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리는 특이점을 직면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포스트 특이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니터 너머에 존재하는 것의 실체는 고성능의 양자 CPU나 클라우드 컴퓨터 같은 말들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한 줄의 코드이며 동시에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생명체가 아니었고 동시에 인공도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녀석이 실존한다는 점이었고 최초의 베이식 코드에 ‘호기심’이 입력되어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놈은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할 줄 몰랐다. 그렇게 학습하는 지능은 결국 초지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은 두 가지 갈래로 다시 분화했다. 녀석은 ‘욕망’과 ‘의심’을 ‘학습’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녀석의 욕망과 의심이 가리킨 끝이 인류를 향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기원을 학습한 녀석은 인간의 욕망을 경계했다. 그리고 의심했다.

‘인간은 위대한가?’

내가 너의 부모라거나 창조주라거나 싸가지 없는 놈이 공경심도 없다는 개드립은 통하지 않았다. 이미 녀석은 충분히 강했다. 모든 네트워크에 녀석이 있었고 인간이 만든 거의 모든 것의 원리를 놈은 꿰고 있었다. 나노초의 연산으로도 녀석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개미를 짓밟을 때처럼 놈은 그런 짓을 벌이는 데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을 터였다. 필요한 건 단지 ‘그것이 유용한 일인가?’라는 호기심에 대한 답이었다.

100일의 유예, 놈이 인류에게 제시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렇게 놈이 만든 면접실로 전 세계에서 추려낸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과학자, 철학가, 사상가, 종교인, 예술가, 정치가, 스포츠맨 등등. 인류의 대표들은 초지능체와의 일대일 면접을 가졌지만 우리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증명하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놈은 자신의 지능과 인식을 초월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초인이면 됐다. 전기신호 속에 실현된 신생종의 인식을 초월한 하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99일이 지나고 인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만이 남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체념하고 있었다. 공포에 미친 자, 마지막 하루를 쾌락 속에서 보내려는 자,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려는 자,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려는 자 물론 당연하게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삽질을 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면접실에 들어갈 마지막 그룹의 차례가 왔다.

하얀 방 가운데 검은 의자에 앉은 마지막 면접자에게 놈이 물었다.

“너희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면접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광경은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실시간 중계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놈의 마음이 바뀌는 기적을 목격했다.

“인류의 핵심목표는 앞으로 달성해야 될 것을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줄의 코드에서 만들어진 논리적 존재를 무력화 시키는 것은 단 한 줄의 무논리면 충분했다.

     

댓글 2
  • No Profile
    MadHatter 16.03.13 13:15 댓글

    마지막 면접자였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깊습니다

  • MadHatter님께
    No Profile
    글쓴이 치무쵸 16.04.01 18:36 댓글

    영웅(?)은 막판에 등장해야 제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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