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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형 집행인의 FPS

2016.02.23 17:1702.23

사형 집행인의 FPS




‘이건 진짜다.’

수현은 입에 문 권총에서 쇠의 비린내를 맡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쉬는 날이었고 집이었다. 수현은 자살을 고민했다. 수현은 21세기 중반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사형 집행인으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현에겐 권총 두 자루가 허용되었다.

21세기 중반 사형 집행 환경은 FPS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서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사형 집행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었고 그것에 수현은 발탁되었다.

첫 번째 사형 집행은 FPS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손수 총으로 사형수를 쏴 죽여야 했다. 그때의 반응을 보고 이 사람이 정말로 사형 집행인으로서 적절한지 아닌지를 결정했다. 수현에겐 사형수에 대한 증오가 있었기에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최소한 당시엔 그랬고 수현은 사형 집행인으로 발탁되었다.

처형되는 사형수들은 쾌락 범죄자들이었다. 남의 고통과 불행을 보고 연민이 아닌 쾌락을 느끼면서 더 나아가 범죄까지 저지르는 놈들이 쾌락 범죄자다. 쾌락 범죄자는 점점 다가오는 우주 시대에 우주 폭력배가 되어 재미로 인류를 학살하고 재산을 파괴할 자들로 간주되어 전 세계적으로 처형되는 추세였다. 그래야만 우주 시대에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논리로서 효율성의 문제였다.

요즘 수현은 점점 압박감을 느꼈다. 이성과 지성으로는 사형수들은 죽어 마땅함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정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지 그 때문에 자살을 고심하지는 않았다.

최근 물리학은 시간은 없다고 선언했다. 시간이 없다면 변치 않고 보존되는 정보도 없고 단지 물리적 실체들이 변화하는데 관계와 간격이 있을 뿐이다. 사후세계는 논파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철저하게 무의미했고 무가치했고 무도덕했다.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던 간에 생각하려면 변화해야 한다. 변화는 크든 작든 항상성의 파괴이다. 이 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설령 극락 영생한다 한들 끝없는 변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상 삶과 죽음은 사실 같은 말이 아닌가.

수현은 그럴 바엔 영원한 안식 속으로 떠나고 싶었다. 사형 집행 말곤 수현에게 딱히 먹고 살 길이 있지도 않았다. 사형 집행하고 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아내야 하는 삶이 허망했다. 우주로 나갈 자본을 짜내기 위해 부자들은 일하지 않고 돈이 없으면 노숙자로 연명해야 하는 삶 밖에 보장하지 않았다. 물론 일이란 예전과는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아무튼 수현에겐 삶을 참아낼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수현은 권총을 입 안에서 떼어냈다. 탄창을 제거하고, 침이 권총 끝에서 맺혀 나오는 걸 손수건으로 닦아 냈다.

이 세상이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는 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대우주는 온통 쟂빛 유물론으로만 보였지만, 당도할 수 없는 이면의 존재 여부 자체를 알 수 없을 수 있고, 그는 오직 최후 심판에서만 만나 정산할 수 있는 절대자일 수도 있었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실은 이상한 일이고, 상상으로는 뭘 못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상상으로라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수현은 우주 폭력배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인류 연합이 추구하는 세속적 정의로움에 줄을 타고 있는 지금의 삶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을 가꾸고 지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에 의미가 서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20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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