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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미궁

2017.01.17 11:3001.17

첫 글입니다. 현재는 군 복무 중이라 자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전역한 뒤 꾸준히 이곳에 습작을 올릴 생각입니다.


정중한 비평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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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괴물을 죽여라!"라고 나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괴물이 저지르는 수많은 악행에 대해 들어왔다. 괴물은 젊은 부부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서 아기를 훔친다. 남자아이라면 산채로 집어 넣어 국을 끓이고 여자아이라면 날이 잘 든 칼로 베어 산채로 회를 뜬다. 밤길을 혼자 다니는 잚고 아름다운 아녀자를 보면 괴물은 몰래 다가가서 독침 같은 생식기를 박고 사라진다. 새끼 괴물을 밴 여자는 결국 괴물이 자라나서 자신의 자궁을 뚫고 나오기 전에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다. 농작물이 잘 자란 밭에서 괴물은 무나 감자를 훔쳐먹기도 한다. 조용히 채소 몇 개만 서리하는 것이 아니다. 괴물은 적당히 한 입씩 베어먹고 밭을 계속 파헤친다. 이런 식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엉크려놓은 뒤 밭 중앙으로 가서 똥을 지리며 그것을 꼬리로 후려치며 사방에 흩뿌린다. 괴물의 똥 범벅이 된 그 밭은 썩어들어가 도저히 식물을 키울 수 없게 된다. 오직 파리나 쥐, 바퀴벌레와 같은 불결한 생물만이 그곳에서 둥지를 틀 수 있게 된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부모님과 마을 노인들의 증오섞인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괴물은 아기를 잡아먹고 여자를 강간하며 땅을 오염시키는 존재이다. 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괴물은 추상적인 악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

 이상한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직접 괴물에게 당했다는 경험담을 누군가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늙은이부터 애새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괴물을 혐오하고 욕했지만 내가 괴물에게 누가 당했냐를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말을 흐리며 도리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 것을 물어보는 자네는 설마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인가?" 누군가는 나에게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고, 누군가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더듬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가장 친했던 친구의 반응이었다. 내가 물어보자 친구는 가는 눈으로 기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3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끼끼대며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훔치며 웃는 것을 멈추자 친구도 그들이 했던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런 것을 물어보는 자네는 설마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인가?"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친구와 다시는 마음을 터놓을 수 없게 되었다. 뒤틀리고 병든 것 같은 친구의 표정이 나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선택받은 남자가 길을 떠났다. 지금까지 괴물의 악행에 대해 사람들이 떠드는 데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인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장님이 건장한 남자 대여섯 명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로 이 일은 의례적인 일로 변해버렸다. 괴물을 잡기 위한 어떤 실질적인 계획을 짜거나 물품을 준비하는 일은 이제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저 1년에 한 번씩 남자 한 사람을 괴물에게 보낼 뿐이었다. 여태껏 돌아온 사람은 아도 없었지만 지명된 남자들은 두려워하지도, 결과에 항의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자기 차례가 될 것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 점에도 의문을 가졌다. 괴물을 죽이러 가면 죽거나 최소한 마을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 뻔한데 왜 아무도 그런 공포를 내비치지 않는건가? 지목된 남자들의 모습은 공포보다는 오히려 사명감을 표정에 지니고 있었다. 

 이제 마을에는 남자들이 10명 정도밖에 없다. 조만간 괴물을 죽이러 남자가 떠나는 날이 다가온다. 나를 포함한 이 10명 중의 한 명이 괴물을 향해 떠나갈 것이다. 

 제비뽑기는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이장님과 4명의 남자들이 둘러 앉아있었다. 정호, 태원이, 내 외삼촌인 주필, 그리고 최순옥 할아버지.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5명도 조만간 올 것이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성인이 된 이후로 몇 번 제비뽑기에 참여해보았지만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장님은 종이 상자에 손을 집어넣고 지비를 휘휘 젓더니 제비를 뽑았다. 

 "뭐라고 적혀있는가. 자……최, 영, 철. 최영철이, 일어나 보거라."

 나는 일어서서 이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는 뽑혔어야 했으니까. 10%의 확률로 내가 뽑히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다.

 "이렇게 최영철이가 괴물을 죽이게 되었으니까 축하해줍시다."

 남자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것은 축하라기 보다는 일종의 관습이었다. 축하라고 보기에 다들 얼굴이 너무 무표정했다. 기분이 어색해져 그것을 감추기 위해 나도 나를 위한 박수를 쳤다.

 될 수 있으면 일찍 출발하는게 좋을 것 같아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났다. 주위는 아직도 깜깜했다. 이불을 개고 떠날 준비를 했다. 모두를 위해서 떠나는 것이지만 아무도 여비를 챙겨주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이건 예전부터 그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마을 사람들을 매정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식량을 챙겨야 했다. 쟁여놨던 라면을 1상자 꺼냈다. 강물을 따라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버너만 있으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탄가서 몇통, 버너, 쇠젓가락 한 짝, 침구, 손전등, 라이터, 식기, 텐트, 옷 여러벌, 혹시 몰라서 생수와 에너지 바도 몇개 챙겼다. 다음으로 나는 무기를 준배했다. 부엌에서 식칼을 세 자루, 괭이와 낫, 벌초기와 장도리, 도끼를 챙겼다. 

 물건을 모두 확인해보니 꽤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경운기가 있는 마을의 몇 안되는 집이었기 때문에 싣고 가면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내가 경운기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누가 가져갔을 것이다. 

 밖을 나가자 개가 잠에서 깨어 나를 반겼다. 몇 번 놀아주다 나는 경운기에 올라탔다. 개는 이웃집에 말해 놨으니 굶어 죽을일은 없다.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달달달달하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나는 귀마개를 끼고 차도롤 경운기의 방향을 돌렸다. 도로의 왼편으로는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초원 같은 모양새는 아니다. 오히려 바둑판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사실 과거에 논밭이었다. 아무도 이곳을 일구지 않자 차츰차츰 잡초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불어난 것이다. 나름대로 기름진 땅이었지만 일굴만한 인력도, 저 곳을 일궈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인구는 번성했던 과거처럼 많지 않았다. 

 나는 비어있는 도로에 경운기를 달리며 여러가지에 대해 생가했다. 괴물은 어떻게 생겼는가? 지도에 표시된 대로 강을 따라가면 괴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인가? 마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괴물을 싫어하는 것인가? 괴물이 저질러왔다는 수많은 악행들이 사실이라면 납득할 만하지만 피해에 대한 소문은 많지만 왜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인가? 괴물은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괴물을 죽이러 갔던 남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모든 것이 나에게 불투명했다. 경운기를 타는 시간 내내 수많은 가설과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가설과 의문점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가져왔던 나의 오랜 친구와도 같은 것이어서 거기서 새로운 시각이나 해결점을 끌어내기도 어려웠다.

  해가 중천에 뜰 즈음 멀리서 버려진 주유소가 보였다. 경운기를 멈추고 기름을 넣었다. 좀 쉬었다 가자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화장실이 보여서 나는 안으로 들어가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물이 나오고 색깔도 맑아서 나는 그릇에 물을 받고 버너를 켰다. 물을 끓이는 동안 나는 사물실에 들어가보았다. 내부는 온통 회색 투성이였다. 먼지들이 가득했다. 안에는 소파 한 점과 책상, 컴퓨터가 있을 뿐이었다. 책상 아래에 딱정벌레 하나가 배를 뒤집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6개의 다리를 각기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며 몸을 뒤집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가져와 그것의 배를 꾸욱 눌러보았다. 딱정벌레의 다리가 조금 더 빨라졌다. 저런 식으로 계속해서 몸을 버둥거리다 마치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서서히 행동이 느려지다 결국 멈출 것이다. 운 좋게 몸을 뒤집는데 성공해도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곳에 먹을 것이라곤 없으니까. 나는 딱정벌레를 살짝 걷어차 몸을 뒤집게 해준 다음 밖으로 나왔다.



 미궁이 입을 벌리고 있다. 지도를 펴보았다. 강을 계속 따라가다 서쪽 산의 계곡이 보이면 우회해서 골짜기를 하나 넘은 뒤 계속해서 가다보면 괴물의 둥지가 나온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미궁에 괴물이 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이상한 직감이 떠올라 이 곳에 괴물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괴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 괴물을 죽이러 떠난 남자들은 이 미궁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일까? 괴물이 존재한다면 그럴 확률이 크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어떤 위험한 요소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맹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곳에 오는 것은 그저 조금 오래 걸리는 마실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경운기에서 내려 낫과 식칼, 도끼를 허리에 차고 괭이와 손전등을 들었다. 오후 6시 정도 되는 시각이어서 일단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날이 밝아지면 들어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우리 마을이 증오하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이 왜 증오받는지, 정말 사악한 생물이긴 한지,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모든게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적부터 품어왔던 그 의문을 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섞여 어떤 매혹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미궁은 천장이 뚫려있었지만 회색 벽돌로 되어 있어 매우 어두웠다. 손전등을 켤 수밖에 없었다. 온 사방이 회색으로 뒤덮여 있어 우중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쪽 벽을 손으로 쓸고 가면서 모든 곳을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오래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가 지면서 미궁은 점차 어두워져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손전등을 켤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쪽을 존재를 들키기 쉽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주위 분간을 하기 위해 손전등을 켤까? 상황 파악이 늦어져도 안전을 위해서 손전등을 끌까? 나는 결국 시야를 포기한 채 촉각에 의존하기로 했다. 만약 괴물이 후각에 민감해서 내가 다가오는 걸 냄새로 알 수 있었다면 차라리 손전등을 켜서 주변을 파악하는게 더 나은 일이었겠지만 빛으로 온 미궁에 내 위치를 알리는 것보단 끄는 게 낫다고 생각되었다. 모퉁이를 돌았는데 그 앞에 매복하고 있던 괴물이 내 목을 물어 뜯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벽과 바닥은 모두 벽돌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에 장애물도 없는 것 같아 부딫히거나 넘어질 일은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앞을 내딛었기 때문에 걷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쳐갔다. 마치 미궁이 나를 삼키고 위액으로 점차 나를 소화시키는 것 같았다. 힘이 점차 빠지고 있었다. 주위에서 어떤 것이 나를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나를 힘들게 했다.

 지도를 보고 싶었다. 내가 제대로 오긴 한 걸까? 미궁에 들어가기 전에는 괴물이 그곳에서 웅크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지도의 표시도 미궁의 위치와 일치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어지러운 장소에 생물이 살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산다고 해도 우리 마을에 온갖 죄악을 꾸미고 다니는 그런 괴물은 아닐 것 같았다. 이곳에 뭐가 살긴 한다면 그것은 아마 거미나 파리지옥, 개미귀신에 더 가까울 것이다. 미궁 속에 멍청한 호기심에 한 여행자가 들어선다. 길을 잃고 만 여행자는 미궁 속을 유령처럼 떠돌다 죽고만다. 그의 죽음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교활한 괴물은 시체에 독니를 박고 피와 정기를 빨아 먹는다. 이런 곳에 괴물이 산다면 그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여러 모퉁이를 돌았다. 끝없는 구부러짐의 연속이었다. 구부러짐을 겪으면 겪을수록 나는 내 마음 속의 불안함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내 의식 뿐이라는 생각이 걸을 때마다 문득문득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어둠 속에 숨어있는 저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갔다. 그런 모순적인 정신 상태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손전등을 켜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이성은 여기서 손전등을 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런 경고는 더의상 무의미했다. 나는 식칼을 손에 쥐고 조심스레 손전등의 버튼을 눌렀다.

 빛이 내 앞을 밝히고 나는 그 앞에 어떤 형체가 있는 것 같아 놀라서 식칼을 떨어트렸다. 챙크랑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미궁을 울렸다. 등 뒤가 서늘햇다. 나는 즉시 손전등을 끄고 벽에 붙어섰다. 얼마되지 않는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나를 스쳤지나갔다. 이대로 도망칠까? 도망치는 것은 효과적인 전술이다. 적어도 맞서 싸우는 것에 비해서는 생존확률이 높을 것이다. 아마도 미궁의 지리에 익숙할 괴물에게서 얼마나 도망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몇 분은 더 연명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괴물이 확실하게 나를 먹잇감으로 인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맞서 싸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아도 최소한 그런 시늉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몇 초 동안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모고갔지만 아무것도 습격해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런 소동 속에서 아무 것도 습격해오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본 형상이 헛것이었다는 말이었다. 기껏해야 미궁 속에 있었던 석상 같은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손전등을 켰다. 내 앞에 괴물도 없는 것 같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아까의 소동으로 괴물이 나의 존재를 눈치챘을테니 지금 손전등을 다시 켜도 무슨 해가 있겠냐는 심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둠은 슬슬 견딜 수 없었다. 이 마음이 내가 여태까지 하고 있었던 비합리적인 계산의 근원이 되 주었다. 그런데 막상 빛을 밝히고 나니 내가 마주쳤던 풍경은 생각보다 기이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서있는 곳이 좁은 통로라 생각했다. 햇빛이 어느 정도 미궁을 밝혀 시야가 확보될 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런 곳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꽤나 넓은 방이었다. 아까 식칼을 떨어트릴 때 소리가 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이 넓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빛을 중앙에 옮기자 정말로 무언가가 있었다. 아까 내가 잘못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돌로 만들어진 침대 같았다. 높이는 나의 허리 정도였고 길이는 성인 남성의 키 정도에 너비는 어깨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나는 그것이 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모습과는 달랐지만 괴물이 아니라고 보기에 그 생물은 너무도 추악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늙은 남성과 생김새가 매우 유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벌거벗고 있었으며 자세히 살피니 눈 두덩이, 손가락, 골반, 성기와 같은 세부적인 곳에서 기이하게 생긴 부분이 있어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전체적으로 빼빼말라 있고 근육이 없어 뼈들이 두드러져 있었다. 기이한 부분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그것은 얼굴에 눈두덩이와 콧날이 완전히 평평해 뭉그러진 것처럼 생겼다. 목과 손가락은 일반적인 인간에 비하면 조금 더 길어 어쩐지 불안한 느낌을 남겨주었다. 골반은 두껍고 컸으며 성기는 음경의 뿌리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가늘어 마치 힘 없는 물렁한 가지에 열매가 매달려 덜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다른 점은 그것의 뒤에 다는 꼬리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힘이 있어보이지는 않았고 흐늘거리는 살덩이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이런 추하고 힘없어 보이는 생물이 정말로 우리 마을에 해악을 뿌리고 다녔던 것일까? 나는 손전등을 그 생물의 얼굴에 가까이 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눈을 감고 그르렁거리며 숨을 내쉬고 있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죽여야 하나? 죽일 것이면 지금 해치워야 했다. 그것이 약해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그것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진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과 같이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내 신상에 이로웠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생물의 목숨을 거두는 것인가?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죄악을 뿌리는 괴물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창자에 품고 입을 꼼지락거리는 그들. 그러나 그들 중 괴물의 외양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괴물에게 피해를 당한 자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정말 두려워했던 것이 이런 힘없어 보이는 생물일까?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생물이 괴물이라고 확신하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이런 답이 나오지 않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기 싫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대가 터져버렸다. 그 진물은 식은 땀이 되어 내 이마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괴물을 죽여야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괴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마을 사람도. 허리춤에 있는 손도끼를 나는 꺼내들었다. 그리고 괴물의 목을 겨누었다.

 목을 치면서 나는 그 행동과 장작패기와의 유사성을 문득 느꼈다. 말하자면 나는 순간적으로 살과 도끼날이 맞닿을 때 기이한 손맛을 느꼈던 것이다.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목의 아래와 위에서 끈끈한 피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목이 번쩍 하고 눈을 떴다. 나는 괴물의 일그러진 표적을 보고 움찔 하며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기다려도 어떤 움직임도 없자 나는 그것이 이미 죽었으며 최후에 지은 표정은 놀라움 이외의 어떤 것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나에게 깊은 소름끼침과 상당히 유사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표정의 상相이 나의 머릿 속에 하나의 표적으로 남아 평생동안 나의 행동에 어떤 무의식적인 반향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원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부릅 뜬 눈빛의 마기魔氣와 굳게 다문 입술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에서 사악의 한 단편을 보았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확신에 대한 연약한 믿음이 나에게서 회의, 죄책감, 불안함, 공포, 두려움. 가학적 쾌감을 아주 조금 멀리하게 해주었다.

 솟아나는 피가 점차 먿고, 검게 엉겨지자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미완결감이 느껴졌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괴물의 목 때문이었을까? 나는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괴물의 목을 잡아들자 축축하며 차가웠다. 마치 개구리의 피부와 같았다. 가죽 주머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이제 나는 마을에 외칠 수 있다. 더 이상 괴물은 없다고. 여기에 그 증거가 있다고. 

 여전히 주위는 깜깜했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 했지만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아까와 같이 손으로 벽을 쓸어나가며 출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목을 들고 자리를 덧다. 내 뒤에는 피를 왈칵 쏟고 굳어버린 주인없는 육체가 남았다.

 수많은 구석을 돌고 통로를 지났다. 그러나 나는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미궁을 훑어나갓다. 서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어떤지 무엇을 남겨둔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음은 계속해서 커져서 마치 주위에 무엇인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내 머리 속에서 피어났다. 그것은 괴물이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비합리적이었지만 그 생각은 내 머리 속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 잘린 목에서 피가 솟아 나오며 나를 찾기 위해 이 거대한 미궁을 뒤뚱뒤뚱  걸어다니는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어딘가 되살아나 어둠 속에서 시체처럼 미궁을 헤매는 나를 지켜보며 교활한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내가 겪어온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내 앞의 어둠이 갑자기 수조의 청중이 되어 나를 향해 조롱의 몸짓을 해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가 없어 주머니에서 목을 꺼냈다. 그것을 벽에 세게 던졌다. 그러나 손이 미끄러져 목은 내 앞 얼마 안되는 거리에 툭하고 떨어졌다. 이 것은 나에게 괴물에 대한 이 모든 여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짜내 손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휘저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끝>

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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