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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정원의 여자들 - 네 장

2021.04.07 20:0604.07

요코는 숨을 골랐다. 호흡이 밭은 그녀의 가슴이 봉긋 올랐다가 내려간다. 머리칼을 만지고 백이 있는 방으로 문을 연다. 허 백은 요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이 부자연스럽게 닫히고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있다. 남자는 한때의 사랑에게서 눈을 내렸다.

[아무데나 앉아.]

요코는 그를 향한다. 문을 닫고 기댄다. 이브닝 드레스의 옆트임으로 살갗이 노랗게 번진다. 정원의 일로 요코는 오후 내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상대는 자신과 거리를 두려하고 지금은 시선조차 맞추려 하지 않는다.

[차갑네요, 당신.]

[.]

짐짓 고개를 돌려버리는 남자. 요코는 다리를 꼬아 기대어 팔짱을 꼈다. 방으로 눈을 굴린다. 아주 옛날 어쩌면 수 백은 더 지났을 것 같은 기나 긴 시간을 건너서 오게 된 남자의 방은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정원을 좋아하던 그를 위해 사주었던 식물 표본들. 정원 가꾸기 메뉴얼북, 매주 가져다주었던 주간 베스트 꽃 카탈로그지.

[全部なくなりましたね]

(다 없어졌네요.)

[?]

남자에게로 요코가 다가간다. 아이를 타이르듯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춘다. 남자의 허리가 휘어질 듯 뒤로 당겨진다. 그녀의 숨결이 그의 무릎에 닿으나 그조차 그는 싫은 듯 보였다.

[다 어디로 갔어요?]

요코가 묻는다.

[보관하고 있어.]

허 백이 답한다.

[어디에?]

요코가 묻는다.

[보관실에.]

허 백의 장난 같은 대답에 요코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다.

[冗談ですよね]

(장난하는 거죠?)

백의 답에 다행히도 요코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기나 긴 시간에서 홀로 정원을 거닐었을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뭐라고?]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 허 백은 어쩔 줄 몰라 하였다. 허 백의 표정도 조금 풀어져 있다. 요코는 적극적으로 그의 다리 위로 올라타려 한다.

[, 저건.]

들꽃 하나가 보석 속으로 박제된 브로치. 요코가 그리운 눈으로 브로치에 손을 가져다 댄다.

[뭐하는 짓이야!]

허 백이 요코의 손을 내치며 소리친다. 남자의 손안 가득 브로치가 쥐어진다. 요코가 제 손등을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그건 우리 거예요.]

허 백의 손과 가슴팍이 요코에게서 멀어진다. 요코는 소리 질렀다.

[당신 지금 이상해요!]

[대체 왜 그렇게 구는 거예요?]

[지금 제가 돌아왔잖아요!]

요코가 팔을 벌린다. 자신을 가리킨다.

[陽子ってきました]

(요코가 돌아왔어요.)

허 백은 매몰차게 대답하였다.

[내 방에서 나가.]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허 백은 등을 보였다. 오직 등만을 보였다. 브로치를 쥔 그의 손에 요코는 마음이 애가 달았다. 허 백이 소리친다.

[당장 나가!]

웰인지 무엇인지 하는 회사의 제품이 방을 나간다. 허 백은 브로치를 쥐고서 눈을 감았다. 갈피가 잡히듯 하다. 다과실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는 온 등으로 땀이 흘렀다. 정말 그녀가 돌아온 줄 알았으니까.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점점 더 그녀와의 기억이 가까워질수록 허 백은 스스로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죽고 없다.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생명은 태어나고 죽을 수 있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저건 요코가 아니다. 저건 걸어 다니는 알루미늄 제품일 뿐이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요코는 밤중으로 제 방에서 나와 허 백이 있는 침실로 나아갔다. 하녀들이 길을 비킨다. 소리가 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그의 방 앞까지 닿는다. 문을 살며시 연다.

가위.

[어머, 주인님은 이미 주무시고 있는 중이라.]

[용무가 있다면 내일 들러주세요.]

정원용 안드로이드가 허 백이 잠든 침대의 곁으로 서서 자신에게 가위를 겨누고 있다. 요코가 분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려 하였다.

.

가위가 입 근처까지 닿아 아슬아슬하게 빛나고 있다. 입술을 달싹이며 단이는 조용히 속삭였다.

[인간 흉내를 내는 안드로이드씨?]

[지금은 자야할 시간이에요.]

요코도 지지 않고 반박하였다.

[넌 내일 중으로 폐기처분 될 거야.]

요코의 협박에 단이는 엷게 웃었다.

[알아요.]

요코의 눈. 경직되는 입술.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지금 도움을 청하면 그가 일어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일어난다면 자신을 도와줄까. 자신을 요코라고 생각하여줄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단이의 가위가 요코의 목덜미로 다가가 짓누른다. 희미한 신음 소리가 튀어나온다. 차가운 금속이 살갗에 닿아 요코는 파랗게 질린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주인님을 더 완벽하게 모시기 위해선.]

가위가 요코의 목에서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요코의 입으로 비명이 비어져 나온다.

.

단이가 다른 한손으로 재빠르게 요코의 숨을 막는다.

[당신의 기억이 필요해요.]

요코의 입이 단이의 손에 죄여 조용히 숨이 빠지고 있다. 한단씩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치고 들어 단이가 제 품으로 안는다. 머리 부분으로 경고 표시인 빨간 빛이 나돈다. 단이는 그녀의 머리에 손수건을 덮어 조용히 방을 나온다. 하녀들의 눈을 피해 사뿐히 걸음을 옮기며 단이는 Well Life 사의 시제품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노인은 저택으로 경찰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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