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륙 할 때 몸이 눌리면서 약간 메슥거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슴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니 이내 명치 위가 편안해졌다.



안전하게 비행기가 이륙하자 문형은 가지고 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잠시 읽다가 이내 좌석을 뒤로 눕히고 잠들었다. 안전벨트는 꼭 맨 채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개와 허리가 숙여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평양 상공을 한창 날고 있을 때,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문형은 눈을 살며시 떴다가 도로 감았다. 다른 승객들이 불안해하며 웅성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묵직한 강철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이 기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우지끈하고 나무나 철골 같은 것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아마 벌써 죽은 사람이거나 이마에 벼락이 떨어져도 눈도 깜박 않을 태연한 심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조금 전 기체가 흔들릴 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자가 정면의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이어 의자 모서리에 찧는 바람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뇌진탕으로 통로에 쓰러져있다.




기체 중간 오른편에 앉은 서양인 중년 여성이 전보다 큰 흔들림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어도 목뼈에 금이 갈 정도로 앞 의자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서 정신을 잃은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흔들림 때문에 부상자는 속출하고 있어도 사망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기내 스피커에서 기장이 격양된 목소리로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꼭 매고 진정해달라고 외친다. 승무원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갈수록 크게 흔들리는 기체 사정 때문에 패닉에 빠진 승객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비행기 허리 부근에서 우직하고 나무젓가락이 꺾어지는 소리가 났다. 기내 바닥 중간쯤에 폭 2cm, 길이 7cm 정도의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일만 미터 상공의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쿵 소리를 내며 기체가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승객 중 한 명이 우측 날개 엔진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고 외쳤다.




문형은 쿨쿨 자고 있다가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다. 그는 도로 자려고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마구 흔들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기에 홱 밀쳐버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야생성으로 무장한 어떤 아프리카 부족이 아니란 말이다. 잠에서 눈을 뜬지 몇 초 만에 깨끗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외쳤다.




잠결에 어째서 저 비행기를 확인하지 못했냐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와 실수로 누락된 것 같다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살고 싶다는 여자의 비명소리를,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한 사내의 목소리도, 신을 원망하는 노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문형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깊이 잠이 들어서 안전벨트를 맨 채였고, 자느라고 머리와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자세는 낮았다. 왼쪽에서 천둥이 치듯 널빤지 같은 물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문형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눈을 번쩍 떴다. 창문 밖을 내다보자 크고 작은 푸르스름한 번개가 구름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적란운 안에라도 들어온 건가? 당장에라도 기체에 내리 꽂힐 듯한 푸른 번개가 흉흉했다.




스피커에서 기장은 이제 안전착륙은 포기하고 불시착하겠다는 방송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극도의 혼란 상태에서 공포감의 상실로 승객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게 착륙하라는 협박성이 다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기장실로 밀려들어갔다. 승무원들이 안전비행을 이유로 앞을 막아섰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쳐들고 앞을 본 문형은 그들이 다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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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보유한 특기와 기술 목록
   1. 3년간의 유학으로 영어권에서 힘들지 않게 소통 가능한 실력의 영어. 약간의 독일어.

2. (졸릴 시에만) 이마에 벼락이 떨어져도 까닥않는 태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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