 평범하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겐, 스승이 가르친 무술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인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를  구해준 그들은, 내가 스승
의 뒤를 이어 ADRTF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그들에게도- 무도가는 희
귀한 존재였으므로.
  그때의 나는, 어린 아이였다.  스승의 가르침은 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죽음에만 분노를 태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ADRTF의 일원이 되
었다. 어버이와도 같은 스승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내가 스승의 진의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십년이 지나서
였다.....
  ...... 나의 과거는 그렇게 내 머릿속을 훑듯이 지나갔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나로부터 서술되듯 지나간 그 영상들과 목소리들은, 나의 어린 모습
이 부끄러울 정도로 철저한 제삼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 그때의
나는, 분명히 치기에 들뜬, 어린 아이.
  
  [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할 정도라면 이젠 된 거란다. ]
  " 스..스승님? "
  
  뒤에서 들려온 설지 않은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예상
대로-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스승이 서  있었다, 죽기 전과 조금
도 변함없는 새빨간, 불꽃같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채. 얼굴에는 그녀다
운 부드러우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고.
  
  " 스..스승님... 저..저는... "
  [ 됐단다 라에느, 이젠 됐어, ]
  
  울먹이는 라에느의 어깨를 보듬는 스승의 팔과 손은 반투명했지만  그래
도 힘있게 자신의 제자를 토닥여주었다.
  
  [ 우리 공주님이 이상한 짓을 하시는구나. 이미 세상 뜬 자를 이리 불러
내시다니. ]
  
  라에느는 스승의 말에 그녀의 어깨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는,  조금 슬프게 흐려져  있었다. 스승은
반투명한 손으로 가만히 라에느의  눈물 젖은 볼을 감싸고는,  그 다정한
파란 눈으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 걱정 마라 라에느,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라고
태어난 거란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권리야, ]
  
  그리고 스승은, 다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라에느는 그런 스승이 꺼질 듯
이 투명해져간다는 것을 느끼고 하소연이라도 하듯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 하지만- 알고 있어요! 그가, 그가  이제는 내가 사랑한 그가 아니라는
걸!! 그는 이제는 정말로 '보석의 아이' 가 되어 버릴 거라는 걸!!!! "
  [ 라에느- ]
  
  스승은 다시 제자를 끌어안았다. 미세한 떨림이, 반투명한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제자에게로 전해졌다.
  
  [ 이겨내거라 라에느, 너의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단다, 그를, 그를 정
말로 사랑한다면, 끝까지 그가 사랑한  라에느로 있어주어야 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붙잡고 있다면. ]
  " 하지만- "
  
  라에느가 무언가 말하려고 고개를 들기도 전에,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반투명한 육체는 완전한 투명으로 변해 이제는 그 윤곽선마저 사라
져가고 있었다.
  
  " 대답해주세요 팔라셰 스승님! 전, 전 어쩌면 좋죠? 그가, 더 이상 그가
아니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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