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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INA - 수인들의 행군

2020.12.14 22:1512.14

베스와 캐시는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수정들이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베스가 캐시에게로 손을 들어 옆 방향을 가리킨다. 캐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너머로 달려간다. 베스는 숨을 헐떡이며 마을 외곽을 돌아 이나를 찾으려 애썼다.

 

횃불들의 노란빛이 이곳저곳으로 비추어지고 바쁘게 돌아다닌다. 아이들의 장난 섞인 웃음소리와 숨죽인 이들의 기도소리, 광장으로 손을 붙잡아 외치듯 부르는 노랫소리, 흔들리는 구원자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리는 비명 소리들이 어지럽게 섞여온다. 베스는 눈을 찌푸려 이나의 모습을 되새겼다. 그 아이의 머리칼과 복장과 피부색. 엇비슷한 나이의 소녀들이 골목골목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천장에 매달린 수정하나가 무게에 못 이겨 땅으로 추락한다. 비명 소리가 커진다. 마을 위로 땅벌레의 등껍질들이 하나씩 부서져 떨어진다. 무기를 손에든 인간들이 이곳저곳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비명과 목소리들이 커지다 못해 귀청을 찢는다.

 

[수인들이다!]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 바위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지는 화살들. 구원자의 등껍질이 부서진다. 수인들은 멈추지 않고 옆으로 땅을 파고 껍질을 부수며 길을 만들어갔다.

 

인간들이 화살과 창들을 모조리 던져 대지만 수인들의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베스의 눈앞으로 한 소녀가 넘어지고 그녀를 바위가 덮친다.

 

 

 

 

 

타냐는 그 하얀 늑대가 잡혀있는 좁은 감옥으로 달려 나갔다. 트라나는 괴로워 보였다. 한나는 수색대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고 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타냐가 걱정되었다. 트라나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제 손끝만을 보고 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타냐를 붙잡으러 뛰었다. 땅의 흔들림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 곳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구원자의 안으로 도망가고 어른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다.

 

수인들이 함성을 지른다. 구원자의 등껍질을 부수고 내려오던 행군이 마을로 내려와 창대를 들었다.

 

양으로 보이는 수인 하나가 가장 먼저 허리를 돌려 창대를 쥐었다. 가슴이 오그라 들었다. 어디로 향할지 몰라 고개를 든 채 굳어있었다.

 

성난 고함소리가 그 양의 입에서부터 내 귀에까지 닿는다. 그녀가 날린 창대가 내 앞으로 날아와 땅으로 꽂힌다. 사람들이 방패를 들었고 도끼를 든 수인들의 앞으로 몸을 부딪혔다. 어서 가야한다. 타냐를 찾고 트라나를 일으켜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한나는 어디 있을까. 그녀도 저 고함소리사이에서 검을 들고 있을까.

 

감옥이 있는 곳을 찾아 사방으로 소리를 질렀다.

 

[타냐, 타냐!]

 

불꽃들이 하늘에서 머리위로 쏟아진다. 수정들을 붙잡던 밧줄들이 끊어져 거대한 구원자의 사원을 반으로 무너뜨린다. 불이 일었고 집들이 불타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가득 귓속을 채운다.

 

[타냐!]

 

맨발로 잿더미를 밟으며 소리쳤다. 그녀가 들을 수 있게, 그녀가 알 수 있게, 그녀를 잡을 수 있게.

 

[타냐!]

 

둔덕을 올라 아래로 파내어 만들어진 감옥의 입구로 불꽃이 튀었다.

 

[타냐, 거기 있어?]

 

아우성치는 소리들이 어지럽게 섞여 입구 너머의 말소리들을 들을 수 없었다. 입구로 내려간 곳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주저앉아 있는 하얀 늑대가 자기 몸보다도 작은 감옥에 갇혀 있었고 기다란 검을 들고 서있는 타냐가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검에서 피가 흐르고 있고 감옥을 지키던 두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다.

 

[도와줘, 이나.]

 

그녀의 손에서 검을 받아 하얀 늑대를 가두고 있는 감옥의 문을 내리쳤다. 조잡하게 나무로 엮어진 감옥은 쉽게 부서졌다. 문을 넘어뜨리고 하얀 늑대를 불렀다.

 

[나가야 해요!]

 

타냐가 비명을 지른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양팔을 감싸고 있다. 그녀의 등을 안으며 속삭여주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나는 고개를 돌려 재촉하였다.

 

[어서 나가야해요.]

 

[안 돼.]

 

하얀 늑대가 제 다리를 가리켰다. 피멍이 사방으로 번져있었고 발목이 힘없이 옆으로 돌아가 있다.

 

[부러진 거예요?]

 

하얀 늑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타냐의 어깨를 잡고 크게 소리 질렀다.

 

[타냐, 정신 차려!]

[네 도움이 필요해!]

 

타냐와 함께 하얀 늑대를 한 팔씩 잡아 일으켰다. 수인들을 막으러 달려가는 사람과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사람들로 마을은 어지러웠다. 하얀 늑대의 무게에 못 이겨 나와 타냐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이대로는 멀리 못갈 것이다.

 

과일 수레를 발견하고 하얀 늑대를 위로 실었다. 하얀 늑대가 고통스럽게 울었고 수인 몇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발.]

 

내 기도가 무색하게 수인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콧김을 뿜으며 달려왔다.

 

[도망쳐!]

 

가터 씨가 방패를 치켜 올려 수인들을 막아내었다. 거대한 도끼가 나무 방패에 찍힌다. 가터 씨의 팔이 아래로 구부러진다.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어서!]

 

타냐와 나는 하얀 늑대를 실은 수레를 끌고 마을 뒤편으로 내달렸다. 마을로부터 멀어진다. 트라나는, 한나는 그리고 가터 씨는 무사한 걸까. 타냐가 힘차게 발을 굴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힘을 막아 수레를 세웠다. 타냐가 나를 바라본다.

 

[트라나도 구해야 해.]

 

타냐의 얼굴이 구겨진다. 그녀는 말없이 앞으로 수레를 끌었다.

 

[타냐, 트라나는 널 걱정해서...]

 

[집어치워!]

 

타냐가 목을 긁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으로 눈물들이 흐르고 있다.

 

[됐어, 나 혼자 갈거야.]

 

[타냐!]

 

타냐의 작은 몸이 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다. 나는 마을과 수레 사이에서 발을 굴렀다. 마을로 수인들이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수인들의 행군을 막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두 손을 꼭 쥐었다. 마을로 가려하는 내 몸을 누군가 수풀로 잡아 끈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하자 수풀 너머의 누군가가 나를 안심시켰다.

 

[나야, 캐시.]

[잠시만 숨어있어.]

 

캐시가 수풀에서 뛰쳐나가 수레를 끌던 타냐를 품에 안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타냐는 그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악을 쓰고 있다.

 

[친구 좀 데리고 있어.]

 

[캐시, 어떻게?]

 

[그건 나중에.]

 

수레 근처로 둔중한 목소리가 땅으로 울린다.

 

[거기 누구인가?]

 

캐시가 몸을 불쑥 일으켜 태연하게 걸어간다. 검은 물소가 수레를 매만지고 있었다.

 

[여, 올그.]

 

[이방인.]

 

[오랜만이네.]

 

[네가 여기 올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뭐, 나도 수인이니까.]

 

[그래서?]

 

물소는 수레를 가리키며 캐시를 노려보았다. 캐시는 두 손을 뒤로 모으며 예의 그 활기찬 말투로 말하였다.

 

[난 싸우는 걸 못하니까.]

[어.. 부상자를 옮기고 있었어.]

 

물소가 캐시의 뒤를 내다본다. 나는 고개를 움츠려 수풀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타냐도 내 옆에서 숨을 죽이고 캐시와 물소를 보고 있었다. 타냐는 물소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들어봤어.]

 

[뭐를?]

 

타냐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수군대었다.

 

[검은 물소가 마녀와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나는 거대한 몸으로 서있는 물소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의 커다란 덩치에 캐시는 고개를 올려 대화해야 했다.

 

[마을에서도 내려오는 이야기야.]

 

물소가 캐시의 이런저런 변명을 들으면서 눈을 굴리고 있다. 마을로, 수레로, 수풀로 그리고. 나는 온 몸에 힘을 주었다. 물소의 눈이 내가 숨어 있는 수풀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타냐가 속삭인다.

 

[포프 마을의 영웅들 이야기인데.]

[우리 인간들을 구하려 했대.]

 

나는 조심스럽게 타냐의 손을 쥐어 힘을 주었다. 타냐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다 나와 같이 물소가 있는 곳을 보았다. 역시 그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숨을 세며 눈을 감았다.

 

[넌 인간과 친해질 수 있다고 믿나?]

 

물소의 목소리. 캐시의 대답은 시간이 지나 나왔지만 짧고 간단했다.

 

[응.]

 

물소의 콧김과 발자국 소리가 우리가 있는 수풀 곁을 지나간다.

 

[포프 마을의 동화를 쫓아서 왔다고 했지?]

 

[동화가 아니야.]

 

캐시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물소가 코웃음을 친다.

 

[우리 마을에서 멀리 도망치도록 해.]

[이 세계에서 수인들은.]

 

물소의 둔중한 목소리가 수풀 바로 위에서 내려온다.

 

[인간들과 절대 친해질 수 없을 테니까.]

 

물소의 발자욱이 거칠게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됐어.]

 

캐시가 우리를 일으켜 수레를 끌었다. 나와 타냐는 수레 뒤를 밀어 그를 도왔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가면 나갈 수 있어.]

 

수레를 이리저리 끌며 그가 이끈 곳은 돌과 먼지들만이 있는 황량한 언덕이었다. 그가 소리친다.

 

[다 왔어!]

 

지저분하게 흩어져있는 돌덩이와 나무판자들을 지나 굴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마을이 있는 곳으로 돌아보았다. 마을을 덮고 있던 구원자의 껍데기들이 박살나 사방으로 무너져 있고 밝은 햇살이 폐허가 된 인간들의 둥지를 비추고 있었다.

 

오래 쳐다 볼 수 없었다. 팔이 저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이나, 어서 가자!]

 

수인들이 인간들을 잡고 사냥한다. 캐시가 재촉하였고 굴속으로 달음질쳐 수레를 힘껏 밀었다. 만약 저들에게 붙잡힌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에 가슴이 아팠다. 만약 잡힌다면 저항을 할 수나 있을까. 수레를 더욱 힘껏 밀었다. 캐시가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곤 더욱 힘차게 수레를 끌었다. 우리 셋은 빛이 보이는 바깥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베스도 날 죽이려 할까.

 

진정되지 않는 가슴 때문에 두려움이 뒤쫓아 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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