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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의 세번째 손

2015.06.18 04:5506.18

안녕하세요, 오랫만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종종 거울에 찾아오던 화룡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의 세번째 손

0.

 노스 아메리칸 바스켓볼 챔피언쉽 (NABC), 결승전.

그날 경기장은 지나칠 정도로 과열되어 있었다. 전통의 강호 LA와 약체팀 사스카툰. LA도 LA지만 기적같은 승리를 일구며 결승까지 진출한 사스카툰의 팬들은 반쯤 광란 상태였다.

 함성 속에서 땀에 젖은 선수들의 몸이 부딪친다. 드리블, 페인트 모션, 그러나 필사적인 수비가 가로막는다. 어쩔 수 없이 패스를 뒤로 돌린다. 억지로 뚫을 것도 없다. 리드하고 있는 것은 LA니까. 흥분한 사스카툰의 팬들이 일제히 야유하지만 전광판은 멈추지 않는다. 남은 시간 9초. 스코어는 84대 83. 많지 않지만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LA는 공을 뒤로 돌리려 했다. 사스카툰의 3번이 번개같이 치고 나가 그 공을 뺐는다. 관중들은 더 이상 앉아있지 못했다. 함성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혈관을 내달리는 아드레날린이 지친 몸을 재촉한다. LA는 당황했다. 남은시간 6초. 급히 수비태세를 취한다. 사스카툰의 3번은 이를 악물고 3점슛을 던졌다. 텅, 링에 맞은 공이 튀어나온다. 관객들의 실망. 남은 시간 4초. 사스카툰의 10번이 뛰어든다. 다시 환호. 사람들이 숨을 멈춘다.

 우진 에이드거. 데뷔때부터 뉴스를 몰고 다녔지만, 곧 실력으로 기사 내용을 바꾼 남자. 최하위 사스카툰을 결승으로 끌어올린 영웅, 매 경기 평균 45점을 몰아 넣고, 오늘 경기에서는 이미 홀로 52점을 기록.

 공중에 뜬 공을 잡고 던져넣으려 한다. LA의 장신 센터가 뛰어들어와 막는다. 블록킹, 공이 손 뒤로 흐른다. 남은 시간 2초.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사스카툰 팬들의 깊은 탄식. 기적은 없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왼손도 아니다. 오른손도 아니다. 그의 세 번째 손이 공을 잡아챈다. 오른쪽 어깨 뒤에 매달려, 경기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손이다. 머리 위로 가볍게 당겨 가만히 공중으로 밀쳐낸다. 손목의 스냅을 따라 손가락 위를 흐른 공이 허공으로 난다. 철썩. 공은 깨끗하게 그물을 빠져나왔다. 전광판의 숫자가 바뀐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은. 


1.

어디건 상관 없었다. 사스카툰 시내의 주점 어디나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진’ ‘NABC’ ‘슛’ ‘세번째’ 라는 단어부터 들을 수 있다. 닷새가 지났는데도 화제는 도통 식을 줄을 몰랐다. 필자는 일부러 중심가를 피해 주택가 근처의 주점을 찾아갔지만, 거기도 NABC 결승전이 단연 제일 큰 화두였다.

“글쎄요. 실수는 실수죠.”

사스카툰 사스쿼치의 유니폼을 입고 맥주를 마시던 토니 슈미트 씨 (31, 자영업)는 한숨부터 쉬었다.

“반사적이었을 거에요. 급했으니까. 정말 급하니까 발이 나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가끔 보면.”
“그게 왜 반칙이냐?”

바로 옆에 앉아있던 친구분 – 이 남성은 사스카툰 사스쿼치의 팀 엠블렘이 새겨진 후디, 바지, 모자까지 입고 있었다- 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듯 했다.

“농구 규칙에 쓰여 있지도 않은 게 왜 반칙이야? 내가 농구만 20년을 봤는데 그런 규칙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그럼 시카고의 도노반은? 어? 걔는 손가락이 여섯개인데 왜 아무도 뭐라고 안해? 어?”

사실 사스카툰 사스쿼치 팬클럽의 반응은 대체로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스카툰은 농구 팬이 별로 없는 동네였다. 팀은 만년 하위에 이렇다 할 스타 선수도 없었고 다른 팀의 승점 제물이 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사스카툰이나 그 주변 지역이 보통 그렇듯이 아이스하키가 워낙 강세여서 농구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사스카툰이 마침내 플레이오프를 뚫고 7연전으로 펼쳐지는 결승전에 진출하자, 몇 안되는 농구 팬들은 광란에 빠졌다. 작은 도시가 흔히 그렇듯이 시 전체가 농구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곧 너나할 것 없이 사스카툰 사스쿼치 저지를 사 입었다. NABC 결승 시리즈 동안 시내 중심가 14번지에 늘어선 주점들은 10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고 하니 더 무엇을 말할까.

그런 만큼, 결승전 마지막의 버저비터가 무효골이라는 것은 정말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규칙이 왜 없어? 바로 그 우진이 중학교, 고등학교 리그에서 뛸 때만 해도 버젓이 명시된 조항이었어.”
“그건 중고등학교 이야기고 대학농구, NABC에는 그런 규칙이 없다니까!”
“쓰여 있진 않지만 당연한거 아닌가? 공을 발로 차서는 안되는 거랑 마찬가지지!”
“그건 쓰여 있거든? 그리고 도노반 이야기는 왜 대답 안해?”

 사실 필자도 궁금해서 100여 페이지에 이르는 NABC 규칙집을 읽어 보았지만 ‘세 번째 손’을 써서는 안 된다는 항목은 없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즉, NABC가 우진의 마지막 슛을 점수로 인정하지 않을 마땅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손등이나 머리, 발 등 손 안쪽이 아닌 부위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면 무효가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우진이 사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손이었다. 단지 남들보다 팔이 하나 더 많았고, 그걸 써서 공을 던졌을 뿐.

 그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대회 규정에는 딱히 그와 관련된 규정이 없었다. 다만 그의 고등학교 농구부 담당 선생이 ‘공정한 경쟁을 위해 두 개의 손을 써야만 부원으로 받아준다’는 개인적인 각서를 쓰게 했었다. 말하자면, 세 번째 손을 쓰면 더 이상 농구부 부원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선수자격을 잃게 되었기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경영학도로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 그에게 농구는 취미였다. 그러나 시카고 대학 농구팀의 포인트 가드를 맡고 있던 제이슨 폴락을 길거리 1:1로 이겨버리고, 결국 프로 농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 우여곡절은 필자가 따로 이야기할 것이 많지만 자세한 것은 나중을 기약하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에서 그의 세 번째 팔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팔로만 농구를 하는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대학 농구협회는 물론이고 그가 NABC에서 계약을 할 때에도 그의 세 번째 팔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시즌 초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좋았겠죠. 확실하게 공론화를 했거나… 처음부터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말이죠.”

 슈미트 씨는 씁쓸한 얼굴로 맥주를 들이키고, 필자의 몫까지 계산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정말 공론화가 되었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까?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진이 사스카툰과 계약할 때 공개적으로 반대를 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김윤응 변호사다.

 우진 에이드거 선수가 사스카툰과 계약할 때, 한국 언론에서도 제법 기사화가 많이 되었다. 우진 선수는 비지구인 특별여권도 가지고 있지만, 어머니인 고 최은영씨의 대한민국 국적도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 상태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병역의무 회피를 위해 내년 쯤에 한국 국적을 포기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남아 있다.

 해외에서는 다들 첫 외계인-지구인 혼혈 프로 스포츠 선수의 등장을 기사화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인의 NABC 진출을 기사화하느라 바빴다. 모 신문사는 ‘성공의 비결은 한국인 어머니의 억척스러움’ 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우진 선수를 출산하던 도중 사망한 고 최은영씨가 그의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지 의문이며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전부 미국에서 가졌던 우진 선수가 한국인이라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익숙한 촌극이 연일 지면을 장식할 때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며 일갈성을 내지른 이가 있었으니, 그게 김윤응 변호사였다. 그는 자신의 SNS 계정에 우진 선수의 NABC 진출 기사를 링크하고는 다음과 같은 단상을 남기며 포문을 열었다.

 “//링크//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지만 개와 학문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의 SNS가 어떤 상황이 되었는지는 굳이 이야기할 것도 없다. 당시 필자도 그의 경솔한 표현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고 각종 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외교부의 주정환 장관이 김 변호사를 대신해 주미 청람성 대사에게 사과부터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NABC 데뷔 이후로 폭발적인 득점 기록을 이어가며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우진 선수 때문에 이 일은 작은 해프닝 정도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결승전의 그 사건 이후, 쏟아지는 조롱과 비판을 묵묵히 감내하던 그가 다시금 포문을 열고 나섰다.

 그는 MBC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 ‘맞짱’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반대편 패널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어도 그는 꿋꿋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려 애썼다. 이외에도 여기저기 인터뷰에 응해 자기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 중 가장 그의 이야기가 잘 실려있는 인터뷰는 월간 한국스포츠에 실린 인터뷰다.

 의례 이런 인터뷰에 쓰이는, 김윤응 변호사가 전화로 카페가 아니라 곱창집에서 만나자고 했다는 둥, 기자보다 10분 일찍 나와 기다렸다는 둥의 지면때우기를 다 빼고 본론만 발췌해 보자.

 Q. 지난주 ‘맞짱’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본지에 연락하셨다고.
 A. 그렇다. 방송에서는 시간 제약상 못 한 말이 많다.

 Q. 기분나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맞짱’에서는 상대 패널들, 특히 김성수 비지구인 인권위원장에게 논파당하지 않았나. 그때의 주장을 보완하였는지?
 A. 다들 그런다, 내가 졌다고 (웃음).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방송 특성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발언권이 상대와 동등하게 보장된 상황만 겪어봤다. 방송은 다르더라. 다른 패널 다섯명이 전부 다 나를 공격하니 반론만 하다가 내 주장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고, 영양가는 별로 없는 토론이었다. 방송에는 불만이 없다. 상업방송이니까, 재미를 추구할 수밖에.

 Q. 최우진, 우진 에이드거 (이하 우진) 선수의 NABC 진출에 반대하는 입장은 변화가 없는건가?
 A.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나아가, 모든 외계인의 프로 스포츠 참가 자체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는 게임이고, 게임은 룰에 지배당한다. 정해진 법칙에 따라 공평한 상태에서 경쟁해야만 그 스포츠가 성립한다. 그런데 최우진 선수나 외계인이 스포츠에 참가하면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되지 못한다.

 Q. 어떤 점에서 공평하지 못한가?
 A. 신체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프로 스포츠에 뛰어든 외계인이 별로 없지만, 예를 들어 알-다하란인들만 봐도 그렇다. 평균 신장이 4 m, 팔과 부속지의 길이는 6 m 에 부속지가 12개다. 농구가 성립하겠나? 정해진 모양이 없는 슌바족이 농구를 하면 어떻게 되겠나?
 
 Q. 우진 선수는 신장이 178 cm 로 농구선수치고는 매우 작은 편이다.
 A. 그의 외양이 사람을 매우 닮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반은 지구인이니까. 하지만 유전적으론 완전히 다르다. 청람성 삼목족은 눈이 세개, 팔이 네개로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와 같다. (이 부분은 그의 실수로 아마 머리 셋, 팔이 여섯인 삼두육비의 존재를 말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이 그의 세 번째 팔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삼목족이 아수라와 비견될 정도로 전투적인 전사종족이라는 점이다. 신장이나 팔 다리, 눈의 숫자같은 당장 눈에 보이는 외양보다도 이들의 운동능력이 지구인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진 선수의 엄청난 활동량,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반사신경, 평균신장 193cm의 NABC 선수들에게 꿀리지 않는 점프력 등을 보라. 그의 부계혈통이 주는 신체적 이점이다. 지구인 선수들에게는 너무 불리한 일이다.

 Q. 그렇다면 무효골 논란은 역시 무효골이 맞다는 것인가.
 A. 무효골 논란은 논할 가치도 없다. 그건 당연히 무효다. 그에 더불어 우진 선수의 선수 자격을 박탈하고 앞으로는 외계인, 혹은 외계인 혼혈의 지구 스포츠 진출을 막아야 한다.

 Q. 지난주 ‘맞짱’에서도 그랬지만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의견이 강한데.
 A.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결단코 말하건데 나는 외계인을 환영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의 새로운 친구다. 다만 지구인의 스포츠는 지구인이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 규칙이 만들어 질 때 외계인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런 스포츠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모터스포츠를 보면 알 수 있다. F-1 경기에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무조건 빠른 차와 비싼 엔진을 쓰는게 아니라, 각 선수들과 팀이 공평하게 겨룰 수 있도록 많은 규제를 가하지 않나. 그것도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

 이 인터뷰가 게재된 후 많은 반박 성명이 쇄도했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전 대한유도연맹 회장이며 현재는 한국 스포츠선수 인권신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은탁 회장의 기고문이다. 아직도 불합리한 관행과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스포츠 선수들의 현실에 대한 일장연설은 생략하고, 핵심만 짚는다면 그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김윤응 변호사의 대전제에는 동의한다는 입장. 즉 외계인의 지구 스포츠 참여에 대해서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김윤응 변호사와 서은탁 회장이 어느 시사프로에서 스포츠인들의 군기잡기 문화에 대해 격렬한 토의를 하다 거의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부분적인 동의조차도 놀랍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현재 우진 선수에 대한 처우가 부당하다고 적고 있다.

 ‘스포츠 선수는 정해진 룰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즉 룰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선수를 강제할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NABC 규칙에 세 번째 손이나 선수의 혈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으므로 우진 선수의 NABC 활동이나 그의 세 번째 손을 이용한 골에 대한 무효 등은 있을 수 없다. 다음 시즌에 그에 관련한 규칙을 만들더라도 지난 시즌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서은탁 회장의 발언에 대한 반박도 존재한다. 비신사적 행위에 대한 규제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진이 세 번째 손을 사용해 공을 만진 행위는 이러한 비신사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눈을 찌르거나, 낭심을 차거나,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하는 등등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반칙으로 여겨지는 행위들을 뭉뚱그려 표현한 이 규칙을 적용시킨다면 간단한 일이다.

 현재 NABC에서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 했다. 과연 그 골은 무효가 맞는가, 무효라면 어떤 규칙을 적용하여 무효라 할 것인가. 다음 시즌에 새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가. 우진 선수의 처분은 어떻게 하는가 등등.

 “NABC 측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죠. 그들은 잘못된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미국 운동생리학의 권위자 제프리 휘테이커 교수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와 같이 밝힌 바가 있다.

 “뛰어난 선수는 타고난 재능에 크게 좌우됩니다. 노력이요?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거기 노력하지 않는 선수는 없어요. 아니, 대학 농구 레벨만 되어도 이미 수십만명의 노력하는 선수중 최고로 재능 있는 선수들만 뽑혀 나온 거죠. NABC 선수라면 이미 그들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완전히 다른 운동능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 중 더 특출난 선수가 더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거죠.”

 그는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농구선수는 장신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토마스 웰링턴 선수는 특출나죠. 2m 24cm의 장신에 (보통 장신 선수가 느리다는 평을 받는 것에 비하면) 발도 빠릅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해 반칙이라고 하는 사람 있습니까? NABC 평균신장에 비해 거의 30cm 나 더 큰데 말이죠. 종목은 다르지만 웨인 그렛츠키 선수를 생각해보죠. 그는 아이스하키의 전설입니다. 신장, 체중, 힘, 속도 등 신체적 조건은 다른 하키선수들의 평균치를 밑돌았죠.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그의 reflex arc (반사궁)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시간으로 따지면 10~20 밀리초 정도요. 그의 천재적인 하키 센스는 물론 끝없는 노력과 연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남들보다 한 박자 앞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신경계통의 영향도 있습니다. 이건 분명 보통 사람과는 다른 유전적 요소지요.”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결국 뛰어난 운동 선수란 건 남들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에요. 그게 약물이나 수술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얻은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유전적 요소라면 금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우진 에이드거 선수가 외계인 혈통이라서 농구선수가 되면 안된다는 건, 제가 볼 때 아주 오래 전 흑인은 선수가 될 수 없었던 어느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프로농구선수가 온통 삼목족 혼혈, 혹은 외계인 천지가 되면 어떨까 하는 질문도 던졌다. 휘테이커 교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그래서 더 수준 높은 농구 경기를 볼수 있게 된다면 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는 편지 말미에 약간의 첨언을 달아놓기도 했다. 필자가 소개할 다음 인터뷰 대상자이기도 한 파올로 파렌티 박사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물론 세 번째 손 같은 건 좀 예외적인 문제군요. 예를 들어 발은 대부분의 농구선수가 갖고 있지만 발로 공을 차면 안되죠. 저는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뤘지만 우진 선수에 한해서는 제 친구가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겁니다.”

 그리하여 필자는 피츠버그에 위치한 펜실베니아 주립 스포츠과학 연구센터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미 전화 통화로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들을 얻었고, 확인을 위해 그의 연구소를 직접 방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

 파올로 파렌티 박사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 스포츠과학 연구센터의 선임연구원이지만 본래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밀란 출신이었고, AC 밀란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기에 농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지구 최초의 외계인 혼혈 선수의 프로 스포츠 입단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정말 엄청난 소동이었죠.”

 우진 에이드거 선수가 사스카툰 사스쿼치에 입단할 때, 펜실베니아 주립 스포츠과학 연구센터는 NABC 사무국과 사스카툰 사스쿼치 팀에 특별히 부탁해 우진 선수의 메디컬 테스트를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다. 그냥 부탁만 한 게 아니라 거의 무릎꿇고 호소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우진의 입단을 탐탁치않게 여기던 사스카툰의 구단주와 (우진의 입단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감독인 기이 크로아텡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NABC 사무국, 미국 정부, 주미 청람성 대사관에 한국 정부까지 얽힌 난마와 같은 정치적 줄다리기 끝에 우진 선수가 연구센터 앞에 나타난 순간 그들은 큰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외계인 혼혈의 운동능력은 과연 어떨 것인가? 특히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으면서도 여러모로 인간보다 강력한 신체, 정신적 능력을 가진 청람성 삼목족의 혼혈인데.

 “우진 선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린 정말 엄-청나게 실망했죠. 진짜에요.”

 그는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보여줬다. 사실 우진 선수의 메디컬 테스트 기록 자체는 이미 다수의 학술지에 게재되어 공개된 만큼 특기할 만한 부분은 없다.

 “자, 보시다시피 뭐 하나 특별한 부분이 없죠. 오히려 운동 선수 치고는 평균보다 약간 아래에요. 순발력, 근거리 달리기 모두 별 다를 게 없죠. 신장대비 점프력이 좀 좋긴 하지만 그래도 최고 수준은 아닙니다. 동체시력이나 시야각 등도 마찬가지고. 심폐지구력이 좀 뛰어나긴 하지만 우진 선수보다 심폐지구력이 더 뛰어난 NABC 선수는 열 명 쯤 되요. 우진 선수의 운동능력이 지구인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니죠.”

그의 테스트 항목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혈액검사, 근/골밀도 검사, MRI와 CT 자료나 신경계 자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고강도의 심리 테스트까지 거쳤다. 결과는 전부 ‘그다지 특기할 바 없음.’ 적어도 현대 과학에 의하면 그가 타고난 신체능력은 철저하게 인간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후각이나 청각으로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지 않는가도 심사했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그를 NABC 득점왕에 올해의 최우수선수상 후보로 만든 것일까요? 별다른 신체적 우위없이 NABC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위업을 이룩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그를 NABC의 전신인 NBA 시절의 마이클 조던과 동격으로 놓고 있을 정도인데요.”

 필자의 질문에 파렌티 박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센스요.”
 “센스요?”
 “네. 위대한 운동 선수들은 다들 놀라운 센스를 가지고 있지요.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부분입니다. 판타 지스타로 불린 위대한 축구선수들을 떠올려 보세요. 방금 당신이 언급한 마이클 조던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그냥 잘합니다. 연습, 경험, 전략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 영감이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필자의 표정이 석연치 않았는지 그는 말을 이었다.
 
 “내 태도가 과학자같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치는 않아요. 훌륭한 작곡가가 그렇게 뛰어난 작곡을 할 수 있는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과학적으로 분석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화가는요? 창의적인 재능은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우진 선수도 그렇지요. 내가 볼 때 그는 그냥 농구의 신에게 사랑을 받았을 뿐이에요.”
 “그러한 재능이 외계인 혼혈 모두에게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오, 그건 과학적인 연구 대상이 될 만한 주제로군요. 하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우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 집단이 필요하겠군요. 또 외계인 혼혈 별로 나누기도 해야 하고 성별, 나이, 인종 등등 고려할 사항이 많지요. 외계인에 대해서는 처음 시작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 혼혈이 1000명만 있어도 재미있는 논문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한 파렌티 박사는 빙그레 웃음을 덧붙였다. 필자라도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를 수는 없다. 지성을 가진 외계의 존재와 처음으로 접촉한 이후, 현재까지 지구에 거주하는 외계인도 100명이 안 되고, 그 중 지구인과 결혼한 건 단 세명이며, 그들 사이에서 나온 혼혈자녀는 우진/수진 에이드거 남매 두 명 뿐이기 때문에다.

 “자, 그럼 기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독자 제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파렌티 박사의 인터뷰 초반 30분은 이와 같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밝히고 싶었던 새로운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이다.

 “우진 선수가 위대한 건, 그가 단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큰 단점을 안고도 그런 재능을 발휘한다는 점 때문이죠.”
 “단점이요?”
 “좀 더 적절하게 부를 단어가 있을까요? 페널티, 악조건, 장애물, 짐, 부담… 뭐 그렇게 불러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파렌티 박사는 지금껏 누구도 몰랐던 (심지어는 그의 손윗누이인 수진 에이드거마저도)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는 슛동작을 취할 때마다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에 시달려 왔을 겁니다.”

 우진 선수의 CT 스캔 자료와 일반인의 골격 모형 모델을 스크린에 불러온 파렌티 박사는 상당히 전문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필자도 나름 공부를 했지만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그가 각종 전문용어를 남발하자 몇 번이나 되물어가며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니까 요지는, 그가 팔을 이렇게 들면… 예, 늘어트린 상태를 기준으로 160도 이상 들어 올리면 세 번째 팔의 신경계를 누른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수축하는 등 근육이 세 번째 팔 때문에 방해받는 거지요. 삼목족이 모두 그런지 아니면 우진 선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농구나 배구를 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팔을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이 많으니까요.”
 “그건,”

 지금껏 조용히 있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얼마나 아픈 거죠?”

 파렌티 박사는 약간 주저하다가 설명했다.

 “의사들이 통증이 심한 환자들에게 흔히 묻는 말이 있죠. 고통을 1에서 10까지 숫자로 표현한다면 얼마냐고. 보통 분만하는 산모가 느끼는 산고를 8 정도로 잡습니다. 그의 경우는 6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떨어졌다. 여인의 눈물, 그 중에서도 미인의 눈물은 특별하다. 남들보다 눈이 하나 더 있는 여인의 눈물은 어떨까? 필자는 어쩐지 절반쯤 더 황망해진 기분이 되었다.

 “미스 에이드거, 이거라도…”

 파렌티 박사가 손수건을 내밀자 그녀는 감사해하며 그걸 받아 들었다. 물론 눈물을 훔치고 난 후 손수건을 돌려주며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 이름은 수지 초이에요.”

 아버지의 성인 에이드거를 고집하는 우진 선수와는 달리 그녀는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어릴 때는 한국의 호적등본에 등록된 대로 에이드거를 써야 했지만 성인이 되는 즉시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여권상 본명은 수진 최로, 그리고 평소에는 영어권 인사들이 부르기 쉽게 수지 초이로 불렸다.

 파렌티 박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필자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우진 선수가 유명해지며 그녀의 인터뷰를 원하던 기자들이 이름을 잘못 불러 쩔쩔맨 경우가 많았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농구 잡지 덩크의 한 기자는 그녀가 결혼 해서 남편의 성을 따랐나 하고 오해한 적도 있단다. 다행히 파렌티 박사의 작은 실수 덕에 그녀는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린 듯 흐느끼는 것을 멈췄고, 필자는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그의 경기 장면을 찾아봤지만 아파하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거든요. 우진 선수가 평소에도 아프다고 이야기한 적 없었나요?”
 “없었어요. 한번도 그런 적은… 흔한 감기도 한 번 안 걸리고… 아!”
 “뭔가 기억이 나셨나요?”
 “고등학교때… 딱 한번 아프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학교 갔다 오후 늦게 집에 들어온 날인데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저보고 봐달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병원에 가셨나요?”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전 그냥… 그 애가 진짜 아픈지 몰랐어요. 그렇게 아프면 농구나 그만하라고 한 소리 했는데… 그냥 그러고 말았어요. 그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그리고는 단 한번도 아프다고 한 적이 없다는 거군요.”
 “…네.”

 파렌티 박사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드레날린 분비와 정신적인 고양감으로 인해 경기 중에 아픔을 참는 것은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면 가능할 수도 있단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경기 내내 지속적으로 자극된 신경은 최소한 24시간 이상의 둔통을 가져오고 세 번째 팔은 거의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 될 거라며, 그걸 아무 내색 없이 참아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초인적인 의지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저도 농구 규칙을 찾아봤습니다. 고의적인게 아니라면, 신체 어느 부위에 부딪쳐 들어간 공도 (심지어 발에 부딪친 것이라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는군요. 플레이오프의 지옥같은 7연전 일정의 마지막 경기, 그것도 경기 종료 직전이라면 그의 세 번째 손은 거기 달려있기만 했어도 지독한 고통이었을 겁니다. 뻣뻣하게 굳어서 감각도 없었을 거구요.”

 파렌티 박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변을 토했다.

 “만약 그의 세 번째 손이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전 그게 그냥 신체 부속지에 ‘부딪쳐’ 들어간 골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선수로써의 우진 선수는 옹호하면서도 무효골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던 휘테이커 교수와는 달리, 파렌티 박사는 아주 직접적으로 무효골이 아님을 주장했다. 물론 그런다고 NABC의 무효골 결정이 뒤집힐 리는 없지만, 우진 선수나 그의 팬들에게는 나름의 위로가 될 지도 모른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나오려는데, 파렌티 박사는 어려운 얼굴로 조언을 남겼다.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문제의 팔을 제거하는 수술을 권하고 싶군요. 이번 논란과 상관 없이, 앞으로의 선수생활과 일상생활 양쪽을 위해서는 그 팔을 자르는 쪽이 나을 겁니다.”

3. 

 최수진 씨와의 단독 인터뷰는 원래 파렌티 박사와의 인터뷰에 이어 바로 진행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진 선수의 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인터뷰는 이틀 뒤로 미뤄졌다.

 공항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상당히 초췌해진 얼굴이어서 필자도 마음이 아팠다. 이제 그들 남매는 각기 20대 중반, 후반으로 젊은 나이였지만, 그들이 겪어야 할 인생의 굴곡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 누구든 인생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지만,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다른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운 일이 많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최수진 씨는 태어날 때 부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남매의 부친 되는 엠무위어 에이드거씨와 모친 되는 고 최은영 씨의 결혼도 엄청난 이슈였지만, 최수진 양의 탄생은 최초의 지구인-외계인 혼혈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외계인과의 만남과 그들의 다양한 생태 때문에 이미 대혼란 상태였던 생물학계는 기존의 유전학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태에 그만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청람성 삼목족의 대단히 특이한 능력 때문이다. 모든 유기 생명체의 적인 라트람과 유일하게 맨몸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이 강력한 전사 종족은 배우자를 사랑하는 만큼 배우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쌓는다. 지구의 과학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전 우주적으로도 아직 규명되지 않은 그 신비한 능력을 통해 고 최은영씨는 소원하던대로 삼목족과 지구인의 유전정보가 섞인 딸, 즉 최수진 양을 임신하고, 10개월 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게 된다.

 각계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 또래의 주변 아이들과는 다른 생김새 등 여러가지 특수한 환경 때문에 빈말로도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유년기를 보낸 수진 양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유년기는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한 행복은 둘째 우진 에이드거씨를 임신한 고 최은영씨가 난산 끝에 사망하면서 모두 끝장나버리고 말았다. 부친인 엠무위어 에이드거씨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청람성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다섯 살의 나이에 갓 태어난 동생과 단 둘이 남겨진 최수진 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엠무위어 에이드거씨는 그녀의 유년기 내내 아주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건 모두 연기일 뿐이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전혀 없이, 오직 배우자였던 고 최은영씨가 원했기 때문에 다정한 아버지의 배역을 충실히 소화했을 뿐인 것이다. 고 최은영씨가 사망한 즉시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해 그녀가 증오심만을 키워왔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삼목족이고, 삼목족 다운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 물론 어릴 때는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철없는 행동이었죠.”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행태는 삼목족의 문화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력하고 아무런 보육이 필요 없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얻으러 떠나며,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혼자 알아서 자라난다. 그리고 200에 가까운 일생 동안 하나의 배우자만을 사랑하며 그 외에는 일체의 가족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자녀도 그들이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삼목족이 함께 살기 때문에 남는 여분의 영적 에너지와 물질이 결합하여 저절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라 해도 태어나는 순간 남이고, 그들이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녀도 부모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삼목족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성격이다.

 “그런데 다른 인터뷰에서도 밝히신바 있듯이 우진 선수가 성을 에이드거로 쓰는 일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신 걸로 아는데요. 본인의 성도 모친의 성인 최를 고집하시고 계시잖습니까? 유전적 부친인 에이드거 씨에 대한 감정과 어떤 상관이 있지 않을까 하고…”
 “현실적인 이유였을 뿐이에요. 한국에서 살기 위해선 이름이라도 한국식인게 편했을 뿐이니까요. 감정으로 말하자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외가에 대한 감정이 더 안 좋아요.”

 그녀의 외가, 즉 고 최은영씨의 집안은 에이드거 씨와의 결혼을 반대해 절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외가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미움이 과연 갑자기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럼 우진 씨는 왜 굳이 에이드거라는 성을 고집했을까요? 제가 듣기로 한국 여권에는 아직 최우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아는데요.”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미국으로 갈 때 비지구인 특별 여권을 갱신했는데, 그때 갑자기 자기 성을 에이드거로 고치겠다는 거에요. 우진이가 중학생 때였으니까, 이제 사춘기가 오나 싶어 야단을 쳤는데도 부득불 우겨서 할 수 없이 허락했죠.”
 “이유가 뭐였습니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가요?”
 “그 애가 이러더라구요. 자기가 팔을 자르지 않는 것과 같다구요.”

 필자는 몹시 놀랐다. 물론 파렌티 박사가 마지막에 했던 충고에 대해 물어볼 예정이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언급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 미리 말씀드리지 못햇는데, 파올로 파렌티 박사님이 처음은 아니에요. 물론 팔을 들어올리면 아프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보다 더 어릴 때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게 언제였습니까?”
 “제가 12살이었나… 그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이었어요. 학교에 가면 그 팔 때문에 여러가지로 힘들 수 있으니 수술을 하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였어요. 솔직히 전 솔깃했어요. 제가 이미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동생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동생인 우진 선수보다 오히려 더 삼목족의 신체적 특성이 눈에 띈다. 198 cm에 이르는 월등한 키, 색소 옅은 피부, 그리고 이마 가운데 자리잡은 세 번째 눈 (사실 지구인에게나 세 번째 눈이지, 삼목족에게는 첫 번째 눈이다) 까지, 거의 삼목족과 다름 없다. 다만 그녀의 매끄러운 어깨선 아래로 내려오는 팔은 두개 뿐이다. 우진 선수가 세 번째 팔을 제외하면 평범한 지구인의 모습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진 선수가 반대했습니까?”
 “반대랄지… 자기는 그 팔까지 포함해서 자기 자신이라더군요. 정 자르는게 좋겠다면 수술 하는것도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그런 말까지 들은 다음에는… 저도 어렸고요.”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의연했네요. 혹시 그 결정을 후회하십니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한 미소가 걸린 입으로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후회해요. 그 애가 그렇게 아프다는 말을 들은 지금은 더 후회스럽죠. 하지만, 그때 수술 했어도 후회했을 것 같긴 해요.”

 나는 질문을 바꿔보았다. 우진 선수에게 이번에 파렌티 박사가 한 충고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냐는 질문이었다.

 “물론 물어봤어요. 왜 말 안했냐, 그렇게 아팠는데 왜 농구를 계속 했냐, 그렇게….”
 “우진 선수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한참 울더니 그냥 한마디 하더라구요. 미안하다고…”

 그녀는 또다시 감정이 북받치는지 코끝이 빨개져왔다. 손수건을 꺼내 고인 눈물을 닦는 그녀를 보며 필자도 심정이 복잡해졌다. 우진 선수는 그 날의 결승전 이후 어떠한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고 있고,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차라리 그와 직접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덜 아플 텐데, 이렇게 가족을 인터뷰하는게 더 힘들다.

 “NABC 사무국에서 내일 쯤 입장 발표를 한다는데요. 앞으로의 규칙 변화 같은 것은 둘째치고, 우진 선수 개인에 대한 제재가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무난하게는 비신사적 행위에 대한 경고 조치로 가벼운 벌금이나 다음 시즌 첫 경기 출장 금지 정도를 보고 있고, 극단적으로는 선수 자격 정지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발표가 어떻게 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그 결론을 존중할 거에요.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된다고 하면 할 수 없지요.”
 “만약 팔을 잘라야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마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거에요. 늘 그래 왔듯이…”

 4.

 최수진 씨는 인터뷰의 말미에 작은 동영상을 건네주었다. 3분 가량의 짧은, 소위 말하는 홈 비디오로 그녀가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오후, 그녀는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두 잔 만들어 들고 나간다. 한 손에 쟁반을 들고, 한 손에 카메라를 들어 걸음은 느린데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다. 차고 앞에 접이식 농구 골대가 설치되어 있고 이미 땀 범벅이 된 두 소년이 공을 두고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소리는 전혀 녹음되지 않았다.

 그녀가 불렀을 때 돌아본 쪽은 공을 놓쳤지만 실쭉 웃으며 다가온다. 아마 우진 선수의 고등학교 친구로 보였다.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소년과는 달리 우진 선수는 이미 빼앗은 공을 골대에 넣고, 다시 떨어진 공을 가지고 한참 드리블을 연습했다.

 현란하게 왼손과 오른손을 왕복하던 공은 다리 사이로도 빠졌다가 탄력있는 몸짓에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어린 우진 선수는 허공의 공을 잡아채 그대로 내리 꽂는다. 그림같은 알리 웁이지만, 접이식 농구 골대가 버티기에는 무리다.

 황급히 뛰어가느라 화면이 뒤집어지고, 잠시 뒤 넘어진 우진 선수가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러게 와서 이거나 마시지, 하고 핀잔을 하니 그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미안해, 라고 말하는 입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친구와 함께 농구 골대를 일으켜 세웠는데, 백보드가 왠지 옆으로 한참 기울어 있었다. 그가 아래에서 잡고 있는 동안 친구가 올라가 백보드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이거 좀 마시라니까, 하고 내미는 레모네이드를 세 번째 손이 받았다. 
 
 오늘 아침, NABC 사무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진 선수의 처분을 발표했다. 세 번째 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선수 자격을 정지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우진 에이드거 선수는 은퇴를 발표했다. 각 인터넷 커뮤니티나 농구 팬들의 여론을 알아보고, 또 가능하다면 우진 선수의 인터뷰를 하고 싶지만, 아직 영상이 끝나지 않았다.

 영상 속의 그는 세 번째 손에 레모네이드를 들고, 다른 두 손으로는 공을 다뤘다. 공을 뺐으려는 그의 친구가 잔을 쳐 레모네이드가 카메라를 덮쳤다. 울상이 된 수진 씨의 얼굴이 얼룩진 화면에 나왔다가 다시 우진 선수를 비췄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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