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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The Power - 2장 음모(2)

2003.08.15 14:4608.15


출발한지 하루가 지나서야 수안 일행은 목적지 근방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목적지 근처에 오기까지 이렇다할 고초는 겪지 않았다. 가장 우려했던 알파리아 잔당의 습격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알파리아 잔당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을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저 우울하고 황량한 대지......그것이 수안 일행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수안 뿐 아니라, 다른 대원들 모두 우울하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바깥 풍경에 되도록 눈을 돌리지 않았다. 도착하고 나면 본격적인 조사활동을 해야했고, 그렇게 되면 저 빌어먹을 환경과 직접 부대끼면서 작업을 해야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일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질려 버리면 곤란하다는 공통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너무나 판이하게 변해버린 바깥 환경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가슴속에는 왠지 모를 공포의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들이 탄 스플린트의 속도도 서서히 느려지더니 곧 멈췄다.

"빌어먹을! 이런 별 천지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는걸......"

가장 먼저 스플린트에서 내린 고창천이 감탄 섞인 어조로 외쳤다. 뒤따라 내린 대원들도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깨를 크게 들썩거렸다. 마지막으로 내린 수안도 앤턴의(원정용 보호헬멧)옅은 회색 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무척 놀란 듯 동공이 눈에 띌 정도로 커졌다.

"이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군."이내 정신을 다잡은 수안이 차분하게 말했다."자, 모두 주목!"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눈앞의 광경에 넋이 나간 대원들은 수안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섯 명의 대원들은 수안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유독 고창천만은 심통 난 얼굴로 스플린트에 등을 대고 수안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수안은 그런 고창천의 행동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겨우 억누르고 모두를 두루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저 안개를 헤치고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마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힘든 활동이 될 것 같다. 지금부터는 연방대 내의 모든 계급은 여기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 내가 위대한 수석 보좌관 나리를 '야'라고 불러도 되겠구만."고창천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난 예외다."수안이 그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보통 대원들일 뿐이다. 준위니 중령이니 하는 계급장은 지금부터 떼버린다. 모두들 나의 명령에 충실히 따라주기를 바란다. 알겠나!?"

"옛!"

"자네......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어."

수안이 대원들을 헤치고 고창천에게로 다가가 노기를 잔뜩 띤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강인한 기백에 약간은 겁이 났는지 고창천은 얼른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는 척 했다.

사실 수안은 지금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쉴새 없이 밀려드는 고민거리에 파묻혀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이 대체 왜 이런 험한 일을 또 해야 하는지......이미 죽었다고 알려졌던 우주의 하얀 악마가 다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아버지, 게다가 군법회의에서 극형을 받을지도 모르는 익셀리온 컴퓨터를 해킹한 일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교활하고 영악하기 그지없는 하연수......일련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수안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나같이 복잡한 구석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할수록 그는 머리가 더 심하게 꼬이는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안은 조사활동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우주의 하얀 악마와 아버지가 무슨 관계인지에 대한 생각이나 앞으로 조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서 하연수, 그 여자를 어떻게 입막음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물론 조사활동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화나는 건 조사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왜 이런 곳까지 와야 하는 거였다. 그는 오래 전에 이보다 더 험한 임무를 승리로 장식한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조사활동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기괴한 광경 앞에서 그는 온몸에 소름을 쫙 돋게 만드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알파리아하면 심하게 굴곡 진 대지와 그 위를 흩날려 다니는 메마른 구리 빛 먼지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그 먼지는 우리가 아는 흙먼지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금속 원소가 함유된 무서운 것이다. 이놈은 어떤 때에는 굉장한 살인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둔다. 하여튼 어둑한 하늘과 그에 맞닿는 주절 없이 꼬불꼬불한 지평선 사이를 구리 빛 먼지가 가득 메운 풍경을 보는 누구라도 정신이 산만해지고 불안해지며 심하면 주체 없이 뒤죽박죽 엉켜 버리게 된다.

그러나 지금 수안 일행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달랐다. 끝없이 대지를 가로질러 오랑캐의 세계와 명백히 단절시켜 버린 만리장성처럼 이상하게 생긴 나무 비스무리한 것들이 수안이 최대한 볼 수 있는 시야까지도 한참 벗어나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들은 매우 진한 초록색을 띠었는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가득한 그 이상한 나무숲은 마치 누군가의 무덤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조용하고 음산했다. 게다가 마치 수안 일행이 서 있는 곳과는 다른 세계이라는 걸 강조하듯이 스산하게 나무 사이를 흘러 다니는 뿌연 안개가 뒤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했다. 보통 알파리아 지표는 원래 그런 건지 메말라 그런 건지 매우 딱딱했으며, 걸을 때마다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먼지가루가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수안 일행이 본격적인 조사활동을 위해 왠지 모를 공포와 두려움이 느껴지는 숲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들은 발 밑이 조금이지만 밟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수안 일행은 숲 가까이 도착해서야 진한 초록색 나무들이 보통 나무가 아닌 연한 줄기를 몸통으로 지닌 것임을 알았다. 그것들은 똑바로 자란 게 아니라, 이리저리 눕히고, 뒤엉켜 수안 일행의 키보다 십 수배나 높게 자라 있었다. 게다가 몸통 줄기가 어찌나 굵던지 수안 일행 모두가 손을 잡고 안아도 절반정도밖에 안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는 길은 없나?"

수안은 속으로 지금까지 알파리아에 와서 전혀 보지도, 상상도 못했던 기괴한 풍경 앞에 무척 놀랐다. 그러나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아는 그는 겉으로는 담담한 얼굴로 평소 때와 다름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여깁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피던 서기수가 어딘가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각기 자기 방식대로 주위를 살피던 대원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수안은 이미 서기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원들을 헤치고 나아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치의 틈도 없이 빽빽이 찬 나무 줄기(줄기에 가까우므로 이렇게 부르자.)가운데로 길보다는 통로에 가까운 자그마한 아치형 입구가 깜깜한 어둠을 향해 나 있었다. 수안은 그것이 꼭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악마의 벌린 입처럼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비단 그 뿐 아니라, 다른 대원들 모두 그가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쳇! 겁쟁이들 같으니 라구. 뭘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나 먼저 들어갈 테니 울지나 말고 내 뒤꽁무니나 졸졸 쫓아오라구."고창천은 콧김을 강하게 뿜으며 이렇게 비웃듯이 말하고는 지 혼자 아치형 입구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워낙 제 성미대로 하는 인간인지라 수안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결국 수안을 포함한 나머지 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이고는 그의 뒤를 쫓아 아치형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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