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네 사람이 다시 모여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로 아빠가 뒤를 조심스럽게 건너다보았다. 뒷좌석으로 나란히 앉은 두 아이는 얌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조심히 건너온 눈으로 두 아이에게 묻는다.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정한은 고민을 하였고, 연은 어학당에서 본 만두가 떠올랐다. 입맛도 없었고, 대답할 거리고 없었다. 그저 무심결로 말한다.

 

만두요.

 

만두?

 

아빠가 의아한 듯 말하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겠다.

만두라, 좋구나.

 

네 사람을 태운 자동차는 만두가게로 향하였고 가게는 문을 닫고 있었다. 아빠의 어색한 기침과 함께 만두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정한은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왕국 이야기에 대해 떠들었고, 집으로 별이 들었다. 그래 그랬구나. 아빠가 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연은 눈을 가만히 감고서 들려오는 것들을 맞았다. 편안히 넘실거린다. 삐걱이는 판자들의 갑판으로 아주 조금씩 파도가 잦아든다. 그때의 즈음으로 엄마는 여전히 구석에 있었다. 연이 입을 씹고 있는 동안에 아주, 아주 조금은 조용히 잦아들었다. 정한은 그가 실종된 몇 년의 시간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잠에 들고 아빠가 밤 인사를 한다. 연은 침대에 누워 자신의 방을 보았다. 아빠인지, 엄마인지. 아님 두 분 다인건지. 나를 한 쪽으로 밀어두었던 박스들이 풀어져 있었다. 짐들이 방으로 다시 두 발을 뻗고서 자리를 찾아가 있다. 눈물이 흘렀다. 연에게로 눈물이 흘렀다. 복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언제고 잊은 집의 소리였다. 야채를 썰고, 냄비로 물을 끓이는, 너무도 먼 옛적의 소리 말이다. 냄비가 달그락거리고, 부엌칼이 송송송 도마 위를 뛰어다니는 소리. 연은 하염없이 흘렀다. 그녀의 눈물로 흘러 그녀 역시 파도가 되었다. 삐걱이는 저 갑판의 판자를 흔들며 자신이 돌아왔다고 작게, 작게 소곤거렸다.

 

아침이 아주 되기 전 이른 그 시간으로 연은 눈을 감았다 떠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 여기에 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당연하고, 지극한 사실에 그만 한도 없이 흘러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서 탁한 목을 축이러 문을 나선다.

 

쉭 쉭.

 

김이 빠지는 냄비. 은빛의 머리로 요리가 완성되었다고 조용히 기지개를 피는 냄비 뚜껑. 싱크대로 쌓인 간밤의 접시들과 요리용 집기들. 썰어둔 야채들이 한 쪽으로 다소곳이 모여 있다. 연은 천천히 밀려갔다. 파도로 밀려와 자꾸만 거품들이 부서졌다. 자꾸만 부서져 해변가로 밀려왔다. 언젠가 학당의 자상한 중년 여성이 해주었던 말도 함께 밀려왔다.

 

만두는 꼭 교실과 같대요.

갖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다양한 속재료가 든 만두와 비슷하대요.

 

그리고 연의 바람 역시 들려온다.

 

그래서 만두는 꼭 가족과도 같아요.

부족하고 흔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 꼭.

만두와 같거든요.

 

자꾸만 파랑이 부서진다. 거품이 끼고 하얗게 번진다. 으아아아앙. 자꾸만 번져 서로에게로 닿는다.

 

끼익.

 

그리고 그런 연의 뒤로 문이 열린다. 그곳으로 가족이 열린다. 지난 몇 십 개의 해로 닳고 닳았던 감정들이 부딪혀 파도가 된다. 자꾸만 우는 연에게로, 자꾸만 닳아가는 엄마가 함께로 선다.

 

그렇게 가족이 된답니다.

 

그래, 그렇게.

 

 

 

 

 

 

문이 딸랑인다. 쾌청한 유리문이 활짝 제 몸을 펼친다. 연은 혼자서 어학당을 찾았다. 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보자. 그 일이 있은 후로 연은 힘을 얻게 되었다. 더는 애를 쓰지도, 기를 쓰지도 않는다. 연은 학당의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그런 소동을 피웠으면서도 연은 개운한 걸음으로 시원하게 걷는다. 걸으며 연은 교실 하나에서 함께 모여든 외국인들을 보게 된다.

 

저기.

 

연은 그를 불렀다.

 

아, 당신.

 

그리고 연의 부름으로 그가 고개를 들어 알은 채를 한다. 학생들이 자리를 비키고 연은 그와 남게 된다. 연은 허리를 숙였다.

 

그때는 죄송했어요.

 

아니, 아닙니다.

 

가브리엘이 손사래를 친다. 연은 쑥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편지를 꼬깃꼬깃 펼쳐 보인다. 연이 부탁을 한다.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가브리엘이 미소를 짓는다.

 

얼마든지.

 

연과 가브리엘은 함께 연이 쓴 편지를 프랑스 어로 번역 하였다. 불어에 어리숙한 연과 한국어에 어리숙한 가브리엘이 뭉쳐 또박또박 연의 다짐을 한 글자씩 바로 새긴다. 마지막 행의 문장을 옮기며 애를 먹던 둘은 마침표와 함께 두 팔을 번쩍 든다.

 

와.

 

두 사람이 함께 손뼉을 친다. 연의 한국어 편지가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불어로 완역되어 멋들어지게 수놓아져 있다. 가브리엘이 연에게 묻는다.

 

이 강아지, 당신 꺼?

 

연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개는 아니에요.

하지만 친구에요.

 

응?

 

연의 아리송한 말에 가브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게 어찌되었든 뭐가 중요한가. 가브리엘이 더 묻는다.

 

이 편지는 누구한테 줘요?

 

연이 창을 본다. 햇살이 든다. 언제부턴가 자꾸만 날씨가 좋다. 돌아온 그날부터인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나. 연은 그저 좋았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적어도 버겁지는 않다. 함께로 서있다. 파도가 몰아친다. 그리고 다함께 힘을 합쳐 파랑을 맞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서. 연이 답한다.

 

그 강아지에게 줄 거예요.

 

?

 

여전히 가브리엘이 의아하다는 듯 연을 본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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