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계속)


[역시 내 짐작대로 메이지 양이었군. 이렇게 세찬 바닷바람을 헤치고 나의 집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

메이지 양은 살짝 머리를 구푸리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에게서 짠냄새가 났다.

[팔에 끼고 있는 바구니를 보니 그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맞춰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맞춰볼까?]

[네 맘대로 하스르르.]

[흐음. 머리에 두르고 있는 그 머릿수건과 네 앞의 부엌치마가 내 속에 잠들어있는 탐자(探者)의 육감을 맹렬하게 자극하고 있는걸. 그 바구니의 목적지가 이 곳인 것을 보니까, 그 속에는 분명히 나를 향한 아주 값진 선물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해. 뭘까, 내 후감(嗅感)을 자극하는 이 강렬한 냄새는. 자극적이고 상당히 시큼한 냄새에, 이 느끼한 향은 바구니 속에 피짜(pizza)가 담겨져 있음을 명징하고 있군. 어때, 맞지?]

[크르르... 이 바구니 안에 든 건 너의 바램과는 달리, 아까 집 뒤에서 시끄럽게 울고 난리를 치는 도둑고양이를 잡은 것으르르. 아무 곳에나 버려두기가 뭣해서 마을 외곽으로 묻으러 가는 중에 네집에 들러서 같이 가자고 하려고 온그르르. 고양이 냄새가 그리 맛깔스럽게 느껴지면 이걸 네게 요리해주르?]

음. 죽은 고양이를 요리한다... 쿨럭!

[그런데, 왜 머릿수건에 부엌치마를 두르고 있지?]

[그건 당연히 고양이 피가 옷이나 머리에 튀지 말라고 그런 것이즈르르.]

그럼 그렇지. 설마 육감이란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 했어. 어떻게 사람이 옷차림이나 그 걸음걸이 같은 걸 보고 유추해서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담? 결국 중기시대의 탐자상(探者像)은 다 과장이고 허구인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이야기에나 등장하는 탐자상을 믿고 한 번 시험해보려던 내가 어리석은 것이지. 쩝. 사람은 역시 믿기 어려운 말은 처음부터 신뢰를 포기해야해. 암.

[창밖이나 내다보고 하릴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여전히 한가로운가 보즈르? 그럼 나랑 이거나 묻으러가르?]

메이지 양이 내 눈 앞으로 바구니를 쳐들어 올리면서 내게 말했다.

[... 제발... 눈 앞에서 이거 치워줄래? 우웨엑~! 고양이를 어떻게 잡았길래 이런 역한 냄새가 나냐.]

그리고 난 내가 말한 것을 후회하면서 메이지 양을 잡고 늘어져야만 했다.

[나의 살물기술을 보여줄끄르?] 하면서 부엌 쪽으로 다가서는 메이지 양. [우선 가볍게 칼을 부여잡고] 그녀는 식칼을 집어 들면서 [고양이 뒷덜미를 사정없이 낚아챈 후에] 내 편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배에 칼침 한 방, 그리고 척추 부근에...] 내게로 다가오는 그녀의 살풍경한 모습은... [아아악! 메이지 양, 제발 그만해!]

제기랄, 오늘밤 잠은 다 잤군. 내 등에는 식은 땀이 배어들었다.

왼쪽 팔에는 바구니를 끼고 오른손에는 식칼을 들고는 내 쪽을 향해 서 있는 소울 메이지 양은 사실 나와 제일 절친한 사이다. 가끔 저렇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살물기술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나의 가장 멋진 소꿉친구나 다름이 없다. 아니, 다름이 없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 둘은 소꿉친구일 수 없는 어른 친구이니까.

[아직 넌 어른이 아니으르르.]

젠장.

게다가 메이지 양은 '마인드 리더(mind reader)'이다. 털복숭이족에게만 있는 유전적인 능력. 5큐빗(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1큐빗을 45센티미터로 정의합니다.) 한 뼘에 조금 못 미치는 키에 좀 많이 큰 덩치를 가진 메이지 양이 저렇게 섬세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저 무시무시하게 불어치는 바닷바람을 뚫고 태연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메이지 양이 조금만 더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동물들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상 마인드 리더 중에 뛰어난 자들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고 옛이야기로 전해내려오던데... 그랬더라면 메이지 양의 그 거대한 반달식칼아래서 패닉상태에 빠진 고양이는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리고 메이지 양은 이렇게 복잡하고 길게 얽히고 설킨 생각을 읽지는 못한다.

[내 능력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걸 보니 우리는 소꿉친구가 분명흐르르.]

읽혔다.

[그러나저러나 너에게 일거리는 언제부터 생기느르? 잭슨빌? 마을의 전통을 좇아서 너도 한량처럼 생활하는 것으르?]

[글쎄말이야. 나도 어서 일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우리 마을같이 한가롭고 무료한 곳에서 내가 맡을 일거리가 쉽게 생길까? 뭐 특별한 사건 사고가 늘상 벌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사건사고 자체를 찾아볼 수도 없고, 게다가 보안관인 네 아버지는 너라는 존재때문에 특별히 직업적인 곤란 같은 것은 가져볼 기회도 없잖아. 제길! 네녀석이 웬만한 네 아버지의 일거리는 다 처리하잖아!]

갑자기 지난일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절친했던 아버지들 덕택에 매일 함께 놀던 우리 둘은, 소학교에서도 그렇게 늘 함께 지냈다. 우리 마을같은 규모에 당연히 소학교는 하나밖에 없으니. 사실 마을에 애들이 얼마나 된다고 소학교를 세 개 네 개 씩이나 두겠는가. 그런데, 하루는 급식 시간에 불현듯, 저 앞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메이지 양의 등이 다트판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그 널찍한 등판에 체크남방이 그리도 맛깔스럽게 느껴지던지... 그래서... 그래서... 고기를 썰고 있던 나이프를 던졌다. 그리고 꽂혔다.

삼십분도 안 되어서 온 마을에 다 소문이 왔다. 출동한 메이지 양의 아버지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장을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나에게 진압봉 - 덩치만큼이나 길고 두꺼운 - 을 드밀어댔다. 깜짝! 놀란 나는 방심한 상태에서 메이지 양에게 마음을 읽혀버렸다. <나이프로 하지 말고 포크같은걸루 할걸. 일이 이렇게 커지다니...> 메이지양은 수줍어하면서 - 흠. 그 때도 나보다 두 배는 컸다 - 나를 가리켰다.

[아버즈르르. 잭슨빌이 포크로 할 걸 그랬드르르.]

그 사건은 [그 해의 마을 10대 사건]에 뽑혀서 신문사 편집장 양반 - 이 사람도 아버지 친구다. 이 사람 아들은 내 친구고. - 과 특별 인터뷰도 했었다. <왜 그는 그렇게 꽂았나!>

[어이, 메이지의 등판을 나이프로 쑤시면 꿈쩍이나 하나. 도끼로 찍었어야지.]

이렇게 살풍경한 우리 마을에서 왜,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는가..

[사건 사고가 영판 없는 게 아니라, 네 형이 너보다 더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즈르르.]

... 할 말이 없다. 사실, 의뢰자들은 나보다 형에게 문제를 들고 가는 편이니까. 이런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도대체 왜 형제가 같은 일에 매력을 느껴서 같은 일에 종사를 하고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왜 형은 나보다 더 뛰어나냔 말이다.

[제길, 그래 나는 능력 없다. 그래서 맨날 한량처럼 바닷바람이나 쐬고 있다. 쯧.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단 말이다!]

시끌시끌, 왁자지껄, 버럭! 우왕좌왕, 투덜투덜, 퍼억퍽!

[계세요?]

퍼억... 퍼... ... 계세요?

누군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왔다. 나는 메이지 양의 강펀치 - 칼은 마룻바닥에 던져서 꽂아두고는 - 를 얼굴에서 치우면서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의, 한가롭다 못해서 무료하고 답답한 기운이 역력한, 베이커리 가 221번지 2층 하숙방의 출입구를 세로막고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여기가 아이스 C. 잭슨빌의 탐자(探者)사무소죠?]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1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4 unica 2003.11.25 0
30 장편 모두의 XX 下1 양소년 2003.11.22 0
29 장편 모두의 XX 上2 양소년 2003.11.21 0
28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1 unica 2003.11.15 0
27 장편 [有水有火] 첫 번째 매듭 ::珠有我(주유아):: unica 2003.11.15 0
26 장편 [有水有火] 첫 장과 마지막 장 -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1 unica 2003.11.15 0
25 장편 【 STORY 오브 聖 魔 】(2)1 〃*夢*〃 2003.11.15 0
24 장편 【 STORY 오브 聖 魔 】(1) 〃*夢*〃 2003.11.15 0
23 장편 「프리웬지 파우더」「제 1-1장」「돌아오는 길」1 정수지 2003.11.06 0
22 중편 [죽저] 1. 非 (04) 비형 스라블 2003.11.06 0
21 중편 [죽저] 1. 非 (03) 비형 스라블 2003.11.05 0
중편 [죽음 저편에는] 1. 非 (02) 비형 스라블 2003.10.29 0
19 중편 [죽음 저편에는] 1. 非 (01)3 비형 스라블 2003.10.28 0
18 중편 水領神─-…「제 1-1장」1 정수지 2003.10.24 0
17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5)1 최현진 2003.08.19 0
16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4) 최현진 2003.08.17 0
15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3)1 최현진 2003.08.16 0
14 장편 The Power에 대하여2 최현진 2003.08.15 0
13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2) 최현진 2003.08.15 0
12 장편 The Power - 2장 음모(1) 최현진 2003.08.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