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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4)

        “흐음. 이건 또, 이런 맛이었군. 정혼자? 아니오. 그녀는. 아하. 이것이 들어가서 이런 맛이 난 것이로군. 호오. 나름대로 괜찮군. 이 조합도.”

우물우물 먹는 모습도 그러했지만, 쭉 하고 죽엽청을 한 잔 들이키는 유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라윤 낭자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그 일그러짐은 유하가 곧 이서 내뱉은 말에 다림질이라도 한 듯, 깨끗하게 펴졌다.

        “령 매는, 그녀는 내 노예요. 아버지의 명을 받아서 기루에 넘기려고 왔소이다. 이곳이 그래도 명기들이 많이 난다 들었소. 마음 같아서야 내, 후처 중의 하나로 들이고 싶지만. 요즘이 알다시피 금전이 귀하지 않소이까? 하하하”

휙-. 라윤 낭자의 화사한 옷자락은 상큼하니 탁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라윤 낭자의 고운 아미는 매서운 빛만 가득했다.

        “소..녀..의 모자람을 선뜻 꾸짖어 주시는 그 배포를 보아, 고매한 공자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도 아닌 듯 하군요. 령 낭자를 보아하니, 고귀한 하늘 님들의 피를 이어받은 분이신 듯한데. 어이하여 공자께서는.”

파들거리면서 내어뱉는 기세가 꽤나 거칠다. 그것을 보아하니, 의외로 의협심이 강한 낭자로군. 같은 여인(..)의 처지에 저토록 고민해주다니. 유하 아니 기실, 남장을 한 유아는 쓴 미소를 내심 지었으나, 겉으로는 건들건들한 선달 역할을 충실히 해 내었다.

        “바르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소이까? 하하하. 그리고 내가 손속이 맵다고만 했지. 그것을 막으려고 했소이까? 다만 너무 출중하신 외모를 가진 낭자께서 그렇게 매사 거친 매듭을 짓는 것이 안 되어 보여서 한 마디 한 것일 뿐. 무어, 한 말씀 해 주신 것을 감사히 받겠소. 고매하다? 처음 들어보는 호평이구려. 이거. 아, 기분 최고이고나. 주인장. 주점 안의 모든 사람에게 내 한턱 거하게 쏘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낭자께서 내게 고매하다는 평을 내려주셨으니 말이오! 자 주인장이 추천하는 요리를 한 접시 돌리시게!”

꽤나 묵직한 금으로 만든 금화가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나온 주인장의 손 위에 얹어지고 나자, 주점 안은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해졌다. 한편, 유들유들한 유하 아니 유아의 태도에 라윤 낭자는 부들부들 그 가냘픈 신형을 떨고 있었다. 라윤은 입술을 꼭 깨물면서 유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런 모욕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왜? 안 드시오?”

유아의 이죽거리는 듯한 말에, 라윤은 기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일어서서 말을 내뱉었다.

        “피곤하군요. 그럼 소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여봐라! 방으로 안내 하여라.”

화사한 옷자락을 날리면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라윤의 아리따운 자태를 보면서 유아는 피식 웃었다.

        “과연. 미인의 표준이로세. 그나저나, 주인장 이리 좀 와보시오. 내 노예를 넘기려고 하는데, 어느 기루가 제일가오? 그래도. 아끼던 노예인지라. 좋은 곳으로 넘기고 싶소이다.”

주인장은 그리도 유연한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두 손을 비빈다. 그 모습에 다소 눈썹을 찌푸린 유아이었으나, 주인장이 말해주는 기루의 이름을 똑똑히 귀 안에 밖아 넣어두었다.

        “힘들군. 이 짓도. 아아, 미인에게 미움을 받다니.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야. 안 그런가? 령 매?”

이죽거리는 미소가 유아의 입가에 수려하게 그려지고, 령 매라고 불리는 여인은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다. 화사한 그네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것을 보던 유아의 입술은 못마땅한 듯-, 야무지게 다물어진다.

        “이만 우리도 올라가서 쉴까나? 주인장 방으로 안내하게나.”

주인이 다시 한번 난감한 듯 미소와 허리 굽히기 공세와 손 비비기 공세로 나온 것은 그 때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공자님. 저기 지금 방이 하나 밖에 없는 지라,”

주인의 눈이 유아를 지나 령아에게로 꽂힌다. 황송하다는 듯한 시선이다.

        “낭자께서 앞서 올라가신 낭자와 같이 방을 쓰시면. 물론, 숙박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유아의 눈은 재미있다는 듯, 가늘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옆의 령 낭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이 유아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가부를 결정해 달라는 듯한 그런 태도이다.

        “하-아. 무어, 내 령매가 거부감이 없는가 보오. 그러니-. 안내해 주구려. 무어, 미인과 밤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실례의 인사로 맛난 거 올려 보내게나.”

날렵한 유아의 모습은 건들건들, 선달의 그것을 보이면서 처소위로 올라갔고, 뒤에 남은 령 낭자 역시 무표정으로 라윤 낭자가 올라간 방으로 올라갔다. 방문이 열리고 나자, 매우 놀란 듯 의장을 가다듬고 있는 라윤 낭자가 보인다.

        “호오, 이거 미인이 거처하시는 방이니 과연 남다르군요. 아, 다름이 아니라 내 령 매 좀 부탁드리겠소이다. 숙소가 모자르다 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럼, 내 사레는 톡톡히 하겠나이다. 무어, 령매만 기적에 잘 넘긴다면, 돈이야 문제가 없지 않겠소.”

라윤의 눈매가 상당히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로 봐선 매우 미움을 품고 있는 듯 하다. 유아는 겉으로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고, 속으로는 고소를 참지 못 하고 있었다.

        “잘 보호해 드리지요.”

라윤의 신랄한 비방 정도는 각오했던 유아는 뜻 밖에도 라윤이 선선히 령 과의 동침을 받아들이자, 뜨아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곧 정중한 태도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소.”

자신을 위해 마련된 꽤나 호사스러운 상급의 객실로 안내 받은 유아는 점소이가 물러나고 나서야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에게만 보이는 령의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매우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신수는 주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한편, 라윤은 뜻밖의 수확에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귀찮은 그의 호위기사도 보내버린 지금, 아리따운 낭자와의 하룻밤이니 말이다. 그래서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소 묘하게 흥분이 되게 만드는 령의 달콤한 질문에도 아무런 생각 없이 순순히 대답해 준 것도 말이다.

        “여장이 취미인가?”

그리고 대답하고 나서도 그저 일각 멍하니 그 금안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라윤, 그로서는 령의 질문에 어린 묘한 달콤한 음색이 신수의 술이라는 것 따위는 알 리가 없었으니까 무리도 아니지만 말이다.

        “아아, 추격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말에 령은, 아니 율령은 고운 금안을 미미하게나마 찌푸렸다. 어쩌다가 그의 주인은 이다지도 귀찮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지. 물론 그 주인이라는 사람은 그녀의 신수가 이런 감정이나마 느끼게 된 것을 알면 쾌재를 부를 일이었지만.

        “그러니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왜인지 애써 변명하기도 궁색해, 라윤은 뜨거운 차를 급히 들이키다가 사례가 들려서 캑캑 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율령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귀찮아하는 기색이 완연했지만.

        “아니. 소개를 다시 해야겠군요. 그나저나, 날카로운 눈썰미이로군요. 제가 남자라는 사실을 어찌 아셨나요? 아니, 아셨소?”

이미 들통이 난 사실. 그리 생각했는지, 라윤의 여린 목소리는 제법 사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를 못 챘기에 안심했었는데. 이래서야, 이 변장도 쓸모가 없지를 않겠는가. 라윤은 그리 생각하면서 혀를 차고 또 찼다.

        “목울대.”

어디가 잘못이 된 것일까? 비녀가? 머리 꾸밈새가? 화장이? 몸가짐이? 손놀림이? 자태가?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던 라윤은 율령이 무심하게도 던지는 단 한마디의 말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과연 이 몸이 찍은 낭자답구려.”

라윤은 나름대로 호기롭게 상황을 넘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정말이지 측은하기 그지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율령은 그런 상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침상 위에 그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다른 쪽의 마음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식은땀을 주르륵 흘려도 율령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에.

        “왕자-, 아니 라윤 님.”

창백한 얼굴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가득한 사내가 라윤의 옆에서 나타난 것은 율령이 누운 바로 그 직후이었다. 라윤의 화사한 미간은 사내의 등장과 더불어서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놈의 왕자 소리 집어 치우라 하였거늘!”

다소 신경질적이고 톤이 높긴 했지만, 제법 사내다운 준수한 목소리가 라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의 그 상냥한 말투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허나-,. 마마, 아니 라윤 님. 듣지 못하셨나이까? 저작거리 패거리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게다가 신수의 피가 섞인 노예를 데리고 있는 자가 당당하게 노예를 팔 지경이면. 라윤 님! 추격대가 바로 코앞까지 온 것임에 분명합니다. 결단을 속히 내리셔야! 혹여, 저 노예를 품고 싶으시어 이리하시는 것입니까?”

찰랑- 찻잔 안의 차는 꽤 식어 있었다. 그랬기에, 라윤이 가법게 흔들어 날려 보낸 찻물이 흑의의 사내의 미간을 적시는 액체 노릇만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윤의 단아한 미간에 어린 그 기도는. 그 기세는. 가볍게 말할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럼 어찌할까? 이리 내 한 몸 희생할까? 늙은 부왕이 시키는 대로 그리 팔려갈까? 어리디 어린 왕녀의 지아비로? 그것도 두 번째 지아비로 말이더냐? 내 모후가 후궁이니라! 이제 더 이상은! 처음이 아닌 것이 싫다! 그러니 내게 더 이상 왈가불가 논하지 말라!”

라윤은 검은 두 눈 가득히 분노를 떠올리면서 소리쳤다. 아니, 속삭였다. 침대 위에 누워서 곤하게 자고 있는 그녀(?) 때문이겠지만.

        “명이다!”

고집스러운 입가에 표독한 표정이 떠오른다. 창백한 호위무사는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서 “존명” 이라는 단어만 내뱉고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스르륵 눈앞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라윤은 거칠게 머리 장신구와 가채를 벗어 던졌다. 날이 밝으면, 고쳐 쓰느라 고생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우선은 분기로 가득한 마음을 해결하는 것이 급했다. 이대로 팔려갈 수는 없다. 차라리, 첫 번째가 될지언정, 두 번째는 되지 않겠다. 두고 봐! 늙은 영감탱이! 당신 자리, 당신이 쓰고 있는 그 관! 빼앗고 말 터이니!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라윤의 검은 눈동자가 화륵 타올랐다. 빼앗는다. 가지지 못한다면 빼앗으리라. 예외는 없다. 라윤은 자신의 침상을 차지한 채로 곤하게 자고 있는 율령을 바라보면서 식어버린 찻물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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