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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The Power - 2장 음모(5)

2003.08.19 21:5908.19


벌써 10분이나 지났건만, 수안과 고수휘의 실랑이는 끝날 줄 몰랐다. 고수휘는 여전히 완강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수안은 고집불통인 그녀에게 점점 화가 났다. 감히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다니......

"이건 항명이야! 난 지금 부탁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거야! 감히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수안이 눈을 부릅뜨고 몹시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나 고수휘는 요지부동이었다.

"대장님, 절 이해해 주세요......전 반드시 가야 합니다."

"대체 상관의 명령에까지 불복하면서 계속 가야한다고 고집부리는 이유가 뭔가?"

"그건......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고수휘가 한동안 머뭇거리다 말했다. 앤턴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수안은 그녀의 눈이 지나칠 정도로 반짝거리는 걸보고 순간 당혹스러웠다.

"누굴 찾아야 한단 말인가?"수안은 물으면서 순간 뇌리를 스쳐 가는 뭔가가 생각났다."설마......먼저 파견된 조사팀과......"

수안의 말에 고수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세한 사정을 선뜻 말하기가 곤란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오른손으로 솟차레 총을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수안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사랑인가?"수안이 짐작한 바를 물었다.

"그렇습니다."고수휘는 힘없이 대답했다.

이에 곁에 서 있는 세 대원들은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랑......그것은 매우 지극히 위험한 행위였다. 적어도 군내에서는 말이다. 연방대 군율에서 가장 금하는 것 중 하나가 이성간의 사랑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보약처럼 사람에게 힘을 주지만, 어떤 때에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독약보다 더 해로운 짓을 부추기기도 한다. 연방대 수뇌부에서는 사랑이라는 정의를 후자 쪽에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목숨을 걸고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군인에게 사랑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수안도 사랑에 관한 몸서리 처지는 아픈 기억이 있지 않았던가! 하연수, 그 교활하고 영악하기 그지없는 여자하고 말이다. 한번의 뼈저린 경험으로 수안은 사랑이 얼마나 가치 없고 무서운 것인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의 여자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이 그 일로 인해 더욱 심해졌는지도 모를 일어다.

"자네 미쳤나!? 군내에서 이성간의 교제를 엄격히 금한다는 것쯤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압니다. 하지만......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해요. 그가 너무 걱정이 돼서 참을 수가 없어요! 전 가야만 합니다. 그를 구해야 해요!"

"포기해!"수안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자네의 사랑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솟차레 총이 그 지경이 된 걸 보면 이미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아!"

"오! 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를 구하러 갈 겁니다. 제발 절 이해해 주세요."

고수휘는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 철인 같은 강인한 여자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는 모습에 사랑에 대해 이미 결벽증 증세까지 보이는 수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

잠시동안 연민이라는 감정과 여자에 대한 냉정한 편견 사이에서 고민하던 수안이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결정한 듯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둔탁한 충격이 수안의 뒤통수에 느껴졌다.

"아아아악!"

갑자기 곽철민과 박권이 자지러질 듯한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수안에게 부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뒤를 가리켰다. 수안은 앤턴 속에서 비치는 그들의 얼굴에서 살 떨리게 만드는 잔인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찼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서기수였다. 그러나......그러나 그는 머리가......머리가 없었다. 머리가 떨어나간 자리에서는 시뻘건 물이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수안의 눈에는 그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피가 마치 산드러지게 흩날리는 시커먼 꽃가루처럼 보였다. 수안은 자신에게 둔탁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물체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앤턴이 박살난 채 끔찍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서기수의 머리였다. 눈은 반쯤 튀어나와 있었고, 안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입가에는 피처럼 보이는 빛줄기가 바닥까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공포스럽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목덜미 언저리에서 피를 콸콸 뿜어내며 사시나무 떨 듯이 온몸에 심한 경련이 이는 서기수를 본 수안은 땅거미처럼 엄습해오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하마터면 정신을 놓을 뻔했다. 그 뿐 아니라, 나머지 대원들 모두 공포와 두려움 탓에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단단히 경직돼버린 얼굴로 머리가 달아난 서기수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발바닥에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처럼 다리가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매일 같이 포탄에 맞아 뇌수를 흩뿌리며 몸 전체가 산산이 박살나는 동료들의 죽음에 익숙해진 그들이었지만, 지금같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서는 그들도 별 수 없는 보통 인간처럼 주체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저길!"

사시나무 떨 듯이 경련을 일으키던 서기수의 몸이 진이 다 빠져나갔는지 이내 땅바닥에 푹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쓰러진 서기수의 몸뚱이보다 저 멀리에 흐릿하게 서 있는 시커먼 물체에게 고정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가장 먼저 그 희미한 검은 물체를 발견한 곽철민이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숨이 넘어가는 가련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외침을 들었는지 그 검은 물체가 점점 커지고 선명해졌다. 수안 일행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체의 윤곽이 차츰 뚜렷해졌다. 그건 사람이었다. 몸보다 큰 옷을 입은 것 마냥 헐렁해 보이는 전투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는 질질 끄는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수안은 그 자의 정체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장문수!?"

수안 뿐 아니라,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장문수의 등장은 매우 뜻밖이었다. 모두들 서로를 기가 막힌 얼굴로 번갈아 바라보며 어깨를 크게 들썩했다. 그러나 곧 그들의 얼굴에는 잠시 수그러들었던 공포의 빛이 되살아났다. 장문수가 왼손에 꽉 쥐고 있는 이렌 권총을(모든 연방대 내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지급되는 소형 권총. 크기는 작지만 파괴력은 상당하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을 해두지 않으면 총을 쏠 때의 강한 반발력으로 저만치 나가 떨어지게 된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안녕들 하신가?"

마침내 수안 일행 앞에 선 장문수가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듬거리며 말하지 않았다.

"내가 스플린트로 돌아가라고 한 것 같은데......"

수안은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일어났고, 그것은 아무리 대담한 배포를 지닌 자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가슴속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피어오르는 공포와 두려움 탓에 제대로 서 있기도 벅찬 상태였다. 장문수는 수안 일행을 천천히 살폈다. 수안은 앤턴 속에서 비치는 그의 눈빛을 본 순간, 자신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빛은 전과 분명히 달랐다. 나약하고 한심스럽게 보이던 눈에는 사납고 잔인한 빛이 서려 있었다.

"여기라면 좋겠어."

장문수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킬킬거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냐? 고창천은 어디 있지!?"

"대장 나으리, 네 걱정이나 하시지."

"뭐야!? 너, 이 자식! 상관인 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수안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무라듯 격하게 외치자, 장문수는 우습다는 다시 킬킬거렸다.

"네 놈이 서기수 대원을 이런 꼴로 만든 거냐?"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당신이지."

"그게 무슨 말이냐?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래. 이 곳이라면 안심하고 모두를 해치워 버릴 수 있지. 아주 깔끔하게 말이야. 어떤가? 너희들 무덤자리로는 딱 아닌가? 자,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시지."

"미친 자식! 한 가지만 묻자. 왜 날 죽이려고 하지?"

수안의 말에 장문수는 듣는 사람을 화나게 만들 정도로 얄밉게 낄낄 웃어댔다.

"그건 잘나신 수석 보좌관 나으리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장문수의 말에 뇌리를 강하게 스쳐 가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권철기 대장군이?"

"빙고! 정답이오."

"말도 안돼! 내가 사령관님께 직접 명령을 하달 받고 이곳까지 오는 데 소요된 시간이 이틀도 되지 않았어. 게다가 이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신속히 착수한 임무인데 어떻게 그 자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에게 제안했지. 당신을 죽여줄 테니 그 대가로 돈 좀 달라고 말이야."

"결국 돈이군.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사나이라면 좀 더 그럴듯한 일을 해보지 그랬어?"

"닥쳐! 너 같이 뭐하나 빠질 것 없이 잘 난 녀석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난 그 돈으로 최근에 나온 최신 도신바 하이테크 컴퓨터를 사야 한단 말이야! 이 빌어먹을 곳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꿈에도 그리던 그 녀석을 만져볼 수 있단 말이다."

장문수가 자신있게 말한 어이없고 황당한 이유에 수안은 기가 막혔다.

"겨......겨우 컴퓨터 하나 사려고 이런 짓을 한다는 건가!? 이런 미친......"

"말조심해! 컴퓨터는 나에게 있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야. 내가 그 최신 컴퓨터를 사려고 얼마나 기다린 줄 알기나 해! 아, 그 엄청난 용량과 상상을 초월하는 처리 속도, 거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킹 할 수 있는 그 녀석을 말이야! 난 사이버 세상의 왕이야! 그 자리를 다른 놈들에게 내줄 수는 없어! 그리고 그에 걸 맞는 최신 주변기기까지 새로 구입하려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난 돈을 모으지 않는 체질이라서...... 자, 이제 알건 다 아셨으니 그만 날 위해 죽어줘야겠어!"

장문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렌 권총을 수안에게 겨누었다. 하얀빛이 서늘하게 일렁이는 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수안은 어떻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몸은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돌처럼 경직돼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야 할 건 바로 너야!"

고수휘가 날카롭게 외치면서 솟차레 총을 번쩍 들어 장문수를 향해 겨누었다. 이에 멍청하게 서 있던 곽철민, 박 권도 그녀의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른 어깨에 메고 있던 솟차레 총을 재빨리 들어 장문수를 조준했다.

"상황이 역전됐군."수안은 고마운 눈길로 고수휘를 한번 쳐다보고,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른 채 장문수에게 말했다."권철기 대장군이 쌓인 게 많긴 많았나 보군. 너 같이 한심한 인간의 말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닌데......"

"칭찬해 줘서 고맙군."

장문수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죽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히려 그의 목소리에는 자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유가 잔뜩 묻어 있었다.

"고창천은 어떻게 됐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던 녀석이었다고는 하나, 그 역시 수안이 책임져야 할 부하였다. 그의 안위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죽었겠지. 이게 벗겨졌으니 말이야."

장문수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는 앤턴을 톡톡 건드리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말했다.

"이 자식! 동료를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네 놈이 사람이냐!?"

"헹! 놀고 있군. 너 따위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무......무슨 뜻이지?"

"내가 사이버 세상의 왕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동료를 그렇게 끔찍이도 위하면서 소 이 장군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장문수의 말에 수안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어깨에 메고 있던 솟차레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놀라셨나? 아마 이 얘길 들으면 기절할 걸! 난 이 얘기를 또 한 사람에게 말해 줬거든.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당신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에게 말이야."

장문수의 결정타에 수안은 순간 다리가 쫙 풀렸다. 진이 빠진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고, 곧 팔까지도 심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듯 갑자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그를 가장 증오하는 자, 권철기가 그 비밀을 알았다면 그걸로 그는 끝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가문이 끝장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안은 익셀리온 컴퓨터를 해킹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익셀리온 컴퓨터는 연방대를 총 관리하는 슈퍼컴퓨터였다. 그걸 함부로 해킹 한 자는 군법에 회부돼 즉결처분 당하게 돼있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좀 다르다. 단지 그의 죽음만으로 모든 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조 때부터 쌓아 내려온 가문의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이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되는 것이다. 법은 수안만으로 끝나겠지만, 그의 가문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들은 단지 그의 죽음만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 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괜찮으십니까?"

뒤에 서서 장문수를 겨누고 있던 곽철민이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수안을 부축하려고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하며 곽철민을 제지했다.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통 모르겠군. 어쨌든 동료를 죽인 너 같은 놈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

수안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밀려드는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아버지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권철기 대장군을 어떻게 해서든 구렁텅이로 밀어 떨어뜨려야 한다는 어리석은 야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 언어 변환기의 유출을 이용해 권철기를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놀랍고 고귀한 지혜를 사악하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고, 자신의 충실한 종이자, 아버지의 충복인 푸칭과 짜고 익셀리온 컴퓨터를 해킹했다. 그와 푸칭은 익셀리온 컴퓨터 내에 저장된 일부 데이터를 변경했는데, 그것이 소이 장군 부대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런 작업을 몰래 지켜보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몰래 익셀리온 컴퓨터를 드나들며 자기가 왕이라도 된 것 마냥 혼자서 거들먹거리며 해킹 솜씨를 자랑하던 자가 말이다......

"아,아......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 혹시 프로그래머란 직업이 뭔지 아나?"

장문수가 뜬금 없는 질문을 했다.

"자네를 보니 알고 싶지 않군."

"난 프로그래머야. 천재지. 난 한번 마음먹은 놈은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안으로 헤집고 들어가서 내 것으로 만들지. 하지만 말야, 천재인 나도 가끔은 실수를 할 때가 있어. 그래서 나는 늘 중요한 작업에 앞서 백업(Backup)을 해놓는단 말이야."

"백업?"

"그래. 일종의 안전장치와 같은 거야. 백업을 해두면 작업에서 실수가 있어도 예전처럼 쉽게 복구할 수 있거든."

"난 네 컴퓨터 강의 따위를 듣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솔직히 널 살려두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면 그 총을 버려!"

수안의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장문수는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난 여기에도 그런 안전장치를 설치해 두었지. 세상은 넓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많으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김찬건?"

"물론이야."

수안과 세 대원은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그들은 맨 뒤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휘둥그레진 눈을 돌렸다. 맨 뒤에서 한동안 잠자코 서 있던 김찬건이 음흉한 눈빛으로 수안과 세 대원을 노려보며 이렌 권총을 꺼내 들었다. 순간 이렌 권총에서 불빛이 번쩍번쩍 하더니 솟차레 총을 받치고 있던 곽철민과 박 권의 손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너......너!"

수안은 하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화들짝 놀란 고수휘는 금방이라도 김찬건을 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녀는 추운 지방에 옷도 안 걸치고 서 있는 사람처럼 격렬하게 부르르 떨고 있었다. 총을 받치고 있는 손이 심하게 떨리는 탓에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다른 손은 이미 돌처럼 완전히 굳어버려 방아쇠를 당길 힘조차 손가락에 전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렌 권총에 한쪽 손이 그대로 떨어져 나간 두 대원은 피가 콸콸 쏟아지는 손목을 붙잡고 바닥에 엎어진 채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신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메아리처럼 퍼져나가 온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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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3.09.01 02:28 댓글 수정 삭제
    2장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요.
    한동안 글이 안올라와 궁금한 마음에 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