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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진짜 소원>

 

가을이 되었다. 높은 곳으로 하늘이 닿았고 새빨간 과일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걸려 있다. 마사코네 집에도 가을 햇살이 걸린다. 스바루는 학교에 갔다. 그 일 이후로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과거로 여행을 했던 일들이 먼 꿈처럼 느껴지는 시간. 마사코는 쾌활하게 일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 보다 앞서서 짐을 들었고 항상 웃으며 직장내 분위기를 띄웠다. 우리 마트의 쾌활한 마사코씨가 돌아왔다. 실종이 된 이틀의 시간을 마사코는 집안 사정으로 얼버무렸다. 변하지 않은 그녀를 보고 마트의 직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었다. 

 

안녕하세요, 마사코씨.

 

어머, 무슨 일이세요?

 

저녁 파트에서 조기 퇴근을 하던 마사코에게 미코가 찾아왔다. 미코는 음료수 병들이 담긴 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인사하였다.

 

그냥 스바루가 잘 지내나 해서요.

 

마사코는 미코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으로 걸으며 마사코는 만날 때마다 하였던 말로 대화를 틔었다. 

 

그동안 우리 아이를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미코가 두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한 것이 없다.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을 하고 길을 걷던 것은 스바루, 그 아이이다. 

 

스바루는 잘 지내나요?

 

모르겠네요.

 

마사코는 점잖게 웃었다. 

 

그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타박타박. 두 사람의 걸음이 나란히 박자를 맞춘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 아이가 어떤 지는 제가 알 수 없죠.

 

마사코의 얼굴이 빛깔로 물든다. 차분한 색들이 그늘을 만든다. 어두운 마사코의 눈으로 미코는 말없이 제 발끝만을 바라보았다.

 

전.

 

마사코가 걸음을 멈춘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다. 온 거리가 노을로 잠기어 미코는 눈이 부셨다. 마사코가 드는 눈으로 구름들이 흐르고 있다. 마사코는 소원을 말했었다. 그 아이가 하는 모든 선택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노라고.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 스바루가 자신에게 고백을 한다면 자신은 그저 받아들일 것이다. 그 아이가 지내왔던 기나 긴 공허함에서 본인마저 사라지면 안 되니까. 적어도 그 아이의 선택에서는 그 아이의 바람대로 이루어져야할 테니까.

 

기도라도 하고 싶어요.

 

어떤 기도. 과거의 일들을 없던 것으로 치우고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게 해 달라는 기도. 한없이 용서만 구걸하려는 기도. 비워진 것들만 채우려 끝없이 허덕이는 기도. 마사코는 다짐을 한 듯 보인다.

 

다만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에요.

 

스바루가요?

 

네.

 

어머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될 거예요.

 

그건 모르죠.

과거로 여행을 하며 전부 다 보게 되었어요.

제가 그 아이에게 한 행동들을.

어쩌면 그 아이에게, 전 덩치 큰 불행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죠.

 

그렇게 생각하세요?

 

미코는 망설였다. 마사코의 걸음을 채 따라 가지 못한다.

 

그럼요.

 

굳이 그렇게 생각을 안하셔도.

 

마사코는 죽 길을 걸었다. 멈추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며 마사코는 저녁 찬거리에 대해 걱정하였다. 이제 그녀에게는 스바루가 해주는 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혹시 스바루가 저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가요?

 

미코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 못하였다. 미코의 축처진 등을 너머로 보았던 것인지, 지겹도록 말한 감사의 말을 또 한번 하고 싶었던 것인지. 마사코는 장난스럽게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런 건 스바루에게 직접 물어봐야 겠죠?

 

미코는 궁금해졌다. 스바루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그저 행복하기만 해달라 빈 엄마에게 스바루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스바루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 미코는 장담하지 못하였다. 미코는 확신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미코는 외치려다 입술을 물었다.

 

그렇지만 결국 돌아왔잖아요.

 

망연히 속삭이며 마사코를 따라 보도를 건넌다. 스바루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마사코와 어떤 삶을 살지. 미코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모두 행복했으면 하고 마사코와 똑같은 소원을 빌었다.

해가 저문다. 곧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집으로 귀가할 것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짓자. 마사코는 그런 사실만으로 충분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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