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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빠의 고향

2020.10.20 01:1610.20

아빠는 나를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고향으로 데려 가셨다.

 

 

아빠는 무거운 분이셨다. 말도 잘 하지 않았고 엄격한 규칙을 정해 집안에서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서운 분은 아니셨다.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농담도 간간이 내었고 만들어 놓은 규칙을 어겨도 혼을 내지 않으셨다. 머리를 쓰다듬었고 말없이 서서 하늘만 바라보셨다. 엄마는 그가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셨다. 온통 자기 생각에 빠진 멍한 표정의 사람을 엄마는 애써 포장하려 하셨다. 

 

그게 뭔데요?

 

글쎄.

 

엄마는 고향이라는 짧고도 간단한 대답만을 내었었다. 그의 멍한 표정과 뒷모습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니 아련하게 보였다. 나는 아빠와 어색했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나의 말에 그가 귀를 기울일 줄은 몰랐다. 고향이 가고 싶으면 가면 어때.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이었지만 아빠는 내심 가고 싶었는 지도 몰랐다. 물론 나도 함께 동행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엄마도 따라 가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아빠는 나만을 차에 태웠다. 아빠의 고향은 산 중으로 들어가 길도 닦이지 않은 깊고 외진 곳에 있었다. 엄마가 싸준 샌드위치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완전 시골이네.

 

그럼.

 

아빠는 엷게 웃어보였다. 그리워하던 늘 멍한 표정의 그.

 

엄청 시골이지.

 

차창을 죽 훑으며 대화할 건덕지를 고민하였다. 길게 뻗은 가지들이 유리창을 때리며 지나간다.

 

학교는 있어?

 

그럼,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단다.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런 작은 의문. 하지만 곧 흥미를 잃어 턱을 괴었다. 돌부리에 덜컹거리는 자동차. 길이 고르지 않아 팔이 멋대로 움직였다. 턱을 괴고 있기에도 힘이 들어 얌전히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아빠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색하다. 어쩌면 남보다 더.

 

다 왔다.

 

마을 입구를 표시하는 돌이나 표지판은 없었다. 마을은 좋게 보아도 칠이 다 벗겨져 폐건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콘크리트 상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아빠는 차를 몰아 학교 운동장에서 시동을 껐다. 학교는 낡았고 곳곳이 깨져있었다. 시계는 멈추었고 전등 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트렁크를 열며 뒤적거리는 아빠. 몸을 사방으로 흔들며 얼굴을 찡그렸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들이 텅텅 비어있다. 철근이 비어져 나온 곳도 있었고 문이 부서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모든 건물들이 그랬다.

 

캠핑용 장비를 아껴두기를 잘했어.

 

아빠는 어딘가 신나 보였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텐트를 설치하며 아빠는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평소에는 물 한잔도 말없이 자신의 손으로 떠다 마시는 그가 나에게 지시를 하고 그곳을 건드리면 안된다며 충고도 해주었다. 들떠 보였다. 

 

진짜 여기야?

 

의심이 되었던 건 아니다. 설사 이런 곳이 정말 고향이라 할지라도 다시 오고 싶을까 싶었다. 아빠가 태연히 웃어 보인다. 나의 말이 그저그런 투정으로 들렸을까. 다른 의미는 없었지만 사방으로 바람이 휑휑 부는 살벌한 곳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다. 밤이라도 되면 귀신이라도 튀어 나올까 무서웠다. 

 

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꽤나 좋은 곳이란다.

 

아빠는 숨을 크게 들이 쉬며 가슴을 폈다. 산 정상에 올라 야호라도 외칠 것처럼.

 

좋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나 먹은 늙은이처럼 손을 앞 뒤로 박수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아저씨 같아!

 

좋지 않아?

 

태평한 그의 모습에 안심이 되었지만 등 뒤를 흘깃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사방이 트여있는데다 사람이 살지 않아 건물들 사이가 정글처럼 잡초들이 억세게 자라 있었다. 내 표정을 본 걸까. 아빠는 농담이라도 하듯 어깨를 으쓱하였다.

 

괜찮아, 위험한 건 안나와.

 

위험한게 아니면 무어라도 나온다는 말이다. 진짜 정글은 아니니 호랑이나 재규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떠돌이 개나 멧돼지라도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빠는 못을 박으며 텐트를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잘못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근처 작은 민박집이라도 알아 보았을 텐데. 나는 살며시 떠보았다.

 

정말 여기서 자게?

 

당근이지.

 

되도 않는 소리와 농담. 고장난 시계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맞은편에 떡하니 해를 가리고 있는 폐학교는 소름끼칠 정도로 거대하고 공허해 보였다. 어렸을적 보았던 만화영화, 학교괴담이 떠올라 괜시리 살이 떨렸다. 그때는 친구들이랑 웃으면서 그런 거 없다고 장난을 쳤는데. 실제로 제 앞에 있으니 말 한마디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불안하게 눈을 방황하는 내게로 아빠는 3분 카레를 장난스럽게 흔들고 있었다. 카레는 좋지만 이런 분위기는 아니다. 계속 불만 투성이 표정을 짓던 내게 아빠는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너도 꼭 마음에 들거야.

 

나도 꼭 마음에 들었으면 한다. 아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차를 몰아 빠져 나갈 테니까. 이불은 두꺼운걸 챙겨 춥지는 않았다. 간밤에 들개들이 찾아오는 사건도 없어 별일 없이 깨어날 수 있었다. 아침이 맑았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지퍼를 내려 빼꼼 고개를 내미니 아빠가 멀리서 부터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피고 팔을 뻗으며 요란하게 몸을 흔들었다. 내가 내민 고개를 보았는지 팔을 흔들며 인사까지 한다. 정말 저 사람이 우리 아빠인가 싶기도 하다. 고향으로 온 게 신나는 건 이해하지만 저 정도로 사람이 바뀔 수도 있는 걸까.

아침은 엄마가 싸준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아빠는 벌떡 일어나 작은 손가방을 챙겼다. 두 손을 주머니에 꼿고서 아빠의 동작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고향은 뻥이고 그냥 심령 스팟을 가고 싶었던게 아닐까. 어쩌면 아빠는 무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고스트 헌터인 것은 아닐까.

 

출발 준비 완료, 가자꾸나!

 

아빠가 앞장서 걷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이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혼자 남아있기에도 뭐해서 종종 따라 걸었다. 아빠는 우물이 있는 마당 딸린 집으로 발을 뻗었다. 풀이 억세게 자라 있어서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자리한 디딤돌들로 겨우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은 떨어져 나갔고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우물을 비추었다. 아래로 무엇을 들여다 보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한껏 뺀다. 그러고서 나에게 손짓하였다. 기분 나쁜 우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빠를 따라 고개를 들이 밀었다. 손전등의 빛이 허공에서 끊긴다. 좁고 깊은 우물 속은 괴물의 식도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있는거야?

 

아빠는 내 말에 딴소리를 하였다.

 

너만했어, 아니 더 컸던가?

 

누구?

 

아빠는 우물을 응시하고 있어 잔뜩 구겨진 내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여기 살던 누나. 그때는 내가 어려서 누나였지.

예쁜 편은 아니었어. 목소리도 꽤 세되었는데.

비명이라도 지를라치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짖궂은 장난이라도 쳤던 걸까. 나도 당해보아서 안다. 남자아이들은 늘상 줄을 끊고 치마를 들춘다. 아빠도 어렸을 적에 그런 아이들이었다니 새삼 또 놀라게 되었다.

 

그래도 좋았어. 그때는 여자면 다 좋았었지.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녀를 첫번째로 점찍어둔 건 아니었어.

 

응?

 

아빠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를 피며 수풀 사이를 거닌다. 뒤늦게 발을 휘적대며 따라 붙었다. 이런 곳에서 미아가 되는 것은 사양하겠다. 

 

첫번째라니 첫사랑?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의 고향 탐사는 꽤나 강행군이었다. 멋대로 자라 허리까지 오는 수풀이나 그늘이 잔뜩 낀 물푸레 나뭇가지들로 더욱 힘겨웠다. 해가 하늘 위로 깨끗한 파란색을 비추었지만 아빠의 고향 마을은 어둡고 어스레했다. 다음 장소는 가게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떡 방앗간이라는 글자가 바래져 색이 빠져 있었다. 유리가 낀 샤시는 잠겨 있었다. 덜커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는 등을 홱 돌렸다. 진이 빠졌다.

 

쨍그랑.

 

놀라서 토끼 눈이 된 나를 두고 아빠는 자연스럽게 샤시를 열어 들어갔다. 창이 없어 내부가 습하고 깜깜했다. 손에 들고 있던 돌을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나에게로 손짓한다. 아빠를 따라 간 곳에 가게에 딸린 가정집이 있었다. 떡 찧는 기계들 뒤로 장판이 깔린 작은 방 하나. 티비와 살림도구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전쟁 후에 남겨진 흔적들'처럼 사진으로 남기면 역사책에 올라갈 것 같았다. 

 

여기 살았던 부부는 다정했어.

 

나는 잠자코 아빠 얘기에 집중하였다.

 

떡도 찧고 술도 내렸었어. 술떡이라고 하는데.

꼭 챙겨 주셨지. 

 

아빠는 다리를 들어 방으로 들어가더니 장판을 뜯기 시작하였다.

 

좋은 분들이셨어. 그래서 속기도 잘했어.

사기도 당했는데. 화도 내지 않으셨어.

 

장판이 크게 뜯어져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외마디를 질렀지만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온통 새뿌연 연기로 콜록거리고 있는데 아빠는 감상에 젖은 채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가늘게 눈을 뜨며 기침을 하였다. 흐릿하던 눈으로 물체가 형태를 갖추어 간다.

 

어릴 적에 갖고 놀던 거란다.

 

'푸른 눈의 백룡'

 

어린이용 게임 카드 한 장.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호탕하게 웃었다.

 

너희들도 이런 거 가지고 놀지 않나?

 

나는 말도 하지 않고 손사래를 치며 건물을 나왔다. 꼬마 애들이나 가지고 놀 장난감을 찾아서 뭐하려는 건지. 나는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아빠가 옷에 묻은 먼지를 사정없이 털며 기지개를 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손질도 안 된 나무들이 우거져 숲 속 같던 마을은 원치 않게도 금세 해가 저물었다.

 

이제 돌아가자.

 

 아빠는 나를 텐트에 남겨두고 다시 수풀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향이라도 아빠에게는 분명 소중한 곳이다. 나는 풀이 죽어있기 보다 기운을 차리기로 하였다. 텐트 뒷편 학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렸다. 어제는 분위기에 압도 되어서 크게 느껴졌었는데 밝은 낮에 보니 훨씬 작았다. 2층짜리에 단촐하고 수수한 건물. 반도 몇 개 되지 않은 것 같다. 멀지 않는 곳에 뭔가가 매달려 있다.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지만 폐건물은 여전히 소름끼친다. 하늘을 보았다. 밝은 해가 환하게 빛나고 있다. 학교 운동장은 탁 트여 마을 속처럼 금세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아빠를 기다리는 것도 무료해서 호기심에 이끌려 보았다. 유리가 신발 바닥에 밟혀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낸다. 밖에서 보았을 땐 몰랐는데 빈 복도로 검은 그을음이 사방에 튀어 있었다. 번지고 흘러내린 모습에 양팔을 감쌌다. 후회가 되었다. 되돌아 나가려 몸을 돌리니 매달린 무언가가 눈에 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나 보다. 

썩어서 벌레가 먹은 나무문을 짚으며 살며시 들여다 보았다. 천장에 매달려 보이던 것은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전깃줄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오려 했다. 얇게 먼지가 덮인 교탁 위에 놓인 작은 물건이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소리를 죽이며 물건을 손에 들었다.

 

'푸른 눈의 백룡'

 

어린이용 게임 카드. 아빠가 버려진 집의 장판을 뜯어 찾았던 물건. 나는 교실에서 나와 다른 교실로 들어갔다. 바로 옆 반 교탁에도 똑같은 카드가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번엔 두 장이 놓여 있다. 나는 순서대로 반을 쭉 돌았다. 카드가 반에 하나씩은 꼭 놓여 있었다. 카드들에 쌓인 먼지가 손에 가득 묻어 지저분해졌다. 나는 혹시나 하였다.

위험하다. 이런 짓을 해서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하였다. 맨 처음 장소로 찾아 갔던 우물로 가보았다.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물푸레 가지를 하나 꺾어 우물 아래로 휘저어 보았다. 바닥이 닿지 않았고 손에서 힘이 빠져 가지가 맥없이 우물 아래로 사라지고 만다. 나는 더 크고 굵은 막대기를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우물 집 주위를 뒤져 꽤 길게 뻗은 도리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손으로 힘껏 잡아 우물 아래로 내렸다. 힘들긴 하지만 우물 바닥에 닿는데 성공한다. 뭔가가 툭툭 치여 크게 휘저었다. 나는 도리깨를 위로 잡아 올렸다. 고이고 고였던 물에서 썩은 내가 났고 끝 부분이 덜렁거리며 도리깨가 모습을 보인다. 도리깨에 걸린 건 역시나 '푸른 눈의 백룡'이라 적힌 물에 불은 카드였다. 그리고 긴 머리카락의 가닥들이 함께 건져 올라와있었다.

 

나는 텐트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폰으로 쉴세없이 자판을 쳤다. 마을 이름도 모르고 정확한 년도도 모른다. 빈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지만 원하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아직 초가을이었지만 한기가 들어 입고 있던 가디건을 꽉 잡아 당겼다. 멀리로 아빠가 걸어 오고 있다. 해는 반쯤 저물어 노랗게 땅이 물들었고 작고 소박한 학교도 커지는 어둠에 맞추어 몸집을 불려갔다. 아빠가 간이 램프를 키며 가스버너에 불을 불였다. 

 

다 했어?

 

입술이 떨렸다. 왜 일까. 그리고 무엇을 다 했다고 물었던 걸까. 나는 내가 한 질문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을 세웠다. 아빠가 예의 그 미소를 지었다.

 

응, 좋았어.

 

아빠는 내가 한 질문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 하다. 아니면 애초에 이상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한 질문에 맞는 어떤 용무가 마을에 있었던 걸까. 나는 입술을 한차례 깨물며 태연한 척 지껄였다.

 

이제, 가야지 안 그래?

아빠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입술 끝과 눈매가 굳었고 턱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혹시 날 데리고 온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아빠는 선뜻 답하여 주었다.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밥을 데우고 즉석 식품을 꺼내 함께 끓인다. 배는 고팠지만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아빠.

 

응?

 

나는 힘겹게 한 자씩 차례로 끊어 말하였다. 타당한 이유도 필요했다. 머리를 굴려 그를 살득할 말을 조합하였다.

 

나 역시 텐트에서 자는 게 무서워서 그런데

차에서 자면 안 될까?

 

아빠는 바짓단과 셔츠를 거세게 털어대었다. 흙먼지가 잔뜩 날렸다. 먼지와 마른 흙들로 그의 옷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는 못내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어찌하든 그의 여정은 이미 저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였다는 것을. 밥만 먹고 곧바로 차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아빠는 이미 까맣고 밤이 된 마을을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램프와 버너의 불빛으로 그의 입가가 미소를 짓는다.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무척 흐뭇하고 다정한 얼굴로 보일 것이다. 채 완성하지 못한 검색화면을 들여다 본다.

 

- 연쇄 살인사건

 

문장에 마을을 덧붙여 보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 아빠는 물품들을 정리하고 텐트 안으로 사라졌다. 뜬 눈으로 밤을 세며 한참동안 생각에 빠졌다. 마을 곳곳에 있던 놀이 카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물 안에서 건져 올려졌던 머리카락들은 무엇이었을까. 왜 이 마을에는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학교 안에서 불이 났더라도 불이 번지면 바깥까지 그을은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터였다. 아무리 보아도 학교 외관은 낡고 오래되긴 했지만 불에 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검게 그을은 자국이 불에 탄 흔적말고 다른 것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어째서 아빠는 손전등이 든 작은 손가방만 들고 갔을 텐데 온 옷에 흙들이 잔뜩 묻어 있던 것일까. 마치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파고 다시 묻었던 사람처럼. 몸이 떨린다. 차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고 차창으로 어떤 존재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의 불안과 걱정에 지쳤던 걸까. 일어났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고 아빠는 한창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차 밖을 내다 보았다. 집으로 가고 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빠는 늘상의 표정으로 돌아와있다. 어딘가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는 멍한 얼굴. 

 

집으로 가?

 

응, 돌아가야지.

 

나는 어제 하루의 사건들에 머리가 멍 해있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탓이었는지. 밝은 햇살과 익숙한 풍경에 마음이 놓였었는지. 나는 무심코 아빠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다.

 

아빠에게 고향은 뭐였어?

 

 

일권은 미지근해진 맥주잔을 옆으로 치우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일권과 함께 잔을 기울이던 그녀는 쉽게 말을 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안주를 먹으며 딴청을 피운다.

 

그래서, 그래서 뭔데요 선배?

 

글쎄?

 

여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빈 맥주잔을 흔들거렸다. 일권은 들이밀었던 몸을 뒤로 빼어 등을 기대었다. 항상 그녀는 꼭 필요한 정보를 감추고는 하였다. 저번 일에서도 그렇다. 위험할뻔 했지만 그녀는 재미있었다며 능청스럽게 사람을 골리는데 재주가 있었다. 일권은 맥이 빠진채 여자를 노려 보았다. 어차피 그녀의 맥주를 사줄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일개 대학원생이었던 그와 그녀가 즐길 수 있는 것도 지금 이런 시기 뿐이니까. 일권은 투덜거렸다.

 

그래서 선배의 아버지 고향 얘기랑

우리가 조사하고 있는 민담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이번 민담은 파면 팔 수록 께름칙한 것들이 많은 이야기였다. 조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여자는 일권의 반응에 아쉽다는 듯 부루퉁하게 입술을 빼었다. 그러면서도 해야할 말은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관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 아빠가 정말 그 고향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외부인인데

마을사람들을 죽였었는지 모르지만

 

여자는 살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였다. 그건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은걸까.

 

선배는 정말 선배 아빠가 그런 일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여자는 텅 빈 유리잔으로 흘러내리는 맥주 거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안주는 남아 있었지만 취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일권의 걱정스러운 질문과 다르게 여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응.

 

일권은 불편한듯 몸을 뒤척였다. 남의 부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 자쳬가 결례가 되지만 그 부모의 자식이 직접 그렇다고 이야기한다면 제삼자로서는 어떻게 반응해 주어야 할까.

 

그럼 어떤 관계가 있는데요?

 

민담에서 마을의 두레는 희생자 한명을 골랐어. 

풍년일지 흉년일지 정하는 놀이에서

희생자를 마음껏 유린하였지.

 

유린이라는 단어에 일권은 흠칫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취하러 오는 술집이라도 정신이 말짱한 채 주위 얘기를 엿듣는 사람은 늘 한 테이블 씩은 꼭 있는 법이다.

 

하지만 민담에서 묘사되는 것을 보면

꽤나 숭고하고 명예로운 일처럼 서술되어 있었어.

 

정당성을 부여한거죠.

 

그렇지. 그리고 그 당위성은 의식을 진행하는

진행자에게까지 이어졌어.

 

여자는 막힘없이 이야기하였다.

 

진행자는 민담에서 어떻게해서 보나

고결하고 신에게 충직한 것처럼 그려져있어.

그리고 그런 특징은 의식을 진행하는데 있어

큰 변환점을 맞게 했지.

 

알아요. 저도 조사를 했으니.

 

일권은 포크로 마른 안주를 뒤적거렸다. 비인간적인 의식행위에 죄책감과 죄악감이 사라진다. 그것은 누구나 그런 행위를 하는데 있어 머뭇거리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큰 당위성과 의식의 고결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마을 밖에서는 욕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 해당 의식은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위였다. 

 

그 의식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에는 아이들도 끼어 있었죠.

 

행위와 인식은 사회적 행위이다. 그들에게 사회는 작은 두레였고 두레 속에서 의식과 행위는 관습되었다. 그리고 완전한 관습을 위해서는 아이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했을 것이다.

 

맞아. 그리고 아빠가 얘기하길

첫번째 희생자였던 여자를 죽일 때

누나라고 했어. 그때는 자기가 더 어렸다면서.

 

일권은 몸이 굳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관습이 최근에 까지 이어졌을리가 없다. 그런 민담 속 일은 적어도 몇 백년은 건너 일어났었을테니까. 아닌가. 일권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였다. 그렇다는 소리는.

 

그렇다는 소리는 아빠는 마을 어른들의 말에 따라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게 되겠지.

 

일권은 허튼 소리가 나올까 입을 닫았다. 일권의 대답없는 표정을 보며 여자는 선뜻 제안을 건네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보려고 해.

 

어딜요?

 

아빠가 살았다던 그 마을.

 

폐촌이라면서요. 그런 곳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요?

 

가봐야 알지.

 

일권은 맞은편의 여자를 노려 보았다. 내키지 않았다. 어딘가 음습하고 께름칙한 뒷 이야기를 좇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늘 준비가 다 되었다는 투로 슬쩍 그를 데려가고는 하였다. 그의 의사는 하나도 묻지 않은채.

 

저도 같이요?

 

여자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연한거 아냐?

 

역시. 일권은 낙담하는 마음을 숨기며 태연히 자리를 치웠다. 여자도 이야기가 끝난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일권은 앞서 걷는 선배의 마음이 신경쓰였다. 자신의 부모가 범죄자라는 사실 자체로 평생을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세간에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권은 그녀가 아빠에게 얽힌 어두운 과거를 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 사실을 대면하고 그녀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선배.

 

그녀가 돌아본다. 어줍잖은 위로를 할 바에 침묵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살짝 취기가 남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선배 아빠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예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여자는 일권의 말을 듣고 크게 팔을 벌려 흔들었다. 언제 저만치 걸어 갔는지. 일권은 점점이 멀어지는 그녀에게 한 말을 당장 후회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물밀듯 밀려올 부끄러움을 일권은 겨울 바람에 날려버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때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자신이 한 질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에게 고향은 뭐였어. 그리고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한 아빠의 말도 역시 기억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아빠의 기일이 돌아온다. 왜 진작에 그 일에 대해 물어보지 못한 걸까. 살짝 후회되기도 하였다. 입고 있던 재킷을 몸으로 잔뜩 잡아 당겼다. 한기가 들었다. 이번 민담을 조사하면 아빠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여자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짓던 아빠의 표정처럼 개운해 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차안.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 따뜻하고 힘있는 말투. 그 마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살아있는 표정을 짓던 그. 그의 말.

 

아빠에게 그곳은 훈장과도 같은 곳이란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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