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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주류

2004.06.08 16:2706.08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착점이다. 혹자는 승부를 가리는 계가가 우선 아니냐지만, 바둑의 승부는 우연히 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이어지는 논리적 귀결일 따름이라, 굳이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리 저리 돌을 움직여 만든 사각형에는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착점도 그저 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옮기듯 해서야 그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미끈거리는 돌을 타악 하고 내려놓는 순간, 반상은 우주가 되고 세상을 버티는 검은 줄은 타고 새로운 진동이 흐른다.

바둑판 중 제일은 비자나무판이다. 비자나무는 유연하고 탄성이 있어 돌을 놓는 순간의 압력에 살짝 눌리는데, 그 맛이 그리도 좋다고들 한다. 착점하는 순간의 진동을 삼켜버리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재주는 몇 해가 가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런 비자나무판 중에서도 특등품은 바로 갈라진 나무로 만든 판이다. 워낙에 신축성이 좋다 보니 갈라진 나무를 잘라 잘 보관해 두면 그 상처가 도로 아물고 가느다란 흔적만 남는데, 이것이 바로 좋은 비자나무판이라는 증거가 되어 값이 몇 배로 뛴다.

어머니가 바로 그 실금 간 비자나무판을 마련한 것은 내가 스물아홉 살 때였다. 빠듯한 살림 어디서 그런 큰 돈이 났는지, 어머니는 신경치료를 받고 돌아온 내 앞에 지금까지 쓰던 납작한 휴대용 합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매끈한 바둑판과 플라스틱 돌에 기름이라도 바른 듯 빛나는 조개알을 내놓았다. 반신불수로 평생을 보내야 할 딸의 처지가 안타까워 마련한 선물이라기에는 턱없이 비싼 물건을 앞에 두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는 바둑판을 식탁(겸 탁자 겸 책상)위에 올리고 약품으로 거칠어진 손을 뻗어 바둑돌을 쥐더니 4의 3, 소목에 타악 소리나게 놓았다. 바둑판이 가볍게 패였다.

"오늘부터는 내가 흑을 쥐마."

나는 어머니와 바둑판, 그리고 우주 한가운데에서 위태롭게 떨리는 검은 돌을 번갈아 바라보다 돌통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조개가 살아있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달려들었다. 타악, 좌상귀 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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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우주를 꿈꿨다.

우주비행사든, 지질학자든, 천문학자든, 환경운동가든 상관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저 밖 어딘가였다.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돈을 모으리라. 몸으로 때울 수 있다면 체력을 키우리라. 권력으로 잡을 수 있다면 높이 오르리라. 지구를 벗어나리라. 우주를 보리라.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의 머리 어느 구석에서 그렇게 강렬한 갈망이 자라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보험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과속 차량에 뒤를 받혀 어이없이 세상을 뜨자, 생물학을 전공했던 어머니는 어느 대기업에 딸린 유전공학 연구실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초파리가 담긴 유리관에 화학약품을 넣거나, 방사선을 쪼이거나, 유전자 변형된 음식물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날개 없는 초파리, 눈이 뒤틀린 초파리, 다리가 네 개 뿐인 초파리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어머니가 알 바 아니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작은 생명이 발버둥치는 유리관을 지켜보고 돌아온 밤이면 우리는 십 년은 족히 된 것 같은 접는 바둑판 앞에 마주앉았다. 어머니의 눈 밑에 피곤이 겹겹이 쌓였거나 내가 시험을 앞둔 날에도 판은 어김없이 펼쳐졌다.

- 반상이 곧 우주다.

과학잡지의 화사한 화보, 학교에서 빌려온 과학소설, 달 유인기지 건설 계획 수립 과정을 담은 디비디를 보고 싶어 투덜거리던 내게 어머니는 말했다.

- 집중하지 않으면 바둑이나 인생이나 수가 나지 않는 법이다. 교만하면 길을 잃는다. 반상이 곧 우주다.

어머니는 달에 유인 기지가 생기든 화성에 유인 탐사선이 가든 소국(小國)의 어린아이가 꿈꿀 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한창 꿈을 키울 나이인 어린 딸에게 할 법도 한 너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으리라는 공치사도 한 번 꺼낸 적 없었다. 내가 좁은 방의 벽 가득히 성단과 항성계의 사진을 붙여 넣을 때에도, 주말 밤 늦게까지 잘 들리지 않는 유럽우주국(ESA) 마이클 매케이의 인터뷰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사전을 뒤적일 때에도, 과학영재센터 지원서에 딸린 보호자 동의서를 내밀었을 때에도, 그 시험에 떨어져 퉁퉁 부은 눈으로 침대 머리맡에 붙은 대형 화성 포스터를 찢어발길 때에도 어머니는 나무라지 않았다.

- 우주류라 하여 귀를 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지킬 것을 지키지 않으면 허공에서 죽는다.

내가 열일곱 되던 해, ESA와 NASA는 손을 잡고 달 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장기 거주가 가능한 시설에 필요한 비용이 없어 지지부진하던 계획이 거주는 뒤로 미루고 광물을 채취하여 값싸게 운반할 시설부터 짓는 쪽으로 수정되자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따로 유인 우주선을 만든다던 중국은 터와 인력을 제공하고 이윤을 나눠받기로 마음을 돌렸다. 이십 년 계획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로고를 커다랗게 새긴 우주선이 연이어 출발했다.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광산의 위치를 결정할 첫 번째 팀은 남자 스무 명, 여자 열일곱 명이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인 열, 유럽인 열둘, 중국인과 일본인 열넷, 인도인 한 명. 또 달리 말하면 흑인이 여덟, 황인이 열다섯, 백인이 열네명. 그리고 그 중 절반이 학사 수준 이상의 광물학 전공자였다.

나는 첫 번째 팀의 우주선 세 대가 발사되는 모습을 질릴 만큼 되풀이해 보았다. 기말고사가 끝날 때쯤 모두 무사히 달에 도착하여 연구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황량한 우주와 그 가운데 뜬 지구를 뒤로 하고 찍은 기념사진이며 얄팍한 기획방송부터 네이쳐 지에 실린 월인들의 소소한 생물학 연구 결과까지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찾아 읽었다. 혼자 공부한 프랑스어와 영어, 중국어는 일상 대화를 하기에는 부족했으나 논문을 읽고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하면 족했다.

스무 살. 나는 천문학과가 유명한 대학에 들어갔다. 광물학을 부전공, 생물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했다. 누가 보아도 무리인 시간표였지만 먹고 살고 공부만 하기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은 배경처럼 흘러 지나갔다. 어머니와의 바둑은 한 달에 두 번,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말로 줄었다. 나는 때 묻은 바둑판의 녹슨 경첩을 펼치며 다른 사람들도 반상에 그인 검은 줄처럼 또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지, 그들의 삶도 열 아홉 줄이 엇갈려 만들어낸 삼백예순한 개의 점처럼 유의미할지 궁금해 했다.

- 이유 없는 돌은 처음부터 놓지를 말아라. 일단 놓았으면 쓸모를 찾아라.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 광산 건설이 시작되었고 달과 지구 사이에서 자재를 운반하고 연락을 맡을 새 우주왕복선이 완성되었다.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사이 우리나라와 무관해 보이는 달 기지 건설 소식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고등학교 교과서마다 첫 번째 팀을 이끌었던 백인 영웅의 사진이 박혔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역사의 한 장이 되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전히 반도에 묶인 스물세 살 여학생. 자다 깨어 자리에 누운 채로 허공을 꼼짝 않고 바라보거나 신기술이나 정보에 늦은 학교가 답답해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었다. 꿈에서 나는 대기권을 통과하고 우주를 날았다. 진공에 노출되어 온몸이 부풀어 터졌다. 바둑판의 줄처럼 우주를 가르는 그물에 걸려, 기숙사 천정보다 까마득한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학원 석사 2년차이던 스물 여섯살에 마침내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달 기지와 우주왕복선에 필요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환상에 균열이 생겨났다. 조심스레 맞춘 성비와 국적, 인종비율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경제 논리가 자리 잡았다. 건설이 진행될수록 당연히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아졌고, 이미 영웅이 더 필요없는 사업에 목숨을 던질 사람은 줄어들었다. 나는 석사가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참고 기다렸다. 지원할 기회는 한 번, 많아야 두 번일 터였다. 지상에서 통신을 중개하거나 보내온 광석을 점검하는 일 따위에 배치될 수는 없었다. 내가 꿈꾼 것은 우주였다. 내가 갈 곳은 달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반상 한가운데 방치된 돌이 아니라 귀퉁이에서 제대로 뻗어나간 화려한 우주류였다.

나는 석사학위를 받은 날에 곧장 지원서를 넣었다. 박사는 아니라도 천문학 석사, 생물학 학사, 광물학 부전공에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가능자라는 이력서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만 일곱 해 반 동안 쌓인 짐을 정리해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렸고, 대학원에 다니던 삼 년 동안 창고에 박혀 먼지가 눌러 붙은 바둑판을 꺼내다 누렇게 바랜 연간 달기지 소식지 뭉치를 발견했다. 내가 모아둔 것은 아직 풀지 않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육 개월 후 서류 전형 합격 통지를 받고 면접을 위해 아시아지역 연구본부가 있는 중국 간쑤성으로 출발했다. 장대한 사막에서 번쩍이는 연구소와 얼핏 보기에는 폐허같은 우주선 발사대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하여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고, 나는 준비한 면접 자료를 훑어보는 대신 주머니에 넣어 간 플라스틱 바둑알을 만지작거리며 건조한 사막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지는 해를 따라 타오른 황막의 흙먼지가 아스라히 보이는 초원을 가렸다. 나는 발끝에 부딪히는 흙먼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만약 달에 간다면, 혹은 우주왕복선에 살게 된다면 이 하늘이 그리워질까. 이 땅이 그리워질까. 어머니가 그리울까.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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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그 답을 알지 못했다. 면접과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실감나지 않는 마음을 서둘러 추스려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던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사정없이 돌아가던 바퀴와 동시에 느껴진 아찔한 고통. 스물 여덟 살. 이십 년의 노력이 팻감 떨어진 대마처럼 죽어 나가는 데에는 이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중력이 껍질만 남은 몸을 쉴새없이 끌어당겼고, 병상에 누인 몸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침대로, 바닥으로, 땅으로 아득히 잠겼다. 겹겹이 쌓인 대기의 무게에 숨이 막혔다.

나의 일상도 배경이 되었다. 일어나고, 휠체어에 앉고, 병원에 가고, 집에 돌아오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물을 마셨다. 퇴원하고 서너 달이 지나 문득 돌아온 정신으로 바둑판을 찾아 보려 창고 문을 열었지만, 달라진 내 키에 적응하지 못해 쌓인 물건만 넘어뜨리고 말았다. 연간 달기지 소식지, 플라스틱 바둑알, 학창 시절 벽에 붙였던 빛바랜 사진, 다큐멘터리 디비디, 대학 졸업앨범이 쏟아져 내렸다. 얼굴에 야광별의 둔탁한 모서리가 부딪혔다. 아팠다. 먼지가 들어갔는지 눈과 코가 못 견디게 따갑고 숨이 목에 걸렸다. 아파 눈물이 났다. 나는 창고 앞에 앉아 이제 잡동사니가 된 나의 스물 아홉 해에 파묻혀 흐느꼈다.

저녁에 돌아온 어머니는 나를 욕실에 밀어 넣고 아무 말 없이 창고를 치웠다. 그리고 며칠 후 식탁 한켠에 비자나무판이 놓였다. 나는 집에 혼자 남는 낮이면 전날 밤 대국의 흔적이 남은 곰보 비자나무판의 실금을 쓰다듬고 집 구석에 처박혀 있던 기보책을 꺼내 십년 전, 오십 년 전, 백년 전에 입신한 기사들의 대국을 손수 놓아보았다. 가끔은 반짝이는 조개알을 꺼내 하나하나 닦기도 했다. 밤이면 그렇게 반지르르하게 닦은 차가운 알을 쥐고 텅 빈 반상 앞에 어머니와 마주앉았다.

병원 통원 치료가 완전히 끝나고 몇 개월에 한 번씩 들러 하는 검사만 남게 되자 나는 반 년 가까이 꺼져 있던 텔레비전을 켜고 즐겨찾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천문학이며 달기지 관련 뉴스그룹과 논문 데이터베이스 링크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모두 지워버리는 대신 온라인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지구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검은 밤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조차도 내가 대기 아래 갇혔다는 깨달음을 불러와 견딜 수 없었다. 반상이 곧 우주라면 그 어디엔가는 찍혀나간 틈이 있을 것이다. 반상이 인생이라면 이 상처는 실금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을 버티는 줄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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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컴퓨터 프로그램이 복잡하고 교묘해져도 사람 손이 가는 일은 남아 있기 마련이라 나는 학부생 답안지 채점과 간단한 논문 번역 아르바이트 자리를 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기 곤란한 광물학은 완전히 그만두었다. 온갖 국적과 나이의 사람들이 달기지와 관련 사업에 몰려들면서 연구본부에서 일하는 장애인도 조금씩 늘어났지만 내가 서른 셋이 될 때 까지도 우주 기지에서 장애인을 채용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막연한 기대나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삶이 아니라 초연할 수 있었다. 스무 살 즈음에는 월인들의 사진만 봐도 고개를 들던 질투심도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기지건설이 마무리 될 즈음에 스캔들이 터졌다. 직원들의 건강 문제였다. 중력이 낮은 달이나 우주왕복선에서 장기간 일한 직원들의 골밀도 감소 현상이 NASA/ESA의 주장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건설을 시작할 때는 충분히 대책을 세운 줄 알았는데 처음 달의 맨 땅을 밟고 돌아다녔던 월인들이 지구에 돌아오고 십 년도 더 지나서야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팀 서른 일곱 명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서른 명에게서 나이에 비해 턱없이 이른 골다공증 증세가 나타났고, 그 중 절반에게는 결석까지 있었다. 주로 우주에서 활동한 두 번째 팀원 중 세 명이 피부암에 걸린 것도 우주방사선 때문이라는 가설이 등장하자 과학계와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껏 제대로 된 후속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세계 방방 곡곡으로 흩어져 자신의 건강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살아온 계획 참가자들이 세밀한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건설 중단 운동이 일어날 만큼 절망적이었다. 그 모든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당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급한 대로 우주왕복선의 인공 중력이 지구의 0.5배에서 0.8배로 높아졌고 직원들의 우주 거주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되었으며 운동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하지만 결국 기지 건설은 중단되었고, 일 년 가까운 사업표류 끝에 NASA/ESA는 신체장애인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무중력 공간에서 일하다 지구로 돌아가도 상대적으로 몸의 무게를 버텨낼 필요가 적은 하반신 마비나 절단자가 주요 대상이었다. 뉴스그룹에서는 운동해야 할 부위가 적은 사람들은 팔다리를 쓰지 않거나 아예 없는 이들이라는 주장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인 정치적인 정당함과는 거리가 먼 결정으로 기지건설에 자원하는 사람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에 나온 궁여지책에 가까웠지만 지금껏 우주개발에서 배제되어온 장애인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권리 찾기에 나섰다. 결국 장애인 채용 문제는 우주 시대의 장애인권부터 지구의 법률 적용 범위 논쟁이며 국제법 논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사업 성공을 앞두고 악재를 맞은 NASA/ESA와 후원 다국적 기업들은 더 이상의 사업 지연으로 경제적, 사회적인 타격을 감수하느니 사업의 수혜자를 늘리고 지금껏 투자한 엄청난 비용을 회수하는 쪽을 택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되던 장애인 채용법안을 개선한 새로운 법안이 국제법에 포함되었고 달기지와 우주왕복선 및 연구본부가 있는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공부를 멈추고 장애인이나 국제법 뉴스그룹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온 신경을 모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막 서른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장애인과 일반인을 모두 포함하는 채용 공고가 나왔다. 다양한 경우에 맞춰 새로운 체력검사가 도입되었고, 몇달 후 건설 재개 우주선에 절차를 통과한 열두 명의 장애인이 처음 올랐다. 나는 그들이 탄 우주선이 발사되는 모습을 보고서야 뒤늦게 지원서를 보냈다. 십 년 전이긴 해도 이미 채용 절차를 통과한 경력이 있는 데다 그 사이 추가된 학위가 보탬이 되었는지 다시 중국 국경을 넘게 되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짐을 모두 챙겼다. 출발하기 전날 밤에 어머니는 바둑판이나 돌을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내 키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게 굽은 어머니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뻗어 어머니의 목을 감싸안고 고개를 저었다.

간쑤성은 이제 매끈한 도로가 반짝거리며 빛나는 연구단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발사대와 본부가 보이는 고층 숙소 창가에 앉아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 사막의 흙먼지를 떠올렸다. 지금의 내 나이에 어리기 그지없는 아이를 반상 앞에서 똑바로 마주보며 키웠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싶다던 화려한 꿈과 사막을 딛고 섰던 두 다리를 생각했다. 근무계약기간이 끝나는 일 년 후면 연장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은 귀환하게 된다. 혼자 몇 번이나 놓아 보았던 우주류의 창시자 다케미아 마사키의 기보에서 보았던, 직선적인 호방함을 받쳐내는 무섭도록 치밀한 수읽기를 머리 속으로 그려 보았다. 나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 그 착점의 순간들. 나는 창에서 몸을 떼고 두 팔로 침대에 풀석 몸을 뉘었다. 모레 왕복선으로 출발하고 나면 정신없이 바빠질 터였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오면, 그래, 돌아오면, 돌을 반짝반짝하게 닦고 어머니와 바둑을 두자. 망원경을 하나쯤 사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장애인권단체에 나서 보는 것도 좋겠지. 내 나이 불혹, 바둑은 이제 겨우 중반이었다.

* * *
착점: 돌을 바둑판 위에 놓는 것
반상: 바둑판 위
계가: 집계산. 남은 집의 수를 세어 승부를 가린다.
화점: 바둑판 위에 굵게 표시된 아홉 개의 기준점. 이 중 반상 한가운데에 있는 점을 천원이라고 부른다.
소목: 3의 4 지점. 화점에서 위 또는 옆으로 한 칸 간 곳이다.
흑과 백: 바둑에서는 실력이 약한 사람이 흑돌, 강한 사람이 백돌을 쓴다. 흑돌을 쥔 사람이 먼저 두기 때문에 유리하다. 실력 차이가 큰 경우에는 흑돌을 미리 몇 개 놓고 시작하는데 이를 '점을 놓는다'고 한다. 실력이 비슷한 경우에는 한 사람이 돌을 한 웅큼 쥐어 판 위에 놓으면 다른 사람이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추어 맞은 경우 흑, 틀린 경우 백을 쥐는데 이런 경우를 '호선'이라고 한다.
마이클 매케이: 유럽우주국 (ESA)의 화성탐사 책임자
우주류: 실리 위주였던 기존의 바둑과 달리 반상 한가운데를 공략하는 직선적이고 전투적인 형태의 전술로 1980년대 바둑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마: 바둑에서 거대한 세력을 이루며 연결된 돌. '대마'가 잡힌 경우 바둑은 대개 불계패(기권패)로 끝난다.
기보: 대국의 과정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 바둑판이 그려진 종이에 동그라미로 돌을 표시하고 그 안에 두어진 순서대로 숫자를 적어 넣는다.
이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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