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정신을 맑게 해주는 그윽한 나무 향이 가득한 방안에 한 남자가 바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창 앞에(벽 자체가 창 그 자체이다.)서서 오래되어 보이는 구식 담배 파이프를 뻑뻑 소리를 내며 빨고 있었다. 흐릿한 창 너머로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매보다 날카로운 눈매, 거기에 일부러 빗은 듯이 위쪽으로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대변해 주고 있었다.

"멋지군."

그는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억양으로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구식 담배 파이프를 문 입은 잔뜩 밉상으로 씰룩거리고 있었다. 사실 바깥 경치는 그다지 볼 만한 것이 못됐다. 회색 때가 잔뜩 낀 구름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외부로부터의 빛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대기는 초저녁처럼 어두스름했으며, 새는 고사하고 날개 달린 벌레의 그림자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오로지 바람을 타고 으스스한 악마의 미소 같은 모양을 지으며 흩날려 가는 구리 빛 먼지들만이 보기만 해도 절로 기침이 터져 나올 정도로 가득했다.

"삐익~ 사령관 님, 수석 보좌관 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온 수안이 거수경례를 마치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사령관은 수안을 흘끗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음침한 바깥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별 보잘 것 없는 바깥 정취에 흠뻑 취한 듯 한동안 창 너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가끔씩 뻑뻑 소리가 크게 났는데, 그 때마다 수안은 바싹 긴장했다. 사령관이 담배를 파이프로 피면서 저렇게 소리를 크게 낼 때면 늘 골치 아픈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떠냐? 멋지지 않느냐?"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령관이 수안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수안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보기만 해도 오랜 기억 저 편에 깊숙이 잠들어 있는 원초적 공포를 은근히 자극하여 결국 스스로를 자멸시키게 만드는 저 우울하고 황량한 땅덩이를 보고도 감히 '멋지다'라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안은 사령관이 바보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는 필시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멋진 풍경 덕분에 수 백 명의 아까운 인재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죽었습니다."

수안의 말에 사령관은 고개를 천천히 여러 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둑한 구름이 두껍게 깔려 빛 한줄기 비치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에라도 홀린 듯한 텅 빈 두 눈은 지금 그가 매우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까는 훌륭했다."

그가 수안을 칭찬했다. 그러나 칭찬의 말치고는 어째 떨떠름직 했다. 수안의 귀에는 칭찬의 말이 오히려 자신을 질책하는 것처럼 들렸다.

"감사합......"

"허나!"그가 수안의 말허리를 자르며 날카롭게 외쳤다."너무 무모했다. 다행스럽게도 권철기 그 놈이 네 말에 잘도 속아넘어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라고 해도 널 구해주지는 못 했을 게다. 발견된 언어 변환기가 이 십여 개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게 아닐까 걱정된다. 권철기 그 작자는 필시 소이 장군의 부대에게 연락해 네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아보려고 할 게다. 만약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나는 얼굴을 들지 못하는 수준에서 끝나겠지만, 너는 바로 총살 감이다. 아무리 권철기가 우리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임에 분명하다고는 하나, 그런 무모한 수를 쓰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수안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소이 장군의 부대는 돌아오지 못 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령관 님께서 저에게 통신부의 분석관 자리까지 겸하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까?"

수안이 한껏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러자 사령관은 수안의 말이 무척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껄껄 웃어댔다.

"그렇지, 그렇지...... 그 정도는 돼야 내 자식이라고 할 수 있지."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히 소이 장군의 부대에 거짓 데이터를 전송시켜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게 만든 것은 아주 재치 있는 행동이었다. 물론 부하들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게다가 인터프라이즈 호의 두뇌인 익셀리온 컴퓨터에 저장된 소이 장군의 언어 변환기 연락 코드를 쥐도 새도 모르게 바꿔놓은 너의 대담한 용기에 나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저와 푸칭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푸칭은 나의 충실한 부하이기도 하다."

사령관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는 구식 담배 파이프를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번 일에도 너의 그 대담한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어느새 사령관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나는 오랫동안 사령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단 한 순간도 이 자리를 남에게 내어준 적이 없었다."

"아버지야말로 연방대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나 이 위치에 오르기 위해 나는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도 많이 했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저곳에선 말이다.(그는 고개를 돌려 바깥 어딘가를 바라보았다.)나는 지금껏 육감이라는 녀석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그 녀석은 어떤 때에는 너무나 섬뜩할 정도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구나. 저곳이냐?"

"예?"

"정체불명의 소형전함이 착륙했다는 곳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굳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터프라이즈 호 안에는 그런 소형 전함이 백 척이 넘습니다. 그것도 모두 공격용으로 말입니다. 그 소형전함은 수송용인데다가 오래 전에 단품 된 것이라 최강의 우리 부대에게는 그 어떤 위협도 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안은 갑자기 사령관이 정체불명의 소형전함 얘기를 꺼내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령관의 육감만큼이나 수안의 육감도 때로는 아주 정확히 들어맞을 때가 있었다. 그는 되도록 정체불명의 소형전함에 대해서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쪽으로 얘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로 군 내 상황이 어렵게 꼬이는 바람에 사령관이자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의 정신적 상태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걸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사령관이 정체불명의 소형전함에게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수안은 회의를 갑자기 끝내버린 이유가 분명 그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사령관 집무실로 오면서 쭉 해왔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인 사령관이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건 뭡니까? 새로 가꾸시는 겁니까?"

그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화분 하나를 가리키면서 얼른 말했다. 그것은 푸른빛이 감도는 두꺼운 철제 받침대 같은 것에 돔 모양의 투명한 유리를 씌운 것이었다. 투명한 유리 돔 안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크기는 수안의 팔 하나 길이 밖에 안됐지만, 몸통 줄기에서 사방으로 뻗쳐 나온 잔가지들은 연둣빛 잎새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어떤 것은 수안의 손바닥만했고, 또 어떤 것은 손가락보다 작았다. 적갈색과 연둣빛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것을 보는 누구라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는 걸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치코야 관목(치코야는 서기 2300년경에 인공적으로 만든 관상용 줄기나무. 진한 향을 내뿜는데 그것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그윽해서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 받고 있다. )이다. 아는 사람에게서 선물 받았다. 어떠냐? 향기가 좋지 않느냐?"

"좋군요. 얼마 전까지도 여기에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구에게 선물 받으신 겁니까?"

"자, 그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사령관이 천천히 의자에 앉으면 말했다."아직까지도 이렇다할 소식이 없다고 했나?"

"예? 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곧 조사가 끝나면 구체적인 보고가 들어올 것입니다."

"며칠이냐?"

"예?"

"조사팀이 파견된 지 며칠이냔 말이다."

"5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5일하고도 열 시간 정도가 경과했습니다."

이 말에 사령관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그런데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나?"사령관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스플린트로 인터프라이즈 호에서 그곳까지 가는데 정확히 얼마나 걸리나?"

"흠......정확히 30시간 정도 걸립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약간 머뭇거리던 수안이 약간 오그라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나흘이 지났군......흠......정말 그 놈들이......"

사령관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수안과 대화를 해나갈수록 점차 알지 말아야 할 진실에 가까워지는 사람처럼 얼굴이 무섭게 변하다 못해 너무 찡그린 탓에 눈에 띌 정도로 주름살이 많이 늘어났다. 그의 두 눈에서는 동요의 빛이 일고 있었다.

"네가 가거라."

사령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수안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직접 가라니......그것은 수석 보좌관이라는 높은 지위를 매우 무시한 명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석 보좌관은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것은 출세의 보증수표인데다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대장군 급 이상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교두보 같은 위치였다. 집약해서 말하자면 수석 보좌관이라는 자리는 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인재만이 차지할 수 있으며, 국가는 그런 인재가 허망하게 전쟁터에서 죽는 일이 없도록 절대로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수안에게 원정을 나가라니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례가 될 것이며, 자칫했다간 사령관이 탄핵까지 받을 수 있는 매우 극단적인 결정이었다.

"아......아버......"

"됐다."사령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더듬 말하던 수안의 말을 날카롭게 자르며 말했다."내가 왜 너에게 이런 명령을 하는지 너는 모를게다."

"아......아직 조사팀이 활발히 조사하......"

"그들은 분명 죽거나 실종됐을 거다. 만약 그들이 멀쩡히 살아있다면 내 추측이 빗나가는 거지. 그럼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다시 놈들이 돌아온 거다."

그가 또 다시 수안의 말허리를 자르며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알아야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까지 보낸단 말입니까!? 제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총으로 쏜다해도 가지 않겠습니다!"

수안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두 손은 핏줄이 터질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이내 부담스러운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침묵으로 한동안 방은 삭막한 정적만이 감돌았고, 오직 진한 나무 향만이 이 험악한 분위기를 달래고 있었다.
최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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