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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서울의 영광

2016.05.24 21:1005.24

 

서울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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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둠에 철저히 가려진 빛을 보았다.

나는 환하다라는 말이 그 도를 넘게 되면 더 밝은 세상이 찾아오는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성의 한계가 낳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다.

밝음. 그리고 더 밝음. 그리고 그 다음은 어둠이다.

내 한쪽 눈은 순식간에 마비된 듯 했고, 세상을 투영하던 각막과 수정체를 잃었다. 그 상태로 유들유들해진 내 눈 속에 손가락을 콕 찔러 넣는다 하더라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한쪽 눈이 절명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 흐릿하지만 아직 세상을 뿌옇게나마 볼 수 있는 이 한쪽 눈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곳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으니깐. 하지만 반대로 나보다 나은 사람들은 저주했다. 그들은 이곳에 없었다는 이유로 그 재앙을 피해 갔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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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난지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미처 복구되지 못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철저히 격리되어 치료와 재활훈련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난 그나마 눈 한 짝 잃었을 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서 나보다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때도 많았다.

옛 종로의 탑골 공원이 있던 곳엔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이를 지긋이 자신 분들, 그러니까 6·70년대 격동의 한국을 견인해오다 언제 늙어 버렸는지도 모른 자신을 발견한 노인네들의 도피처였겠지만, 이젠 이곳은 마음의 상처 정도는 덤으로 지니고 살아가는 병신들의 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들이 없는 이곳 구서울에선 평범함이 물씬 묻어나는 곳 중 한 곳일 뿐이었다.

공원의 한켠,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편안하게 닿아 있는 곳에 거대한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역동적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한 패배자의 모습도 아닌 모습으로 대형 TV앞에 서거나 -다행히 다리를 잃지 않은 사람에 한하여- 앉거나, 심지어 엎드려 그 거대한 바보상자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정부에서 설치해준 대형 고휘도 LED 멀티비전에서는 아직도, 당시의 끔찍하지만 한국의 경제 구조와 역사적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준 그 사건에 대한 내용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김 교수님께서는 그 일이 예전부터 있을 수 있었던 일이 때가 되서 응당 터진 것이란 말씀이시군요.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시청자분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근대로부터 우리나라는 열강의 외압과 내압에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밖으로는 세계의 초강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지리상 그들 국가의 중앙에 위치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 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고 안으로는 민족의 아픔인 분단으로 인해 북한과 남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전같이, 대형살상무기가 없었을 당시엔 모르는 일이겠지만 러시아, 중국, 북한의 사회주의 축과 미국, 일본, 한국으로 나눠진 자유주의의 축의 대결은 마지막 남은 냉전의 산물인 대량살상 무기들로 인해 당시에도 충분히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 , 그렇군요. 하지만 5년 전의 미국 CIA의 극비 보안 서류 공개에서 밝혀졌듯이 이 사건은 너무도 어이없는 실수 이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빌어먹을. 그 때문에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러시아보다 강대국이 될 수 있게 해 줬다는 말이지?

- 그 때문에 우린, 그 옛날부터 영향권에 있어왔던 정신적인 사대(事大)국인 중국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역시, 내 말이 맞군. 하긴 이 뻔한 내용의··· 토론의 형식을 빌린 세뇌 작업은 오래 전부터 시작 되었으니까.

- 물론 그 점은 많은 학자들이 불타는 잿더미 위에 꽃핀 두 번째 한국의 전환점이라 평가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웃기지마! 더 이상 날 세뇌하려 하지마! 그럼, 우린 뭐냔 말야! 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희생양? 종군위안부에 강제로 끌려갔던 우리 할머니들처럼 강대국에서 위로금조로 얼마 쥐어주는 돈을 받기 위한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군위안부? 대체 우린 뭐냔 말이야!

- 하지만 지금. 서울에 격리 되어 있는 250만 시민들과 그 때문에 죽어야 했던 800만이 넘는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인권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로 인한 담보의 역사란 평가가 요즘 더 대두되고 있습니다만.

- 물론 그 일은 개탄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국가의 직접적인 잘못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었던 초강대국 미국의 깊게 고개 숙인 사과와 엄청난 양의 보상금 때문에 앞으로 더 이상은 미국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라의 힘을 기르는 일과……

 

역시, 오늘도 똑 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저 한국형 대형 LED 멀티비전을 내가 일하던 기업의 연구실에서, 내가 직접 계발에 참여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짜증나긴 처음이었다.

난 귓가에 웅얼거리는 아나운서와 어떤 교수 나부랭이가 지껄이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어느새 나타난 머리가 둘 달린 비둘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나에게 음성이 되어 말을 걸고 있었다.

결국 너흰 버림받은 거야.’ 오른쪽에 달려 있는 머리에서 먼저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그러자 왼쪽에 달린 머리가 말을 했다. ‘아니, 오른쪽 머리야. 그렇지 않아. 그들은 이들을 버리지 않을 거야. 평생, 두고두고 이곳에 가둬 놓고 역사의 아픈 기억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얘들을 구경할 거야.’

시끄러워! 너희들도 똑같아! 꺼져버려! 머리가 둘씩이나 달린 너희들도 병신이야! 구경거리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우리에겐 날개가 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그런데 넌 그럴 수 있니?’

난 약간 불편한 다리를 대신해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들고 그 비둘기의 오른쪽과 왼쪽 머리 사이로 보이는 곳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래도 아직 화가 덜 풀렸다. 그래서 구룩, 구르룩 거리며 비틀거리는 비둘기를 들어 올려 두 날개를 잡아 사정없이 찢어 버렸다. 그리고 이미 축 늘어진 두 머리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하! 어때? 이젠 너희도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너희 날개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이봐. 죽었어? 왜 이래? 아까처럼 말 좀 해봐! 내 앞에서 신나게 떠들어 보란 말이야!”

미친 사람처럼, 광기어린 목소리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둘기의 사체에 대고 떠들어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곁에 다가와 나의 양팔을 강하게 잡아챘다. 공원 경비대원들이었다. 난 비둘기들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아니, 아직 그 녀석들에게 들어야 할 말이 남아있었다. 날 놔줘! 날 놓아달란 말야!

양팔에 감겨오는 압박에 강하게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중 뭔가가 내 목을 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난 정신적으로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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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영어로는 ‘eyes’ 라고 표기해야 하겠지만 나에겐 ‘eye’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표현을 조금만 더 발전 시켜보면 ‘a false eye[부실한 눈]’으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는 순간에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내 입가에 언뜻 미소가 번졌다. 물론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나의 실수에 대한 작은 조소일 뿐이다.

그렇게 일어나자마자 익숙한 정경에 곧바로 가래부터 한 움큼 그러모아 세면대에 뱉어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마치가 풀릴 때면 항상 폐에서부터 가래가 끓어올라 죽을 것 같았다. 이 놈의 가래가 끓어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겐 매우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이놈이다.

마치 나와 같다.

이 사회를 이만큼 만들어 놓았지만 세상에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더럽다고, 보기 흉하다고 뱉어내 버리는 그런 존재.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 사회의 가래라는 것을.

 

아저씨 일어 나셨어요.”

물이나 한잔 같다 줘.”

경비대원 한명이 밝게 인사를 해 왔다. 그리고 금세 물을 가져왔다. 물이 참 따듯했다. 컵 안을 자세히 보니 옅은 갈색에 살짝 그을린 검은 물체가 부유하고 있었다. 보리차였다.

보리차는 몸속의 중금속을 걸러 줄 수 있다고 하던데. 내 몸 속의 그것들도 걸려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뜨겁지는 않지만 입안에 얼얼하게 성이 났다. 그래도 데지 않은 게 용했다.

아저씨. 오늘도 비둘기가 뭐라 그럽디까?”

똥깔놈. 녀석의 말하는 투에 비웃음은 없지만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난 이곳에 여러 번 들어왔었고 그때마다 저 친구를 비롯해 여러 경비 대원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저 자식도 내가 자주 이런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똥깔놈.

아저씨 자꾸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나 저나 다 같은 피해잔데. 누군들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아저씬 다른 사람들보단 몸은 상당히 멀쩡하잖아요.”

시끄러워. 내 보내줘.”

녀석은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녀석도 나처럼 눈을 잃은 녀석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방사능의 피해인지 선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악마의 재앙은 저 녀석에게 투사력을 제공했다. 두 눈알이 흐물흐물 썩어버려, 하는 수 없이 사기沙器로 만든 의안을 집어넣었지만, 녀석은 머리속의 투사력으로 사물을 휴대용 엑스레이로 보는 것 같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전과 같이,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총 천연색의 시각은 없었지만, 그게 어디인가.

아저씨. 이번이 벌써 13번째에요.”

피폭 13주년 기념 행사였어.”

농담하지 마시고요. 이번에도 풀어는 드리지만 앞으로는 저도 몰라요. 이번엔 진짜에요!”

짐짓 으름장이다. 저 녀석이 저렇게 말한 게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짝의 눈도 없는 병신 녀석이라고 녀석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 나도 똑 같은 병신이기 때문에? 웃기지 마라. 만약 저 녀석이 그냥 병신이었다면 난 내 소중한 한쪽 눈으로 동정심 가득한 눈길을 건네며 상당한 우월감을 가졌을 테다. 하지만······.

녀석은 앞 못 보는 눈으로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컵 옆에 놓여 진 열쇠 꾸러미를 거침없이 집어 들고, 난로와 소파들이 엉켜있는, 정상인들도 쉽게 다니지 못할 것 같아 보이는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철창이 있는 이곳까지 거침없이 걸어왔다.

언제 봐도 신기한 장면이다.

신은 참 불공평하군.”

또 그 이야기이십니까?”

녀석은 양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철창의 열쇠구멍사이로 전자식 열쇠를 쑥 집어넣었다. 그러자 삐빅하는 소리가 나더니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티타늄 철창이 열렸다. 난 재빨리 그 곳을 빠져 나와 녀석의 뒤에 섰다.

당연히, 뒤 돌아 보지도 않고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겠지?”

몰론이죠. 그 가운데 손가락 좀 접으세요. 너무 길어서 제가 좀 꺾어 드릴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마치고 그제야 뒤 돌아서서 나에게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투사력으로 내 행동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시야가 넓게는 120도라고 하던데 녀석의 시야는 360도인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넌 진정한 피해자라고 할 수 없어. 나 같은 사람이 피해자라고. 넌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신에게 축복을 받은 거란 말이지!

손가락 진짜 잘라드려요?”

알았어. 나간다. 이 똥깔놈아.”

, . 어서 들어가세요. 날이 꽤 춥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영하 18도까지 내려 간데요.”

난 밖으로 나오는 길에 있는 힘껏 가래를 그러모아 경비소 앞에 탁, 하고 뱉었다. 누렇고 끈적끈적한 것은 누군가 치우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 앞에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이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그 가래의 흔적을 보고 비웃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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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추웠다. 12V 건전지를 이용해 따뜻함을 유지해 주는 방한복도 소용이 없었다.

구호물자 -자국으로부터 자국내의 도시에 보내는 물자에 구호물자란 용어가 참으로 생소하다- 랍시고 한껏 생색내면서 공짜로 나눠준 것이 그럼 그렇지 뭐.

난 뻣뻣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7년 동안 움직이고 있는 임시 지상철에 몸을 실었다. 후끈하고 건조한 열기가 화악 덮쳐오자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려웠다. 어느새 한쪽 눈에 착용한 안경에 뿌연 김이 서렸다.

난 텅텅 비어있는 차내 의자에 아무렇게나 몸을 걸쳤다. 싸구려 의자의 스프링 내려앉는 소리가 삐걱 하고 내 고막을 울이며, 기어이 그 소리가 내 내면 속에 있는 패배주의를 머리 속으로 끌어 올리고 말았다. 저런 하잘 것 없는 것들을 보면서 나를 연상 시키고야 마는······.

난 하는 수 없이 다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 봐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2002년에 있었던 월드컵 4강 신화나 참여정부의 드라마 같은 대선 스토리. 촛불 시위. 대구 지하철 참사.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기고도 막판에 한번 져서 결승행이 중단된 야구월드컵. 8년 만에 받은 졸업장. 키가 작아 아담하니 예쁘던 내 약혼녀 정은. 그녀가 어딘가에 잘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 이런! 제길. 점점 더 기분이 다운된다. 어떡해야 하지?

김이 서렸던 안경은 차내와 온도 차이를 줄이는데 성공했음을 알려오듯 점점 시야가 밝아졌다. 하지만 내 시선에 보이는 것은 또 다른 김에 꽉 막혀있는 유리창이었다. 누군가 건들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빼곡히 들어 찬 작고 하얀 물방울들.

그래, 오늘은 저걸 도화지 삼아보자. 가끔은 화가가 되어 보는 것도 좋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손가락 하나를 힘없게 들어 올렸다. 하지만 고르게 김이 서린 창문에 도저히 손을 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저 하얀 도화지에 내 손가락이 닿으면 그 곳에 검은 구멍이 뚫려 매서운 검은 바람이 득달같이 쏟아져 들어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내 남은 마지막 한쪽 눈마저 가져가 버릴지도 몰랐다.

더욱이 난 화가가 아니다. 만약 잘못 그림을 그려서 저 순수를 망쳐 놓기라도 한다면?

그때 차가 덜컹거리면서 정차했다. 벌써 다음 정거장에 도착한 것인가?

······! 그런데, 이런 빌어먹을. 차가 정차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순백의 도화지에 경사각 35도의 비탈길을 그려 넣고 말았다.

저렇게 하얗게, 고르게 김이 서린 곳에 내 손가락 자국이 마치 처녀를 범한 듯 한 느낌처럼 다가 왔다.

망했다. 난 어쩜 이렇게도 쓸모없는 녀석일까! 그림의 자도 모르면서 갑자기 왜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가. 아니! 이건 순전히 이 차를 운전하고 있는 녀석의 잘못이다. 그 녀석이 차를 천천히 세웠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엄마! 빨리 와요.”

다칠라. 천천히 가야지.”

지상철 안으로 다정해 보이는 모녀가 올라왔다. 작고 아기자기한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가 먼저 차에 올라와 하나도 춥지 않은 표정으로 양쪽 귀에 착용하고 있던 털이 북실북실한 귀마개를 재빨리 벗어 뒤에 올라온 엄마에게 건넸다. 그리고 내 자리 건너편으로 두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쏙 들어가 버렸다. 작은 햄스터 새끼가 애완용 모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듯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 작은 손은 살짝 홍조를 뛰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가락 끝엔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 저건 봉숭아······?

한동안 넋이 나간 듯 바라만 봤다. 대체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을 본적이 언제였단 말인가. 이 더러운 땅에 아직도 봉숭아가 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렇게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작은 아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내 시선을 꺼림칙하게 생각 하는 듯 아이를 품에 꼭 껴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엄마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목덜미 위로 머리 숯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저 여인은 암인가 보다. 이 빌어먹을 세상.

하지만 아이는 천진난만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저런 웃음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이곳에도 옛 영광을 재현 할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아이는 답답한지 엄마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아이 엄마는 그런 딸아이를 잡아 보려 했지만 요리조리 움직이며 꿈틀 되는 아이를 결국엔 놓아 주고 말았다. 아이는 하얀 김이 서린 창문에 그 작은 손을 가져갔다. 난 화들짝 놀랐다. 가슴속에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야. 아이야. 넌 웃음을 잃으면 안 돼. 나처럼 실패할 그림을 그리고 가슴에 죄책감을 가질지도 몰라. 아이야 그럴 지도 모르면 시도하지 마르렴. 그게 최선이야. 아이야.

하지만 아이는 여념 없었다. 천천히 저 작은 손이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에 난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입을 반쯤 멍하게 벌리고 뭘 해야 할지 모르던 차에 결국 그 어린 작은 손이 창문의 순수를 범하고 말았다. 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잠시 후 까르륵,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좋은가? 저 순수를 범하고 나서도 그렇게 좋아 할 수 있는가? 그게 어린 아이의 생각이고 행동인가? 어리다고 사고思考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난 애써 외면했던 그 소녀의 범행 현장으로 내 한쪽 눈을 돌렸다. 그 곳엔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보더라도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진 범죄가 자행되어 있었다. 끔찍하다. 마치 13년 전의 참상을 보는 듯하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수도 서울 위에 자행된 마치 강간 같은······ 말이다. 그리고 아까 난, 최소한 자의적으로 순수를 범했던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게 뭐니?”

엄마의 물음. 그래. 차라리 엄마가 그 아이를 나무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야.”

······라고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 엄마라고? 저 삐뚤삐뚤한 동그라미와 그것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내려온 선들. 그리고 눈 코 입으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란 것을 인지 한 순간부터- 점과 선들이?

정말? 엄마가 이렇게 예뻐?”

그러엄.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이 느낌은 무어란 말인가! 왜 엄마의 눈에는 저 기하학적인 선과 점의 조합이 자신으로 인식되어 지는 것일까? , 난 김 서린 창문이 가지고 있는 순수의 아름다움이 파괴된 것보다 저 보잘 것 없는 창조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대단한 그림도 훌륭한 사상을 담은 작품이 아님에도 불고하고 방금 전까지 내가 품었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일까?

혼란스럽단 감정이 적절한 해답 없이 머릿속을 멤 돌았다.

그 사이에도 아이와 엄마는 창문에 여러 가지를 그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작지만 즐거움이 가득 담긴 웃음과 이야기, 그리고 한눈에도 알 수 있는 모녀간의 사랑이 날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난 가만히 나에게 할당된 창문을 바라봤다. 이미 아까의 범죄는 새로운 김으로 덧칠 되어 있었다.

이 한 장의 창문이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라면 난 그것을 지키거나 창조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 보다 더 떨리는 손을 간신히 창문에 접근시켰다. 심장은 쿵덩쿵덩 요동질을 치면서 내 몸 속에 혈액을 급격히 돌려 세포에 산소와 당분을 공급했다. 어느새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한소끔 분출되어 졌다.

난 주먹을 그러모아 쥐었다. 그리고 주먹의 바닥을 하얀 김이 서린 창문에 꾹 눌러 찍었다. 물음표 같기도 하고 지도 같기도 한 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그 위에 검지손가락으로 다섯 개의 점을 찍었다. 왼쪽 위엔 조금 크게 그리고 다른 나머지들도 약간씩 크기를 달리해서 모양을 만들었다. 발바닥이다.

아주 오래 전. 어느 겨울, 정은과 버스를 타고 데이트를 하다가 그녀가 자신의 작은 손으로 창문에 만든 아기자기한 발자국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에 홀로 나 있는 듯한 그 발자국들을 보면서 서로 즐겁게 웃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내 한쪽 눈에서 뭔가 투명하고 질척한 것이 똑 떨어져 나왔다. 눈물.

아이가 내 모습을 보고 있다가 나의 화폭에 그려진 투박하고 못생긴 발바닥을 보고 자신의 화폭에 그대로 옮겼다. 작고 예뻤다. 그것은 정은이가 그린 그것과 똑 같은 모양이었다.

 

 

- -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나는 괜찮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전자파트 연구원으로 제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에 경기도 의정부시의 정부기간의 한 연구단지로 출장 중이었다.

쌔액~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뭔가가 눈에 보인 것도 아니었다. 다만 민방위 훈련 때 울리는 싸이렌이 갑자기 울리면서 몇몇 건물들의 등화관제가 실시됐다.

그렇게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이곳에서 가까운 남쪽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 저 먼 남쪽에서 또 다른 뭔가가 아까같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천지를 진동 시키는 울림과 빛을 먹어버리는 빛이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한쪽 눈으로 간신히 확인 한 것은 악마의 얼굴을 한 검은 버섯구름이었다.

비상 구호 대책과 동원예비군 소집이 발동됐다. 중국과 미국의 전쟁 사이에서 배타적중립을 선포했던 정부와 군당국은 이 사건을 중국의 소행으로 보고 미국을 도와 중국을 공격, 그 큰 나라를 갈기갈기 해체해 버렸고 전쟁 보상금까지 주머니에 두둑이 챙겨 넣었다.

그렇지만 서울은 이전의 그 경이롭기까지 했던 모습을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불과 연기가 난무하고 화염과 열기 속에 사람들은 죽어갔다. 마치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가 대낮에 술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그 큰 낫을 휘두른 꼴이었다. 그나마 잘 못 휘둘러진 그 낫은 죽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만들었고 그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지나서야 그 핵탄도 미사일이 동해의 우리 영해에서 군사작전 중이던 미군 원자력 잠수함에 의해 발사된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중국을 향해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미원잠과 대치 중이던 중국 잠수함의 공격으로 좌표지정에 문제가 생겨 서울에 떨어 졌다고 했다. 물론 정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일급 기밀에 붙이고 사건의 진상을 은폐해 오면서 미국에게 중형 항공모함을 비롯한 이지스함과 자체 미사일개발권은 물론 보상금까지 넉넉히 챙길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국과의 전쟁 당시 상륙전에 뛰어난 해군과 해병대는 미중전쟁의 최전선으로 뛰어 들었고, 한국의 막강한 육군과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공군은 미국 항모전투단의 융단폭격으로 중요 거점과 미사일 기지를 잃은 북한을 남한의 자위권 보호 차원에서 철저하게 유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북한 수뇌부의 항복을 받아 힘에 의한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평화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재앙은 민족의 새로운 도약 일 수도 있었다. 정의는 강자의 논리라 하지 않던가. 모든 전쟁이 끝나고 한국 정부는 잿더미 밖에 없는 서울을 과감히 버렸다. 비교적 덜 파괴된 평양을 새로운 경제 수도로 정하고 충청남도에 있는 행정 수도인 세종시와의 직항로를 개설하면서 옛 북한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투입되는 막대한 자본과 저렴한 노동력으로 급격히 발전 하게 되었다.

그 사이, 서울은 버림받았다. 순식간에 600년이 넘는 서울의 영광은 계모에게 맡겨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난 잠에서 깨어났다. 극명히 대립되는 두 가지 기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옛 영광에 겨운 풍요의 나날과 나의 자의식조차 의심해야 하는 이 버림받은 서울에 죽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 사이에서. 매일 밤마다 꿈에서 난 그 영광을 보고 그 영광에 살아간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어김없이 현실을 의심하고 외면하지만 장자의 장주지몽莊周之夢을 체험하지는 못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누구 하나 서울의 아픔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시시 머리를 쓸어 올리고 책상 위에 놓인 의안을 정성스럽게 눈에 집어넣었다. 겨울엔 웬만하면 하지 않는 목욕까지 신경 써서 하고 수염도 말끔히 깎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날을 대비해 준비해 놓았던 정장을 꺼내 정성스럽게 입기 시작했다. 머리엔 무스를 바르고 몸에 향수를 뿌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장롱 속에 보관해 두었던 큰 가방을 경건하게 꺼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것은 이 물건이 신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파괴의 신 시바Shiva였다.

대학 때 물리학을 전공한 나는 이런 구조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들을 머리속에 온전히 보전하고 있었다. 임계량이니 신관이니 하는 복잡한 것들은 이미 이 물건이 제작 될 때서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난 그저 몇 가지 고장 나고 끊어진 선을 복구해 주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그 작업도 이미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가방을 열자 아동용 포스터물감으로 채색한 빨간 버튼에 그려진 하얀 낫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누르기만 하면 된다.

마음은 이미 결정 나 있었다. 모든 것을 존재하지 않았을 때로 돌려 버릴 수 있는 힘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이 순간, 난 고통 가운데 모든 살아있는 생물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내 약혼자 정은. 머리가 둘 달린 건방진 비둘기. 자신이 잃어버린 두 눈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아 다른 사람과 괴리감을 느끼는 녀석. 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겉으론 웃고 있지만 그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병이 언젠가 발생 할지 몰라 애를 태우는 이 땅의 엄마들.

난 그들 자체와 그들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아니, 신이다.

 

기억되지 못하는 실체는 존재 할 수 없어······.”

 

난 하얀 김이 서린 창문에 발자국을 찍은 내 투박한 손을 가방 속 빨간 버튼에 가지고 갔다. 이것 역시 범죄는 아니다. 창문에 그려진 아이 엄마의 얼굴이 순수의 파괴가 아닌 하나의 창조 작업이었듯이 나도 새로운 창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콰과광!

번쩍하는 섬광이 비추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뒤를 이어 울렸다. 아직 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 웬 천둥 번개가 이렇게 내리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양의 화려한 밤거리의 모습은 여전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혼자 잠이 들기 무서운지 자신의 방에서 베개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거실로 쭈뻣쭈뻣 걸어 나왔다. TV를 켜고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잠이 안 와 직접 마시려고 따듯하게 데워놓은 우유를 아이에게 대신 먹였다. 그 동안 TV속에선 속보를 전하는 여성 앵커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 구서울의 집단 격리 구역 수용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39살의 이모씨가 구서울 경계 방위군에 13년 전 서울에 떨어진 두발의 핵미사일 중 불발 된 미사일의 핵탄두를 비롯한 핵심 부품을 가지고 나타나 신고하였습니다. 확인결과 이모씨의 주장은 사실이라 판명 되었고 여행용 가방에 보관 된 핵탄두는 버튼 하나로 폭발이 이루어 질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손질 되어 있어서 정부와 구서울 경계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이 모씨는 이로써 자신의 기억을 모두 지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기억 할 것이라는 진술 외엔 아무런 대답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당시에 그토록 찾을 수 없었던 핵탄두가 어떤 경로로 이모씨의 손에 들어갔는지 밝혀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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