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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손수건

2005.10.31 05:0710.31

루이자는 카페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2시간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고 시계를 보거나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튕기는 반복적인 행동을 계속 했다. 긴 시간동안 계속되던 루이자의 행동에 카페 안의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를 나누며 줄곧 그녀를 쳐다봤다. 특히 루이자의 고교동창인 사라는 루이자의 그런 행동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갑작스레 전학온 루이자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고 또 그런 그녀는 도도하고 거만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밖이 보이는 유리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살짝 비추어졌던 그녀의 아찔한 다리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몇몇 젊은 남자들도 있었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열리더니 근방에서 유명한 해리슨이 나타났다. 얼마전에 살인범을 맨손으로 잡아낸 남자로 유명한 해리슨은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근육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루이자와 해리슨이 카페에서 만난다는 일 하나만으로도 작은 마을에서는 이슈가 될 참이었다. 그리고 이미 카페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수근거렸다. 하지만 예민하다고 자부하는 사라는 해리슨에게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루이자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 루이자… 많이 기다린건가? 눈길때문에 늦은걸세. 알다시피 여긴 (지구에다가)산골마을이니 눈이 많이 오는 곳이잖아. 더욱이 이 카페는 골짜기에 있는 곳이니까."
마치 오랜 친구처럼 해리슨은 루이자에게 거리낌없이 말을 꺼내었다.  
"다름이 아니고 부탁했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루이자는 '용건만 말해'의 상황을 아주 제대로 보여주는 듯, 예의 그 무뚝뚝함과 도도함을 발휘하여 눈꼬리를 치켜세운 체 해리슨에게 물었다. 물었다기 보다는 말을 얼버무린게 맞지만, 누가 봐도 명백히 그것은 물음이었고 해리슨을 떠보려는 말투였다.
"부탁했던 일이라… 그일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데이트나 하는게 어때…?"
해리슨의 말 한마디에 차갑게 식어 보이기만 한 루이자의 가슴이 뛰는듯 했다. 데이트라. 그 단어를 자신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꺼낸이가 또 있었던가. 루이자 또한 해리슨을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데이트를 승낙했다. 해리슨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것만 같은 카페 안의 사람들은 루이자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봤고, 루이자와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된 해리슨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본 젊은이들도 있었다. 다시말해, 누구 하나 서로를 의식하는 이 없이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남성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나가서 그 일에 대한 얘기라도 하는게 어때. 그건 궁금할테지."
해리슨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의 물음에 'OK' 의사를 내비칠 생각이었던 루이자는 해리슨의 말이 이어지자, 자신의 자존심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쪽은 '그 일'에 대한 핑계라고 생각하고는 그제서야 대답을 했다.
"좋아요, 그럼 그일에 대해 얘기해 줘요. 난 지금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니까."

-
"어때, 이 조건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조건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의뢰인이 부탁한 시리얼 넘버 930228만 없애준다면야 못할것도 없지. 게다가 인간이라니. 쉬울거야, 녀석을 처리하기에는."
"좋아. 그 조건이라면 구미가 당기는걸…. 시리얼 넘버 930228, 그아이의 목에 삼억이라. 몸값치고는 꽤 높은걸. 아닌가, 아닐지도 모르지. 조금 더 남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라면 말이야. 우리같은 족속과는 다른걸지도 모르지."
말을 마치고 루이자에게 의미모를 웃음을 던지는 해리슨이었다.
"싱겁기는."
눈 뿐인 바깥경관에 대조되는 붉은 옷을 차려입은 루이자는 해리슨에게 웃기다는 듯 눈웃음을 날렸다. 누가 봐도 둘은 잘 어울리는 연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럼… 더이상 의논할것은 없는건지? 그럼 이제 가도 되는걸로 알고 갈게. 뭐, 시간끌어서 좋을것도 없는거니까."
"잠깐. 이렇게 쉽게 계약이 끝나면 되는건가? 마지막 조건 하나를 더 달겠네."
해리슨에 입에서 나온 '마지막조건'에 루이자의 미간이 좁혀지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루이자는 그 아이를 꼭 없애야 자신에게 들어오는 이익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해리슨과 같은 인간전문사냥꾼과 의뢰인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루이자의 직업은 썩 많은 보수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해리슨에게 뭐든지 해주어야만 했다. 해리슨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루이자는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그냥… 단지. 마지막조건은, 루이자. 당신의 입술이야."
해리슨의 입에서 나즈막히 터져나오는 말 한마디는 루이자의 불같은 사랑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해리슨의 눈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해리슨은 순간적으로 루이자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진하고 깊은, 여운이 남는 키스로 루이자는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저 그런 둘을 흐뭇하게, 또는 아쉽게 쳐다보는 카페의 사람들도 모를, 해리슨의 품에 안겨있는 루이자도 모를 해리슨의 변화가 있었다. 이윽고 긴 키스타임이 끝나고 루이자가 말을 꺼냈다.
"해리슨. 벌써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봐요. 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려고했던 손수건이예요."
루이자는 자신의 몸 구석 어딘가에서 곱게 포장된 작은 손수건을 꺼내서 해리슨에게 전달했다. 작은 투명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던 손수건은 루이자의 손에서 해리슨의 손으로 전달되----------- -
'탕!'
루이자, 해리슨. 그들 사이에서 큰 총소리가 났다. 루이자에게 겨누었던 작은 총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에 쓰윽 넣어버린 해리슨을, 초점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는 루이자. 그녀는 총을 맞고 눈밭으로 주저앉아 버린 뒤 자신이 해리슨에게 건네려고 했던 손수건을 손아귀에 꼭 쥐었다. 해리슨은 루이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뒤돌아 서서 재빨리 차를 탔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혼잣말을 중얼대었다.
"자신이 삼억의 몸값을 가진 시리얼 넘버 930228인지도 모르고 의뢰인의 명령을 전달하는 꼴이라니. 멍청한 사람이 아닐 수 없어. 그나저나, 우리와 하도 생활하다 보니까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믿는걸지도 모르겠군. 여튼 인간이란 웃기다니까."


+덧) 졸작이고 졸작입니다. 특히 뒷부분에 갈수록 부족한 글솜씨를 볼 수 있네요. 금년 초에 써놨던 것에 살을 붙여 만들었는데, 그냥 아직 어리다는 소리밖에 할 게 없는 저로써는 대단하신 분들이 많은 Mirror에 글을 올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원래 뼈대가 SF가 아니었기에 살을 붙이면서 뼈대까지 바꾸기엔 저에게는 벅찼나봅니다. 그래도 용기내어 올려봅니다. - 저 몇살이게요♡ (..)
이중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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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5.12.05 07:03 댓글 수정 삭제
    몇 살이실지. 글쎄요. 남녀 사이의 관계나 감정 묘사로 봐서는, 충분히 어려보이시는데. 뒷부분도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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